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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인 내가 딸아이를 꿈틀리 인생학교에 보낸 이유

꿈틀리 졸업생 김민진씨의 아빠 이야기

등록|2018.07.17 09:33 수정|2018.07.17 10:44

▲ 가족 사진 ⓒ 김영삼


아이 셋을 키우면서 생각했다. 우리 아이가 이랬으면 좋겠다고.

'자기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할 줄 아는 아이(불교에서 말하는 천상천하유아독존), 함께할 줄 아는 아이, 더불어 행복한 삶을 사는 아이'

나의 어린 시절도 자주 떠올렸다. 내가 자란 환경은 어떠하였는지, 주어진 환경에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또 어떻게 생활하고 그 과정에서 누구와 의논하였는지.

이때 떠오른 기억이 있다. 오연호 꿈틀리 이사장이 한 말이다.

"덴마크에서 어린이집에 아이들이 가면 프로그램이 없고 아이들 스스로 논다, 선생님은 다만 옆에 있을 뿐이다. 그런데 내가 자란 시골은 옆에 선생님도 없다. 다만 함께 노는 형과 누나와 친구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동네를 포함한 주변의 산, 들, 강 모두가 놀이터였다. 우리가 더 행복했다." 

난 작은 산골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다. 시골을 떠나 도시로 간 건 고등학생 때다. 중학교 3학년, 담임교사와 아버지를 설득해 진주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거긴 친구도, 친척도 없는 낯선 땅이었다.

꿈틀리 인생학교 문을 두드리다

도시의 학교는 상상과 달랐다. 대학입학이 목표였고, 성적으로 모든 게 판가름 났다. 이런 경쟁의 트랙을 달리면서 난, 나도 모르게 함몰되어 갔다.

하지만 그때, 난 적어도 모든 걸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했다. 특히 우리처럼 산골에서 자란 사람들은 더욱더 그랬을 거다. 부모님은 단지 옆에서 도와주는 역할만 했을 뿐이다.

이런 생각은 아이(김민진)의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더 짙어졌다. 혼자만 고민하지 않았다. 아이 엄마와 아이랑 셋이서 이야기를 나눴다. 중학교와 다르게 고등학교는 성년을 준비하는 과정이었다. 아이가 과연 일반 고등학교로 가서 바로 대학입시라는 우물에 빠져서 생활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인지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있는 대안학교 '꽃피는 학교'에 문을 두드렸다. 아이는 1주일의 체험학교 과정을 밟았다. 하지만 집에서 등하교하기엔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그때 아이의 중학교 1년 선배를 통해 꿈틀리 인생학교를 알게 됐다. 설명회 참석도 없이 지원서와 면담을 통해 아이는 꿈틀리 인생학교에 입학하게 됐다. 인생의 방향을 정하고 무엇을 이루기 위해 결정한 건 아니었다. 고등학교라는 울타리를 가기 전에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셋이 이야기한 후에 내린 결론이었다.

▲ 꿈틀리 인생학교를 졸업한 김민진 학생(왼쪽) ⓒ 꿈틀리 인생학교


내가 그동안 아이를 너무 어리게 보았던 것일까? 아니면 옆에 두고 잘 몰랐을까? 아이는 기대 이상으로 꿈틀리 인생학교 생활에 잘 적응했다. 집에 오면 학교 가기 싫다고 하면서도 자기가 맡으면 책임 있게 하려는 모습을 보여줬다. 또 나름 스스로 하는 모습도 보였다. 또 하나는 셋이서 SNS(소셜네트워크) 방을 만들어서 대화를 자주 하게 됐고, 이게 내겐 참 좋은 일이었다. 그 덕분(?)인지 중학교 때보다 아이와 더 가까워진 것 같았다. 물론 나만의 생각일 수 있다.

이렇게 꿈틀리를 졸업하고 아이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됐다. 나는 대안학교를 권했으나 아이는 집 옆에 있는 일반 고등학교를 선택했다. 학원에 다니지 않으면서 스스로 공부하겠다고 해 그렇게 하고 있다. 때로는 친구들에게 물어보고, 때론 아빠와 함께 머리를 싸매면서. 등굣길도 함께한다. 대중교통으로 가기엔 거리가 멀어 아침마다 학교에 바래다준다. 언젠가 한 번은 뒷자리에서 아이가 이런 말을 했다.

"아! 학교 가기 싫다. 꿈틀리가 좋았어."

말은 이렇게 했어도 아이는 일반 학교에 잘(?) 적응하고 있다. 첫 중간고사도 무사히 치렀다. 동아리는 합창부를 선택했고, 친구들과 학습 두레 활동도 하고 있다. 야간 자율학습도 구시렁거리지만 나름 잘 이어가고 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자면, 기특하고 고맙다. 나와 아이 엄마는 곁에서 보조 역할만 할 뿐인데, 아이가 스스로 뭐든지 헤쳐나가고 있으니.

촛불로 바꾼 세상, 아이들이 더 밝혀주길

세상의 모든 부모의 마음은 이럴 거다. 아이가 이렇게 자랐으면 좋겠다고.

'자기의 기준에서 행복한 사람, 자존감을 아는 사람, 상식과 염치를 아는 사람, 그러면서 공동체에 참가하고 소통하고 협력할 줄 아는 민주시민의 교양을 갖춘 사람으로'

나도 그렇다. 이런 사람으로 인생을 마감하고 싶다. 그래서다. 서울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 때마다 부끄러웠다.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은 세상을 기성세대가 만들어왔다는 생각에 눈물을 흘렸다.

아이들에게 어떻게 살아가라고 말하기 전에 먼저 집에서 내가 그렇게 살면 아이가 자연스럽게 배울 거다. 앞으로는 이렇게 살고자 한다.

끝으로 내 오랜 꿈을 이루고 싶다. 제대하고 복학을 한 후였다. 신문에서 '아시안 하이웨이'에 대한 자그마한 기사를 봤다. 그때 세운 목표가 하나 있다.

봄에 부산에서 출발하여 한반도의 동해안을 따라 올라가 블라디보스토크를 들르고 몽골, 우즈베키스탄을 거쳐 북유럽에 도착하여 지중해에서 여름을 보낸 후 이탈리아, 그리스, 터키, 티벳, 중국을 거쳐 한반도의 서해를 달려 다시 부산으로 돌아오는 1년간의 여행. 그런 꿈이 이루어지는 세상을 우리 아이들에게는 물려주고 싶다.

부디 아이가 이런 꿈과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길 바란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내 꿈을 가족과 함께 이루고 싶어서다.

꿈틀리 인생학교란

덴마크가 국가별 행복지수 1위의 나라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은 에프터스콜레(Efterskole) 제도에 있습니다. 한국형 에프터스콜레 꿈틀리 인생학교는 청소년들이 '옆을 볼 자유'를 실컷 누리며, 인생을 설계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꿈틀리 인생학교를 참고해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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