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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로쟈 이현우 지음 '책에 빠져 죽지 않기'

등록|2018.09.06 17:56 수정|2018.09.07 14:03
로쟈 이현우는 현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서평가다. '쓰다'라는 동사의 주어가 국문학자 조동일이라면, '읽고 쓰다'라는 동사의 주어는 마땅히 이현우라고 봐야 한다. 최소한 지금은 그렇다. '읽을 만한' 책을 보는 눈을 가지고, 한 주의 도서 트렌드를 따라가기를 원한다면 마땅히 종이신문을 구독해야 한다고 믿는다. 인터넷으로 가능하긴 하다. 그러나 이 작업은 일일이 검색을 하고 클릭을 해야 하는 수고를 감수해야 하지만 종이 신문의 서평코너는 한주간의 독서 트렌드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래도 종이신문이 내키지 않고 인터넷이 편하다면 마땅히 로쟈의 블로그가 그 대안이 되겠다. 로쟈의 블로그(http://blog.aladin.co.kr/mramor)야말로 종이신문의 서평 코너에 대적할 만한 인터넷의 보물창고다. 적어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그렇다.

굳이 글 내용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그가 이 거대한 책의 바다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는 '읽고 쓰다'는 주인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꾸준함과 방대함으로 모자라 글의 유려함이 더해진 그의 블로그는 세상의 모든 책을 포획하려는 거대한 저인망 거물이고 로쟈는 저인망 어선의 선장이자 노꾼이다.
 
 

표지 사진책에 빠져 죽지 않기 표지 사진 ⓒ 교유서가


그가 쓴 세 번째 서평집 <책에 빠져 죽지 않기>는 우리 서평계에서 독특한 영토를 점유하는데 아마추어와 프로 서평가의 경계가 그것이다. 이 책에서 이현우가 말했듯 비평은 책을 읽은 사람을 위한 것이고, 서평은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을 위한다.

<책에 빠져 죽지 않기>에서 이현우가 담은 글은 서평이라고 불리지만 보통 사람이 쓴 서평과 비교하면 확연히 '고급스러운' 글이고, 전문가가 쓴 비평과 비교하자면 '그들만의 암호'가 난무하지 않는 '보통사람의 언어'가 사용되었다. 어려운 글이 아니면서도 독서와 책에 대한 신선한 시각과 지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책이다.

독서가에게 '책에 대한 책'이란 그저 다른 사람의 '느낌'과 '감상'을 공유하고, 읽을 만한 책을 소개해주는 책이기 쉽다. 말하자면 정보를 얻기 위함이지 인문학책에 버금가는 담론을 기대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다. <책에 빠져 죽지 않기>는 이런 내 생각이 적확히 달랐다는 것을 알려주는데 다음 구절이 그랬다. 
 
 "글을 읽을 줄 모르는 문맹자 수는 세계 최저 수준인 데 반해 독서 인구나 평균 독서량은 현저히 적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문해력이 곧 독서력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이야기한 것처럼 독서력은 문해력만 있다고 해서 저절로 얻게 되는 능력이 아니다. 문해력만으로는 책을 수월하게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문해력에서 독서력만으로는 책을 수월하게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문해력에서 독서력으로 건너뛰기 위해서는 그 보폭을 가능하게 할 만한 독서량이 요구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책을 '안' 읽는 것이 아니라 '못' 읽는 것이다. 실제로는 독서력이 부족해서 책을 읽지 못하는 것인데도 충분히 읽을 수 있지만 단지 안 읽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아닌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단지 시간이 없어서 책을 읽지 않을 뿐이라고 자위하는 사람에게는 당혹감을 주고, 책을 읽기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동기 부여를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내 경우를 봐도 이현우의 생각이 일리가 있다. 야구광인 내가 일본의 야구 명작 만화 '터치'나 'H2'를 전집으로 사서 읽으려고 '노력'을 해도 도무지 읽히지 않았던 경험이 생생하다. 수십 년 동안 만화를 읽지 않은 나는 만화를 읽을 능력이 상실된 것이 아니냐는 고민을 했다. 

내가 다시 만화를 읽으려면 일정 수준의 워밍업과 훈련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이현우가 독서력을 갖추려면 150권의 독서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독서교육이나 정책은 우리 국민은 시간과 의욕이 없어서 책을 읽지 않을 뿐이라는 가정을 전제로 진행된다.

이현우의 통찰이 일부라도 사실이라면 독서교육의 방향에 '책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를 더해야 한다. 즉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좀 더 많은 책을 읽게 할 것인지 보다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이 책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줄까를 고민해야 한다. 

이현우가 말했듯이 서평집은 드라마만큼 극적이지도, 연애소설처럼 달콤하지도 않다. '서평계의 계관시인'의 최신 저작쯤은 읽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었다. 마치 문화유산답사를 좋아하는 독자가 유홍준의 신간을 일상처럼 주문하고 읽는 것처럼 말이다. <책에 빠져 죽지 않기>에는 생각지 않았던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가 많았다.

아프리카에 대한 원조가 오히려 아프리카 사람들을 더 피폐하게 만들었다거나 구석기 시대와 비교해서 오히려 신석기 시대가 되면서 인류의 평균 수명이 줄어들었다거나. 어떤 책을 읽고 쓴 서평인지는 앞으로 <책에 빠져 죽지 않기>를 읽을 독자의 권리로 남겨준다. 로쟈 이현우가 많은 독자에게 책을 읽을 자유를 선물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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