"이게 전부 아니다, 더 비참한 사건 많다"
[인터뷰] '나영이 사건' 취재한 KBS <시사기획 쌈> 박진영 기자
▲ KBS <시사기획 쌈> 박진영 기자 ⓒ 권박효원
'나영이 사건'을 취재한 KBS <시사기획 쌈>의 박진영 기자는 재판부가 가해자 조아무개씨에게 판결한 12년형에 대해 "재판부가 1심에서 깎아준 게 가장 문제라고 본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고 검찰이 항소를 포기했다"고 비판했다.
1일 오전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한 박진영 기자는 무엇보다 나영이의 신상이 드러날까봐 걱정이 컸다. 여러 차례 음성변조와 모자이크를 거쳤고 원본 테이프는 회사 금고에 넣어두었다고 한다. 다행히 아직 나영이는 학교에 잘 다니고 있지만, 위험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미 인터넷에는 사건에 대한 갖가지 '소설'이 올라오고 있다.
저마다 사건에 대해 한마디씩 논평하는 정치인들에 대해서도 "말잔치"라고 꼬집으면서, 아동성폭력 문제를 다루기 위한 통합 태스크포스를 주장했다. 관련 통계가 서로 다를 정도로 부처간 협조가 안 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현재 박 기자는 10월 20일 방송을 목표로 후속편을 취재 중이다. 속편에서는 피해사례보다는 대안에 집중할 생각이다. 그러나 가해자 인권을 존중하면서 재발을 방지할 묘안은 무엇일까. 두 달간 이 문제를 취재했던 박 기자도 아직은 고민스러운 상황. 그는 "여론에 휩쓸려 법을 추진하지 말고 차분하게 생각하는 계기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박진영 KBS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
"이게 전부 아니다, 더 비참한 사건 많았다"
▲ KBS <시사기획 쌈> 박진영 기자 ⓒ 권박효원
"1심에서 검찰이 무기징역을 구형했는데 재판부가 깎아준 게 가장 문제라고 본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고, 검찰이 항소를 포기했다. 가해자 조아무개씨가 전과 17범이고 범행도 계속 부인하는 등 죄질 나쁜 것을 봐서는 재판부가 국민 법감정을 무시한 게 아닌가. 지금 법 체계에서 (아동성폭력에 대한) 형량이 작지는 않다고 보는데, 판결문을 분석해보니 나이가 많다거나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형을 깎아주는 경우가 많았다."
- 사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폭발적이다. 느낌이 어떤가.
"프로그램 만들면서부터 가장 걱정되는 게 피해자 노출이었다. 모자이크나 음성변조를 서너 번씩 했다. 시청자들이 싫어할 정도의 기계음이 날 때까지 변조했다. 관심이 높아지니까 다시 걱정이 된다. 나영이 말고 프로그램에 등장한 다른 피해자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 이런 끔찍한 성폭력 사건들이 여론의 관심을 끌지만 휘발성이 강하다.
"여론의 특징이긴 한데, 나영이 사건 하나에 너무 집중됐다. 사건의 더 큰 확산을 바라진 않고, 이를 계기로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아동성폭력범죄 양형기준이나 아동 보호대책이 나와야 한다. 조아무개씨 한 명이 전부가 아니다. 더 비참한 사건이 많았는데, 피해자가 나서주지 않아서 다루지 못했다. 한 사건에 매몰될 필요는 없다."
- 특히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해 정치인들도 한마디씩 하고 있다. 어떻게 보나?
"'말잔치'인데, 우려가 되는 게 이 대통령이 대책을 만들라고 했지만 쉽지가 않다. 여성부·보건복지부·경찰 등 걸쳐있는 부처가 많은데, 유기적인 협조가 안 된다. 통계 하나만 봐도 부처마다 집계된 게 다르다. 본방에 통계를 쓰긴 했는데 의미가 없다. 통합 태스크포스가 없는 한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2편에선 좀 그런 문제도 다룰 생각이다."
- 부모들은 관심과 지원에 대해 정중한 거절 의사를 밝혔다. 어떻게 하는 것이 나영이를 돕는 방법일까?
"첫 방송 나가고 아버님께 바로 전화 드렸더니 '노력해줘서 고맙다'고 하셨다. 어제 다시 통화하는데, 다른 방송사에서 전화가 왔다면서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묻더라. 그래서 '(계속 언론에 나가는 것을) 말리지 않는데 아이가 노출될 가능성도 있으니 잘 판단하시라'고 말씀드렸다. 나영이 가족을 도와주겠다는 분들은 되게 많다. 저도 마지막 통화에서 '아이가 노출되지 않는 상황에서 (언론 취재를) 주선하면 받아들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아버님을 설득했다. 생각해보겠다고 하시더라."
취재 원본 테이프 꼭꼭 숨긴 까닭
- 언제부터 어떻게 이번 기획을 하게 됐나.
