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의 투명인간", 잊고 있던 반기문의 흑역사

한국에서 인기 고공행진, 외신은 의아하다

등록 2016.06.08 05:22수정 2016.06.08 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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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아프리카 케냐에서 브리핑 자료를 보고 있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 UN


"유엔의 투명인간"
"역사상 최악의 총장"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한국인"
"괜찮고 끈기가 있다"

몇 해에 걸쳐 나온 한 인물에 대한 외신의 평가다. 달갑지 않은 소리로 들릴 수 있겠지만 한국인 최초로 유엔(UN)의 수장이 된 반기문 사무총장에 대한 이야기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과 영국의 <가디언>은 반 총장을 '투명인간'(Invisible man)이라고 불렀다. 존재감이 없다는 의미에서였다.

2013년 <뉴욕타임스>는 '반기문은 어디 있나?' 칼럼을 통해 그를 유엔 역사상 최악의 총장이라 칭했다. 이러한 혹평은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지난달 21일 기사에서 역대 총장들을 평가하며 반 총장을 "가장 둔하고 사상 최악"(the dullest-and among the worst)이라고까지 표현한다.

한국에서는 위인전까지 나온 인물이 왜 이런 평가를 받고 있을까. 이를 알기 위해선 반 총장이 지난 9년 동안 유엔에서 걸어온 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는 2007년 유엔 사무총장이 됐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은 결과였다. 반 총장의 득표를 위해 당시 참여정부는 비상임이사국 진출을 포기했고, 유엔에 대대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물론 정부가 약속한 대대적인 지원은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충당했다.

그럼에도 국민들은 기뻐했다. 반 총장의 생가를 복원했고, 반기문 마라톤대회가 생겼으며, 그의 인생을 다룬 책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도로 이름 (충북 음성에는 '반기문로'가 있다)으로는 부족했는지, 충북에 들어서는 혁신도시를 '반기문 시'로 하자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계속되는 각종 사업에 유엔이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명할 정도였다.

잇단 구설수...말실수 잦은 사무총장

지난해 3월 방한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박근혜 대통령을 예방한 모습. ⓒ UN


기대를 한몸에 받고 유엔 본부가 있는 뉴욕으로 날아간 반 총장은 2007년 1월 취임 기자회견에서부터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이날 반 총장은 이라크 대통령이었던 사담 후세인의 처형에 대한 생각을 묻는 말에 "각국이 알아서 결정할 문제"라고 답했다.


사형제에 반대해 온 기존 유엔의 의견과 다른 목소리였다. 신임 총장의 예상치 못한 발언에 언론은 뒤집어졌다.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가 반 총장의 경솔함을 비판했다. 사태를 파악한 반 총장은 며칠 지나선 사담 후세인의 측근들에 대한 처형은 막아야 한다며 목소리를 냈지만 그의 말발은 먹혀들지 않았다.

반 총장의 신중하지 못한 발언은 국내에서도 큰 문제가 됐다. 반 총장은 지난해 말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일 정부 간의 합의를 높이 평가하고 올 초에는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전화까지 걸어 "역사가 높게 평가할 것"이라고 추켜세우기까지 했다. 유엔의 전문가 기구인 여성차별철폐위원회의 기본 뜻과도 맞지 않은 말이었다. 그는 다시 뒤늦게 "오해였다"고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제치고 최악의 말실수로 기록되는 건 지난 3월 서사하라에서 한 말이었다. 반 총장이 한 난민촌을 방문한 자리에서 모로코가 서사하라를 '점령'(occupation)하고 있다는 표현을 썼는데 이게 불씨가 됐다. 일본이 독도를 한국이 무단으로 점령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영토 문제는 각국의 이해관계가 얽힌 민감한 문제였다.

그 문제를 건드린 대가는 컸다. 모로코에서는 100만 명이 모여 유엔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유엔의 연락사무소가 폐쇄되고 직원들이 추방당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반 총장이 "발언이 신중하지 못했다"며 사과했지만 모로코 정부는 거절했다.

유엔 평화유지군의 추악한 이면... 실종된 '컨트롤타워'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2010년 6월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유엔 평화유지군을 사열하고 있다. ⓒ UN


분쟁을 억제하기 위해 유엔에서 파견하는 군대인 평화유지군(유엔군)은 긍정적인 효과가 크지만 잦은 말썽을 일으켜 온 것도 사실이다. 그중 성범죄는 유엔군을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고 있다. 특히 아프리카에서의 성범죄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2004년 콩고민주공화국에서는 유엔군이 음식을 미끼로 가난한 소녀들과 성관계를 나눈 게 문제가 됐고, 2007년 코트디부아르에서는 유엔군의 성폭행과 강도 행위가 손가락질을 받았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40여 명의 아동을 유엔군이 성폭행한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 곳곳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성범죄에 유엔은 별달리 대응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유엔의 최고 행정 책임자인 반 총장 역시 그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이티에서는 2010년 지진 발생 이후 콜레라로만 8천여 명이 사망하고 68만여 명이 감염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피해자들은 역학 조사를 근거로 감염원을 유엔군으로 지목했다.

