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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먼저 만날 사람은 '이재용'이 아니다

[역사의 과도기, 혼돈의 진보 ②] 대기업에서 벤처기업 중심으로

등록|2018.07.30 16:58 수정|2018.07.30 17:04

▲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3일 오전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중소기업 도전과 희망 포럼'에 참석해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으로부터 중소기업을 살리는 정책제안서를 전달받고 있다. ⓒ 남소연


문재인 정부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실패한다면 한국 사회는 헤어날 수 없는 혼미 속으로 빠져들 공산이 크다. 앞으로 쏟아내는 모든 이야기는 문재인 정부 성공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다.

진정으로 문재인 정부 성공을 기원한다면 한층 더 냉철한 시각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민심의 방향을 최종 결정짓는 경제와 관련해서 더욱 그렇다. 지나 온 과거를 되돌아보자. 김영삼 전 대통령은 요즘 적폐청산에 해당하는 군정종식에서의 성공으로 사상 최고 지지율을 기록했다. 하지만 외환위기 초래에 대한 책임으로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대통령으로 전락했다. 노무현 정부는 정치 개혁과 남북관계 진전에서 커다란 성과를 남겼음에도 경제 분야에서의 부진 덕에 실패한 정부로 평가받아야 했다.

문재인 정부는 적폐 청산과 한반도 정세 변화 주도로 높은 점수를 받아 왔다. 하지만 최근 지지율이 크게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주로는 만족스럽지 못한 경제 정책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된다. 지지자들 사이에서조차도 문재인 정부 경제 정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져 가고 있는 추세이다.

'고르디아스 매듭 끊기'라는 환상

그리스 전설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농부 출신인 고르디아스가 프리지아의 왕으로 추대되었다. 고르디아스는 그에 대한 보답으로 마차를 신전에 묶어두었는데 매듭이 매우 복잡하게 꼬여있었다. 이후 이 매듭을 푸는 사람이 아시아의 지배자가 될 것이라는 신탁이 전해졌다. 많은 영웅들이 매듭을 풀려고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훗날 원정 중 이곳에 들른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단칼에 매듭을 끊어 버렸다.

알렉산드로스가 선택한 고르디아스 매듭 끊기는 복잡 미묘한 문제를 대범하게 해결하는 상징으로 통용되어 왔다. 고르디아스 매듭 끊기는 정치인들이 쉽게 매료될 수 있는 문제 해결 방식이다. 단칼에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지지율의 급상승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이보다 더 멋진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이 점에서 예외가 아니었던 것 같다. 2014년 무렵 박근혜는 모처에서 고르디아스 매듭을 끊듯이 경제 문제를 단칼에 해결하자고 호소했다. 제시된 방법은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했던 규제의 대못을 뽑는 것이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경제 성적표는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실패한 박근혜 정부를 대신해 들어선 문재인 정부는 고르디아스 매듭 끊기와 무관한 모습을 보였을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적어도 임기 초반 문재인 정부 관계자들과 지지자들 사고 속에서 소득 주도 성장론은 일종의 고르디우스 매듭 끊기 용도로 자리 잡은 흔적이 역력하다. 소득 주도 성장론이 복잡 미묘한 한국 경제 상황을 단순 명료하게 풀어낼 것이라는 강력한 믿음이 밑바탕에 깔려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결과는 그러한 믿음과 상당한 거리가 있어 보인다.

제조업 기반 대기업 시대는 끝났다

왜 한국 경제는 규제의 대못을 뽑거나 소득 주도 성장론 드라이브를 거는 것만으로 단칼에 해결되지 않는 것일까? 무언가 한층 근원적이고 구조적인 문제가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그동안 한국 경제 성장의 견인차 구실을 한 것은 제조업 기반의 대기업이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대기업은 더 이상 국민경제 기관차 역할을 못하고 있다.

대기업들은 탄탄한 글로벌 마케팅 역량을 바탕으로 해외 이전을 적극 주도해 왔다. 삼성전자는 생산의 80% 정도가 해외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현대자동차는 1997년 이후 국내 공장 신설을 하지 않았다. 또한 대기업은 막강한 기술력과 투자 능력을 바탕으로 자동화를 통한 노동의 기술적 대체를 주도해 왔다. 그 결과 투자가 늘더라도 그에 비례해 일자리가 늘지 않거나 도리어 주는 현상이 심화되어 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평택에 20조 원을 투자해 반도체 공장을 세웠지만 늘어난 일자리 수는 900여 개에 불과했다. 200억 원을 투자해 일자리 1개를 채 만들지 못한 것이다. 이 모든 결과로 2016년 한 해 동안 대기업에서의 일자리는 9만 개 줄어들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자리 창출을 주도한 것은 중소·벤처기업이었다. 2016년 한 해 동안 중소기업 일자리는 32만 개 늘어났다. 특히 벤처기업은 매출과 고용 등 모든 지표가 확인해주고 있듯이 국민경제의 새로운 중심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사람의 창조력을 가치 창출의 원천으로 삼는 벤처기업은 해외 이전이나 노동의 기술적 대체가 매우 미미한 편이다. 일자리 창출 능력에서 훨씬 우월한 위치에 있는 것이다.

