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5.21 07:01최종 업데이트 24.05.21 07:01
  • 본문듣기
정책네트워크 넥스트 브릿지(Next Bridge)는 지식경제, 기후, 디지털,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등 전환의 시대를 직면하여 비전과 정책과제를 연구하는 포스트 386 세대(9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에서 90년대생 청년) 중심의 연구자·정책 전문가의 공공정책 네트워크다. 넥스트 브릿지는 주권자인 국민이 사회 지향과 정책과제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발전이 가능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정책담론을 위한 대중적인 소통을 희망하며 다양한 분야의 정책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의 정책과제를 가지고 매주 정책 칼럼을 연재한다. [편집자말]
지속적으로 정책 칼럼을 연재해 온 공공정책네트워크 넥스트브릿지는 22대 총선과 22대 국회 개원을 맞이해서 <22대 국회가 해야 할 과제와 정책제안>을 기획하고 4월부터 6월까지 기획연재를 진행할 예정이다.

첫 번째 주제는 '피크 코리아' 담론의 실체인 한국의 생산과 재생산 문제에 대한 이해와 정책제안으로,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로 유명한 경남대학교 양승훈 교수가 맡았다. 양승훈 교수는 최근 출간한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에서 한국의 생산과 재생산을 둘러싼 구조적 문제를 고발하고 있다. 세 번째 글이 길어져 독자 편의를 위해 2개의 글로 나누어 게재한다.

 

지난 9일 공군의 F-4E 팬텀 4대가 49년 만의 국토순례 비행을 하며 울산 상공을 날고 있다. ⓒ 공군


울산에는 일자리가 많다. 인력의 공급보다 인력에 대한 수요가 많다. 기업체 중역이나 대표를 만나면 '인력난'을 호소한다.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와 현대미포조선은 2022년 이후 인력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거리고 있다.

울산시는 정부의 '지역 고용위기 대응지원 사업'을 통해 울산에 '울산 조선업 도약센터'를 짓고 채용박람회나 일자리 매칭 서비스 등을 통해 사람을 구하고 있지만, 조선소의 인력난은 해소되지 않는다고 한다. 급기야 2023년 한동훈 장관의 법무부는 특례로 조선업계에 해외 전문 인력에게 부여하는 E-7 비자로 용접공을 구할 수 있게 해주고, 인력의 30%까지 외국인을 고용할 수 있게 해줬다.


덕택에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이 있는 울산에는 7000명, 한화오션과 삼성중공업이 있는 거제에는 1만 명의 이주노동자가 모였다. 총원을 감안할 때 이주노동자의 비율은 더 늘어날 수 있을 것이다. 1편 "정규직 뽑지 않는 엔지니어 공장, 어떻게 할 것인가"(https://omn.kr/28ee8)에서 언급했듯이 현대자동차 생산직 공채가 '킹산직' 소리를 들을 정도로 인기지만, 현대자동차의 2차 이하 협력사에서는 마찬가지로 인력난이 연출되고 있다.

같은 시점 울산의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다며 울산을 떠나고 있다. 매년 5000명의 인구가 유출되는데, 여성 청년이 앞장서고 남성 청년이 따라가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울산뿐 아니라 창원, 거제, 포항, 여수 등 내로라하는 비수도권 산업도시에서 벌어지는 '울산 문제'의 핵심이다.

그런데 한 축에서는 청년들이 '눈만 높아서' 좋은 일자리를 스스로 걷어찬다고 힐난한다. 청년들의 '구직활동'과 기업들의 '구인활동'은 어떤 미스매치 상황에 놓인 것일까?

'청년 거부하는 지방', '지방 거부하는 청년'

이러한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산업화 과정에서 국가가 조직했던, 그리고 민주화 이후 극복하지 못한 지방의 지체를 만들어낸 가족경제의 재생산 기제를 파악해야 한다. 이를 나는 '산업 가부장제'라 명명했다.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 3부의 정의를 가져와 보자. 우선 가부장제는 가장인 남성이 강력한 권한을 가족 구성원에게 행사하는 가족 형태이자, 가장이 가정을 통솔하고 지배하는 것을 지지하는 사회적 네트워크와 지배 체제를 의미한다. 가부장제는 여성 노동의 평가절하, 가사 노동과 육아 노동의 무급화, 모성의 강조, 남성이 주로 수행하는 임금 노동의 고평가 등을 통해서 작동한다.

