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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각, 이 과자 한번 먹어봐... 마누라가 생겨

[중국발품취재 2010-2] 고도 시안에 정착한 후이족 거리의 먹거리

등록|2010.11.10 11:56 수정|2010.11.10 11:56
고도 시안(西安)은 중국 패키지여행 코스 중 제법 인기가 높은 편이다. 실크로드나 티베트로 가려는 배낭여행자들도 즐겨 찾는 곳이다. 중원 고도 시안은 진시황이나 병마용이 대표하지만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소수민족 거리인 후이민제(回民街)도 관광코스 중 하나이다, 기껏해야 한두 시간, 야시장만 둘러보는 경우가 많은데 골목길이나 서민문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아쉽다.

이슬람 문화를 간직한 채 중국에서 정착하면서 만들어 먹던 요리들이 아주 많다. 그냥 중국요리라는 큰 범주에 넣어서 짬뽕처럼 섞어 버리지 않는다면 중국 서북방면에서 살아온 이슬람교도들의 독특한 먹거리문화와 만날 수 있다.

시안 중심가인 중러우(钟楼)에서 구러우(鼓楼)를 지나면 바로 후이족(回族) 거리가 나온다. 이슬람 사원인 청진사(清真寺)가 몇 군데 있고 주변은 서민들의 삶의 터전이면서 시장이고 외국인을 위한 관광코스이다.

▲ 시안 후이족 거리 모습. 이 큰 길에서 안쪽으로 들어가면 서민들의 생활공간이 나온다. ⓒ 최종명


'청진'이란 말은 이슬람교를 숭상하는 중국 소수민족의 문화를 상징한다. 온통 홍색이나 황금색으로 뒤덮인 중국에서 초록색 이 두 글자가 있으면 무슬림이다. 기독교, 불교와 더불어 세계 3대 종교인 이슬람교를 믿는 인구는 15억이 넘는다. 중국은 6개 정도의 소수민족이 이슬람교를 믿는데 자치주가 있는 후이족과 위구르족(维吾尔族)이 가장 인구가 많다.

두 민족은 혈통이나 역사적 배경이 아주 다르다. 게다가 위구르족이 민족국가에 대한 애착이 강렬한데 비해 후이족이 자주 독립의지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중국에 정착한 페르시아나 아라비아 출신 상인들은 자신의 민족 영토나 왕조를 세운 적도 없다. 그들에게는 오로지 이슬람교를 숭상하면서 현지화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만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중국 서북방면에 정착한 후이족들은 종교적 신념이 유사하고 지역적 특성에 맞는 재료나 기후에 적합한 위구르족 먹거리와 아주 닮아 있다. 후이족 서민들이 사는 시장 곳곳에서 파는 먹거리를 보면 대체로 후이족 전통 먹거리라고 할 만한 것은 거의 없다. 눈요기 삼아 이색적이면서도 재미난 먹거리를 하나씩 맛보자.

면을 주식으로 먹는 서북지방 사람들이지만 양고기가 듬뿍 들어간 양러우좌판(羊肉抓饭)도 시도 때도 없이 먹는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무슬림들에게 양고기는 싸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좋은 재료이다. 양고기뿐 아니라 채소까지 넣어서 기름과 함께 볶는데 양고기볶음밥이라 할 만하다. 중국에도 많은 볶음밥인 차오판(炒饭)과 달리 건포도를 넣는다. 신장(新疆) 투르판(吐鲁番)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포도 생산지이니 자연스레 말린 포도가 감초처럼 들어간다. 큰 그릇에 담아주는데 10위엔이다.

▲ 시안에서 본 양러우좌판. 일반 볶음밥과 비슷하지만 건포도가 들어간 특이한 맛이다. ⓒ 최종명


전해내려 오는 말에 의하면 한 의원이 말년에 병이 들었는데 어떤 처방으로도 낫지 않자 스스로 매일 먹는 밥에 여러 가지 재료를 넣고 먹었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건강해졌다고 한다. 사람들이 도대체 무얼 먹었는지 묻자 이 밥을 만드는 처방을 알려줬다고 한다. 전설치고는 아주 단순하지만 양고기와 야채로 건강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의 공감대 정도로 생각하면 될 듯하다. 거리마다 이 양러우좌판을 파는 곳이 많다. 건포도 맛 때문에 입맛에 맞지 않을 수 있지만 포도 맛과 어울린 볶음밥이라니 두세 명이 한 그릇 함께 맛 봐도 좋을 듯싶다.