유엔군에 대한 콜레라 감염 여부 확인 절차도 실시하지 않았고, 유엔군이 버리는 쓰레기와 오물이 인근 강으로 흘러들어 가면서 콜레라가 창궐했다는 연구 결과였다. 이후 아이티 피해자들은 손해배상 청구 집단소송을 뉴욕 연방법원에 제기했다.

피고는 반 총장과 유엔이었다. 이에 반 총장은 면책특권을 들어 책임을 피해 나갔다. 2013년 <가디언>은 "반 총장이 미셸 마텔리 아이티 대통령에게 전화로 유엔은 어떤 원고의 보상 요구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비판이 거세지자 반 총장은 2014년 아이티를 찾아 콜레라 치유를 위한 기금 마련을 약속했다.

강대국 눈치 보는 총장? 다소 억울한 면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미국의 푸들'로 표현한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의 2014년 기사 커버. ⓒ Politico.com


반 총장에게도 물론 억울한 점은 있을 듯하다. 흔히 유엔 사무총장을 일컫는 말 중에 '세상에서 가장 불가능한 직업'이란 표현이 있다. 반 총장의 임명도 사실은 강력한 인물을 원하지 않은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위키리크스에 공개된 비밀외교 전문에는 버시바우 전 주한 미국대사가 반 총장의 당선이 "미국에 유리하다"며 그가 "천성적으로 모든 것에 동조적"이라는 보고가 담겨있다. 2014년 미국의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반 총장을 "미국의 푸들"이라고까지 묘사했다. 자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사무총장을 바라온 중국의 이해관계와도 맞아떨어졌다. 반 총장은 중국이 반대하는 대만의 유엔 가입을 저지하는 임무를 완벽히 수행하며 기대에 부합했다. 

친미 성향이라는 인식 탓에 반 총장은 2012년 팔레스타인에서 시위대로부터 신발 세례를 당하는 굴욕을 맛봐야했다. 아랍에서 신발을 던지는 건 최고의 모욕으로 인식되고 있다. 2008년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이라크를 방문했을 때 이라크 기자가 부시 대통령을 향해 신발을 던진 일이 있다. 시위대가 반 총장에게 이런 치욕을 준 건 그가 이스라엘 쪽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렇다고 반 총장이 이스라엘의 편에 서왔던 것은 아니다. 반 총장은 취임 두 달 만에 팔레스타인을 방문하기도 했고, 평화정착을 위한 논의를 지속적으로 촉구해왔다. 특히 이스라엘 정착촌 확대가 평화정착에 위협이 된다고 주장해온 반 총장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도 설전을 벌이며 불편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반 총장이 유엔에서 받는 평가, 한국에서는 중요하지 않을 것"

취재진이 지난 28일 한국을 방문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오른쪽 뒷모습)을 취재하고 있다. ⓒ UN


반 총장이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활동 분야도 있다. 대표적인 건 지구온난화다. 반 총장을 최악으로까지 평가했던 <이코노미스트>마저 지난 12월 성사된 파리기후변화 협약에서는 그의 공로를 인정했다. 반 총장은 취임 첫해 유엔 사무총장으로는 처음으로 남극을 방문하는 등 지구 온난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해왔다.

다소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반 총장이지만 성소수자 문제만큼은 인권 중심의 행보를 하고 있다. 반 총장은 국제사회에서 성소수자 차별에 지속해서 반대 목소리를 내왔다. 2014년에는 유엔 직원들의 동성 결혼을 허용했다. 물론 이를 두고는 보수 기독교계의 반발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제 시선은 반 총장의 대권 행보에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30일 영국의 유력지 <텔레그래프>는 "유엔 역사상 최악의 사무총장이고 지겨울 정도로 꾸준하며 고통스러운 눌변(painfully ineloquent)이라 평가받지만, 반 총장이 한국에서는 가장 인기 있는 다음 대선 주자"라고 밝혔다. <텔레그레프>는 반 총장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전하며 "한국에서는 반 총장이 유엔에서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란 인터뷰를 함께 실었다.
#반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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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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