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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상대로 '뻥 축구 안 하는 한국팀 스타일', 어땠나요?

[남자축구 국가대표 평가전] 한국 0-0 칠레

등록|2018.09.12 09:42 수정|2018.09.12 10:01

종료 직전 아찔한 순간11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 한국과 칠레의 경기. 한국 장현수의 패스 미스로 칠레 디에고 발데스가 골키퍼와 일대일 기회를 맞고 있다. ⓒ 연합뉴스


후반전 추가 시간도 다 끝나는 순간 아찔한 패스 미스가 나왔다. 누가 봐도 칠레의 짜릿한 극장 골 순간이었다. 하지만 한국 골키퍼 김진현까지 따돌린 칠레 공격수 디에고 발데스의 슛은 어이없게도 골문 위로 날아갔다. 그는 잔디를 내려다보며 원망했지만 사토 류지(일본) 주심의 종료 휘슬이 울리고 말았다. 

득점 없이 끝난 평가전이었지만 마치 월드컵 본선으로 가는 마지막 티켓이 걸린 대륙간 플레이오프 2차전 분위기처럼 양팀은 양보 없는 압박 축구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여기서 '어느 팀의 밸런스가 먼저 깨지는가?', '누가 먼저 실수하는가?'를 두고 내기하는 것처럼 보였다. 작은 실수는 나왔지만 상대의 압박을 벗어나겠다고 계획에 없는 뻥 축구를 시도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보기 좋았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끌고 있는 한국 남자축구대표팀이 11일 오후 8시 수원 빅 버드에서 벌어진 칠레 국가대표팀과의 평가전에서 득점 없이 비겼다. 

칠레의 지독한 압박

지난 7일(금)에 열린 벤투 감독의 데뷔전(vs. 코스타리카)과는 긴장감이 남달랐다. 칠레가 FIFA(국제축구연맹) 랭킹 12위에 올라 있는 강팀이라는 사실을 경기 끝날 때까지 끈질긴 압박 축구로 보여준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골 없는 축구 결과만 놓고 혹평을 하곤 한다. 90분 그 이상의 시간을 둥근 공이 언제나 골문을 향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체격 조건 제일 좋은 골키퍼가 그 앞을 버티고 있다고 해도 길이 7.32m, 높이 2.44m의 넓은 골 안에 상대적으로 작은 축구공 하나 못 때려넣을까 하는 단순한 생각이 밀려오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런데 현대 축구는 상대 팀의 공격을 마냥 기다려주지 않는다. 점점 더 높은 위치로 필드 플레이어들을 거칠게 올려 세우면서 빌드 업 출발점부터 압박한다. 웬만해서 상대가 펼치고자 하는 축구의 'ㅊ'자도 못 그리게 할 정도가 됐다는 것을 바로 이 경기에서 칠레 팀이 제대로 가르쳐 준 셈이다. 
 

돌파 시도하는 비달11일 오후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과 칠레의 친선경기. 비달이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 연합뉴스


수탉 벼슬 모양의 헤어 스타일이 인상적인 미드필더 아르투로 비달이 엄청난 활동량으로 칠레의 중원을 이끌었으며 수비형 미드필더로 뛴 게리 메델은 한국의 공격이 절정에 올라가려 하면 언제나 나타나 거칠게 밀어냈다. 한 팀의 필드 플레이어는 10명이지만 이 둘만으로도 칠레의 지독한 압박 축구를 설명하기에 충분했다.

칠레의 압박이 감당하기 힘들다고 해도 한국의 벤투 신임 감독이 추구하는 팀 플레이는 변함이 없었다. 수비 지역부터 차근차근 구성원들의 팀 플레이로 빌드 업을 이루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완성도 높은 탈압박'이 기본이며 이를 바탕에 둔 역습 축구가 바로 그것이다.

탈압박 어렵다고 뻥 축구로 가지 않아

우리 선수들은 칠레의 숨막히는 압박 축구 전술 앞에서 전반전부터 고전했다. 며칠 전 코스타리카와의 평가전 압박 수위보다 훨씬 강해질 것이라 예상했지만 골키퍼 김진현부터 그 압박이 시작될 줄은 몰랐다. 
 

