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장면... 김정숙 여사 사진을 찾았습니다
연극 <이등병의 엄마> 제작자가 쓰는 비하인드 스토리
시작은 2016년 8월 어느 날의 일이었습니다. 그날 저는 아내와 함께 산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늘 아내에게 제 마음속 고민을 하나씩 꺼내 놓습니다. 그날 제가 꺼낸 주제는 군의문사 유족 엄마들에 대한 미안함이었습니다.
2015년 3월, 김광진 국회의원실을 그만 둘 때 였습니다. 만 2년 1개월간 군의문사 유족들과 함께 의무복무중 사망한 군인의 명예회복 및 사인 규명 캠페인을 해 왔는데 여러 사정으로 그만 두게 된 것입니다.
그때 작별을 고하는 자리에서 어머니들은 그야말로 어린 아이들처럼 울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냐"며 자리를 떠나는 저를 붙잡고 우셨습니다. 그런 어머니들을 뵈며 저 역시 어린애처럼 울었습니다. 그러면서 드린 약속이 있었습니다.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절대 어머니들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지난 19년간 그랬던 것처럼 제가 있는 또 다른 자리에서 늘 어머니들과 함께할 것입니다. 그러니 저를 믿고 기다려주세요. 반드시 함께할 날을 제가 또 만들어 낼 것입니다."
아내가 알려준 연극 <이등병의 엄마>
하지만 그 약속은 쉽지 않았습니다. 물론 언론 기고 등을 통한 캠페인으로 나름의 노력은 지속했지만 의미있는 반향을 일으킬 수 있는 역할은 어려웠습니다. 그렇게 시간만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상황에 대한 제 마음속 고민을 아내에게 토로하며 군의문사 유족 어머니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아내가 매우 상큼한 제안을 내 놓은 것입니다.
"그럼 그 어머니들과 함께하는 연극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그렇게 해서 시작한 연극 <이등병의 엄마> 였습니다. 유족에게는 치유를, 국가와 국방부에게는 군의문사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 마련을, 그리고 관객에게는 공감을 만드는 연극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저는 다음 스토리펀딩과 <오마이뉴스> 연재 기사를 통한 모금 캠페인에 나섰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펀딩을 시작하려고 준비하던 2016년 11월 1일 이른바 '박근혜, 박순실 사태'가 터진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날 펀딩을 시작하는 것은 무모한 도전 같았습니다. 전 국민적인 촛불집회로 모든 이슈가 집중되는 상황에서 '군의문사 문제 해결을 위한' 연극 비용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가 제대로 전달될 것 같지 않아서였습니다.
고민 끝에 펀딩 시작 하루 전날, 결국 전화를 했습니다. 펀딩 담당 선생님에게 "미안하지만 이런 사정이 있으니 1주일만 연기해 주실 수 있겠냐"고 사정했습니다. 그러자 스토리펀딩 측에서는 갑작스러운 제 부탁을 순순히 들어주시는 것 아닌가요. 안된다고 할까 내심 조바심쳤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 이어지는 말이 지금도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그런데요. 선생님. 일주일 연기는 문제가 아닌데 이 일이 일주일 가지고 해결될까요?"
우려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일주일 후에는 몇 십만 집회가 200만 촛불로 이어졌고 매주 단위로 새로운 기록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기승전'이 최순실로 시작해서 박근혜로 끝나는 시기였습니다. 결국 저는 다시 전화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번엔 1달만 더 연기해 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12월 1일. 펀딩 첫 편이 올라간 날입니다. 그때 그 마음 고생은 제 평생 잊을 수 없을 기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2,800여 후원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기적'이라는 표현은 이것이 아닐까요. 그 어려운 시기에 보여주신 기적같은 후원 덕분에 저는 마침내 막연히 꿈에 그리던 연극 <이등병의 엄마>를 올릴 수 있었습니다. 크고 작은 펀딩 후원자 분들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미국에서, 캐나다에서, 그리고 또 수많은 외국에서도 군 의문사 문제 해결에 공감하는 분들의 정성에 저는 고개를 숙였습니다. "연극은 비록 멀어서 볼 수 없으나 이 연극을 통해 그 어머니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위로해 줄 수 있다면 오히려 고맙겠다"는 그 분들이 이 연극을 만들어 주신 진짜 주인공입니다.
