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시민은 기자다

아내가 암을 이겼으니
바보 변호사도 이겨라

[희망의 한판승 9화] 부천시청소년법률지원센터 김광민 변호사

등록|2018.07.24 08:00 수정|2018.07.24 08:32

▲ 아내가 암에 걸리기 전의 행복한 나들이. ⓒ 김광민


아내가 암 진단을 받았다

병명은 염증성 악성 유방암. 희귀성 암 중의 하나로 치료가 어렵다고 했다. 재발률이 높은 암으로 3기 말이라고 의사가 말했다. 눈앞이 캄캄했다. 아이들은 이제 겨우 다섯 살과 세 살. 처음 찾아간 병원에선 희귀성 암이라 치료가 어렵다고 했다. 더 큰 대학병원으로 옮겼다. 처음엔 상피내암, 다음엔 침윤성암, 최종적으로 악성 유방암으로 밝혀졌다. 아내의 병명이 커질 때마다 불안감도 덩달아 커졌다.

수술을 했더니 암세포가 림프절 11개로 전이됐다. 환자의 상태가 예상보다 악화된 사실에 의사도 놀랐다. 항암 치료가 추가됐다. 만일, 아내에게 나쁜 일이 생긴다면…. 남편은 연옥과 지옥을 오갔다. 악몽 같은 1년이 지나갔다. 지난 6월 초, 병원을 찾았다. 암 세포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아내가 눈물을 흘렸다. 영문을 모르는 두 아들이 엄마에게 물었다. 아내가 아이들을 껴안고 또 울었다.

"엄마 왜 울어?"

사선에선 벗어났지만 끝난 것은 아니다. 아내는 호르몬 억제제를 10년간 복용해야 한다. 6개월 치 약을 처방받고 집에 돌아와 약 보따리를 쌓아놓고 생환 기념사진을 찍었다. 남편이 아내의 얼굴을 보며 웃었다. 아내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자신은 아내의 작품이라고 말하는 남편과 삶이 힘들어도 옳은 길로 가자는 아내는 삶을 낙관한다. 비관할 이유가 없다. 부채야 살면서 갚으면 된다.

"가슴 한 쪽을 도려내고 나서야… 1년에 걸친 항암치료를 하고서야… 마음이 조금이나마 가벼워졌다. 앞으로도 10년간은 약물을 복용해야 하지만 지난 1년에 비하면 10년 약 먹는 게 뭐가 문제이겠나."


위기청소년 출신
변호사의 파란만장한 삶

▲ 파란만장한 삶의 주인공 김광민 변호사. ⓒ 조호진


부천시청소년법률지원센터 소장 김광민(39) 변호사의 인생은 파란만장하다. 그는 사고뭉치 학생이었다. 고등학교 재학 중 학교폭력으로 정학을 받은데 이어서 또 다른 사고를 치면서 퇴학 처분에 해당하는 전학 조치됐다. 잘린 학생들이 다니는 문제 학교 학생이 됐다. 그의 부모는 더 이상 사고치지 말고 졸업하기만을 바랐다. 사고는 그만 쳤다. 공부에 집중했다. 무사히 졸업했을 뿐 아니라 대학까지 갔다.

가톨릭 신자로 유아세례까지 받은 그는 인천가톨릭대 신학과에 입학했다. 그가 신부를 꿈꾼 이유는 자신이 다니던 성당 신부가 정의구현사제단 소속으로 불의에 저항하면서 정의를 위해 싸우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막상 신학과에 입학하니 멋있지 않았다. 신학과의 권위적인 위계질서에 실망한 것이다. 입학 3개월 만에 신부의 꿈을 포기했다. 정의구현사제단이 단원 한 명을 놓친 것이다.

재수해서 홍익대 화학공학과에 입학했다. 빡세게 공부해야 하는 공대 공부가 재미없었다. 공부와 담을 쌓고 학생 운동에 뛰어들었다. 공부보다 운동이 재미있었다. 교지 편집장을 비롯해 총학생회 활동으로 4년을 보냈다. 밑바닥 학점으로 겨우 졸업했다. 그리고 '언론개혁시민연대'와 '아이쿱생협'에서 시민단체 활동가로 일했다. 그의 인생이 바뀐 것은 성공회대학교 NGO학과에 입학하면서였다.

