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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국회와 1948년 국회, 그 엄청난 차이

[주장] 특수활동비 봉투에 적혔다는 '작은 정성'... 국회의원을 무기력하게 만들다

등록|2018.07.20 17:59 수정|2018.08.03 09:34

▲ 지난 5일 MBC는 이종걸 민주당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일 당시 수령한 특활비 내역을 공개했다. ⓒ MBC 갈무리


'미성'(微誠), 다소 낯선 단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조그마한 정성'을 말한다. 필자는 최근 언론보도를 통해 이 말의 또다른 쓰임새를 알게 되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

지난 5일 MBC는 이종걸 의원이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시절 받은 특수활동비 2개월치 사용 내역을 공개하면서 "돈은 작은 정성이라는 뜻인 '미성'이라고 적힌 봉투에 담겨 5만 원짜리 현찰로 흔적도 없이 건네졌다"라고 보도했다.

국회가 수년째 기관별 신뢰도 조사에서 꼴찌를 면치 못하는 동안, 국회의원을 비롯한 국회 속 사람들은 '조그마한 정성'을 받고 있었다. 국민들에게 국회는 큰 골칫거리가 된 지 오래다.

선거제도 개혁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게 있다

▲ 국회의사당 전경. ⓒ 김지현


국회를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를 놓고도 갑론을박이 진행 중이다. 그중에서도 선거 제도 개혁이 많이 거론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 여러 가지 주장이 제기되지만, 진척은 없다. 선거제도는 민주주의의 토대로, 마땅히 민의에 정확히 부응하는 방식으로 개혁돼야 한다.

그런데 선거제도가 개선된다고 해서, '신뢰도 꼴찌' 국회가 갑자기 변할 수 있을까. 아니다, 본질적인 문제가 여전히 남는다.

아무리 훌륭한 덕성을 지닌 사람이나 국민을 위해 봉사하려는 의욕이 넘치는 사람이 국회에 입성해도 지금과 같은 국회 입법 시스템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그닥 많지 않기 때문이다. 대체로 지금 우리 국회에서 국회의원의 본업인 입법 과정 중 최소한 열에 여덟은 의원·의원실이 아니라 국회 공무원이 수행하는 상황이다. 각 상임위 전문위원의 막강한 권한인 '검토보고' 때문이다(관련 기사 : 월 150만원 특활비 받는 '힘 센' 국회 공무원?).

공무원이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안을 쥐락펴락하는 입법 시스템을 가진 나라는 없다. 이런 국회를 진정한 국회라고 말하기 어렵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회의원의 직무는 법안 발의에서 멈추게 되고, 상임위원회와 본회의에서의 통과 절차만 남게된다.

국회 입법의 현주소

수치로 따져보자. 현재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은 총 1만4613건(2018년 7월 20일 오전 9시 27분 기준)이다. 본회의 처리 결과를 기준으로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국회의 입법 수준의 민낯이 드러난다. 총 1만4612건의 법안 중 가결 1772건, 부결 5건, 대안반영폐기 2072건, 폐기 127건, 철회 127건, 계류 10510건이다. 해결되지 않고 본회의에 걸려 있는 법안이 전체의 70%를 넘는다. 이것은 '법안 발의의 남발 현상' 때문이다. 이 현상은 왜곡된 입법 프로세스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

국회의원들은 사회적으로 어떤 큰 일이 발생할 때마다 대중의 관심과 주목을 끌 수 있는 법안을 구상해 발의하는 경향이 특별히 강하다. 법안에 대한 꼼꼼하고 지난한 '검토' 과정을 의원과 의원실이 할 필요가 없으니 아무런 부담감 없이 발의할 수 있다. 자연히 법안은 남발된다.

만약 법안에 대한 검토를 의원이 수행한다면, 최소한 같은 정당 소속 의원의 법안 발의는 자연히 교통정리가 되기 때문에 이러한 법안 발의 남발 현상을 방지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법안에 대한 검토는 각 상임위원회의 수석전문위원·전문위원의 몫이다. 이들 입법관료들이 법안이 가는 길에 서 있다.