가부장제의 시작은 가족이다. 그 가족 모형을 사회로 확장하는 것을 가부장 사회 또는 가부장 체제라고 표현하게 된다. 그런데 산업 가부장제라는 말은 기존의 가부장제와는 다른 개념이다. 산업 가부장제는 특정 산업이 지배하고 있는 지역에서의 불균등한 성별 분업 구조가 만들어 내는 가부장제다.

전국적으로는 전통적 가부장제가 여성의 고학력화와 화이트칼라 및 전문직 노동 시장 참여를 통한 '맞벌이 모델'로 무너지고 있는 데 반해, 울산을 필두로 한 산업도시에서는 공간 분업과 국가의 공간 계획으로 조성된 산업지구에 역사적으로 누적된 가부장제가 존속하고 있는데, 이를 바로 산업 가부장제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2편 "남쪽으로 가서 '고소득자' 된 청년들, 그러나"(https://omn.kr/28htk)에서 '남동임해공업지구'로 떠난 청년들의 이야기를 했는데, 미처 언급하지 않은 이야기가 있었다. 바로 울산, 창원, 거제, 포항으로 떠났던 그 청년들이 '기계공고' 출신이고 남성이라는 점이다. 동남권에 조성된 제조업은 오로지 남성에게만 일자리를 제공했다. 기계공고의 학생 선발, 직업훈련소를 통한 인력 양성, 병역특례 모두 남성을 대상으로 했다.

중화학공업화가 모집한 '생산의 주체'는 고졸 생산직 대졸 사무직·엔지니어 할 것 없이 모두 남성이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노동자 대투쟁과 이들의 입사연도를 견주어 보면, 격렬한 투쟁의 이유 가운데 중요한 요소 하나가 설명이 되기도 한다. 바로 1970년대 중후반에 입사한 이들이 1980년대 초반부터 결혼을 해서 아이를 본격적으로 키우면서 임금, 주거, 복리후생에 대해서 더욱더 갈구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사회학자 요코타 노부코가 <한국 노동시장의 해부>(2020)에서 밝혔듯 여성들 역시 공장 노동을 오랫동안 해왔다. 전태일 열사가 분신했던 1970년 평화시장의 풍경으로 드러났다시피 1960년대 가발, 신발, 고무 등을 만들어 경공업 수출을 이끈 주역은 바로 여성노동자들이었다.

그런데 1970년대부터 국가가 자본집약적이고 기술집약적인 중공업의 주역으로 선정한 노동자는 바로 공고를 나온 남성노동자들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동남권에서 중화학공업화의 주체로 발탁된 남성들에 주목하는 경향 때문에, 기존의 산업화 과정에 대한 분석에서는 흔히 생산의 주역이었다가 가정에서 가사와 육아를 담당하는 재생산의 주체가 된 여성들의 모습을 가리게 되곤 했다.

그런데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전국적으로는 남성이 온 가족의 소득을 책임지는 남성생계 부양자 경제, 즉 외벌이 경제가 끝나는 신호탄이었다면, 동남권에서는 오히려 남성생계 부양자 경제가 강화되는 상황을 연출했다. 중국 경제가 팽창하고, 중화학공업화 과정에서 탄생했던 조선업 등이 '고환율'로 인해 제품을 수출할 때마다 막대한 수익을 창출했기 때문이다. 울산이나 거제에서 "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그때 탄생했다. 창원 상남동의 유흥문화도 그때부터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같은 시점 서울의 구로공단, 부산의 섬유, 고무, 신발 같은 경공업 산업단지가 쇠퇴하고 마산의 수출자유지역이 퇴조하기 시작했는데, 이 경공업체들은 바로 여성 노동자들을 대규모로 고용하던 곳이었다. 일터로 나갔던 여성들은 집으로 들어오거나 더욱 열악한 서비스 섹터로 향하던 시점에, 중공업 공장에 나가던 남성들은 막대한 수입을 벌어오며 '가장'으로서의 면모를 더욱 강화한 것이다. 40대가 된 (정규직 원청) 생산직 남성들의 '중산층 신화'가 완성된 것이 바로 1990년대 말~2000년대 초이고, 산업가부장제가 만들어내는 가족경제의 절정도 이때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산업도시에서 청년과 여성의 일자리 
 

