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 총무는 시체 썩는 냄새를 안다

[내 세상은 잿빛 ①] 여기가 '지옥'이 아닐까

등록 2016.01.25 19:54수정 2016.01.27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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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재는 2015년 5월 4월 <오마이뉴스>에 실린 에세이 한달에 13만원짜리 집, 제가 살아봤습니다의 뒷 이야기다. 또한 한국 사회의 모서리까지 밀려나 죽음을 맞이한, 한 인간에 대한 목격담이기도 하다. - 기자 말

1. 고시원 야간 총무

학교 인근 7호선 상도역에서 여섯 정거장 떨어진 어느 고시원의 야간 총무로 일한 건, 대학교 2학년 때였다. 나는 철학을 공부해 기초학문 연구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꿈과 주거 문제는 늘 충돌했다. 대학생들은 자주 기숙사나 원룸 혹은 고시원에 월세를 내며 사는데, 생활비가 쪼들리면 알바로 충당한다.

집에서 주거비를 지원받는 경우도 있지만, 못 받는 경우는 공부할 시간을 더 희생시켜 알바 시간을 늘린다. 후자의 경우 당연히 학점이 낮아진다. 학점도 부익부 빈익빈이다. 그런데 또 가난하면 성적장학금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자 대학 생활의 '지속가능성' 문제가 된다. 학점이 낮으면 대학원도 진학하기 힘들다.

가령 모교 대학원은 4년 전액장학금 대상자를 선정할 때 학부 성적을 본다. 학부든 대학원이든 학자금 대출을 받아 고스란히 빚으로 짊어진다 쳐도 '시간강사'는 갚을 능력이 없다. 역설의 덫에 걸렸다. 내가 꿈을 포기하거나 미뤄야 했을까. 나는 플랜B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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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다른 고시원 복도. 수십 개의 방들이 좁은 간격으로 다닥다닥 붙어있다. 이 고시원 복도는 그나마 넓은 편이다. 좁은 곳은 1m 남짓에 불과하다. ⓒ 하지율


고시원 야간 총무의 노동 시간은 오후 5시부터 아침 9시까지였고, 중간에 자는 시간(평균 7시간)은 빠졌다. 나는 10개월간 거의 휴무 없이 일주일 내내 일했고, 월급 50만 원과 잠을 잘 수 있는 '방'을 얻었다. 명백히 노동법을 위반한 조건이었는데, 원장 스스로 캥겼는지는 몰라도 노동 강도를 낮추고 노동 시간을 내 스케줄에 맞추려는 식으로 퉁치려했다.

1교시 수업이 있는 날은 아침 8시에 고시원을 나서도 됐고, 저녁 수업이 있는 날은 오후 7시에 원장과 교대했다. 주말 편의점 알바는 페이가 적고 국가근로장학생은 시급이 짭짤해도 주 20시간까지만 일할 수 있다. 반면 고시원 총무는 주거가 해결되는 '동시에' 약간의 생활비도 벌고 낮에 학교도 다닐 수 있다. 이게 총무 일을 선택한 이유다.


업무는 우선 매일 아침·저녁으로 공용 주방·화장실·복도를 청소하는 것이었다. 또한 손님들에게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소모품·식료품(휴지·비누·쌀·김치·계란 등)이 안 떨어지게 수시로 채워놓으면, 여기까지가 업무의 50%다. 40%는 수시로 생기는 빈방을 청소하고 보수하는 일이고, 나머지 10%는 손님 응대와 입실료 수금 등이었다.

물론 100%가 늘 기계적으로 맞아 떨어지진 않았고 일과 생활의 경계가 모호했다. 일찍 일을 끝내면 사무실에서 철학 공부를 했지만, 새벽에도 손님이 만취 소란을 일으키면 일어나 말렸고 토사물을 처리했다. 늦은 밤에 수도가 끊기면 낡은 상가 건물 옥상 물탱크를 확인했고, 자기 전에 일반·재활용·음식물 쓰레기를 건물 밖에 내다놓았다.

하찮고 구질구질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젊음의 일부를 떼어낸 시간들이었다.

2. 관(棺)

신림동 고시촌이나 노량진 학원가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고시원에는 정작 고시생이 없다. 내가 일했던 곳도 그랬다. 행인들이 무심히 스쳐가는 상가 건물 상층에 딸린 '○○텔' '○○하우스'하는 식의 간판들만이, 주거 빈곤의 징후를 반투명적으로 암시할 뿐이다.

