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5.13 07:17최종 업데이트 24.05.13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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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9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윤석열정부 2년 국민보고 및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방향은 옳았다. 다만 국민과의 소통이 미흡했다. 총선 이후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관련 발언 요지다. 앞으로 3년도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겠다는 것이다. 지난 9일 있었던 '윤석열 정부 2년 국민보고 및 기자회견'도 마찬가지였다. 모욕감을 느끼는 국민들이 오히려 미안해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방향이 옳았다는 인식은 특검 거부 등 국내 정치 현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외교 정책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 9일 국민보고에서 윤 대통령은 150여 회의 정상회담과 활발한 세일즈 외교, '글로벌 중추국가' 외교를 통해 외교 지평 및 경제영토를 크게 확장했다고 자평했다. 정말 그럴까?

경제영토 확장의 실상

우선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2020년 세계 10위로 정점을 찍은 이후 매년 하락 중이다. 2020년 10위에서 2021년 11위, 2022년 13위, 작년에는 러시아, 멕시코, 호주에도 뒤처져 14위로 집계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추산에 따르면 5년 후엔 인도네시아에도 추월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한국 경제가 세계 경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계속 줄어드는 상황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오는 6월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초청받지 못한 데에는 한국 경제가 확실히 10위권 내로 진입하지 못하고 오히려 하락세인 것도 큰 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총선 결과로 사실상 레임덕에 접어든 외국 정상을 초청해 미래를 진지하게 협의하고 관계 개선을 도모할 동기 유인이 약하기도 하다. 게다가, 외국에서 보는 한국의 언론자유와 민주주의 지수는 계속 하락하면서 국가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지 않은가.

사실 개방형 통상국가로서의 중장기 국익을 생각하면 아세안 및 인도와의 경제협력에 더욱 박차를 가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윤 정부 들어서는 별로 들리는 소리가 없다. IMF 추산에 따르면 2024년 아세안 10개국 전체의 GDP는 4.1조 달러를 넘어 단일경제권으로 치면 세계 5위권에 해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2022년 한국의 수출 비중에서도 아세안 지역은 26.1%로 중국 못지않게 중요한 경제권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인도가 급상승해 올해는 일본을 제치고 GDP 세계 4위로 올라설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이 최대 무역 흑자국에서 적자국으로 변한 것도 작년이다. 작년도 대중 무역수지는 180억 달러 적자였다. 1992년 수교 이후 31년 만의 일이다. 중국이 최대 무역 흑자국에서 적자국으로 전환되면서 무역수지도 2년 연속 적자였다. 2022년에는 477억 달러, 2023년에는 약 100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윤 정부가 그토록 중요시하는 일본과의 무역에서도 2022년 241억 달러, 2023년 187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사실 일본과의 무역에서 한국은 1965년 수교 이후 단 한 차례도 흑자를 낸 적이 없다. 특히 주목할 점은 무역적자가 오히려 확대되는 추세다. 2000년부터 2023년까지 누적 대일 무역적자는 700조 원을 훌쩍 넘는다. 

그나마 유일하게 무역흑자 폭이 늘어난 나라는 미국이다. 지난해 대미 무역수지는 자동차 및 이차전지 등 수출 호조로 445억 달러의 역대 최대 흑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마냥 기뻐할 일만은 아니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 무역적자를 빌미로 경제적 압박 및 주한미군 철수론을 본격 꺼내 들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리스크와 주한미군 철수론 대응법
 

4월 30일 자 <타임> 표지 ⓒ 타임

 
한국 언론에 이미 대서특필됐지만, 지난 4월 말 <타임>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왜 미국이 부자나라 한국을 지켜줘야 하느냐며 주한미군 철수론을 거론했다. 사실 트럼프가 1기 집권 시에 주한미군 철수론을 꺼내든 명분도 무역적자 문제였다. 당시 180억 달러가 넘는 무역적자에도 불구하고 왜 부자나라 한국을 지켜줘야 하느냐는 것이 트럼프의 불만이었다. 