2월 21일 윤석열 대통령이 울산시 울주군 울산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열세 번째, 다시 대한민국! 울산과 대한민국의 새로운 도약'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래서 산업가부장제가 어쨌다는 말인가? 무엇이 문제인가? 요약하자면 일자리는 많지만, 다수 청년과 여성의 일자리가 울산에(그리고 모든 산업도시에) 없다. 정확히는 '커리어 패스'(직업 경로)를 형성할 수 있는 일자리가 없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커리어 패스는 한 직장을 오래 다니면서 임금을 올리고 진급하는 방식으로 형성하거나(내부노동시장), 여러 직장을 옮기면서 프로젝트 경험이나 전문성을 인정받아 업계 인재풀 안에서 더 좋은 대우를 받으면서 형성할 수 있다(외부노동시장).

그런데 울산에는 다수 청년과 절대다수 여성의 커리어 패스가 없다. 세 가지 요인 때문이다. 우선 고학력화에 대응하지 못하는 울산의 노동시장 때문이다. 1980년대생부터는 동년배의 70% 이상이 대학에 갔다. 달리 말해 2000년대 중후반부터 고등교육을 마친 청년들의 일자리가 중요해졌다.

그런데 울산이 제공할 수 있는 일자리는 대부분 생산직 일자리다. 생산직 일자리는 종종 4년제 대학을 나온 지원자들에게 '학력 포기각서'를 요구하기도 한다. 이런 사례는 그나마 대기업 정규직 이야기고, 나머지 기업에 청년들은 지원하지 않는다. 화이트칼라 직장인은 본인들의 희망 사항일 뿐만 아니라, '기름밥'과 '쇳밥'을 먹었던 부모들의 소망이기도 하다.

문과를 나온 청년들에게 주어지는 선택지는 공공부문(공무원, 공기업 직원, 교사)에 한정된다. 울산대학교에서 인문사회계열을 졸업했을 경우 공공부문 시험을 볼 게 아니라면, 일자리는 부산에서 찾거나 서울로 가서 찾아야 했다.

두 번째는 중화학공업의 남성 중심 채용 관행으로 인한 여성 일자리의 절대 부족 문제다. 울산 고용의 다수를 차지하는 제조업 사업장의 성비는 대체로 95:5에 수렴한다. 여성은 20명 중 한 명꼴이다. 자동차 공장에서도 조선소에서도 여성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존재하는 직장 내 여성의 다수는 핵심 업무인 생산이나 설계, 연구개발 역할을 담당하는 정규직이 아니라 사무보조직(서무, 경리, 비서, 문서관리) 등 파견직·계약직·무기계약직 등의 비정규직이다.

이 여성들은 언제나 구조조정이 벌어졌을 때 남성 정규직들의 고용을 방어하기 위한 안전판 역할을 했다. 1998년의 '밥꽃양' 사태로 알려진 식당 여성 노동자들의 해고, 2010년대 조선산업 구조조정 시기 사무보조직의 집단 정리해고가 이를 증명한다. 울산에서 가장 괜찮은 일자리에서 울산의 여성 청년들은 '경력 단절'을 경험하는 게 아니라, '경력 봉쇄'를 경험한다.

그런 상황에서 제조업 바깥의 여성들은 서비스 산업과 돌봄서비스에 종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요컨대 '핑크 칼라 잡(pink-collar job)'이다. 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 이주민 대상 한국인교사, 어린이집 교사, 사회복지사 등이다. 이들은 언제든 진입할 수 있고, 언제든지 퇴출될 수 있으며, 근속이 올라도 임금이 오르지 않고 최저임금에 수렴하며, 이직을 해도 몸값을 올릴 수 없는 커리어 패스가 없는 직업군이다.

4년제 대학을 나온 여성들이 선택하지 않으려 하는 직업들이다. 본인들의 '엄마'와 '이모'가 했던 일들을 자신들이 해야 하는 상황이다. 울산의 여성들이 많이 참여하는 서비스 산업과 돌봄서비스 산업의 임금은 서울보다 낮고, 부산은 울산보다 더 낮다.

