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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다오의 닭 우는 소리가 들린다는 섬

아름답지만 역사의 아픔이 있는 어청도 등대를 찾아

등록|2018.09.12 17:20 수정|2018.09.12 17:20
어청도 행을 결정한 이유 중 하나가 주강현의 책 <등대>에 나오는 어청도에 대한 인상과 첫 구절 때문이다. 어청도를 얘기하는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어조사 '어'(於) 감탄으로 시작되는 푸른 섬이 어청도(於靑島)다. 직역하면 '아, 청도여!' 쯤 되지 않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청도의 '어'를 고기어(魚)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나도 그랬다. 헌데 책을 읽다 어청도를 '아, 청도여!'로 인식하는 주강현의 한 마디에 어청도를 가고 싶은 마음이 자리 잡게 되었다.

하지만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니기에 어청도는 어둠속에 잠겨 잊힌 듯 숨어 있었다. 그러다가, '우리 어청도 갈까?'라는 친구의 말 한 마디에 덥석 물어버렸다. 약속은 했지만 한편으론 심한 배 멀미와 배를 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 망설여지기도 했다.

허나 이런 갈등도 '아, 청도여!'란 감탄사가 자꾸 떠올라 작은 내적 갈등들을 떠나 보내버렸다. 여기에 친구들과 함께 함도 한몫했다.
 
우리가 가는 날엔 하필 비가 내렸다. 처음엔 몇 방울씩 떨어지더니 출항하고 20여분 후부턴 제법 세차게 내렸다. 다행히 바람이 날카롭지 않아 파고가 높지 않은 관계로 배는 크게 출렁거리지 않았다. 염려했던 멀미도 미리 준비한 관계로 거의 없었다. 선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무인도들이 외로운 새마냥 스쳐 지나갔다. 

중년 사내들의 여행이란 게 몇 마디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든가 아님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지치면 눈을 감고 잠을 청하는 게 대부분이지만 윷판을 준비해 온 친구 덕에 한 바탕 웃고 떠들 수가 있었다.

비에 젖은 어청도는 고즈넉하니 서있고
  

▲ 어청도 등대. 1912년 3월에 점등되었다. 일제가 등대응 건설한 이유는 오직 대륙진출이란 군사적 정략적 목적이었다. 이는 어청도가 군산항과 서해안 남북항로를 오고가는 선박들이 이용하는 중요한 해살길목이기 때문이다 ⓒ 김현

 
배는 빗줄기와 파도를 헤치고 2시간 30분 정도를 달려 어청도항에 도착했다. 어청도항은 연신 내리는 비로 푸르게 젖어 있었다. 개짓는 소리도 없이 젖어 있는 어청도는 고즈넉했다. 여객선에서 내리며 바라본 항구엔 많은 어선들이 엉거주춤 하니 비를 맞고 서있다. 어선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반대 옆쪽엔 해군 군함 두 척이 회색 옷을 입고 정박해 있다.

군인들 두세 명만 서성이고 나머진 보이지 않는다. 모두 선실 안에 있는 듯 했다. 다음 날 아침 어청도를 떠나기 전에 함장의 안내로 배에 대한 설명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많은 장병들이 바쁘게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유사시 적과의 전투준비는 물론 어선 구조 역할까지 하기 때문에 늘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어청도는 군산에서 72킬로미터, 중국 산둥반도에서 300여 킬로미터 정도밖에 안 떨어진 작은 섬이다. 그래서인지 칭다오의 닭 우는 소리가 섬에서 들린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멀지 않다. 어청도는 대부분의 산지가 해발 100미터 이내로 높지 않아 한 눈에 보기에도 손에 잡힐 듯하다. 이 어청도엔 한때 사람들이 1000여 명 정도까지 살았지만 지금은 100여 명 정도 살고 있다 한다. 사람들이 없어서인지 섬은 한가함을 넘어 너무 조용했다.
 
배에서 내려 선착장에서 바라본 섬은 푸른빛이 빗줄기에 더 푸르러 보인다. 항구에서 바라본 섬은 마을을 안고 반달모양의 병풍이 쳐진 듯 해 아늑해 보인다. 선착장에서 가까운 해변에선 한 아낙이 노란 비옷을 입고 무언가 캐고 있었다. 그 아낙은 우리 일행이 어청도 등대를 다녀오고 점심을 먹은 후 산책을 나올 때까지 계속 캐고 있었다. 뭘 캐고 있느냐 물으니 조개를 잡는다며 바구니를 보여준다.
 
 

▲ 어청도 등대로 가는 길 ⓒ 김현

 
서실 어청도는 충남 보령시에 속한 섬 외연 열도와 가깝다 한다. 그래서 본래 충남에 속한 섬이었는데 전북 군산 소속으로 넘어오게 된 데에는 이런 사연이 있다.

당시 실세였던 김종필씨가 전북 지역에 해당하는 금산을 충남으로 편입시키고 외딴 섬 어청도를 전북에 편입시켰다 설도 있고, 1914년에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의해 충남 오천군 하서면에 속했던 어청도리가 군산시에 편입시켰다는 주장이 있다.