구 소방방재청(현 국민안전처)의 '예방통계자료 2010~2014'에 따르면, 전국의 고시원은 2010년 6597곳(서울 3922곳)에서 2014년 1만1457곳(서울 6158곳)으로 늘었다. 요즘은 준공이 다소 주춤하지만(국토교통부, '고시원 연도별 준공 현황'), 현재 고시원 수만으로도 수천 명 이상 모여사는 주거 빈곤 지역 '슬럼'이 몇 군데 형성될 수 있는 규모다.

하지만 한국은 외국처럼 슬럼이 실존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기에,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눈으로 확인할 길은 원천적으로 차단된다. <한겨레21> 안수찬 편집장은 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관련 기사: 가난한 청년은 왜 눈에 보이지 않는가).

"(한국은) 슬럼의 초기 모델이었던 '달동네'조차 사라졌다. 도시 개발이 이들을 몰아냈다. … 한국인들은 빈곤을 체감하지 못 한다. … 한국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투명 인간이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빈곤 노동은 투명 노동이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이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가난이 없다 치고' 사는 일에 길들여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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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고시원 간판들. 드러내놓고 '~고시원' '~고시텔'과 같은 간판을 쓰는 경우는 대개 준공된지 오래된 곳들이다. 고시원장들은 상가 건물 주인에게 공간을 빌려 고시원으로 개조하고, 이를 다시 주거빈곤층들에게 세를 놓는다. 원룸, 옥탑방 등의 보증금조차도 마련하지 못하는 이들이나, 특정 지역에 단기간(몇 개월) 머무르는 유동층을 겨냥한 업종이다. ⓒ 하지율


콘크리트 벽들에 의해 '구조적으로' 꽁꽁 감춰진 고시원은 내부에서도 단절적이다. 대개 1인당 최소주거기준 14m²(4.2평 남짓)에도 못 미치는 방들이 얇은 벽을 사이에 두고 다닥다닥 수십 개가 붙어있지만, 거주자들 사이에 '연대'는 희박하거나 없다. 고시원 거주자였던 J씨는 "매일 잠들 때마다, 마치 관에 누워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고 묘사했다.

내 경험에 비추어보건대 관처럼 느껴지는 건, 질식당할 것처럼 좁은 방에 누웠을 때 엄습하는 비참함 때문만은 아니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정치적(사회적) 동물"이라고 했는데, 그 말이 정말 맞다면 고시원 사람들은 '인간'을 죽임 당했다. 달동네처럼 '같은 동네 사람들'이라는 유대와 교류도 형성되기 어렵고, 우연히 스파크가 튀더라도 곧 고시원 곳곳에 붙어있는 "조용히 하세요"라는 엄숙한 경고문에 의해 죄의식을 자극 당한다.

결국 가난한 사람들의 연대, 존재감, 목소리는 희박해지고 각자의 한(恨)은 각자의 좁은 방 속으로 응어리진다. 나는 매월 입실료 납부가 조금씩 늦는 편인 40대 중반 손님이 사장 대신 나에게 몇 번을 주저하다 "저.. 총무님 죄송한데, 고시원 내에 아령이 하나 있으면 참 좋을 것 같아요..."라고 조심스레 이야기하던 걸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동서고금의 혁명 대부분이 슬럼에서 시작했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한국의 빈곤층은 슬럼에서 봉기해 자신들의 정당한 몫을 찾는 성난 민중이 될 수 없다'는 안수찬의 지적은 옳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히 '착취'의 문제가 아닌, 한 차원 더 심화된 문제는 아닐까. 김원식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은 <배제, 무시, 물화>에서 "오늘날 극심한 경제적 부정의는 고전적인 착취의 개념보다는 오히려 배제에 더 근접해 있다고 판단"한다.

3. 개방(開放)

내가 일했던 고시원에는 장기체납자가 둘이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 40대 후반의 성훈(가명)씨였다. 그는 고시원의 가장 싼 방에 살았고, 내가 일을 시작한 지 7개월 쯤 됐을 때 입실료가 1년치나 밀려있었다. 스마트폰 게임에 정신이 팔려 고시원 업무를 거의 방임하는 원장의 특이한 성격이 아니었다면, 거리에 벌써 나앉고도 남을 것이다.