출범 당시 문재인 정부는 이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중소벤처기업부 신설은 이를 입증해준다. 경제 수장인 김동연 부총리는 언론 인터뷰에서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 중심으로 가야 함을 분명히 하면서 중소기업 현장으로 내려가 함께 답을 찾겠다는 결기를 다지기도 했다.

하지만 소득주도 성장론이 기대했던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하자 문재인 정부는 초심을 잃어갔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업과의 만남을 강화하기로 하면서 첫 순서로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을 만났다. 문재인 대통령의 행보에 대해 청와대는 확대 해석을 경계했지만 이를 둘러싼 시선은 대체로 비슷했다. 김동연 부총리가 조만간 삼성전자를 방문하고 전경련과 간담회를 갖기로 하면서 문재인 정부 행보는 한층 분명해 보였다. 급한 마음에 돈 보따리를 쥐고 있는 재벌 대기업에 손을 벌리는 모양새이다.

▲ (노이다<인도>=연합뉴스) 인도를 국빈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오후 인도 우타르프라데시주 노이다시 삼성전자 제2공장 준공식에 도착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안내를 받으며 행사장으로 입장하고 있다. 2018.7.9 ⓒ 연합뉴스


과연 대기업들이 일자리 창출에 어느 정도나 기여할 수 있을까? SK하이닉스가 경기도 이천에 15조 원을 투자해 반도체 공장을 신설하기도 했다. 투자 액수로만 보면 천문학적 숫자이다. 하지만 그간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예상되는 일자리 수는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할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 정치적 고려는 일시적인 것에 그칠 수밖에 없다. 궁극적으로 기업을 움직이는 것은 생존을 다투는 시장 경쟁이다. 이 대목에서 '경제 분야에서만큼은 의지가 현실을 넘어서기 힘들다'는 카를 마르크스의 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제조업 기반 대기업 시대는 끝났다. 벤처 기업을 중심으로 국민경제의 틀을 다시 짜야 하는 상황이다. 전반적인 시스템과 운영기조, 정책 방향 모두에서 전면적인 전환이 불가피한 것이다. 고르디아스 매듭 끊기처럼 경제 문제를 단칼에 해결할 수 없는 이유이다.

덩샤오핑 식 리더십이 절실한 시대이다

제조업 기반 대기업 중심에서 벤처기업 중심으로 국민경제 틀을 다시 짜는 것은 거대한 체제 전환에 해당한다. 긴 안목을 갖고 주도면밀하게 접근하지 않으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조급성은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지점은 이러한 전환을 뒷받침할 이론이 명확히 정립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기성 이론에만 의존하거나 책상머리 관료주의에 빠졌다가는 십중팔구 실패하기 쉽다. 이럴 때 답을 찾을 수 있는 곳은 오로지 현장뿐이다. 현장 밀착형 리더십이 절실한 상황이다.

지금의 상황에서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는 지도자가 있다. 중국의 개혁개방을 이끌었던 덩샤오핑이다.

1960년대 초 당 총서기에 오른 덩샤오핑은 개인의 자유로운 이익 추구를 허용하는 방향에서 개혁개방을 적극 추진했다. 하지만 너무 조급하게 서둘렀고, 인민을 차분히 준비시키지 못한 채 행정기구에 지나치게 의존했다. 그 결과 특권층이 팽창하면서 사회적 불만이 크게 누적되었다. 결국 마오쩌둥이 주도하는 문화대혁명의 역습으로 개혁개방은 완전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1970년대 후반 마오쩌둥의 사망과 함께 개혁개방을 추진할 수 있는 기회가 또 다시 찾아 왔다. 이번에는 완전 달랐다. 덩샤오핑은 긴 안목을 갖고 주도면밀하게 일을 추진했다. 더불어 행정기구에 의존하지 않고 철저히 현장에서 내려가 해답을 찾았다. 인민과 동고동락하며 모범 해답을 찾고 이를 일반화했다. 그런 식으로 다수의 인구를 포괄하고 있던 농촌 개혁이 이루어졌다. 상공업 개혁 역시 해안 도시부터 시작되어 유명한 '점선면 전략'을 따라 중국 전체를 포괄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덩샤오핑은 이 같은 방식으로 거대한 중국을 큰 혼란 없이 개혁개방의 길로 안내할 수 있었다.

대통령과 정부 관계자의 행보는 어떤 식으로든지 향후 경제 운영 방향에 대한 중대한 시그널을 던지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동연 부총리가 먼저 만나야할 사람은 이재용이 아니라 벤처 기업 현장 관계자들이 아니었을까?

[역사의 과도기, 혼돈의 진보 ①] 흔들리는 소득주도 성장론, 정부가 놓친 '이것'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박세길 기자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의 상임이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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