'워터게이트' 특종기자인 밥 우드워드의 <공포: 백악관의 트럼프>란 책에는 당시 상황이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트럼프가 무역적자와 주둔 비용을 지적하며 주한미군 철수를 거론하자 짐 매티스 국방부 장관은 주한미군의 전방 배치가 미 본토 방어를 위한 가장 비용 효율적인 수단이며, 미군 철수 시 전쟁 발발 때 핵무기 사용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조지프 던포드 합참의장은 주한미군 비용의 40% 이상을 한국이 분담하고 있으며, 미군 급여는 요구하지 않는다고 설명하며 용병화를 경계했다.

한국에서 큰 문제가 됐던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문제도 마찬가지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사드 운용 비용을 이유로 본토 이전을 지시했지만, 허버트 맥마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은 한국 배치 시 북한 미사일 탐지 시간이 7초에 불과하다는 군사적 이점(기존 알래스카 미사일 기지에서는 15분)과 99년간 무상 부지 제공으로 인한 경제적 이득을 강조하며 오히려 미국에 유리한 거래라고 트럼프를 설득했다.

이런 일화들은 향후 대미 협상에서 중요하게 참고할 만한 사례들이다. 미군 군 수뇌부도 주한미군이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본토 방어에도 필수적이며 주둔 비용 대비 안보 이익이 현저히 크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 말이다. 한국이 미국에 대해 갖고 있는 군사 및 전략적 중요성을 너무 과소평가해 미국 측 요구에 쉽게 양보할 이유가 없음을 시사한다.

물론 트럼프의 주한미군 철수론은 협상용 블러핑일 가능성도 크다. 실제 철수할 의도는 전혀 없지만 방위비 분담금 및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등에서 협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주한미군 철수를 압박 카드로 사용할 것이라는 의미다. 아무리 트럼프라도 70년 된 한미동맹 체제로부터 이익을 얻고 있는 다양한 세력의 반발과 저항을 쉽게 간과할 수 없다.
 

4월 30일 경기도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에서 열린 한미 연합 공수 훈련에서 주한미특수전사령부(SOCKOR) 장병들이 강하를 위해 치누크 헬기로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렇지만 누구도 트럼프의 진짜 속내와 의도를 확신할 순 없다. 미군을 정말로 철수할 것 같기도 하고 전혀 그렇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예단이 쉽지 않다. 사실 트럼프가 실제 의도하는 바는 상대방을 심리적 불안과 혼란에 빠뜨려서 최대한의 양보를 받아내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국민과 위정자들이 그의 주한미군 철수 압박에 불안해하면 할수록 트럼프의 협상 레버리지가 더 올라간다.

사실 미국 워싱턴 정가와 외교가에서는 주한미군 철수론이 한국 내에서 일으킬 정치적 파장에 대해 잘 안다. 그래서 오히려 그런 여론이 한국 내에서 더욱 확산되기를 바라며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음에도 주의해야 한다. 판을 흔들수록 미국의 협상력은 더 커지고 그에 따른 양보도 더 받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측근들이 그의 관심을 끌기 위해 자극적인 발언을 쏟아내고, 언론이 이를 대서특필하며, 정치권이 흥분하고, 국민들이 불안해하는 상황은 오히려 트럼프의 협상력만 높여줄 뿐이다. 내부의 자중지란은 상대방에게 늘 유리하다. 따라서 냉철하고 차분하게, 동맹국을 거래와 압박의 대상으로 취급하는 트럼프와 그 측근들의 태도를 단호하게 비판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윤석열 정부의 취약성이다. 윤 정부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단 한 번도 여대야소 정국을 만들지 못하고 끝날 정권이 됐다. 따라서 국내 정치적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미국과 일본에 더욱 경사된 외교 정책을 펼 가능성이 있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과 일본은 윤 정부의 이런 속내를 훤히 꿰뚫고 있다. 매달리면 매달릴수록 한국 쪽에 요구하는 양보의 내용과 강도도 커질 것이 분명하다.

22대 국회는 청문회 및 외교통일위원회 등을 통해 윤 정부의 일방적 편승 외교 정책에 적절한 균형추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동맹을 중시하되 국익을 위해 필요한 지점은 단호히 견제하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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