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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년 만에 위수령 폐지... 문 대통령 "참 감회가 깊다"

국무회의에서 위수령 폐지 의결되자 짧은 소회 피력

등록|2018.09.11 17:26 수정|2018.09.11 17:26

▲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개의를 알리는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 연합뉴스


"위수령이 폐지됐습니다. 참 감회가 깊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11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위수령이 68년 만에  폐지되자 이렇게 말했다. '68년'이라는 수명에 비하면 아주 짧은 소회였다.

지난 1950년 3월 27일 처음 제정된 위수령은 국회 동의를 받지 않고도 치안 유지에 군 병력을 동원해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할 수 있는 유일한 법령이었다. 그런 점에서 군사독재의 잔재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동안 위수령은 한일협정 체결 반대시위(1965년), 교련반대시위(1971년), 부마항쟁 시위(1979년) 등 세 차례에 걸쳐 발동됐다. 세 차례의 위수령 발동은 모두 박정희 정권에서 이루어졌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그동안 세 차례 위수령이 발동됐는데, 그게 만들어진 지 68년 만에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서 공식 폐지됐다"라며 위수령 폐지가 의결되는 순간 문 대통령이 얘기한 짧은 소회를 전했다.

김 대변인은 "(두번째 위수령이 발동된) 1971년도면 대통령이 서울에서 재수하고 있을 때다"라며 "이때 신문을 열심히 보면서 시국상황을 대단히 예민하게 바라보던 시기였다"라고 전했다.

김 대변인은 "(세번째 위수령이 발동된) 부마항쟁 때에는 (사법고시) 1차 시험에 합격하고, 학교에서는 퇴학을 당해 있는 상태였다"라며 "복학도 하지 않고 본인의 불안한 상황과 시국의 불안한 상황이 겹쳐 있었던 때여서 오늘 대통령의 말씀(소회)이 있었지 않나 싶다"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서울대에 낙방하고 1971년 서울 종로학원에서 재수생활을 했고, 다음해(1972년) 경희대 법학과에 장학생(문과 수석)으로 입학했다. 하지만 지난 1975년 유신독재 반대시위를 이끌다 징역 8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아 학교에서 제적된 뒤 강제징집돼 특수전사령부(특전사)에 입대했다.

1978년 제대한 문 대통령은 아버지의 죽음을 겪으면서 사법시험 공부에 매진했고, 부마항쟁이 일어난 1979년 두번째 만에 사법고시 1차시험에 합격했다. 1980년 복학했지만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또다시 구속됐다. 하지만 풀려난 지 한 달여 만에 사법고시 2차시험에도 합격했다.

이후 사법연수원을 사실상 수석(공식적으로는 차석)으로 졸업했다. 하지만 시위 경력으로 인해 판사 임용에서 탈락했고 이후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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