마지막으로 2편 "남쪽으로 가서 '고소득자' 된 청년들, 그러나"(https://omn.kr/28htk)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연구소와 엔지니어링 센터, 고부가가치 공장이 수도권으로 옮겨 가면서 그나마 있었던 이공계 나온 학생들의 일자리도 축소되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 앞선 두 가지의 문제가 구조적으로 누적된 과거와 현재의 문제라면, 제조업 상류부문의 일자리가 수도권으로 북상하는 것은 현재는 물론 미래를 갉아 먹는 문제다.

우수한 이공계 인력을 양성하는 울산과학기술원(UNIST) 출신들은 학부부터 대학원 과정까지 공히 졸업과 동시에 수도권의 제조 대기업이나 대학으로 향한다. 제조 대기업에서 정규직으로 생산직을 채용할 필요가 줄어들고, 원청 관점에서 인력을 울산에서 채용할 필요가 줄어드는 상황이 반복될 때 서비스산업이라도 규모의 경제와 질 좋은 고용을 만들어 낼 전망이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현재 울산이 밟아온 경로는 그러한 가능성을 제한하는 중이다.

울산의 부모들은 자녀들의 취업을 바라고 이를 위해 대학까지 공부시켰지만, 현재 지역에는 '괜찮은' 일자리가 없고, 미래의 전망도 밝지 않다. 그나마 남학생들은 문과를 나와도 2차 이하 협력사 사무직이라도 취업될 수 있으니, 버틸 수도 있겠지만, 여학생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의 '카테고리' 자체가 울산에 없으니 부산을 경유하거나 곧바로 서울로 향한다.

가정에서 생계부양자 역할을 해 온 남성 노동자들은 어차피 회사에서 자녀 세대의 신입사원을 안 뽑으니, 자녀들이 공무원 시험 마칠 때까지 혹은 결혼할 때까지라도 자신들이 몇 년이라도 더 노동하겠다고 '정년연장'이란 카드를 뽑는다.

'노동자가 중산층으로 살 수 있는 꿈'

높은 임금과 안정적 정규 일자리로 자녀를 뒷받침 하고 있는 기성세대의 정년퇴직 후에는 어떤 대안을 찾을 수 있을까? '산업도시의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구성은 계속될 수 있을까?

남성, 생산직, 대기업 정규직이라 세 가지 요소를 전제로 또다시 '산업도시의 평범한 중산층 가정' 구성을 희망한다면, 오히려 '중산층 가족 형성'을 포기하게 되는 역설이 자연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울산'이 역사적으로 형성해 온 궤적을 고려하면서도 새로운 '평범한 노동자 중산층'을 다시금 구축하는 작업은 '산업 가부장제, 생산직 중심주의, 정규직 중심주의'에서 벗어나면서도 '노동자가 중산층으로 살 수 있는 꿈'을 꿀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

'피크 코리아'가 던지는 '울산 문제'③-2로 이어집니다.

[관련기사] '피크 코리아'가 던지는 '울산 문제' 
① 정규직 뽑지 않는 엔지니어 공장, 어떻게 할 것인가 (https://omn.kr/28ee8)
② 남쪽으로 가서 '고소득자' 된 청년들, 그러나 (https://omn.kr/28htk)

필자 소개 : 제조업과 산업도시, 기술 혁신과 엔지니어를 연구합니다. 경남대학교에 재직하며 사회조사방법론, 통계학, 데이터사이언스, 디지털 과학기술학을 강의합니다. 정치학, 문화인류학, 과학기술정책(혁신 연구)을 공부했습니다. 조선소에서 5년간 근무하며 관찰했던 경험을 담아 산업도시 거제와 조선산업에 대한 이야기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2019)를 썼고, 이듬해 한국사회학회 학술상과 한국출판문화상 교양 부문을 수상했습니다. 산업도시 울산을 살펴보며 50년 전 중화학 공업화로 형성된 한국의 주력 제조업과 소멸 위기에 놓인 지방이 디지털·에너지 전환, 수도권 쏠림을 딛고 생존 가능할지 고민합니다.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 - 쇠락하는 산업도시와 한국 경제에 켜진 경고등

양승훈 (지은이), 부키(202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