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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위' 국회, 이래선 안됩니다

법안발의 세계 1위에 숨겨진 비밀... 법안 검토를 국회의원이 해야 하는 이유

등록|2018.08.10 13:43 수정|2018.08.10 19:02

▲ 국회의사당 전경. ⓒ 김지현


[기사 보강 : 10일 오후 7시 2분]

압도적 세계 1위, 우리 국회의 법안 발의건수

20대 국회 전반기, 즉 2016년 5월부터 2018년 5월까지 2년 동안 우리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수는 무려 1만2968개였다. 하루에 거의 20개씩의 법안이 발의되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법안발의는 자그마치 22.6배 증가하였다. 놀라운 숫자들이다. 숫자만 놓고 본다면, 참으로 입법을 본업으로 하는 의회의 모범 사례라 할 것이며, '일하는 국회'의 전형으로 전 세계에 자랑해야 마땅할 국회다. 그러나 이러한 '실적'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시선은 따갑기만 하다.

우리 국회의 법안발의 건수는 어느 선진국과 비교해도 가히 압도적 차원이다. 프랑스 의원들이 2012년부터 2017년까지 5년 동안 발의한 법안은 총 1834건이었다. 프랑스에서 대체로 1년에 정부 발의 법안은 30~50건, 의원 발의 법안수는 200~300건 정도이다. 그리고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고작해야 10개 법안 정도만 의결된다.

한편 독일 의원들은 2005년부터 2009년 4년간 431개의 법안을 발의했다. 독일 의회에서는 의원 개인에 의한 법안 발의가 상상 외로 적다. 대신 정부 제출이 주류를 이룬다. 왜냐하면, 연립정부를 다수 여당이 지배하므로 정부가 제출한 법안이 곧 다수 여당의 법안이기 때문이다. 또 일본 의원들은 2009년부터 2012년에 253건의 법안을 발의하였다.

18대 국회 법안 발의 1위는 홍준표 의원이었다

최근에 폭염이 기승을 부리자 폭염에 관련된 법안만 해도 9개나 발의되었다. 이와 관련된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일부 개정법률안'은 지난 2017년부터 무려 45개 법안이 발의되었다. '최저임금법 일부개정법률안'도 2016년부터 총 46개나 발의되었으며,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도 최근 1, 2년 사이 29개 법안이 제출되었다. 의원들에 의해 가장 많이 발의된 법안은 '조세특례제한법'으로서 지난 2년간 무려 292건이나 발의되었다. 이 법안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전형적인 선심성 법안이다.

18대 국회가 시작된 2008년 5월 30일부터 2012년 2월 16일까지 법안을 가장 많이 발의했던 의원은 바로 홍준표 의원으로서 총 215건의 법안을 대표 발의하였다.

현재 국회를 감시하고 의원들의 활동을 평가하는 시민단체들은 대부분 어느 의원이 법안을 많이 발의했느냐의 양적 지표만을 기준으로 삼아 '우수의원'을 선정하고 있다. 더구나 각 정당 공천기준에서도 법안발의 건수는 중요한 지표로 활용된다.

이렇듯 만연된 '건수주의'로 인하여 법안 발의는 넘치고 넘친다. 이로 인해 인력과 예산의 낭비 역시 날로 극심해가고, 정작 중요하고 필요한 법안이 통과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현재 제출된 법안에 대한 국회의 관행은 이른바 선입선출(先入先出), 즉, "먼저 발의된 법안을 먼저 검토한다"는 방식인데, 따라서 아무리 국민이 원하고 긴급을 요하는 법안이라도 우선순위에 놓이지 못한다. 회기 내내 끝내 통과되지 못하고 회기만료로 자동 폐기되는 법안이 적지 않다. 심각한 입법 왜곡이다.

법안 가결 위해 국회의원이 국회공무원에 잘 보여야하는 구조

법안발의의 남발 현상은 왜곡된 입법 프로세스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우리 국회의 입법 절차에서는 의원이 법안을 발의하면 그 뒤 국회 공무원이 그 법안에 대하여 '검토'한다. 이렇게 하여 의원은 법안에 대한 꼼꼼하고 힘든 '검토'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으므로 부담감 없이 발의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 어떤 큰 일이 터지면 언론의 관심과 주목을 받을 수 있는 한두 가지 아주 간단한 내용만으로 법안을 '구상'해 발의하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 자연히 법률 제정안과 전부 개정안은 매우 적고, 일부개정 법률안이 태반이다. 이를테면 '당해(當該)'이라는 글자를 '해당(該當)'으로 바꾸는 식의 매우 단순한 자구 수정에 그치는 법안 발의도 수두룩하다.

그런데 세계 의회사상 그 유례를 찾을 수 없이 매우 '특수하게' 운용되는 우리 국회에서 법안의 통과 여부는 사실상 국회 공무원인 전문위원들의 손에 달려 있는 경우가 많다. 실제 전문위원이 '문제가 있다'고 '검토'한 법안은 통과되기 어렵다. 그래서 일반인들의 상식과 전혀 달리, 국회의원들이 자신이 제출한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오히려 국회 공무원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경향조차 나타난다. 주객전도의 희화화된 국회의 모습이다.

기본이 흐트러지면, 모든 일이 뒤틀리게 된다. 다른 나라 의회처럼 법안에 대한 '검토'를 국회의원 스스로 수행한다면, 같은 정당 소속 의원의 법안 발의는 자연스럽게 교통정리가 되어 이러한 법안발의 남발 현상을 방지할 수 있게 된다.

독일 의회의 경우, 의원의 법안발의는 대부분 소속 교섭단체에 의해 수행되며, 자체 내 전문 인력의 지원을 받아 입안된다. 또한 자구 수정 등 일부 혹은 부분 개정의 법안은 지양되어 최대한 종합적으로 검토, 정비하여 제출된다. 교섭단체의 제출 단계에서 전문 그룹에 의해 법안이 완벽하게 준비되므로 대한민국 국회의 사례처럼 소관 상임위에서 심의한 뒤 다시 체계·자구 심사를 위해 법사위원회에서 다시 심의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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