▲ 호두로 만든 과자인 허타오쑤. 흰색 모자를 쓴 후이족 모습. ⓒ 최종명

아침 점심 저녁 가리지 않고 이 양러우좌판을 먹다 보니 시장에는 건포도인 푸타오간(葡萄干)을 파는 곳이 많다. 검은색도 있지만 붉은색, 연두색도 있다. 다양한 종류의 포도가 생산된다는 뜻일 것이다. 품질에 따라 1근(500그램)에 12위엔에서 15위엔까지 한다.
말린 포도만 있는 것은 아니라 파인애플(보뤄, 菠萝), 망고(망궈, 芒果), 키위(猕猴桃, 미허우타오), 사과(핑궈, 苹果), 바나나(샹자오, 香蕉), 여지(리즈, 茘枝), 귤(진쥐, 金橘) 등 다양하다. 우리는 술 안주나 심심풀이로 먹지만 밥 볶는데 함께 들어가기도 하니 사뭇 식습관이 다르다.

한 후이족 할아버지가 무언가를 포장하고 있어서 보니 바삭바삭 구운 과자인 쑤빙(酥饼)이다. 호두로 구운 과자인 허타오쑤(核桃酥)를 담고 있는데 누런 종이에 제품 이름이 적힌 빨간 종이를 덮고 포장하니 꽤나 값어치 있는 모양새가 난다.

밀가루에 설탕 넣고 기름에 구울 때 들어가는 재료에 따라 즈마쑤(芝麻酥, 깨과자), 화셩쑤(땅콩과자, 花生酥)와 용의 수염처럼 생겼으며 황실에서 먹었다는 룽쉬쑤(龙须酥)도 보인다.

▲ 마누라과자라는 이름의 라오포빙. ⓒ 최종명


거리 좌판에 재미난 이름의 과자가 하나 보인다. 바로 '마누라과자'라고 해야 할 라오포빙(老婆饼)이다. 밀가루 빵에 호박 속과 깨를 묻혀 만든 것이다. 총각이 매일 이 과자를 먹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배필을 만나게 된다는 속설이 있다고 하는데 말도 안 되는 농담일 것이다. 다만, 마누라과자라고 이름이 붙은 까닭은 옛날에 가난한 부부가 살았고 집안어른이 병이 나자 마누라가 몸을 팔아 병간호를 했으며 남편은 이에 낙담하지 않고 오랜 연구 끝에 이 과자를 만들어 팔아 다시 마누라를 데려왔다고 한다.

사실 라오포빙은 소수민족 먹거리인지 알 수 없고 원나라 말기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의 부인이 휴대하기 편하고 영양가 있는 간편요리로 고안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후이족 거리에서 전통 먹거리는 민족 불문하고 다양하다.

▲ 감으로 만든 과자인 스쯔빙. ⓒ 최종명


가을철 별미인 감을 기름에 튀긴 스쯔빙(柿子饼)은 정말 독특하다. 명나라 말기 반란군인 이자성 부대가 시안에 진군하자 농민들이 대접해 알려졌다고 하는데 감을 열을 가해 요리를 만들다니 정말 발상이 독특하지 않을 수 없다. 떫은 감에 술을 살짝 바른 후 밀봉해 며칠 말린 후 꺼내 즉석에서 튀겨 만든다고 하니 생각보다 절차가 복잡하다. 하기야 곶감 만드는 시간에 비하면야 오래 걸리지는 않을 듯하다.