법안 두고 씨름 해야 할 이들에게 간 '작은 정성'

아무리 뛰어난 의지와 능력을 지닌 의원이라고 할지라도, 그 비범함을 발휘할 공간과 기회가 구조적으로 차단·배제돼 있다. 그러다 보니 의원들의 직무는 공허해지고, 상대당에 대한 반대투쟁의 전면에 나서 투사 정객을 자처하거나 아니면 연예인처럼 소셜미디어에서 유명해지려는 '연기 정치'를 중히 여기게 된다.

의원이란 모름지기 보좌진, 동료 의원들과 함께 법안을 검토하고, 정당 내에 조직된 소그룹에서 정책전문가들과 함께 법안 및 정책과 씨름하고 연구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의원이 지녀야 할 본분이며, 국민의 대표로 뽑힌 선출직으로서 맡은 바 임무이다. 하지만 우리의 의원들은 그 직무를 상실한 상태에 놓여 있다.

그러나 특권은 여전히 빛난다. 피감기관 예산, 즉 국민 혈세에 의한 해외 출장을 비롯해 국회 특수활동비 수령까지. 직무는 발휘하지 못하는데 특권이 강조되는 모순 때문에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점점 더 작아진다.

글의 처음에서 언급한 '조그마한 정성', 국회 특수활동비 봉투에 적힌 '미성'이라는 표현은 '국회의원 무력화'에 대한 은유로 해석돼야 마땅하다. 특수활동비는 일종의 전리품으로 볼 수 있지만, 그 이면엔 '국회의 무력화'라는 그림자가 아른거린다. 지난 4일 참여연대가 공개한 2011~2013 국회 특수활동비 내역에 따르면 다른 상임위와 달리 '힘이 세다'는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그 '지위'에 비하면 고작 '푼돈'에 불과할 월 60만 원을 수령했다. 이 대목에서 '미성'은 '의원 관리'의 다른 표현이라고도 읽혀진다. 궁금해진다. 국회 특수활동비 지급의 대상자와 액수는 과연 누가 결정하는 걸까.

"국회의원이 아니라 국회 전문위원에게 잘 보여야 한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한 지인으로부터 들은 말이다. 그는 자신이 속한 협회는 "의원이 아니라 '실제로 힘을 가진' 국회 전문위원에게 신경을 쓴다"고 말했다. 이런 말은 여러 곳에서 어렵잖게 들을 수 있다.

국회 전문위원은 특히 행정부 공무원들에 대해 '갑중의 갑'으로 군림한다. 즉, 행정부 각 부처의 공무원들은 대의권(代議權)을 가진 국회의원이 아니라 전문위원들에게 각종 법안과 정책 그리고 예산에 대하여 보고하러 쫓아다닌다. 그들에게 잘못 보여 전문위원의 검토보고서에 좋지 않게 반영될까봐 전전긍긍, 허리를 굽힌다. 국회 전문위원들이 국회의원보다 자주 우위에 있기 때문에 국민의 대의권이 침탈당한다.

제헌국회 선배들은 지금 국회의원과 달랐다

▲ 국회의사당 본관 로텐더홀에 설치된 '제헌국회기념조형물'. 이 조형물엔 제헌국회 단체사진을 토대로 제헌의원 198인과 당시 국회 사무총장 등 모두 199명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조형물 오른쪽으로 보이는 동상은 제헌·2대국회의장인 신익희 선생. ⓒ 김지현


대안은 없는 걸까. 사실 대안은 진즉에 존재했다. 선배 국회의원들을 보면 답이 나온다. 국회가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모습은 아니었다. 제헌국회 본회의의 한 장면을 소개한다.

1948년 8월 25일 오전 9시 반. 제헌국회 제48차 본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는 반민족행위처벌법을 비롯한 법안이 논의됐다. 당시 의원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토론했는지 살펴보자. 회의록의 일부를 옮긴다.

