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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도, 오늘도 껴입어야 하는 여성들

등록|2018.08.10 15:50 수정|2018.08.10 16:42
해님은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 데 성공했어요 : 해님도 못 하는 것

▲ 이솝우화 '해님과 바람' ⓒ EBS 클립뱅크


이솝 우화 '해님과 바람' 이야기는 내기로 시작된다. 해님과 바람 중 누가 먼저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느냐로 우열을 가리는 것이다. 해님은 더위를 내뿜어 나그네가 외투를 벗게 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체감 온도 40도 이상의 무더위도 벗기지 못하는 것이 있다. 여성의 브래지어, 속바지, 화장이다.

옷 입는 것도 귀찮아… 가볍게, 가볍게, 가볍게

"사상 역대급 무더위", "사람 잡는 불반도", "내일은 더 올라"… 폭염이 연일 기승이다. 5분만 밖에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고 불쾌해지는 날씨. 옷을 사러 가면 최대한 가볍고 통풍이 잘되는, '안 걸친 것 같은' 옷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요즘이다.

화장품 역시 마찬가지다. 여성 소비자들은 무거운 느낌의 파운데이션보다 가볍게 잘 발리는 파운데이션을 선호한다. 화장품 회사 역시 이러한 선호에 맞춰 각종 섬머 코스메틱 상품을 내놓는다. 모두가 함께 폭염에서 살아남기를 꾀하는 셈이다.

A씨의 사연 : "그래도 브래지어는 해야지"

모두가 어떻게든 한 겹이라도 덜 걸치려고 하는 폭염 속, 여대생 A씨의 사정은 조금 다르다. A씨는 여느 때처럼 일어나 아르바이트에 갈 준비를 한다. 휴대폰엔 폭염경보 문자가 와 있다. 문자를 보며 A씨는 얇은 반팔과 통풍이 잘되는 치마를 입기로 한다. A씨는 가슴에 딱 맞는 브래지어를 착용한 후, 얇은 반팔을 입는다. 다리에 딱 붙는 속바지를 입은 후, 통풍이 잘되는 치마를 입는다. 헤어드라이어, 고데기에 화장까지 하려니 나가기도 전부터 땀이 나지만 안 할 수는 없다. 준비를 마친 A씨는 집을 나선다. 밖은 폭염경보가 발령된 상태다.

39도의 불볕더위 속, 가슴을 조이는 브래지어는 답답하고, 계속 땀이 찬다. 속바지는 땀에 말려 올라가 살갗을 쓸어서 따갑다. 통풍이 거의 안 되는 것은 당연하다. 얼굴에선 땀이 나서 화장이 계속 지워지지만, 아예 지울 수는 없다. 수시로 수정화장을 하는 것은 일상이 됐다. 아무리 여름용 속옷, 여름용 화장품이라 해도 더 나아질 건 없다. 겹겹이 껴입은 상태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 온도가 아무리 올라도 여성을 향한 사회적 검열과 억압은 그 꺼풀을 벗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 ⓒ 고함20


'왜 브래지어를 해야 하지?' 브래지어가 답답하게 느껴질 때마다 A씨는 자주 의문을 갖지만, 막상 브래지어를 안 하고 외출할 용기는 없다. 브래지어 안 한 여성이 어떤 시선에 노출되는지 뻔히 알기 때문이다. "야, 쟤 봐봐, 보인다?", "저건 좀 그렇지 않나" 등의 반응이 오갈 것이다. 모두 걱정을 가장한 비난과 통제다.

B씨의 사연 : "저도 모르게 제 모습을 검사해요"

또 다른 여성 B씨는 최근 브래지어를 안 하고 외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몸은 편해졌어도 마음은 여전히 불편하다. '뭐 어때'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우연히 유리창에 비친 모습을 봤을 때 가슴 윤곽이 드러나 있으면, 다니면서 시선을 받진 않았을지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지인에게 노브라로 다니다가 성추행을 당할 뻔했단 이야기를 들은 B씨는 더욱 고민이 많아졌다. B씨는 혹시 윤곽이 비치는 옷을 입지는 않았는지 한 번이라도 더 가슴을 내려다보게 되고, 자기 검열을 하게 된다며 불편함을 토로했다.

대안으로 브라 패치를 찾아보던 B씨는 '이렇게까지 내 가슴을 숨겨야 하나' 라는 고민이 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내 "그건 절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노브라를 한 뒤 피해를 보는 여성들이 있으니까요" 라며 답답함을 드러냈다. 왜 남성의 젖꼭지는 신체 기관이고 여성의 젖꼭지는 성욕의 대상, 은밀히 감춰야 할 무언가로 취급되는지 의문이 드는 지점이다.

▲ pixabay ⓒ pixabay


브래지어 입지 않을 권리, 화장하지 않을 권리

여성의 신체적 구속을 향한 사회적 억압과 제재는 여전하다. 용기를 내어 구속을 벗어나더라도, 시선과 자기검열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워지기 힘든 현실이다. 여성에게 씌워진 사회적 시선과 강요는 개인이 '나는 여자들이 그러든 말든 상관 안 하는데?', '나는 내가 좋아서 하는 건데?'라고 생각한다 해서 사라지는 문제가 아니다.

브래지어를 입을 권리, 화장을 할 권리가 온전히 개인의 자유와 선택으로 남기 위해선 브래지어를 입지 않을 권리, 화장하지 않을 권리도 '정상적인 것'으로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청년언론 <고함20>에서 발행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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