몇 천원 단위의 작은 후원금을 내주신 분들, 학교 행사에서 파전을 팔아 얻은 수익금으로 기부해 주신 강진 청람중학교 학생 여러분, 그리고 전남 순천 제일고등학교 학생들, 또 힘든 일을 하며 부정기적인 돈을 받지만 그 돈을 '가치있게 쓰고 싶다며' 후원해 주신 광주의 어느 페친 분. 일일이 언급할 수 없는 그런 분들이 만들어준 연극 <이등병의 엄마>였습니다.
그렇게 9개월 간 많은 분들이 함께해 주셔서 총 11일간 모두 15번 이뤄진 공연은 매우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변방의 주제였던 군 의문사를 연극을 통해 제도권 문제 안으로 끌어왔다'는 과분한 평가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대통령 부인이신 김정숙 여사와 별 4개 육군 대장 출신이신 백군기 전 의원님, 그리고 현 국방위원이신 정의당 김종대 의원님 등도 함께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약 1,800여 명의 관객이 함께 해 주셨습니다.
"이런 큰 호응이 가능한 이유가 무엇이냐"며 공연중 많은 기자 분들이 저에게 물어왔습니다. 제 답변은 이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의무 복무 제도를 채택하고 있어서 아들 있는 집이라면 누구나 이등병의 엄마가 될 수밖에 없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의무 복무 중 사망하는 군인 문제가 이제는 남의 일만은 아니라는 공감대가 있고 연극을 통해 이 점을 공감해 주신 것 아닐까 싶어요.
무엇보다 군의문사 유족 어머니들이 직접 무대에 올라가서 '연극이 아닌 진심을' 보여주기 때문에 더욱 그런 것 같아요. 공연 때마다 어머니들이 정말 많은 눈물을 흘리셨어요. 그래서 어느 어머니는 '하도 많이 울어 눈물이 없어졌는줄 알았는데 공연만 시작하면 아들 이름이 떠오르고, 그 아들의 이름을 부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그런 진짜 엄마의 아픔이 많은 분들에게 공감을 얻었던 것 같아요."
김정숙 여사님 고맙습니다
한편 5월 18일에는 언론을 상대로 한 시사회가 있었습니다. 이날 저는 제작자로서 인터뷰를 했는데 "이 연극을 꼭 보셨으면 하는 세 분이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지난 1948년 이래 지금까지 군 복무 중 사망했으나 국가로부터 예우받지 못한 채 사실상 '버려진' 약 39,000여명의 군인 영혼과 이들의 명예회복 법안을 만들어 주실 국회 국방위원님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식 잃고 그 슬픔으로 무대에 오르는 엄마와 같은 엄마의 심정으로 함께해주실 김정숙 여사가 와 주시면 큰 위로가 될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언론은 '이등병의 엄마 공연에 김정숙 여사가 와 주셨으면'한다는 제 말을 담아 기사로 내주셨습니다. 하지만 고백하자면,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군에서 자살로 처리된 군인의 죽음에 대해' 누군가가 위로해 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에 더욱 그랬던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공연이 거의 끝나가던 5월 26일 금요일 저녁, 김정숙 여사가 연극 <이등병의 엄마> 공연을 보러 오신 겁니다. 그날 낮에 아무런 말없이 청와대라면서 표 4장을 자비 구입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은 적은 있지만, 그 일행이 김정숙 여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여사님 방문 전에 현장 파악을 하러 오는건가 싶었는데 그 일행이 김정숙 여사였음을 알게된 것은 아주 우연한 일화 덕분이었습니다.
