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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살 치매 엄마와의 동거, 나는 어른이 되기로 했다

어린아이가 되어가는 치매 노모, 그녀의 반려견 '두부'

등록|2018.09.09 19:48 수정|2018.09.09 19:48
재작년, 엄마가 치매판정을 받았다고 남동생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 전에 엄마와 얘기를 나누다 보면 했던 얘기를 간간이 반복했던 낌새가 있긴 했다. 90 가까운 나이의 노인이니 그럴 수 있지, 라며 나는 가볍게 넘겼다.

일주일에 한 번이나 보름에 한 번씩 안부전화를 할 때마다 다들 별일 없냐고, 여기도 괜찮다고 나를 안심시키던 엄마. 한 달에 한번은 꼭 엄마를 찾아봬야지 했다가 바쁘다는 핑계로 건너뛰기 일쑤였다.
 
지난해 3월, 엄마가 우리 집에 오셨다. 당신이 키우는 '두부'(반려견, 말티즈 수컷)도 같이 왔다. 두부는 8년 전, 생후 한 달이 갓 넘은 상태로 엄마네 집에 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얼마 안 된 그 허전함을 엄마는 두부를 돌보는 것으로 위로받았다.

애견샵에서 온 두부는 하얀 인형 같았다. 어미로부터 사회화 학습이 없었던 두부는 아무 때나 짖어대고 식탐이 많았다. 엄마는 애처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두부에게 식구들 몰래 넌지시 음식을 떨구었다.
 
엄마가 자꾸 반복해서 하는 말 중에는 당신한테 서운하게 한 사람의 말이나 행동을 탓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 말을 들어주며 고개를 끄덕이고 맞장구 쳐주는 사람에겐 더 많이 표현한다.

엄마와 두부
 

▲ 치매 걸린 시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드라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 tvN 화면캡처


그 말이 10분 간격에서 7분, 5분, 3분으로 점점 좁혀졌다. 한 달에 한 번, 남동생은 병원에서 엄마 약을 처방해 온다. 하루에 한 번, 잠들기 전에 한 개씩 먹는 약이다. 새끼손톱의 반 정도 되는 동그랗고 하얀 알약이다.
 
당시 나는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 직장 특성상 이틀 당직에 이틀을 쉬는 형태였지만, 쉬는 이틀은 휴식이 아니었다. 아들은 학교 때문에 집을 떠나 있었고, 딸도 남편도 출퇴근을 하면서 집안일은 많지 않아도 엄마의 식사에 신경을 써야 했다.

거기에 두부는 주변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시도 때도 없이 짖어댔다. 내가 두부에게 열 마디 하는 것보다 엄마의 한 마디를 알아들으며 소리가 잦아지긴 하는데, 문제는 두부가 엄마 말고는 다른 식구들을 무는 거였다.
 
언제 위협적인 반응을 보일지 몰라 식구들이 조심하며 긴장했다. 주객이 전도되어 개 눈치를 보는 모양새가 되었다. 엄마가 아무리 두부 뒤를 쫒아 다니며 볼일 처리를 해도 현관문에서부터는 냄새가 느껴졌다.

생선이나 고기라도 구우면 두부가 먼저 왕왕 짖으며 먹을 걸 줄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그런 두부를 야단이라도 치면 엄마는 서운해 했다. 마치 당신 자신이 야단을 맞는 것처럼.
 
건강보험공단에 엄마의 사정을 얘기했다. 치매등급을 받게 되면 '어르신놀이터(주간보호센터)'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어린아이들이 놀이방이나 어린이집에 가듯, 어르신들이 센터에 가면 또래 분들과 어울리며 적절한 놀이나 활동을 할 수 있다. 공단의 직원과 시간과 방문날짜를 맞추기 전에 엄마한테 얘기를 했다.
 
"엄마, 예전에 아파트 옆에 경로당 생각나요? 엄마 거기 다니면서 친구들도 사귀었잖아요. 여기서도 그런데 한번 가보실래요?
"싫어! 늙은이들끼리 우두커니 앉아서 남 흉만 보고, 난 그런 데 싫어."
 