물론 원장은 성훈씨의 존재를 잊지 않았다. 체납 독촉은 내가 아닌 원장이 직접하는데, 나는 가끔 그 안타까운 장면을 봤다. 나는 독촉 당하는 쪽과 하는 쪽 모두가 비참함이나 민망함을 느끼게 하지 않으려고, 지나가다가 우연히 보고도 '못 본 척' 표정관리를 했다. 다만 성훈씨는 번번이 일자리를 못 구했다는 이야기는 전해 들었는데 그 이유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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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제 . ⓒ pixabay


특히 성훈씨가 기본으로 제공되는 계란, 김치(중국산), 밥(미국산)으로만 식사를 떼우는 걸 공용주방에서 몇 번 목격하면서, 점점 건강이 염려스럽고 연민을 느꼈다. 나는 그와 대화를 해보고 싶었지만, 그가 누군가와 최대한 마주치지 않으려고 아주 늦은 밤에만 움직이는 것 같거니와 말을 걸어도 반가워해줄지 확신이 없었다. 나와 그의 나이는 20년이 넘게 차이났다. 그가 좀 보수적이라면 내가 걱정해주는 데 자존심 상해하진 않을까도 싶었다.

그는 분명 착취 당할 기회조차 '배제' 당한 사람이었다. 심지어 그가 왜 세상의 끝까지 내몰렸는지 이야기조차 듣기도 어렵다는 점에서, 어떤 가치판단도 섣불렀다. 가끔 그가 밤늦게 어두운 표정으로 공용 PC를 사용하는 걸 봤다(나중에 알게됐지만 바탕화면 이미지는 '성모 마리아'였다). 나는 그에게 질문부터 하기보다는, 근처 시장에 가게 되면 전기구이 통닭 두 마리를 사 한 마리를 성훈씨 방문 고리에 걸어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며칠 뒤 방학이 끝나 2학기가 개강했다. 나는 정신이 없어졌고 시장에 갈 여유는 나지 않았다. 그런데 성훈씨가 며칠 동안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그의 방은 주방 앞에 있었으므로, 나는 매일 청소를 할 때마다 그곳을 지나쳤다. 그리고 그의 방 근처에서 생전 처음 맡아보는 냄새가 스며나오기 시작했다.

무슨 젓갈이나 장 종류의 음식물이 썩는 냄새 같기도 했지만 좀 강하고 역했다. 문을 두들겨봤다. 응답이 없었다. 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원장에게 보고를 했다. 하루 정도 더 지켜보라는 지시를 받았다. 원장이 출근하지 않는 일요일 오후, 냄새는 더 심해졌다. 여전히 문을 두들겨도 응답이 없었다. 불길함이 엄습해왔고 떨리는 목소리로 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원장님, 정말 심상치가 않습니다. 아니길 바라지만 성훈씨가 자살한 게 아닐까요."
원장: "그럼 우선 문을 열어봐봐. 맞으면 내가 지금 바로 갈게."
나: "하지만 무섭습니다. 오셔서 같이 좀 열어주시면 안 될까요?"
원장: "일단 너는 확인만 좀 해봐봐. 정말 맞으면 내가 알아서 해결할 거야."
나: "하지만요.... 정말 저는...."
원장: (원장이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나: "....알겠습니다....열어볼게요...."

두려웠다. 비상키를 들고 그의 방 앞에 다가섰을 때, 심장은 쿵쾅거렸다. 한 손으로 눈을 가리고 다른 손으로 서서히 열쇠를 돌렸다. '찰칵'소리가 나고 '끼이이' 문이 미끄러지듯 열렸고, 나는 방안을 확인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눈을 가린 손의 손가락 틈을 벌렸다. 그리고 나는 내가 서 있었던 곳이 분명 최소한 '세상의 끝'이거나 '지옥'이라고 생각했다.

고독사(孤獨死)
고독사란 가족과 지인, 사회와 관계가 단절돼 연고없이 격리된 채 살다가 아무도 모르게 홀로 죽음에 이른 경우를 말한다. 시신은 대부분 오랫동안 방치되다 발견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장 김춘진 의원과(더불어민주당) EBS 다큐프라임 '가족쇼크' 대학생 취재팀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아 정리 및 공개한 '대한민국 고독사 현주소와 미래'에 따르면, 2011~2013년 무연고 사망자 수는 꾸준히 증가해왔다(682→719→878명). 그중 남성의 비율은 평균 약 79.17%에 이른다. 유품정리 및 특수청소업체 스위퍼스가 최근 3년간(2012.10.~2015.9.) 현장에서 고독사 사망사례 234명을 집계한 결과 역시 남성이 80.8%였다. 그중 40~50대는 55,9%(131명)이었다. 전문가들은 40~50대 남성의 고독사 비율이 더 높은 원인을 특히 '복지사각 지대'에 놓여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다만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다음 편에 계속...)
덧붙이는 글 최근 3년간 고독사 통계는 유품정리 및 특수청소 전문업체 스위퍼스 측 허락을 받고 홈페이지(www.sweepers.co.kr)에서 인용했다.
#헬조선 #고시원 #고독사 #불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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