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탄까지 와서 한식을... 나도 참 못말린다

[부탄여행 ③] 히말라야 동쪽 끝 은둔의 나라 여행

등록 2016.08.09 19:02수정 2016.08.09 19:02
0
원고료로 응원
푸나카 여행을 마치고 부탄의 수도 팀푸로 향했다. 꼬부랑 산길을 넘자 푸나카로 갈 때는 주의 깊게 보지 않았던 검문소 풍경이 눈에 띄었다.

검문소 주변은 티베트 이주민들의 정착촌이 있는 곳으로, 경제적으로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르기 때문에 주로 치즈를 만들어서 팔거나 과일이나 야채를 팔아 생계를 해결한다. 중간 중간 이들이 만든 우리나라 공갈빵과 비슷한 모양의 부탄 전통 빵, 드라이 치즈 등을 맛봤다.


차를 타고 얼마쯤 갔을까, 갑자기 차들이 움직이지 않는다. 심지어 드라이버 도지는 시동까지 끄고 느긋이 몸을 눕힌다.

a

부탄여행 ⓒ 김동우


전방에는 길을 닦는 공사 현장이 있었다. 깎아낸 절벽 위로 큰 나무 한그루가 위태롭게 흔들거린다. 초조하게 그 모습을 보고 있는데 낙석과 함께 큰 나무가 곤두박질친다. 그런데 그 순간 그만 웃음이 터져 나왔다. 공사장에 있던 아저씨가 천진난만한 함박웃음으로 우리를 향해 손짓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이 꼭 어린아이 같았다.

안전장치 하나 없는 어설픈 공사 현장이었다. 기다리라면 가만히 기다리면 되고 가라면 가면 된다. 그 사이 부탄 사람들은 미소를 잃지 않는다. 정겹고 훈훈하다. 위압적 권위는 이들의 것이 아니다. 이것이 부탄 사람들이 삶을 대하는 태도다. 행복은 그 사이에서 자연스레 스며 나온다. 짜증이 나고, 흙먼지가 얼굴을 덮는 상황이었지만 그들은 한없이 긍정적이고, 유쾌해 보였다. 도지는 창문을 내리고 아저씨를 향해 감사의 표시를 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아 보였다.

a

부탄여행 ⓒ 김동우


a

부탄여행 ⓒ 김동우


팀푸에 들어서자 부탄의 전통 스포츠인 궁술을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표적까지 거리는 무려 130m로, 올림픽 양궁 경기보다 먼 거리다. 화살을 쏘아 날릴 때마다 사수는 노래를 부르고 발을 구르며 춤을 춘다. 마치 축제분위기 같다. 궁술 이외에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큰 다트를 먼 표적에 맞추는 게임을 즐긴다. 씨름 등의 전통 스포츠가 힘을 잃어 가는 우리와 너무 다른 모습이다.

팀푸에 도착해 점심과 함께 반주로 전통주 '아라'를 마셨다. '아라'와의 악연(?)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낮술을 한 잔하고 부탄의 우편배송 시스템 역사를 전시해놓은 우편박물관, 부탄의 전통가옥과 생활상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민속박물관을 찾았다. 그런데 민속박물관을 찾았을 때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 점심 때 마신 아라의 취기가 남아 있는 상태에서 민속박물관 직원은 내게 다시 아라를 권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성의에 못 이겨 마신 아라는 날 취중여행으로 인도했다.


아라를 들이킨 내게 그는 활쏘기를 권했다. 결과는 역시나 형편없었다. 과녁이 제대로 보일 리가 없었다. 흔들거리는 표적은 연거푸 마신 아라가 얼마나 독한 술인지를 말해주는 듯했다. 호텔 침대 위에서 몽롱한 기운을 즐기면 딱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가이드 유딘은 다음 코스가 있다며 날 차에 밀어 넣었다.

a

부탄여행 ⓒ 김동우


a

부탄여행 ⓒ 김동우


멀지 않은 곳에 부탄 전통예술을 교육하는 미술공예학교가 있었다. 이곳은 부탄 전역에서 재능있는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그림이나 불상 그리고 부탄의 전통 의복을 만드는 걸 배운다. 특히 부탄의 모든 학생들은 무상교육 혜택을 받고 있다. "좋은 교육은 나라를 발전시킬 다음 세대에 대한 현 세대의 책임이자 투자이며, 나라의 보다 나은 미래를 약속하는 열쇠"라고 생각하는 부탄 정부의 열린 정책 때문이다.

여행자들에게 학교가 개방돼 있어 수업을 참관할 수 있는데, 학생들의 밝은 분위기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그러다 장난기 어린 학생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우리나라 가수 엑소(EXO)와 싸이가 친구라는 거짓부렁을 했다. 일순간 모든 학생들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그도 그럴 것이 부탄에서도 한류 스타들은 대단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잠시 뒤 거짓말이 바로 탄로나긴 했지만 가이드 유딘은 몽롱한 기운에 장난을 거는 내 모습을 무척 재미있어 했다. 누가 여행을 온 건지 착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a

부탄여행 ⓒ 김동우


팀푸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타시초 종(Tashichho Dzong)이다. 부탄 국왕의 집무실로도 사용되는 이 종은 왕의 업무가 끝나는 5시 이후 관람이 가능하다. 종 옆에는 소박한 궁궐이 하나 있는데, 지금은 지난 2월 아들을 낳아 육아에 힘쓰고 있는 5대 왕이 지내고 있다.

타시초 종은 부탄을 통일하고 정치와 종교를 분리한 영웅 삽드룽이 이름 붙였는데 '찬란히 빛나는 성전'이란 뜻을 갖고 있다. 높지 않은 지붕과 흰 벽, 벽과 잘 어울리는 붉은 옷을 입은 스님들의 움직임이 하나로 어우러져 팀푸만의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a

부탄여행 ⓒ 김동우


타시초 종을 보고 우연치 않게도 팀푸에 한국 식당이 있다는, 내겐 무척이나 놀라운 소리를 들었다. 부탄의 음식들이 유기농이라곤 하지만 칼칼한 한국 음식 특유의 맛이 그립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부탄 현지 여행사 사장(치미)과의 미팅에서 의도치 않게 부탄의 유일한 한국 음식점 '산마루'에서 저녁을 먹을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역시 내 저주받은 혀는 어쩔 수 없나 보다.

'산마루'는 현지인과 결혼해 정착한 이연지씨가 운영하는 식당으로 부탄에서는 왕족들도 찾는 고급 레스토랑이다. 그런데 이게 무슨 또 인연이란 말인가. 부탄 공항에서 보았던 멋쟁이 아가씨를 이 식당에서 또 보게 됐다. 당시 강남 멋쟁이 뺨치는 우아함으로 내 시선을 잡아끌던 그녀 아니던가. 유딘은 조용히 왕족 중 한 명이라고 귀띔했다. 그제야 대충 상황이 이해가 됐다.

a

부탄여행 ⓒ 김동우


#부탄여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걷고, 찍고, 쓰고, 생각하며 살고자 합니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아니, 소파가 왜 강가에... 섬진강 갔다 놀랐습니다
  2. 2 "일본정치가 큰 위험에 빠질 것 우려해..." 역대급 내부고발
  3. 3 시속 370km, 한국형 고속철도... '전국 2시간 생활권' 곧 온다
  4. 4 두 번의 기회 날린 윤 대통령, 독일 총리는 정반대로 했다
  5. 5 100만 해병전우회 "군 통수권" 언급하며 윤 대통령 압박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