다소 한적한 거리를 걸어 들어가니 전형적인 위구르 사람이 무언가를 열심히 펼쳐놓고 있다. 간판에는 생전 처음 보는 낯선 글자가 써있다. 어떻게 읽는지 물어보고 나서야 낭(馕)인 줄 알게 됐다. 획순이 무려 31획이고 간략하게 줄인 중국 간체로도 25획이나 된다. 위구르족 등이 즐겨 먹는 밀가루 빵으로 화덕에 붙인 채 오래 구웠다고 해 카오낭(烤馕)이라 부른다. 마치 피자처럼 커다란 크기인데 반죽할 때 소금, 양파, 달걀 등을 함께 넣고 굽는 것이다.

▲ 밀가루빵인 카오낭. 화덕에 붙여 구워낸 빵으로 오랜 역사를 지닌 전통먹거리이다. ⓒ 최종명


이 빵은 고고학자들이 위구르족 고분에서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할 정도로 20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바깥에 이 빵을 넓게 펼쳐 놓았는데 안쪽으로 2명의 젊은 위구르족이 빵 화덕인 낭컹(馕坑)에 불을 계속 지피면서 반죽을 넣었다가 다시 빼내고 있다. 이 큰 빵 하나에 5위엔이다. 서너 사람이 나눠 먹어도 될 정도로 큰데, 사실 여러 명이 나눠 먹어야 겨우 다 먹을 수 있으니 우리 입맛에는 익숙하지 않은 것이겠다.

시안부터 실크로드 도시마다 손 쉽게 볼 수 있는 음료수가 쏸메이탕(酸梅汤)이다. 한여름 갈증을 풀어내는 훌륭한 맛이자 1잔에 1위엔 정도하는 서민적인 음료인데 사실 알고 보면 매실을 감초, 계피, 설탕 등을 함께 넣고 가루 낸 것으로 만든다. 그래서 곳곳에 음료수의 원료 가루인 쏸메이펀(酸梅粉)을 파는 곳이 많다.

후이족 거리에서 가장 흔하게 만나는 것 중에 라러우(腊肉)가 있다. 이슬람교도 무슬림들은 돼지고기, 개고기, 당나귀고기, 말고기를 먹지 않지만 소고기나 양고기는 먹는다. 이 고기를 훈제한 것이 라러우이다. 라뉴양러우(腊牛羊肉)라고 쓴 고깃집이 많고 거리 좌판에도 흔하다.

▲ 무슬림들은 소고기와 양고기만 먹는다. 훈제고기를 파는 가게(오른쪽아래)와 이 고기로 햄버거처럼 만든 러우자모(오른쪽위), 비슷한 이름의 퉈퉈모(왼쪽). ⓒ 최종명


그리고 고깃집에서는 정육점처럼 고기를 근 무게로 썰어 팔기도 하지만 밀가루 빵(馍)에 훈제된 라러우를 사이에 넣고(夹) 햄버거처럼 만든 라뉴러우자모(腊牛肉夹馍)를 팔기도 한다. 이 모(馍)는 일반적으로 만터우(馒头)라고 하는데 발음으로 만두는 중국에서는 맨 빵을 말한다. 이 러우자모에 양고기를 넣기도 하는데 시안을 비롯해 중국 서북지방의 대표적인 음식이라 할만하다.

러우자모와 비슷한 것으로 퉈퉈모(饦饦馍)라는 것도 있다. 이곳 시안 후이족들이 즐겨 먹던 것으로 러우자모와 만드는 방법은 대동소이하지만 이름만 다르다. 아라비아 말로 음식이란 말의 투얼무(图尔木, Turml)에서 유래된 퉈(tuo)를 중복해서 쓴 것이다. 러우자모가 점차 퍼져 중국 여러 지역에서 팔리지만 퉈퉈모는 시안에서 처음 봤을 정도로 이름에서 풍기는 정서가 사뭇 종교적, 민족적이다.

이렇게 고기를 훈제해 햄버거처럼 먹기도 하지만 빵을 으깨고 거기에 고기가 들어간 국물을 넣어 먹기도 한다. 물기가 있다고 해서 파오모(泡馍)라 부른다. 이 파오모 역시 이곳 시안의 전통요리이다.

