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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선 도로에 비상등 켠 승용차, 지켜본 시인

이시백, 머무는 순간 노래한 시집 '아름다운 순간'

등록|2018.09.09 11:07 수정|2018.09.09 11:35
이시백 시인이 두 번째 시집<아름다운 순간>(북인)을 출간했다. 2003년 문예진흥기금을 받아 시집 <숲해설가의 아침>(문학아카데미)을 상재한 지 15년 만이다. 시인 스스로 밝힌 '자서'의 표현처럼 '첫 시집을 낸 이후 너무 돌아왔다'라고 할 만하다.
 

▲ 이시백 시집 <아름다운 순간>의 표지 ⓒ 북인


시인은 어디를 그렇게 멀리 돌아왔을까? 시집의 '해설'을 쓴 백인덕에 따르면 그는 '거의 선구적인 숲해설가'로서 1998년 이래 어언 20년에 걸쳐 숲해설가로 활동해 왔다.

광릉 국립 수목원, 홍릉 산림과학원, 아차산 생태공원, 산음 휴양림, 중미산 휴양림, 유명산 휴양림, 말태재 휴양림, 속리산 둘레길, 서울 남산, 안산, 수락산, 청계산 등 전국의 다양한 숲에서 살았고, 지금은 보령 무궁화 수목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시집의 '해설'을 쓴 백인덕은 이시백 시인을 두고 '거의 선구적인 숲해설가'라고 말한다. 1998년 이래 어언 20년에 이르도록 숲속에서 나무들과 더불어 생활했으니 그렇게 소개를 해도 전혀 과장이 아니다. 그래서일까, 시인은 '자서'에서 '들락날락 대중없는 숲지기였으나 그 와중에 숲에 있을 때는 마음이 편했다'면서 '앞으로도 한 10년 마음이 편하기를 바라본다'고 고백한다.  

"숲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다"는 시인

하지만 숲해설가로 약 20년을 살았다고 해서 시인을 가리켜 '너무 돌아서' 문학의 세계로 복귀했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시인의 자평은 그저 시집을 낸 지 너무 오래되었다는 정도의 겸손을 담은 문학적 수사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초등학교 졸업 이후 '장돌뱅이, 공돌이, 종업원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시인 소개의 표현)' 늦게 검정고시를 거쳐 서울시립대와 한국문학예술대학을 졸업한 그는 현재 '나무가 숨을 쉴 때마다/난 향기에 젖는다'고 노래하는 시인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뜻이다. 

살다 보면
순간의 기다림이 아름답다

2차선 도로에 비상등 껌벅껌벅
기다리는 검은 승용차 아름답다

종이 박스를 한가득 실은
짐수레 할매
샛길로 벗어날 때까지


시집 제목으로 활용된 작품 '아름다운 순간'의 앞 부분이다. 시인은 이 광경을 '집으로 돌아가는 늦은 밤길'에 보았다. 아름다운 느낌과는 거리가 먼 '검은' 승용차가 2차선 도로에서 껌벅껌벅 비상등을 켠 채 기다리는 광경이다. 종이 박스를 한가득 실은 짐수레 할매가 샛길로 벗어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순간'이다. 그 '순간'의 시간을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은 아름답다.

하지만 사람들은 흔히 그 '순간'의 시간을 기다릴 줄 모른다. 뜻밖에도 '검은' 승용차가 그 '순간'을 기다린다. 그 결과 승용차의 운전자도 짐수레 할매도 인생의 한 '순간'을 아름다운 마음으로 영위하게 된다.

그뿐인가? 집으로 돌아가는 늦은 밤길의 시인이 그 광경을 지켜보는 시간도 '순간'에 지나지 않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시인의 마음도 아름다움으로 채워진다. 그래서 이런 시를 쓴다.

마주 앉은 아버지와 딸 사이의 아름다운 '순간'

시인의 딸도 그런 '순간'을 독자에게 보여준다. '친구랑 가본 적이 있다'면서 딸이 안내한 '불타는 고깃집'이라는 식당에서 시인이 경험한 아름다운 '순간'이다.

돼지목살과 국수를 주문하고
연탄불을 가까이 두고 앉아
짧은 침묵이 흐른다

긴 연통을 비켜 앉는 딸

'왜 의자가 불편하냐?'
'아니, 아빠 얼굴이 안 보여서'


'침묵도 짧지만 딸이 긴 연통을 비켜서 앉는 시간도 짧다. 의자를 움직여 딸이 자리를 옮기는 동작과 아버지인 시인이 '의자가 불편하냐?'고 묻는 사이의 시간도 짧을 것이다.

그 뒤를 이어 독자의 마음을 울리는 짧은 순간이 식당 안을 흔든다. '아니, 아빠 얼굴이 안 보여서'라고 딸이 대답하는 너무나 아름다운 이 '순간'...! 시인이 왜 이 작품에 '봄 소식'이라는 제목을 부여했는지 저절로 짐작이 된다.

서울역 옆 서소문공원 감나무
새벽에 떨어진
풋감을 한 움큼 쥐고
우적우적 씹고 있는 빈자에게
옆에 앉은 빈자가 묻는다 

'야, 다냐?'
말없이 씹고 있는 배고픈 자
밤톨만한 초록 과일을 건넨다


'묻지마 청춘'의 앞 부분이다. 가난한 사람들끼리 풋감을 나누고 있는 현실을 두고 막연히 아름답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저 음식 언제 익으려나/풋감도 섧고, 먹는 자도 섧다/묻는 자도 섧고/우연히 듣는 자도 섧다'면서 '떫다는 것은 섧다는 것에/우선하지 못한다'라고 말한다.

떫은 것은 섧은 것에 우선하지 못한다

그래도 독자인 나는 '우연히 듣는 자'인 시인이 현장에서 스스로 서러워하고, '떫다는 것은 섧다는 것에/우선하지 못한다'고 시를 쓰는 그 '순간'은 아름다운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끼리 '음식'이랄 수도 없는 떫은 풋감을 나눠먹는 그 '순간'도 아름다운 시간이라고 본다. 작품 '나른하게'를 읽어보자.

그대 지금 손에 든 게 뭐죠?
잠시 놓고
우리 들섶으로 가요
밖에 나설 때
바구니, 주머니칼 챙기고
살랑살랑 강아지 따라
언덕을 오르면 갯버들 핀
아롱다롱 보이는 물빛 언덕
햇빛 한 줌 섞어
냉이는 냉큼
쑥은 쑥쑥
곰보배추 곰곰
땅이 주는 대로 봄을 담아요
옆사람 맘도 살짝 담아요


시인은 손에 든 것을 '잠시' 내려놓으면 나른해진다고 말한다. 아주 내려놓으라는 것도 아니다. 이 역시 아름다운 '순간'에 대한 예찬이다. 숲에서 20년을 살아온 시인답게 '땅이 주는 대로' 봄을 마음에 담으라고 한다. 그러면서 옆사람 마음도 '살짝' 담으라고 권유한다.

'살짝'이다. 왕창 욕심을 내면 오랜 시간, 즉 삶의 시간을 모두 바쳐야 하고 그렇게 되면 '현실의 눈이 메마른다('시간의 정의'의 표현). 그에 비해 '살짝' 담는 데 걸리는 시간은 '순간'이다. 그 순간이 아름답다. 시인의 노래는 '시간은 사랑이 머물러야 시간이다('시간의 정의')'라는 잠언이다.
덧붙이는 글 이시백 시집 <아름다운 순간>(북인, 2018년 8월), 125쪽, 8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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