사연은 이랬습니다. 만원사례로 공연장에 입장할 수 없었던 스텝 분들이 공연 종료를 기다리며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을 때의 일입니다. 극장 출입문이 열리면서 4명의 여성이 제일 먼저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행 중 한 분이 계단을 올라오며 오열하듯 흐느끼는 것 아닌가요? 그래서 '도대체 누구신데 저렇게까지' 라며 사람들 눈이 자연스럽게 모였는데 이때 평소 여사님의 얼굴을 알고 있었던 군의문사 단체 회장님의 눈에 띈 것입니다.
그 사실을 전해들은 저 역시 그제야 공연중 세 번째 앉아 계시던 그 분이 떠 올랐습니다. 청와대에서 오셨다는 분들의 반응이 궁금하여 힐끔 힐끗 바라보곤 했는데 그때 세 번째 좌석에 앉은 분이 참 많이 우셔서 누구실까 싶었는데 바로 그 분이 김정숙 여사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남몰래 오셨다가 조용히 가셨기에' 사진 한 장 없었습니다. 아쉬웠던 마음만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군의문사 유적도 국가로부터 처음 위로를 받았다'는 사실만은 세상에 알리고 싶어 제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짤막하게 알렸습니다.
'김정숙 여사님이 알리지 않고 연극 <이등병의 엄마>를 찾아와 주셨습니다. 4분이 비용을 내고 좌석을 배정받았는데 유독 3번째 앉은 분이 많이 많이 눈물을 흘리셨는데, 나중에서야 그분이 영부인임을 알았습니다. 군 유족이 받은 최초의 위로입니다. 고맙습니다.'
촬영된 영상물 점검 중 발견한 장면
그런데 후에 알게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여사님이 오셨다 가신 증거가 하나도 없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남겨진 여사님 사진이 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사연은 또 이랬습니다. 김정숙 여사께서 찾아오신 날, 이 연극을 만드는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제작중인 최정민 다큐 감독이 그날 공연을 촬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공연이 끝날 때 별 생각없이 객석으로 영상 카메라를 돌렸다고 합니다. 객석의 반응을 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후에 촬영된 영상물을 점검하던 중 최정민 감독은 매우 놀라운 장면 하나를 찾았다며 저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바로 김정숙 여사께서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는 장면이었습니다. 이 사진을, 그래서 처음으로 공개합니다. 국가를 상징하는 분이 찾아오셔서 아무도 모르게 보여주신 진심이기에 더욱 고맙습니다. 김정숙 여사님.
<이등병의 엄마>, 이제 다시 또 시작합니다
또 한 사람, 기억에 남는 분이 있습니다. 공연이 끝난 어느 날, 혼잡한 자리를 헤치며 저를 찾아온 20대 중반 여성 분이었습니다. 얼마나 울었는지 자그마한 눈매가 퉁퉁 부었던 그 분은 제게 연신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했습니다. 고마우면 제가 고맙지 왜 저렇게까지 하실까 싶었던 그 분이 어렵게 말을 꺼냈습니다.
사실은 지난 1월에 남동생이 군에서 사망했는데 자살 방향으로 군헌병대가 수사중이라고 했습니다. 동생을 잃고난 후 가족들의 삶은 삶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러한 연극이 공연된다는 말을 듣고 무작정 찾아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보게된 연극 <이등병의 엄마>. 참 많이 울었다고 합니다. 저는 그 어린 누나의 눈물을 마주할 수 없어 그냥 허리 숙여 손을 잡았습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어 그렇게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연극이 이제 끝났습니다. 아쉬운 점도 많고, 여전히 할 말도 많지만 연극은 끝났고 출연했던 유족 어머니들은 다시 그 아픔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셔야 했습니다.