(반민족행위처벌법안 제2조 '일본 정부로부터 작을 수한 자 또는 일본 제국의회의 의원이 되었든 자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고 그 재산의 전부 혹은 일부를 몰수한다'는 조항에 대한 토론 중)

유진홍 의원 : "지금 제2조를 가지고 벌써 두 시간이나 토론했습니다. 법원 원 정신이라는 것은 현행범 범죄자의 징계요, 장래를 경계하는 것이 법의 원 정신입니다."

(중략)

김장열 의원 : "제2조 말단에 「재산의 전부 혹은 일부를 몰수한다」는 문구를 「재산 및 유산의 전부 혹은 2분지 1 이상을 몰수한다」로 수정하는 것을 동의합니다."

(중략)

이석주 의원 : "2조도 역시 1조와 같이 준엄한 처벌을 하지 않으면 우리 민족정기를 살리지 못할 것으로 저는 생각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1조는 매국적이고 2조는 매국적이 아니라고 하지만 수작(受爵)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지금에 와서 그 재산을 반만큼 몰수해서 그 자들을 그대로 둔다면 그 자들이 그 재산의 위력을 가지고서 우리 조선 민족정기를 말살하고 독립을 방해한 그 효력이 얼마나 컸는지 생각해보면 앞으로 그 재산의 힘을 가지고 무슨 장난이 있을지 그것을 생각해보십시요. 그러므로 그 재산을 2분지 1 이상을 몰수한다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수정안을 찬성합니다."

부의장 김동원 : "가부 묻겠습니다. 이 동의를 잠깐 낭독할텐데 자세히 듣고 표결해주십시오." (기록원 낭독 - 제2조 중 '재산의 전부 혹은 2분지 1 이상'으로 수정할 것)

부의장 김동원 : "2조에 대한 수정안입니다. 수정안을 낭독해드렸는데 거기 대해 묻겠습니다. (거수 표결) 재석 145, 가가 88, 부가 15, 그 수정안은 가결되었습니다."

이석 의원 : "제2조에 대해서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부의장 김동원 : "제2조는 전부 수정 통과되었습니다."
이석 의원 : "아닙니다. 일부만 수정되었지 전체 수정된 것이 아닙니다."
부의장 김동원 : "그러면 지금 수정 동의한 이 말씀하세요. 제2조는 전체 수정한 것인지 전부 수정한 것인지 어떻게 되었습니까?"
김장열 의원 : "그 재산권 전체를 말한 것입니다."

부의장 김동원 : "제3조를 낭독할 테니까 들으세요. 「일본 치하 독립운동자나 그 가족을 악의로 살상 박해한 자 또는 이를 지휘한 자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고 그 재산의 전부 혹은 일부를 몰수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수정안이 있습니다. 김명동 의원 외 12인의 수정안이 있습니다. 나와 말씀해주시오." (이하 생략)

이날 특별법기초위원회 김웅진 위원장은 반민족행위처벌법의 제목부터 시작해 제1조, 제2조, 제3조, 각 조문을 차례차례 낭독했다. 이어 수많은 의원이 발언권을 얻어 논의하고, 토론했다. 그리고 마지막엔 조문에 대한 투표를 했다.

반민족행위처벌법 제2조 조문이 투표 끝에 결정되기까지는 2시간도 넘는 기나긴 논의가 진행됐다. 그 속에서 의원들은 활발하게 자신의 주장과 의견을 개진하고 토론했다. 그러고도 시간이 모자라 다음날 같은 시각에 본회의를 속개하도록 했다.

지금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하지만 이미 '선배 국회의원'들은 스스로 법안을 검토하고 토론하고 결정했다. 지금의 국회의원들은 선배들을 본받아 대의권 그리고 입법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을까. 현재 입법시스템으로는 요원하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소준섭씨는 국회도서관 조사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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