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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준 '증거인멸' 기회? "자료 다 파기했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증거 인멸 행위... 엄정한 책임 묻겠다"

등록|2018.09.11 11:21 수정|2018.09.11 11:22

▲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이 조사를 받기 위해 9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며 취재진 질문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법원이 대법원 재판기록 수만 건을 빼돌렸다는 의혹을 받는 유해용 변호사(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의 압수수색 영장을 잇달아 기각하는 동안, 유 변호사는 갖고 나간 자료를 모두 파기했다. 검찰이 범죄 가능성을 포착하고 수사를 벌인다는 것이 공개된 상황에서 대놓고 자료를 파기한 것이다. 법원이 수차례 영장을 기각하면서 결국 '증거인멸'의 기회를 준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이어진다. 

지난 2월 법복을 벗은 유 변호사는 2014년부터 2016년까지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으로 근무했다. 검찰이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의혹 수사에 들어가면서 유 변호사가 대법원 재판기록, 연구관 보고서 등 수만 건의 자료를 빼돌린 정황을 포착했다. 함께 근무했던 연구관들은 검찰에서 "(유 변호사가) 작성한 보고서를 USB에 담아 보고하라고 지시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들고 나간 재판 기록에는 '박근혜 비선진료' 박채윤씨 특허소송 관련 자료,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민사소송, 통합진보당 소송 등 당시 박근혜 정부의 관심 재판으로 꼽히던 재판거래 대상들이 포함됐다. 유 변호사는 박채윤 특허 소송자료를 '키맨'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건넨 혐의를 받고 있었다. 이외에도 검찰은 유 변호사가 빼돌린 자료에 판결문 초고 등 민감한 개인정보가 다수 포함돼있다고 봤다.

납득하기 힘든 세 차례 영장 기각

검찰은 지난 5일 특허소송 관련 부분만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서 갔고 사무실에서 기밀자료 다수를 발견했다. 수사팀은 사태가 심각하다고 판단해 유 변호사에게 임의제출을 권유했으나 그는 "영장을 갖고 오라"며 거부했다.

검찰은 즉각 법원에 압수수색 영장을 다시 청구했다. 그런데 법원은 외부에서 기밀 서류가 발견됐음에도 반나절을 끌다가 "공공기록물관리법 위반죄 및 형사법절차전자화촉진법 위반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된다"라며 기각했다. 자세한 사유는 밝히지 않았다.

검찰은 납득하기 힘들다는 반응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수사 당시 이 전 대통령의 삼성 소송비 대납 혐의와 관련해 인정 여부가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법원은 당일 신속하게 영포빌딩 압수수색 영장을 내준 바 있다. 검찰은 6일 우선 대법원에 기밀자료 불법반출 건 고발을 요청했다. 다음날 법원행정처는 "적절하지 않다"며 고발을 거부했다.

법원은 시간을 끌었다. 검찰이 7일 다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하자, 법원은 주말(8~9일)이 지난 10일 이후 결정하겠다고 통보했다. 8일에는 영장전담 판사가 두 명이나 근무하고 있었다. 압수수색은 신속성이 담보돼야 의미가 있는 수사방식이지만 법원은 사흘이나 지나 영장발부 여부를 결정한 것이다. 

사흘이나 시간을 끈 결과는 '또 기각'이었다. 박범석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10일 오후 "대법원의 입장에서 볼 때 매우 부적절한 행위이나 죄가 되지 않는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통합진보당 소송에 개입한 의혹이 있는 문건에만 한정해 일부 영장을 발부했지만 '기밀문서 유출' 수사 전반에는 제동이 걸렸다. 

박 부장판사가 유 변호사 관련 압수수색 영장을 심사한 것도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 변호사가 대법원 선임재판연구관으로 근무할 당시 박 부장판사는 재판연구관으로 개인적 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또 유 변호사가 들고 나간 자료에 박 부장판사가 작성한 자료도 포함됐을 수 있다. 박 부장판사는 유 변호사 영장의 이해관계자인 셈이다. 

서약서까지 제출하고도 '파기'

이렇게 영장이 기각되는 사이 유 변호사는 수사 대상인 문서들을 모두 파기했다. 법원행정처는 세 번째 영장이 기각된 뒤 10일 저녁 8시 30분께 "유 전 연구관에게 자료 제출을 문의했는데 '영장이 기각된 후 출력물을 파쇄했고 컴퓨터 저장장치는 분해해 버렸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밝혔다.

유 변호사는 지난 5일, 검찰에 "해당 자료를 훼손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제출하면서 뒤로는 현직 판사들에게 "나는 죄가 없다"는 취지의 이메일을 발송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 변호사 측은 "통진당 사건과 관련해 해당 문건을 대법관이나 담당 연구관에게 전달한 적이 없다고 진술하였고 이 내용은 대법원도 확인한 것으로 알고 있음"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엄정하게 수사하겠다는 입장이다. 행정처가 파기 사실을 알린 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은 즉각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증거 인멸 행위에 대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정한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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