엄마는 내 예상과 달리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거기는 그런 데가 아니라고 말하고 받아들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공단에 연락해서 날짜는 좀 지난 다음에 잡기로 했다.

엄마는 집에서 두부를 '관리'하며 당신의 거처를 내준 작은딸네에게 고마워했다. 살림이라도 거들어주고 싶어 끊임없이 넓지도 않은 집을 쓸고 닦았다. 한번은 시커멓게 그을려 잘 닦여지지 않아 그냥 방치하고 사용하는 '스뎅' 커피포트를 원래 은색으로 되돌려놓았다. 얼마나 문질러 닦았는지 소복하게 잡힌 철수세미가 납작해졌다.
 
집에 혼자 있는 엄마와 두부를 생각하면 직장에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당직일 땐, 저녁 시간에 남편이 있어 그나마 마음이 놓였다. 같은 말을 반복하고 후회스런 과거 얘기를 자꾸 하는 것 말고는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3층 빌라의 3층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도 누군가의 도움이 있어야 했다. 게다가 출입문과 현관의 비번을 누르는 일도 엄마에게는 버거웠다.
 
이름을 잊어버린 엄마

두 달여의 기간을 두고 엄마를 겨우 설득해서 공단에서 사람이 방문한다는 걸 알렸다. 엄마가 혹시라도 '어르신놀이방'에 가게 되면 등급이 필요하고,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도 말했다.
 
"알겠어. 니가 무슨 말 하는 줄 내가 안다고. 내가 그렇게 정신없는 늙은인 줄 아니? 나 아직 정신 멀쩡해!"
 

엄마는 공단 얘기만 나오면 뭔가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내가 그렇게 바보는 아니다'라든지, '아직은 멀쩡하다'라는 말을 자주했다. 엄마가 걱정스러워서 주변에서 하는 말을 고깝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이를 닦아보라구요? 어머, 이런 걸 못하겠어요? 자 이렇게 하면 되죠?"
 

공단에서 나온 사람이 '어르신~. 침대에서 일어나보실래요? 이번엔 세수 한번 해보세요'라고 요구했다. 엄마는 날마다 하는 너무나 일상적인 걸 해보라는 공단직원이 하는 말을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런 움직임은 어쩜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는 일이기에 엄마의 몸이 먼저 인지하고 있었던 걸까. 그러나 다음 질문에서는 달랐다.
 
"어르신,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글쎄요. 나 팔십 넘었나?"
"어르신, 어르신 이름이 뭐에요?"
"이름요? 음... 이름이 지금 왜 필요해요?"

 
엄마는 당신의 나이를 우물대며 애매하게 웃었다. 이름을 말해보라고 할 때는 짜증 섞인 말투로 따지듯 말했다. 이름도 모른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아 버럭 화를 낸 건 아닐지.
 
치매 약을 먹고 있고, 병원에서 의사의 소견을 제출했지만 엄마는 결국 등급을 받지 못했다. 인지가 조금 떨어져도 신체적 활동에 문제가 없다는 이유였다. 지난해 6월, 엄마는 두부를 데리고 언니네로 가셨다. 당신 혼자 출입이 가능하고, 봄이면 쑥도 캘 수 있다고.

이후에 엄마를 만나러 언니네로 가곤했다. 거기는 언니의 사업체이자 집이기도 했다. 엄마가 생활하기에 썩 편치만은 않다. 그동안 언니가 살고 있는 동네 공단에서 다시 치매등급 받기를 시도해서 5등급을 받았다.
 
폭염이 사라지고 날씨가 선선하다. 돌아오는 토요일, 엄마가 오시기로 했다. 다행인 건 두부를 두고 오기로 한 것이다. 엄마는 그게 못내 서운하다. 다시 시작하는 아흔 살 엄마와의 동거. 어린아이 같은 엄마에게 나는 '너그러운' 어른이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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