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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향교, 선산향교가 있는 경상북도 구미시

등록|2018.09.10 10:44 수정|2018.09.10 10:44
지난 주말 경상북도교육청 구미도립서관에서 진행한 <길 위의 인문학> 탐방을 다녀왔다. 이번 주제는 <조선시대 교육기관인 향교와 서원 탐방>이다. 인솔자는 금오공과대학교 박인호 교수였다.

구미에는 선산향교와 인동향교가 있다. 향교는 고려와 조선시대에 관에서 운영하던 교육기관이다. 조선시대에 큰 고을이었던, 선산과 인동을 합쳐서 현대 시기에 구미라는 도시가 만들어졌다.

그런 이유로, 구미에는 향교가 2개씩이나 보존되어 있다. 고려시대에는 구미 선기동에 옛 선주의 관아가 있어서 선기동에 향교도 있었으며, 비산동에도 향교가 있었던 것으로도 전해지고 있다.
 

▲ 인동향교 ⓒ 여경수


오전에는 인동향교를 방문했다. 인동향교는 도심지 개발로 인해서, 1987년 현재의 위치인 낙동강 옆으로 이전했다. 인동향교는 향교의 전향적인 배치로 명륜당과 대성전이 자리 잡고 있다.

명륜당은 향교에서 공부하는 공간으로 활용된다. 대성전은 공자와 유학자들의 위패가 있다. 우리나라의 향교에서는 동방 18현을 선정해서,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학문적으로 뛰어난 학자들을 배향하고 있다.
 

▲ 선산향교 명륜당 ⓒ 여경수


오후에는 선산향교를 방문했다. 선산향교는 조선 태종시대에 선산도호부로 승격이 되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긴 것으로 추정된다. 선산향교 통로에는 누각건물인 청아루(菁莪樓)가 있다. 청아루 아래로 올라가면, 동쪽에는 보인재(輔仁齋), 서쪽에는 보인재(文會齋)란 편액이 걸린 건물이 있다.

이 건물들은 당시 기숙사로 쓰인 건물이다. 강당인 명륜당과 그 뒤편에는 대성전이 있다. 선산향교 대성전 안쪽의 구조는 인동향교의 대성전과 비슷했으나, 공자의 상이 사진이 아닌 나무 조각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 추모비 ⓒ 여경수


선상향교 뜰 안에는 추모비가 있다. 이 추모비는 구미에 있는 동네인 도량동에 사는 한 할머니가 자기의 전 재산을 향교에 기부한 것을 기린 비이다. 예나 지금이나 자신의 재산을 헌사해서, 인재를 기르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모양이다.
 
조선시대 말기에는 조선의 재정이 열악해져서 향교에 대한 재정적 지원이 미약했다. 지방에서는 문중이나 학맥을 중심으로 서원이 번성한다. 하지만 서원 역시 부패하고 만다. 

독립운동가 조소앙은 새로운 독립국가는 무상교육이 실시되는 국가임을 여러 차례 강조하였다. 향교와 서원이 제 역할을 했더라면, 그리 허무하게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지는 않았으리라 여겨진다. 지금의 국립대학교나 사립대학교들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되돌아보는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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