아내를 만난 것이다. '들꽃청소년세상'이란 단체의 창립 멤버인 그의 아내는 불우한 아동과 청소년을 10년 넘게 돌본 착한 사람이다. 아내는 대학원 동기지만 4년 연상이다. 그래서 누나라고 불렀다. 그런데 사랑이 찾아오면서 연인이 됐다. 사랑을 놓칠 수 없어 혼인신고부터 했다. 결혼식은 나중에 올렸다. 아내의 도움으로 전남대 로스쿨을 졸업해 변호사가 됐다. 난생처음 돈 벌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내를 책임지고 싶었다.

양심 대신에 돈을 선택한 변호사
돈 대신에 양심을 선택한 변호사

▲ 돈 대신에 양심을 선택한 김광민 변호사. ⓒ 조호진


그는 부모의 반대에도 혼인신고를 하고 아내와 살면서 빚을 내 전셋집을 마련했다. 로스쿨 학비도 갚아야 했다. 그리고 두 아이가 태어났다. 돈을 벌고 싶었고 돈을 벌어야만 했다. 그래서 기업 사건을 주로 맡는 한 로펌에서 수습 생활을 했다. 그의 역할은 노동조합에 고소장을 날리면서 노조를 탄압하는 일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눈을 질끈 감아야 했다. 조금만 비겁하면 돈이 생긴다.

노조는 목숨 걸고 싸웠다. 그럴수록 수임료가 올라갔다. 사측 입장에서 보면 노조를 파괴할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합리화하며 2개월을 버텼지만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 그만두겠다고 했다. 아무리 봐도 더러운 짓이었다. 학생 운동권 출신인 로펌의 대표 변호사가 측은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학생운동 시절의 낭만으로 세상을 살면 안 된다. 너는 운동권 학생이 아니라 변호사다. 지금 그만두지 말고 좀 더 일해 보면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될 것이다. 세상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4개월 정도 더 버텼다. 운동권 출신 중에 대표 변호사 같은 이가 한둘이랴. 정의를 위해 목숨을 바칠 것 같았던 이들이 정의가 밥 먹여 주냐며 돌아섰다. 무명의 수습 변호사는 유명한 변호사의 논리에 동의할 수 없었다. 돈이 필요했고 돈을 벌어야만 했지만 양심과 맞바꿀 순 없었다. 그건 돈이 아니라 인간을 비인간으로 타락시키는 아편이기 때문이었다. 가난한 아내가 양심을 지키며 살자고 했다. 아내 덕분에 로펌을 그만두었다.

그의 부채는 전세금을 포함해 2억 원이 조금 넘는다. 최근에는 부천시 소사동 연립주택으로 이사했다. 2년 전, 백골 여중생 사건이 발생한 가난한 동네다. 변호사 4년 차인 그는 아픈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가난한 동네에서 살지만 아니, 빚쟁이로 살지만 삶은 넉넉하다. 소년희망공장에 100만 원을 후원하고 소년희망센터 건립기금으로 50만 원을 냈다. 손해 보지 않는 이들의 눈으로 보면 영락없이 철없는 가장이다. 

빚의 노예로 전락한 위기청소년들
범죄자로 전락하고 죽음을 선택하고

▲ 핸드폰이 위기청소년들을 착취하는 수단이 됐지만 통신사들은 수익 올리기에 급급하다. ? ⓒ 조호진


"로펌을 그만둔 뒤 덜 더러운 로펌에 취업하려고 했다. 그런데 아내가 '부천시청소년법률지원센터'를 추천했다. 처음엔 싫다고 했다. 보수가 너무 적었고 청소년 돕는 일에도 관심 없었다. 정의보다 돈 벌이를 택하려고 했는데 아내가 계속 설득했다. 돈 많이 버는 변호사보다 가난한 아이들을 돕는 변호사로 살자고, 그게 하늘이 뜻이라고 했다. 아내의 제안과 설득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다."

김광민 변호사는 2015년 10월 부천시청소년법률지원센터 소장이 됐다. 사고뭉치 위기청소년이었던 그가 위기청소년 곁으로 돌아온 것이다. 비록 정의를 구현하는 신부가 되지 못했지만 정의의 편에 선 변호사는 됐다. 사람들이 위기청소년들에게 마구잡이로 돌을 던질 때, 그 누구도 이 소년들을 변호하지 않을 때, 용감한 바보인 그는 비난의 뭇매를 맞으면서 위기청소년을 변호했다.

세상은 위기청소년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않는다. 악마 같은 어른들에게 착취당하는데도 정부 당국은 외면하고 법은 소년들을 보호하기는커녕 옭아맨다. 너희가 벌인 짓이니 너희 스스로 해결하라는 것이다. 착취의 덫에 걸린 소년들이 김광민 변호사를 찾아왔다.