연극을 통해 얻은 점도 참 많았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유족 어머니들이 가진 마음의 상처가 많이 치유되었다는 점입니다. 억울하게 자식을 잃고도 누구 하나 미안하다고 하지 않는데 어찌 그 분들이 마음 편안할 수 있었을까요?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런 어머니들이 연극을 하며 보다 표정이 밝아졌습니다. 또 어느 어머니는 내내 괴롭히던 어지럼증이 사라졌다며 '고생을 강요한' 저에게 연신 고맙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좋은 연극을 만들어 주신 분이 바로 서울연극협회장 출신의 박장렬 연출 감독님입니다. 그리고 이 연극을 기획해 주신 김현 선배님과 배우 김담희, 권남희, 김지은, 권기대. 가수 박창근 님 등 수많은 출연진 덕분입니다. 그렇게 도와주신 모든 분들, 그리고 2,800여 후원자 분들을 위해 만든 영상이 있습니다. 공연 말미에 상영한 그 영상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등병의 엄마> 공연을 통해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갈 힘은 생겼지만 여전히 가야할 길은 가시밭길이기 때문입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는 힘이 없고 여전히 바뀐 현실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또 새롭게 시작한 일이 있습니다. 서명운동입니다. '연극이 연극으로만 끝나지 않도록' 여러분들의 참여가 소중합니다. 지난 2009년 이명박 정부가 해체시킨 <대통령소속 군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를 다시 발족시키는 입법촉구 서명운동입니다.
오는 7월 10일까지 총 5만 명 목표로 다음 아고라 청원을 통해 더불어민주당 국회 국방위 간사이신 이철희 의원께서 내 주신 법안의 조속한 본회의 통과를 촉구하는 일입니다. 5만 명이 서명에 참여하면 이후 군의문사 유족이 그 서명부를 <광화문 1번가>에 들고 가서 기자회견후 제출할 생각입니다.
이제 바꿔야 합니다. 더 이상 누구도 억울한 일을 당해서는 안됩니다. 적어도 의무복무 제도가 유지되는 그날까지는 '군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와 같은 민관 합동의 외부 수사기관이 군 사망사고를 수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수사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 서명운동에 함께해 주실 것을 청합니다.
목표는 5만 명이지만 여러분들이 서명해 주시고 또 공유로 도와 주시면 그 힘이 연극 <이등병의 엄마>보다 더 큰 힘이 됩니다. '정의가 강물같이 흐르는' 시대를 위해 여러분과 함께 가겠습니다. 늘 고맙습니다.
2015년 3월, 김광진 국회의원실을 그만 둘 때 였습니다. 만 2년 1개월간 군의문사 유족들과 함께 의무복무중 사망한 군인의 명예회복 및 사인 규명 캠페인을 해 왔는데 여러 사정으로 그만 두게 된 것입니다.
그때 작별을 고하는 자리에서 어머니들은 그야말로 어린 아이들처럼 울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냐"며 자리를 떠나는 저를 붙잡고 우셨습니다. 그런 어머니들을 뵈며 저 역시 어린애처럼 울었습니다. 그러면서 드린 약속이 있었습니다.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절대 어머니들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지난 19년간 그랬던 것처럼 제가 있는 또 다른 자리에서 늘 어머니들과 함께할 것입니다. 그러니 저를 믿고 기다려주세요. 반드시 함께할 날을 제가 또 만들어 낼 것입니다."
아내가 알려준 연극 <이등병의 엄마>
하지만 그 약속은 쉽지 않았습니다. 물론 언론 기고 등을 통한 캠페인으로 나름의 노력은 지속했지만 의미있는 반향을 일으킬 수 있는 역할은 어려웠습니다. 그렇게 시간만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상황에 대한 제 마음속 고민을 아내에게 토로하며 군의문사 유족 어머니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아내가 매우 상큼한 제안을 내 놓은 것입니다.
"그럼 그 어머니들과 함께하는 연극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 연극 이등병의 엄마 포스터 ⓒ 고상만
그렇게 해서 시작한 연극 <이등병의 엄마> 였습니다. 유족에게는 치유를, 국가와 국방부에게는 군의문사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 마련을, 그리고 관객에게는 공감을 만드는 연극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저는 다음 스토리펀딩과 <오마이뉴스> 연재 기사를 통한 모금 캠페인에 나섰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펀딩을 시작하려고 준비하던 2016년 11월 1일 이른바 '박근혜, 박순실 사태'가 터진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날 펀딩을 시작하는 것은 무모한 도전 같았습니다. 전 국민적인 촛불집회로 모든 이슈가 집중되는 상황에서 '군의문사 문제 해결을 위한' 연극 비용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가 제대로 전달될 것 같지 않아서였습니다.