고기라면 양고기꼬치인 마라촬(麻辣串儿)을 빼놓을 수 없다. 지금은 전 중국 어디서나 쉽게 먹을 수 있고 심지어 우리나라에도 이제 많이 볼 수 있는 이 양고기꼬치 양뤄촬(羊肉串儿)은 사실 서북지역의 고유한 먹거리라 할 수 있다. 마라(麻辣)라는 말은 아주 심하게 맵다는 말인데 우리나라 고추처럼 매운 느낌과는 다소 다르고 산초라고 하는 라자오(辣椒)가 들어가 입안이 얼얼할 정도로 매운데, 말로 설명하기 참 어렵다.

▲ 마라촬을 굽는 장치. 긴 판이 있고 그 아래 연탄이나 숯을 깔고 굽는데 위로 환풍기가 달려 있는 것이 특이하다. ⓒ 최종명


숯이나 연탄을 넣고 긴 판 위에서 자전거 살인 촬(串儿)로 고기를 꽂아 구울 때 이 라자오를 뿌려서 불에 굽는 것이다. 거리마다 마라촬을 굽는 장치가 많이 보이는데 밤이 되면 연기가 진동하고 고기 굽는 냄새가 사방을 뒤덮는다.

맥주와 함께 길거리에서 술 안주로 수십 개씩 먹기도 하는데 꼬치 하나에 1위엔 정도하니 그다지 비싸지도 않다. 전 중국이 이 양고기꼬치로 매일 밤 얼마나 많은 양들이 죽어나갈 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양고기 꼬치의 진면목은 시안을 시작으로 우루무치(乌鲁木齐)에 이르는 서북지역이 최고의 맛이라 할 수 있다.

후이족 거리 주변은 관광지이지만 서민들의 생활상을 그대로 볼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라마단이 끝나 육식을 하기 시작하는 카이자이(开斋)라는 말이 걸려 있는 것도 다른 중국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다.

이슬람교도들이 자주 마시는 팔보차(八宝茶)를 마시는 청년도 있고 길거리 청소부 아주머니도 보인다. 이들은 모두 후이후이마오(回回帽)라 부르는 단색의 모자를 쓰고 있다. 남자들은 평상시에는 흰색을 쓰고 겨울철이면 회색이나 검은색을 쓰지만 결혼식과 같은 특별한 행사에는 붉은색이나 파란색, 녹색 모자를 쓰기도 한다.

▲ 쏸메이펀을 파는 가게(왼쪽위)와 후이족 모자를 쓰고 쏸메이탕을 사 먹는 사람(왼쪽아래), 마라단 카이자이라는 글자가 있는 거리를 여성용 후이족 두건을 한 모습(오른쪽) ⓒ 최종명


여자들은 머리를 다 가리는 두건 같은 것을 두른다. 보통 흰색이지만 결혼한 여자들은 검은색, 아이들은 녹색을 쓰고 무늬를 수 놓아 예쁘게 만들기도 한다.

생활공간 곳곳에는 마작하는 사람들도 많고 옷 가게나 잡화점도 일반 중국서민들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연탄 파는 가게도 보이고 식당마다 불꽃이 거리까지 내뿜으며 사람들의 시선을 모은다.

공동 수도가 있는 곳에서 한 사람이 야채를 씻고 있다. 자세히 보니 열쇠로 잠긴 개인수도꼭지를 열었는데 수도꼭지마다 다 열쇠 하나씩 잠겨 있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민족이나 종교가 같더라도 서민들의 가장 큰 관심은 생계 문제라는 느낌이 든다. 그러니까 이 수도는 공동수도가 아니라 개인수도인 것이다. 열쇠가 있다는 말은 다른 사람은 쓸 수 없다는 것이고 어디선가 사용량을 검침하고 있다는 것이니 정말 중국답다 하겠다.

▲ 시안 후이족 거리에서 본 수도꼭지. 열쇠가 잠겨 있는 모습이다. ⓒ 최종명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13억과의 대화 www.youyue.co.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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