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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년의 덕질은 어디로... 나도 '구세대' 엄마 됐네

[아이돌이 뭐길래] '오빠들'이 소환한 내 청춘, 다시 젊어지기로 했다

등록|2018.09.11 10:05 수정|2018.09.11 11:09
10대만의 전유물 같은 아이돌. 새로 나온 아이돌 이름이 낯설기만 한 어른들에게도 아이돌에 대한 추억 하나쯤은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전합니다.[편집자말]

▲ 그룹 아이콘 ⓒ YG 엔터테인먼트


올해 다섯 살인 둘째 아들 민이가 흥겹게 노래를 부른다. 그런데 노래가 범상치 않다.
 
"사랑을 했다~ 우리가 만나 지우지 못할 추억이 됐다~"
 
인생 경력이라고는 고작 5년인 녀석이 벌써 사랑 노래를 운운하고 있으니 피식 웃음이 났다. 도대체 그 노래는 어디서 배웠냐고 물었더니 옆에서 큰아들이 한 수 거든다.
 
"엄마! 이 노래 유명한 거예요. 우리 친구들도 다 알고 있어요."
 
인기 그룹 아이콘의 <사랑을 했다>라는 노래였다. 다섯 살짜리 아들이 엄마도 모르는 인기 가요를 흥얼거리며 부르는 모습에 문득 이제 나도 나이 든 아줌마가 되었음을 실감했다.
 
며칠 전 종영한 MBC <무한도전> 토토가(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1편을 재방송으로 시청하게 되었다. 4년 전에 방송된 1편은 당시 시청률 20%에 육박했고, 그 이후 2편(젝스키스), 3편(HOT)까지 이어졌다. 이러한 인기와 열광에도 불구하고 <무한도전>을 즐겨보지 않아 당시에는 인기를 실감하지 못했다.
 
그러다 뒤늦게 최근에서야 토토가를 접했고, 바싹 마른 내 마음에 촉촉한 단비가 내렸다. 내가 '오빠'라고 불렀던 그들과 브라운관에서 재회했다. 삼십대 중반 아줌마가 된 나만큼 그들의 얼굴에도 고스란히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 가슴이 뭉클했다. 이제는 추억이 된 음악을 다시 듣자 찬란했던 지난 추억이 소환됐다.
 
다시 소환된 '오빠들'... 이게 노래의 힘이구나
 

▲ 각각 16일과 23일 방영한 MBC <무한도전-토토가2 젝스키스편>은 내 마음에 불을 질렀다. ⓒ MBC


사춘기 시절 나의 '오빠들'은 젝스키스(아래 젝키)였다. 오빠들이 나오는 모든 잡지를 섭렵하는 것은 기본이요, A4 클리어 파일 속을 온통 오빠들 사진으로 도배했다. 다이어리에는 알록달록 색깔 펜으로 오빠들에 대한 애정을 고백 삼아 구구절절 옮겨적었다.

두꺼운 하드 보드지를 잘라 만든 필통에는 멋진 젝키 오빠들 잡지 사진을 넣었다. 그걸 수업 시간에도 종종 들여다보며 흐뭇해했다. 콘서트 다니며 '덕질'만 해도 수명이 9년이나 연장된다던 기사가 절로 이해되는 시절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젝키 오빠들 노래뿐만 아니라 인기 대중가요 가사가 마치 내 마음 같다며 감동의 도가니에 빠지는 것도 다반사였다. 남자친구와의 풋풋한 연애 시절, 내 마음을 대변해주는 그들의 노래로 사랑의 행복과 이별의 아픔을 함께했고, 뜨거운 청춘은 그들의 음악으로 열기를 더했다.
 
소녀 시절에는 대중가요를 모르는 게 없을 정도로 꿰차고 있었다. 오후 10시 <별이 빛나는 밤>으로 시작해 자정에는 정지영의 <스위트 뮤직박스>를 자장가 삼아 청취했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인기곡을 전주부터 맞춰 녹음하느라 진땀을 뺐다. 그러다 노래 중간에 갑자기 광고가 튀어나오면 세상 가장 안타까운 탄식을 내뱉기도 했다. 이런 딸의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던 아버지는 이해하지 못하셨다.
 
"요즘 노래는 무슨 말 하는지 하나도 안 들리는데 그렇게 좋으냐?"

 
아버지 귀에는 대중가요 템포가 워낙 빨라 가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나 보다. 철없던 십 대 소녀는 그때의 아버지를 보면서 '나는 아줌마가 되어도 최신 인기가요를 꿰차고 있으리라' 다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나도 그 시절 아버지의 답답함을 이해하는 아줌마가 되었다. 인기 아이돌 그룹은커녕 얼굴을 봐도 다 비슷하게 보여서 누가 누구인지 구별조차 못한다.
 
음악은 추억을 담는다. 그때 그 시절의 향수를 생생하게 재생시키는 추억의 화수분이다. 나중에 민이가 크면 '너 다섯 살 꼬마일 때 이 노래를 불렀다'며 지금 이 순간을 재생시켜줄지도 모른다. 음악은 평범하게 흘러가는 소소한 일상을 예쁜 종이로 포장한 선물 같은 존재다. 젝키 오빠들이 내게 그랬던 것처럼.
 
다시 대중가요를 가까이하고 싶다는 욕심이 든다. 음악과 함께 하면서 청춘을 되찾아보고 싶어졌다. 서랍 속 뽀얗게 쌓인 어린 시절에 쓴 일기장을 꺼내본 것처럼 잊고 살았던 내 젊은 날을 다시 한번 기억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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