고민 끝에 펀딩 시작 하루 전날, 결국 전화를 했습니다. 펀딩 담당 선생님에게 "미안하지만 이런 사정이 있으니 1주일만 연기해 주실 수 있겠냐"고 사정했습니다. 그러자 스토리펀딩 측에서는 갑작스러운 제 부탁을 순순히 들어주시는 것 아닌가요. 안된다고 할까 내심 조바심쳤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 이어지는 말이 지금도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그런데요. 선생님. 일주일 연기는 문제가 아닌데 이 일이 일주일 가지고 해결될까요?"
우려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일주일 후에는 몇 십만 집회가 200만 촛불로 이어졌고 매주 단위로 새로운 기록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기승전'이 최순실로 시작해서 박근혜로 끝나는 시기였습니다. 결국 저는 다시 전화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번엔 1달만 더 연기해 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12월 1일. 펀딩 첫 편이 올라간 날입니다. 그때 그 마음 고생은 제 평생 잊을 수 없을 기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2,800여 후원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기적'이라는 표현은 이것이 아닐까요. 그 어려운 시기에 보여주신 기적같은 후원 덕분에 저는 마침내 막연히 꿈에 그리던 연극 <이등병의 엄마>를 올릴 수 있었습니다. 크고 작은 펀딩 후원자 분들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미국에서, 캐나다에서, 그리고 또 수많은 외국에서도 군 의문사 문제 해결에 공감하는 분들의 정성에 저는 고개를 숙였습니다. "연극은 비록 멀어서 볼 수 없으나 이 연극을 통해 그 어머니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위로해 줄 수 있다면 오히려 고맙겠다"는 그 분들이 이 연극을 만들어 주신 진짜 주인공입니다.
몇 천원 단위의 작은 후원금을 내주신 분들, 학교 행사에서 파전을 팔아 얻은 수익금으로 기부해 주신 강진 청람중학교 학생 여러분, 그리고 전남 순천 제일고등학교 학생들, 또 힘든 일을 하며 부정기적인 돈을 받지만 그 돈을 '가치있게 쓰고 싶다며' 후원해 주신 광주의 어느 페친 분. 일일이 언급할 수 없는 그런 분들이 만들어준 연극 <이등병의 엄마>였습니다.
▲ 연극 이등병의 엄마 스토리펀딩에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고상만
그렇게 9개월 간 많은 분들이 함께해 주셔서 총 11일간 모두 15번 이뤄진 공연은 매우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변방의 주제였던 군 의문사를 연극을 통해 제도권 문제 안으로 끌어왔다'는 과분한 평가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대통령 부인이신 김정숙 여사와 별 4개 육군 대장 출신이신 백군기 전 의원님, 그리고 현 국방위원이신 정의당 김종대 의원님 등도 함께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약 1,800여 명의 관객이 함께 해 주셨습니다.
"이런 큰 호응이 가능한 이유가 무엇이냐"며 공연중 많은 기자 분들이 저에게 물어왔습니다. 제 답변은 이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의무 복무 제도를 채택하고 있어서 아들 있는 집이라면 누구나 이등병의 엄마가 될 수밖에 없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의무 복무 중 사망하는 군인 문제가 이제는 남의 일만은 아니라는 공감대가 있고 연극을 통해 이 점을 공감해 주신 것 아닐까 싶어요.
무엇보다 군의문사 유족 어머니들이 직접 무대에 올라가서 '연극이 아닌 진심을' 보여주기 때문에 더욱 그런 것 같아요. 공연 때마다 어머니들이 정말 많은 눈물을 흘리셨어요. 그래서 어느 어머니는 '하도 많이 울어 눈물이 없어졌는줄 알았는데 공연만 시작하면 아들 이름이 떠오르고, 그 아들의 이름을 부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그런 진짜 엄마의 아픔이 많은 분들에게 공감을 얻었던 것 같아요."