이유야 어찌됐든 거리상으로 어청도는 충남 보령과 가깝지만 지금은 군산 소속으로 되어 있어 어청도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군산에서 배를 타고 방문하게 된 것이다.
 
어청도라는 지명을 얻게 된 사연도 이렇다. 한고조 유방과의 전쟁에서 패한 항우의 재상이었던 전횡이 군사를 이끌고 망명길에 오르다 작은 섬 하나를 발견했다. 자욱한 안개 속에 갇혀있다 서서히 드러나는 푸른 섬을 보고 전횡은 배를 멈추게 했다. 전횡의 눈에 보인 섬은 푸른 빛깔이 중국의 청도를 연상할 만큼 인상 깊었던지 전횡은 이곳을 어청도라고 부르고 정착하였다고 한다.

아마 안개가 걷히면서 바라본 섬의 첫 인상에서 중국의 청도의 모습을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민가 뒤쪽에 섬을 발견한 전횡을 모신 사당인 차동묘가 있다 하는데 가보진 못했다.
 
비를 벗 삼아 등대가는 길
 
숙소에 짐을 던져두고 잠시 쉬고 있는데 어청도 교회를 시무하고 있는 박명수 목사에게서 어청도 등대 가자는 전갈이 왔다. 박 목사는 이번 여행에 함께 한 홍 원장의 지인으로 신학대 동기다. 박 목사는 직접 트럭을 운전했다. 우리는 트럭 짐칸에 몸을 실었다.

바람에 우산이 뒤집혀지려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어릴 때 소달구지를 타고 노는 것처럼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왁자지껄 웃고 장난을 치다보니 등선 평평한 곳에 위치한 정자에 이르고 우리 일행은 모두 내렸다. 여기서부턴 걸어가야 한단다.

뱀처럼 휘어진 길을 내려가다 작은 오르막에 다다르니 하얀 건물이 보인다. 등대지기들의 사무소다. 박 목사가 미리 연락을 취해놨는지 항로표지 관리소 소장이 차 한 잔을 주며 등대의 역사에 대해 간단히 얘기를 해준다.
 
"지금 어청도 등대는 우리나라 등대 중에서 열 번째 이내에 드는 아름다운 등대일 겁니다. 일본인들이 우리나라를 강제적으로 병합하고 등대를 건설하게 됩니다. 어청도 등대도 그때 만들어진 것입니다."
  

▲ 등탐에 올라 회랑에서 바라본 풍경. 등대 왼편에 있다. ⓒ 김현

 
어청도 등대는 일제강점 초기인 1912년 건설되어 3월에 첫 점등을 하였다. 대륙진출의 야망을 품은 일제가 거점기지로 어청도를 선택하고 그곳에 등대를 건설한 것이다. 등대를 건설하고 항구를 만들면서 많은 일본인들이 이곳에 이주에 살면서 한 때 천 명 이상이 거주했다고 하나 지금은 그 흔적을 찾을 길이 없다.

차를 한 잔 마시고 소장의 안내로 등대로 향했다. 푸른 절벽을 앞두고 하얀 옷을 입은 등대가 서있다. 어청도 등대다. 비가 오는 탓에 그 아름다움과 주변 풍경을 여유를 가지고 감상하지 못하는 아쉬움은 있으나 등대 너머로 바라보는 조금은 어두운 바다가 잔잔히 서있다.
 
대부분 등대가 그렀듯이 어청도 등대도 등탑은 백색의 원형 콘크리트 구조로 되어있다. 등탑 맨 위 지붕은 전통 한옥의 서까래 형상으로 후에 교체했다 한다. 등대까지 걸어 가는 양쪽으로 이루어진 작은 돌담이 있다. 짧은 길이지만 그 멋이 있다.

등대를 한 바퀴 돌아본 후 소장의 안내를 따라 등대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나선형의 계단이 등탑 상부까지 이어져 있다. 머리에 닿을까 봐 고개를 숙이고 조심조심 회랑까지 오르자 물결치는 어청도의 바다가 비바람에 통통거리며 출렁인다. 
 

▲ 어청도에서 군산으로 향하는 여객선에서 ⓒ 김현

 
회랑에서 한바탕 떠들고 내려오니 빗줄기가 조금 가늘어져 있다. 다시 트럭을 타고 숙소로 돌아오길, 바람소리만 들릴 뿐 섬 전체가 조용하다. 여전히 사람들도 보이지 않는다. 비가 그치면 고려 때부터 있었다던 봉수대에 가려 했던 생각은 비 때문에 포기해야 했다.

등대 방문이라는 맛만 보고 떠나는 어청도,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군사적 요충지로서 묵묵히 자리 잡고 있는 서해의 외딴 섬 어청도는 언제 또 방문할지 모르는 길손들을 말없이 떠나보내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참고문헌 : 등대 - 주강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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