"지난 6월 미국에 탐사보도 연수를 갔다가 방송 프로그램 시연을 보는데 성범죄자 얼굴이 노출되는 거다. 미국 기자에게 '소송에 안 걸리냐'고 했더니 '이길 자신이 있다'고 하더라. 우리 현실을 보면서 어떻게 기획을 해볼까 고민하다가, 마침 9월이 전자발찌 제도 도입 1년이었다. 두 달 정도 취재하면 재조명해볼 수 있을 것 같아서 7월 중순 나영이 아버님을 만나고 미국도 열흘 갔다오면서 취재를 했다."
- 기획 중에서 나영이 사건은 어떻게 취재하게 됐나.
"처음엔 한 단체의 소개로 (사건에 대한) 정보 없이 아버님을 만났다. 딸이 얼마 전에 나쁜 일을 당했는데 만나주신다고 했다. 보통 기자들 안 만나주지 않나? 2시간 정도 만났는데 차마 자세한 내용을 못 여쭤보겠더라. 두 번째로 집 근처에 찾아갔더니 아버님이 진단서랑 사진을 들고 나와서 놀랐다. 세 번째 만났을 때, 그 말이 잘 안 나왔는데 '혹시 아이를 볼 수 있겠냐'고 물어봤더니 '괜찮다'고 해서 인터뷰를 잘 했다."
- 직접 나영이를 만나본 느낌은 어땠나. 지금은 꿋꿋하게 잘 지내고 있는지.
"학교 잘 다니고 있다고 한다. 아직은 노출이 안 돼서 학교에서도 잘은 모른다. 그러나 앞으로 사춘기나 결혼할 때가 되면 또 고비가 올 것이다. 그때 다시 잘 챙겨야 할 것이다. 계속 관심을 가지고 챙겨줬으면 좋겠다."
▲ KBS 시사기획 <쌈> 한 장면. 가해자에 대한 온당한 처벌을 바라는 나영이가 그린 그림. ⓒ KBS
- '나영이 사건'이라는 사건 명칭에 대해서도 문제제기가 있다. 어떤 이름이 적당할까.
"'조OO 사건'으로 할 순 없고. 마땅한 명칭이 떠오르지 않는다. '나영이'라는 이름은 사실 큰 고민 없이 본명과 전혀 다르면서 흔한 이름으로 쓴 것인데, 고유명사가 돼서 당황스럽다."
- 법적으로는 가해자의 형을 늘릴 방법이 없다. 사건 해결의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하나?
"형량이 길고 짧은 문제를 떠나서, 언젠가는 가해자 조씨가 (석방돼) 나올 것이다. 그때 어떻게 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공주 치료감호소가 있지만 열악하고, 성폭력가해자 특별병동도 비전문의가 담당한다. 그렇다고 민간 의료기관이 가해자들을 격리 치료하는 것도 아니다. 처벌 이후의 재활이나 교화 없이는 형량이 12년이든 15년이든 사건이 재발할 것이다."
- 제2·제3의 나영이를 예방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방송에서 언급한 전자발찌나 약물 투여는 인권침해 논란이 있다.
"결국 피해아동의 아픔과 가해자의 인권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 외국사례를 다 적용되긴 힘들다. 가해자 신상공개 같은 경우도, 미국은 다른 주(州)로 이사가면 그만인데, 우린 더 치명적이다. 그렇지만 그걸 안 하면 이런 일이 또 발생할 수 있다.
어떻게 할지는 고민스럽다.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이런 큰 사건이 벌어지면 그 전에 논란이 되던 법들이 쉽게 통과된다. 전자발찌도 논란 많다가 혜진·예슬 사건으로 통과됐다. 그렇게 여론에 휩쓸려 법을 추진하지 말고 차분하게 생각하는 계기를 가져야 한다."
"인터넷에 눈뜨고 보기 힘든 소설들 올라와... 아이를 찾지 말라"
- 후속 취재는 어떻게 진행되나.
"이런 사건들이 휘발성이 강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빨리 만들 생각이다. 오는 10월 20일 방송을 목표로 하고 있다. 피해사례보다는 대안을 집중적으로 취재할 생각이다."
- 최근 KBS 시사프로그램에 대해 축소·연성화 비판이 있다.
▲ KBS <시사기획 쌈> 박진영 기자 ⓒ 권박효원
"이번 주제가 많은 호응을 얻긴 했지만 아이들과 관련됐기 때문이고, (정치사회적으로) 민감한 주제는 아니다. 이번 보도를 계기로 우리 제작진과 탐사보도팀도 정부 정책의 문제점에 대해서 더 취재하자는 논의가 있다. 지켜봐주시면 더 좋은 작품 만들지 않겠나."
- 취재기자로서 시청자와 국민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제가 겸손해서가 아니라 마음이 무겁다. 아이들 문제를 팔아서 프로그램 했다는 생각에 아직도 불편하다. 인터넷상에 보면 '범인이 목사다'는 말도 나오고, 나영이가 입은 옷도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사실과 다르다. 눈뜨고 보기 힘든 소설들이 올라와 있다.
이런 내용을 아이가 봤을 때 어떤 기분이 들겠나. 정말 자제를 부탁드린다. 나영이를 찍은 원본 테이프가 혹시라도 유출될까봐 회사 금고에 넣었다. 아예 파기하려다가 당분간 갖고 있기로 했는데, 부디 아이를 찾지 말아달라."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