김정숙 여사님 고맙습니다
한편 5월 18일에는 언론을 상대로 한 시사회가 있었습니다. 이날 저는 제작자로서 인터뷰를 했는데 "이 연극을 꼭 보셨으면 하는 세 분이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지난 1948년 이래 지금까지 군 복무 중 사망했으나 국가로부터 예우받지 못한 채 사실상 '버려진' 약 39,000여명의 군인 영혼과 이들의 명예회복 법안을 만들어 주실 국회 국방위원님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식 잃고 그 슬픔으로 무대에 오르는 엄마와 같은 엄마의 심정으로 함께해주실 김정숙 여사가 와 주시면 큰 위로가 될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언론은 '이등병의 엄마 공연에 김정숙 여사가 와 주셨으면'한다는 제 말을 담아 기사로 내주셨습니다. 하지만 고백하자면,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군에서 자살로 처리된 군인의 죽음에 대해' 누군가가 위로해 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에 더욱 그랬던 것입니다.
▲ 저는 군대에 아들을 보낸 죄인입니다. ⓒ 고상만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공연이 거의 끝나가던 5월 26일 금요일 저녁, 김정숙 여사가 연극 <이등병의 엄마> 공연을 보러 오신 겁니다. 그날 낮에 아무런 말없이 청와대라면서 표 4장을 자비 구입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은 적은 있지만, 그 일행이 김정숙 여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여사님 방문 전에 현장 파악을 하러 오는건가 싶었는데 그 일행이 김정숙 여사였음을 알게된 것은 아주 우연한 일화 덕분이었습니다.
사연은 이랬습니다. 만원사례로 공연장에 입장할 수 없었던 스텝 분들이 공연 종료를 기다리며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을 때의 일입니다. 극장 출입문이 열리면서 4명의 여성이 제일 먼저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행 중 한 분이 계단을 올라오며 오열하듯 흐느끼는 것 아닌가요? 그래서 '도대체 누구신데 저렇게까지' 라며 사람들 눈이 자연스럽게 모였는데 이때 평소 여사님의 얼굴을 알고 있었던 군의문사 단체 회장님의 눈에 띈 것입니다.
그 사실을 전해들은 저 역시 그제야 공연중 세 번째 앉아 계시던 그 분이 떠 올랐습니다. 청와대에서 오셨다는 분들의 반응이 궁금하여 힐끔 힐끗 바라보곤 했는데 그때 세 번째 좌석에 앉은 분이 참 많이 우셔서 누구실까 싶었는데 바로 그 분이 김정숙 여사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남몰래 오셨다가 조용히 가셨기에' 사진 한 장 없었습니다. 아쉬웠던 마음만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군의문사 유적도 국가로부터 처음 위로를 받았다'는 사실만은 세상에 알리고 싶어 제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짤막하게 알렸습니다.
'김정숙 여사님이 알리지 않고 연극 <이등병의 엄마>를 찾아와 주셨습니다. 4분이 비용을 내고 좌석을 배정받았는데 유독 3번째 앉은 분이 많이 많이 눈물을 흘리셨는데, 나중에서야 그분이 영부인임을 알았습니다. 군 유족이 받은 최초의 위로입니다. 고맙습니다.'
▲ 김정숙 여사 방문을 알린 트위터 ⓒ 고상만
촬영된 영상물 점검 중 발견한 장면
그런데 후에 알게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여사님이 오셨다 가신 증거가 하나도 없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남겨진 여사님 사진이 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사연은 또 이랬습니다. 김정숙 여사께서 찾아오신 날, 이 연극을 만드는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제작중인 최정민 다큐 감독이 그날 공연을 촬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공연이 끝날 때 별 생각없이 객석으로 영상 카메라를 돌렸다고 합니다. 객석의 반응을 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후에 촬영된 영상물을 점검하던 중 최정민 감독은 매우 놀라운 장면 하나를 찾았다며 저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바로 김정숙 여사께서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는 장면이었습니다. 이 사진을, 그래서 처음으로 공개합니다. 국가를 상징하는 분이 찾아오셔서 아무도 모르게 보여주신 진심이기에 더욱 고맙습니다. 김정숙 여사님.