"돈이 필요했던 열아홉 소년이 포털에서 대출 상담을 받았다. 사채업체에서 대출받게 해준 사람은 브로커였다. 브로커는 소년을 3일간이나 끌고 다니며 감금까지 했다. 악마에게 걸린 것이다. 브로커는 대출금의 50%를 수수료라며 챙겨갔다. 그것도 부족해 고가의 핸드폰 3대를 할부로 사도록 한 뒤 핸드폰을 바로 팔아 50%를 떼어 갔다. 순식간에 1천만 원 가량의 빚이 생겼다. 빚의 노예가 된 소년들은 빚 독촉에 쫓기다 범죄자가 된다."

▲ 김광민 변호사는 위기청소년들을 대변하다 비난의 뭇매를 맞곤 한다. ⓒ YTN


브로커와 사채업자만 소년들을 착취하는 것은 아니다. 핸드폰이 범죄와 착취의 수단으로 악용되는데도 통신사들은 수익 올리기에 급급하다. 청소년들이 빚의 노예가 되든지, 범죄자가 되든지 별 관심 없다. 빚에 쫓기는 소년들은 범죄자가 되고 심지어 죽음을 선택하기도 한다. 언론이 간혹 문제 삼긴 하지만 바뀌는 건 없다. 정부 당국과 정치인들은 이슈 플레이에 그친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사회다.

"20대 초반 여성이 브로커에 걸렸다. 몇 개월 만에 빚이 4천만 원으로 늘었다. 브로커는 더 착취하기 위해 친구 소개를 요구했고 이 여성이 소개한 친구는 브로커에 시달리다 자살했다. 이 여성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게 아니라 브로커와 사채업자에 의해 살해된 것이다. 사회적 약자를 외면한 사회에 의해 죽임당한 것이다. 핸드폰이 범죄와 착취의 수단으로 악용되는데도 수익에만 혈안이 된 통신사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당국과 정치인들은 이 죽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김광민 변호사는 벼르고 있다. 이윤 창출에만 매달릴 뿐 사회적 책임을 외면한 기업들을 고발할 계획이다. 그들의 막강한 힘에 비해 약자 편에 선 그의 힘은 매우 약하다. 승산이 있어서 싸우려는 것은 아니다. 정의가 살아 숨 쉬고 있다면 싸워야 한다. 잔인한 천민자본주의를 고발하려는 것은 사람 사는 세상은 이래선 안 되기 때문이다. 밑바닥 변호사는 법과 정의가 있는 척하는 세상, 대명천지에 야만의 짓을 서슴지 않는 세상을 두고 볼 순 없다. 그래서 싸운다.

세상을 바꾸는 바보 변호사들의 행진
법과 제도가 아닌 사람이 희망입니다!

▲ 김광민 변호사의 <헌법 쉽게 읽기> ⓒ 인물과사상사


법과 제도가 부족해 흉흉한 사건이 기승을 부리는 걸까. 아니다. 악인들이 법과 제도를 농락하는데도 방치하기 때문이다. 전시행정과 실적에 급급한 정부 당국은 흉흉한 사건에 별 관심 없다. 그나마 정권이 바뀌면서 희망이 생긴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위기청소년들은 여전히 절망 상태다. 소년들이 목이 마르다고 한다. 소년들에게 이 세상은 사막이다. 소년들의 목을 누가 적셔줄까. 그 어느 누가.

바보 변호사들이 세상을 울렸다. 바보 노무현 변호사가 우직한 싸움으로 정치를 바꾸었고, 재심 박준영 변호사는 파산 당하면서까지 정의를 실현했다. 이제, 빚쟁이 변호사가 승산 없는 싸움으로 세상에 경종을 울릴 차례다. 나는 야만의 사회와 싸우는 밑바닥 변호사에게 희망을 건다. 돈에 양심을 팔지 않은 그의 정의에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아내가 암을 이겼으니 바보 변호사도 제발 이겨라.

검사와 판사의 전관을 거치지 못한 밑바닥 법조인 김광민 변호사는 <오마이뉴스>에서 '김광민 변호사의 헌법 쉽게 읽기'와 <머니투데이>에서 '김광민 변호사의 청춘발광(靑春發光)' 연재했고 <오마이뉴스> 연재 글을 모아 <헌법 쉽게 읽기>(인물과사상사)라는 제목의 책을 펴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