'공중전쟁'11일 오후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과 칠레의 친선경기에서 양팀 선수들이 볼을 다투고 있다. 경기는 0-0 무승부로 종료. ⓒ 연합뉴스


그러다 보니 김진현의 패스 혹은 킥 실수가 전반전에 유독 많아서 아찔한 실점 위기를 가까스로 넘겨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러한 위기 상황에서도 크게 당황하지 않고 빠르게 공 주위로 모여드는 커버 플레이 조직력이 향상됐다는 점이다.

러시아 월드컵을 통해 자신감을 얻은 센터백 김영권이 몸을 아끼지 않고 내던졌으며 홍철과 이용으로 이루어진 풀백들의 빠른 가운데 수비 가담이 돋보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칠레의 거친 압박을 벗겨내기 위한 한국 팀의 대응 전술이었다. 준비한 대로 탈압박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필드 플레이어 중 누구 하나라도 공을 걷어내기에 급급했을텐데, 이른바 '뻥 축구'를 선택한 반쪽짜리 탈압박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김신욱처럼 키다리 골잡이를 원톱 자리에 놓고 높은 공 다툼을 시킨 뒤 거기서 떨어지는 세컨드 볼을 소유하는 방법을 쓰지 않았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슛하는 황의조11일 오후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 칠레 경기. 황의조가 슛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벤투 감독은 황의조를 57분간 먼저 원톱으로 내보냈고 그 뒤를 이어 지동원을 같은 자리에 세웠지만 이들 공격수를 겨냥한 롱 볼 전술을 주문하지 않았다. 패스 미스가 나오더라도 고집스러울 정도로 짧고 빠른 패스로 상대의 압박에서 벗어나라는 지시가 내려진 것이다. 

지난 코스타리카를 상대할 때만큼 탈압박 완성도가 높지는 않았다. 이는 상대 팀이 펼치는 압박의 강도에 직접 영향을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 선수들은 2대1 패스, 3자 패스, 중거리 패스를 섞은 공격 방향 전환 시도 등을 효율적으로 펼치면서 탈압박 완성도를 높이고자 했다. 

후반전 추가 시간 쯤 되면 행운을 바라면서 롱 볼 공격도 종종 강행하고 싶기도 하겠지만 주장 손흥민을 중심에 둔 우리 선수들은 결코 탈압박 빌드 업 완성도 높이기에 매진했다. 
 

칠레의 강한 중원 압박11일 오후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 칠레 경기. 손흥민이 패스 줄 곳을 찾고 있다. ⓒ 연합뉴스


후반전 추가 시간 1분 만에 '기성용-이재성-손흥민-김문환-황인범'으로 이어지는 탈압박 빌드 업 과정이 매끄럽게 돋보였다. 비록 황인범이 드리블하다가 칠레 미드필더 메델의 얼굴을 밀어 넘어뜨린 것 때문에 공격 흐름이 끊겼지만 벤투 감독은 확률 낮은 어정쩡한 뻥 축구를 가볍게 선택하지 않았다.

손흥민의 오른쪽 코너킥을 받은 장현수의 위력적인 헤더 슛(68분)과 황인범의 패스를 받은 기성용이 기습적으로 날린 오른발 중거리슛(83분)이 칠레 골문으로 빨려들어가지 못한 것이 아쉽다. 하지만 어이없이 주저앉아 실망을 주는 일이 많았던 과거 한국 남자축구 대표팀에 비해 웬만한 상대 팀의 위협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 탈압박 조직력을 완성시키고 있는 벤투호는 앞으로 더 흥미로운 경기를 펼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부터 한 달 뒤에 이어지는 두 차례 평가전(10월 12일 vs. 우루과이, 10월 16일 vs. 파나마)에도 칠레 못지않은 우루과이의 끈질긴 축구가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남자축구 국가대표 평가전 결과(11일 오후 8시, 수원 빅 버드)

★ 한국 0-0 칠레
- 경기 주요 기록 비교
점유율 : 한국 42%, 칠레 58%
슛 : 한국 7개, 칠레 11개
유효 슛 : 한국 3개, 칠레 2개
코너킥 : 한국 8개, 칠레 2개
프리킥 : 한국 7개, 칠레 16개
오프사이드 : 한국 2개, 칠레 2개
경고 : 한국 2개, 칠레 1개

◎ 한국 선수들
FW : 황의조(57분↔지동원)
AMF : 손흥민, 남태희(64분↔이재성), 황희찬(86분↔문선민)
DMF : 기성용, 정우영(73분↔황인범)
DF : 홍철(31분↔윤석영), 김영권, 장현수, 이용(88분↔김문환)
GK : 김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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