▲ 연극 <이등병의 엄마> 공연 관람중 함께 울어주신 김정숙 여사 ⓒ 고상만
▲ 연극 <이등병의 엄마> 공연 관람중 많은 눈물을 보인 김정숙 여사님 ⓒ 고상만
<이등병의 엄마>, 이제 다시 또 시작합니다
또 한 사람, 기억에 남는 분이 있습니다. 공연이 끝난 어느 날, 혼잡한 자리를 헤치며 저를 찾아온 20대 중반 여성 분이었습니다. 얼마나 울었는지 자그마한 눈매가 퉁퉁 부었던 그 분은 제게 연신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했습니다. 고마우면 제가 고맙지 왜 저렇게까지 하실까 싶었던 그 분이 어렵게 말을 꺼냈습니다.
사실은 지난 1월에 남동생이 군에서 사망했는데 자살 방향으로 군헌병대가 수사중이라고 했습니다. 동생을 잃고난 후 가족들의 삶은 삶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러한 연극이 공연된다는 말을 듣고 무작정 찾아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보게된 연극 <이등병의 엄마>. 참 많이 울었다고 합니다. 저는 그 어린 누나의 눈물을 마주할 수 없어 그냥 허리 숙여 손을 잡았습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어 그렇게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연극이 이제 끝났습니다. 아쉬운 점도 많고, 여전히 할 말도 많지만 연극은 끝났고 출연했던 유족 어머니들은 다시 그 아픔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셔야 했습니다.
연극을 통해 얻은 점도 참 많았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유족 어머니들이 가진 마음의 상처가 많이 치유되었다는 점입니다. 억울하게 자식을 잃고도 누구 하나 미안하다고 하지 않는데 어찌 그 분들이 마음 편안할 수 있었을까요?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런 어머니들이 연극을 하며 보다 표정이 밝아졌습니다. 또 어느 어머니는 내내 괴롭히던 어지럼증이 사라졌다며 '고생을 강요한' 저에게 연신 고맙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좋은 연극을 만들어 주신 분이 바로 서울연극협회장 출신의 박장렬 연출 감독님입니다. 그리고 이 연극을 기획해 주신 김현 선배님과 배우 김담희, 권남희, 김지은, 권기대. 가수 박창근 님 등 수많은 출연진 덕분입니다. 그렇게 도와주신 모든 분들, 그리고 2,800여 후원자 분들을 위해 만든 영상이 있습니다. 공연 말미에 상영한 그 영상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등병의 엄마> 공연을 통해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갈 힘은 생겼지만 여전히 가야할 길은 가시밭길이기 때문입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는 힘이 없고 여전히 바뀐 현실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또 새롭게 시작한 일이 있습니다. 서명운동입니다. '연극이 연극으로만 끝나지 않도록' 여러분들의 참여가 소중합니다. 지난 2009년 이명박 정부가 해체시킨 <대통령소속 군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를 다시 발족시키는 입법촉구 서명운동입니다.
오는 7월 10일까지 총 5만 명 목표로 다음 아고라 청원을 통해 더불어민주당 국회 국방위 간사이신 이철희 의원께서 내 주신 법안의 조속한 본회의 통과를 촉구하는 일입니다. 5만 명이 서명에 참여하면 이후 군의문사 유족이 그 서명부를 <광화문 1번가>에 들고 가서 기자회견후 제출할 생각입니다.
이제 바꿔야 합니다. 더 이상 누구도 억울한 일을 당해서는 안됩니다. 적어도 의무복무 제도가 유지되는 그날까지는 '군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와 같은 민관 합동의 외부 수사기관이 군 사망사고를 수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수사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 서명운동에 함께해 주실 것을 청합니다.
목표는 5만 명이지만 여러분들이 서명해 주시고 또 공유로 도와 주시면 그 힘이 연극 <이등병의 엄마>보다 더 큰 힘이 됩니다. '정의가 강물같이 흐르는' 시대를 위해 여러분과 함께 가겠습니다. 늘 고맙습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