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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연곡사에서 되새기는 소요대사의 선시와 승탑

등록|2018.09.10 15:16 수정|2018.09.10 15:16
저잣거리 붉은 먼지 한 자나 깊어
하고 많은 벼슬아치 뜨락에 넘실대
누가알랴 한 조각 구름 덮힌 이 골짜기
가난한 중에게 하늘이 준 만금의 가치를!
- 소요대사 산중회(山中懷)

 
 
소요대사(1562~1649)가 거닐던 이곳 구례 연곡사에도 가을이 찾아왔다. 어제 찾은 연곡사의 가을 하늘은 티끌하나 없이 맑고 푸르렀다. 절 경내는 스님의 독경소리만 그득할 뿐 고즈넉했다.

소요대사가 입적한 연곡사는 변함없이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 바람소리만이 가득했다. 연곡사는 백제 성왕 22년(544)에 인도의 연기조사가 창건한 절로 이 자리에 큰 연못이 있어 제비들이 와서 노는 모습을 보고 연곡사(鷰谷寺)라 지었다고 한다.
 
벌여놓은 모든 물상 다 허깨비
긴 허공 지나는 사이 자취 안남겨
허공이 몸 갈무리할 자리 못되니
바람결에 비 젖은 소나무 보게
 
백 천의 경전 손가락 같아서
손가락 따라 하늘의 달을 보네
달 지고 손가락 있어 한일도 없으니
배고프면 밥 먹고 피곤하면 잔다

 
 

대적광전연곡사 대적광전, 푸르고 높은 가을하늘이 아름답다 ⓒ 이윤옥

 
서산대사의 제자 소요대사의 시를 읽다보면 청렴결백한 선비를 연상케한다. 소요대사의 세속 성씨는 오씨이고 담양사람이다. 열세 살에 백양산에서 출가하였으며 스무 살에 서산대사를 찾아 묘향산에 갔다가 서산대사로부터 게송 하나를 받는다.
 
그림자 없는 나무 베어다
물 속 거품 다 태워버린다
우습구나 소를 타고 있는 이가
소 등에서 다시 소를 찾네

 
 
이 게송의 뜻을 수많은 제자들이 이해 못하고 있을 때 소요대사는 '삶이 없음(無生)' 으로 깨달았다. 소요대사는 서산대사의 가르침을 '마음'으로 읽었고 이를 본성에 내 맡겨 툭 트인 마음으로 이리저리 노닐며 구름처럼 모여드는 대중을 교화했다고 한다.
 

소요대사탑소요대사탑(보물 제 154호)은 조선시대 세운 것으로 탑몸체에, 탑의 주인과 연대가 또렷이 새겨져 있다 ⓒ 이윤옥

 

소요대사지탑 글씨'소요대사지탑 순치6년 경인'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어 탑의 주인과 만든 연대를 알 수 있다. ⓒ 이윤옥

 
소요대사는 경전에 얽매여 있는 것을 경계하였는데 온갖 경전은 길잡이일 뿐 그 자체가 길이 아니라고 했다. 그것은 마치 손가락의 방향에 따라 달을 찾는 것과 같아서 손가락에 매달려 있으면 달을 못 보듯이 경전에 매달려 있으면 법체의 원형은 끝내 찾기 어렵다고 했다. 사람이 배고프면 밥을 생각하듯이 일상적인 일이 법의 근원이련만 사람들이 잘 모르고 엉뚱한 곳에서 법(法)을 찾으려하는 것에 대해 소요대사는 경종을 울리고 있다.
 
근본을 놓치고 소리만 따라 몇 겁을 지냈다
온갖 법은 원래가 원융 회통한 것을
멀리 생각난다 옛날 관음보살께서
듣고 또 들어 오묘히 공한 이치 듣게 한 것을.

 
 

현각선사탑비연곡사에는 소요대사탑 말고도 고승들의 탑비가 여럿 있다. 사진은 현각선사탑비인데 애석하게도 탑의 몸체가 사라지고 머리부분만 바닥에 주저 앉아 있다. 탑 몸체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 이윤옥

 
소요대사의 시는 200여 편이 전하는데 "맑고 훤하고 담박한 것이 마치 허공을 지나는 구름 같으며 달이 냇물에 비친것 같다"는 평을 받는다. 연곡사는 1598년 4월 10일, 왜적이 사찰에 들어와 살육을 자행하고 불을 질러 소실된 것을 소요대사가 중건한 것으로 전한다. 소요대사는 1649년 11월 21일 법문과 임종게를 설하고 나이 87살, 법랍 75살로 입적하였다.
 
남북국시대(통일신라) 탑을 대표하는 승탑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진 동승탑(국보제 53호)이다. 탑비가 사라져서 탑의 주인공을 확실히 알 수 없으나 도선국사 승탑으로 추정하고 있다.이 탑은 일제강점기 동경대학으로 반출될 위기가 있었으나 다행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탑은 팔각으로 구름속의 용과 사자상 등이 새겨져 있다.
 

동승탑비연곡사 동승탑비(보물 제 153호), 탑의 몸체가 사라지고 머리부분만 남아 탑의 주인공과 만든 연대를 알 수 없어 그냥 동쪽의 승탑이라는 뜻인 연곡사 '동승탑'으로 부른다. ⓒ 이윤옥

 

동승탑남북국시대(통일신라) 탑을 대표하는 승탑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진 동승탑(국보제 53호)이다. 탑비가 사라져서 탑의 주인공을 확실히 알 수 없으나 도선국사 승탑으로 추정하고 있다.이 탑은 일제강점기 동경대학으로 반출될 위기가 있었으나 다행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탑은 팔각으로 구름속의 용과 사자상 등이 새겨져 있다. ⓒ 이윤옥

 

북승탑 연곡사 북승탑(국보제 54호), 이 탑 역시 누구의 승탑인지 모른다. 옆에 있어야할 탑 주인공의 비석인 탑비가 사라져버려 안타깝게도 탑의 주인공과 만든 연대를 모른다. 다만 동쪽에 있는 동승탑과 만든 연대(남북국지대)가 비슷한 것으로 추정될 뿐이며 이름 또한 북쪽에 있다고 해서 '북승탑'으로 부른다. ⓒ 이윤옥


연곡사 북승탑(국보제 54호), 이 탑 역시 누구의 승탑인지 모른다. 옆에 있어야할 탑 주인공의 비석인 탑비가 사라져버려 안타깝게도 탑의 주인공과 만든 연대를 모른다. 다만 동쪽에 있는 동승탑과 만든 연대(남북국지대)가 비슷한 것으로 추정될 뿐이며 이름 또한 북쪽에 있다고 해서 '북승탑'으로 부른다.
 
연곡사의 소요대사 승탑(보물 제54호)은 탑 몸체에 "소요대사지탑 순치6년 경인"이란 글귀가 있어 탑의 주인과 건립연도(1650년)를 알 수 있다. 소요대사 탑을 물끄러미 바라다보는데 숲속에서 기운 잃은 늦매미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이제 계절은 완연한 가을이다. 대사께서도 연곡사의 늦여름 매미소리를 나처럼 이 숲속에서 들었을 성싶다.
 

연곡사 담장높고푸른 가을 하늘과 따뜻한 햇살이 아까운 듯 연곡사 담장에 법당 방석 등을 말리는 모습이 정겹다. ⓒ 이윤옥

덧붙이는 글 신한국문화신문에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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