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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사건' 된 <까칠남녀> 특집, 왜 출연했냐 묻는다면

[방송출연 후기] 내가 <까칠남녀> 성소수자편에 출연한 이유

등록|2018.01.08 16:43 수정|2018.01.08 16:44

▲ EBS <까칠남녀> '모르는 형님-성소수자 특집' 편. 왼쪽부터 서울대학교 전 총학생회장 김보미씨,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 강명진씨, 섹스 칼럼니스트 은하선씨, 박한희 변호사. ⓒ EBS


지난 12월 25일과 1월 1일 방송된 EBS <까칠남녀> 성소수자 특집 '모르는 형님'에 출연했다. 서울대학교 전 총학생회장 김보미씨,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 강명진씨, 섹스 칼럼니스트 은하선씨와 함께 게스트로 출연하여 LGBT(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을 나눈 해당 방송의 간단한 후기를 이 자리를 통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역사적 사건'이 된 <까칠남녀> 성소수자 특집

교육방송 EBS가 성소수자 특집을 다루었다는 사실은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역사적 사건'이 되었다. 많은 성소수자들이 이 방송을 보고 즐거워하고 공감하며 힘을 얻었다. 이 방송을 통해 LGBT라는 단어를 처음 접한 사람도, 그 동안 몰랐던 성소수자에 대해 보다 이해하게 된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반면 보수기독교 등 일부 사람들은 방송에 항의하며 규탄집회를 열고, EBS 로비를 점거하기도 했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까칠남녀> 이전에도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다룬 방송은 종종 있어 왔다. 트랜스젠더 여성에 대해 한정지어 보아도 하리수씨를 비롯해 여러 트랜스젠더 연예인들이 예능, 드라마 등에도 출연했고 EBS에서도 이미 몇 차례 다큐멘터리에서 트랜스젠더 출연자의 이야기를 다룬 적이 있다. 그럼에도 <까칠남녀>가 특히 화제가 되고 또 의미가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일상을 살아가는 성소수자들이 어떠한 전형적 모습에 갇히지 않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했다는 점이라 본다.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들이 겪는 대표적 차별의 현실은 바로 일상에서 지워지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성소수자는 TV속 연예인, 인터넷 속 가십거리 등 나와는 접점이 없는 어딘가 다른 존재로 인식하곤 한다. 그 결과 내 주변엔 성소수자가 없고 그래서 무슨 차별을 받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하곤 한다.

그러나 전체 인구의 3~7% 가량을 성소수자로 추정하는 해외의 여러 연구들에 비추어보았을 때, 우리가 학교에서 직장에서 거리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사람들 중 성소수자가 한 명도 없을 확률은 사실상 0%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성소수자 역시 이 사회의 시민으로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잊어버리곤 한다.

▲ ⓒ EBS


아쉽게도 미디어들이 그 동안 성소수자를 다뤄온 방식은 이러한 편견과 오해를 더욱 강화해왔다. 많은 미디어에서 성소수자는 차별받고 불쌍한 피해자로만 다뤄지거나 여성스러운 게이, 수술한 예쁜 트랜스젠더와 같이 사회가 성소수자에 대해 갖고 있는 고정관념에 부합한 모습들로만 묘사되어 왔다.

물론 그렇게 이야기되는 성소수자의 차별 경험,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들이 모두가 거짓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까칠남녀> 1부에서 강명진씨가 한 말처럼 미디어가 오로지 한정된 모습으로만 성소수자를 다룰 경우, 성소수자를 어떤 전형적인 객체로만 바라보게 하는 차별적 구조를 만들어낸다. 그 안에서 성소수자는 단지 타자화된 일종의 캐릭터로만 여겨지고 그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삶의 이야기들은 지워지고 만다.

▲ EBS <까칠남녀> 중 '트랜스젠더'의 한 사람으로 소개된 박한희 변호사 ⓒ EBS


망설임 끝에 <까칠남녀> 출연 요청을 받아들인 이유

사실 <까칠남녀>에 출연요청을 받고 상당한 고민을 했었다. 기존에 만들어진 트랜스젠더의 전형성에 내가 또 다시 한 줄을 추가하는 것이 되지 않을까 하는 고민에서였다. 그러나 LGBT 각각의 게스트를 초청하여 기존 출연자들과 위계없이 서로 반말을 하여 이야기를 나눈다는 성소수자 특집의 기획을 보고 출연을 결심했고, 실제 방송 역시 그러한 전형성에 갇히지 않은 성소수자들의 자연스러운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물론 LGBT 각각의 게스트가 마치 그 정체성을 대변할지 모른다는 우려, 다양한 성소수자 정체성을 LGBT로만 이해될지 모른다는 우려와 같이 어느 정도의 한계는 존재한다. 그럼에도 많은 시청자들이 이 방송을 통하여 다양한 모습, 배경, 삶의 이야기를 가진 성소수자들이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음을 이해했기를 바란다. 이를 통하여 방송에서 다루어진 차별금지법, 동성결혼, 성중립화장실 등의 이슈가 나와 관계없는 특수한 이슈가 아닌, 일상을 함께 하는 사회 구성원들이 겪고 있는 차별의 현실이라는 점을 다시금 느꼈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7년이 지나서 결국 이런 방송을 할 수 있었다는 사유리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2012년 KBS joy에서 방영되었던 < XY그녀>가 떠올랐다. 당시 최초의 트랜스젠더 집단 토크쇼를 표방하였던 이 방송은 첫 방영 이후 보수기독교 등의 격렬한 항의를 받았고 결국 1화를 끝으로 사실상 폐지되었다. 이번에도 그와 유사한 항의들에 마주하였음에도 소신 있게 방송을 제작하고 방영한 제작진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한편으로 <까칠남녀>와 같은 방송이 이루어지고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사회적인 변화를 실감한다. 몇 년 뒤에는 방송에서 비단 LGBT만이 아닌 다양한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을 그야말로 숨 쉬듯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 EBS <까칠남녀 : 모르는 형님, 성소수자 특집>에 나온 출연진 사진. ⓒ E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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