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입니다.

등록 2000.01.01 00:00수정 2000.02.18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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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미국의 디즈니랜드가 있는 애나하임이란 동네에 살고 있는 김미현입니다.

드디어 LA도 정확히 40분 전에 새 천년을 맞이했습니다.
KBS에서 생중계했으니 아마 여러분도 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저희 집은 프리웨이를 타고 시속 60-70마일로 40-50분 정도 달려야 LA에 도착하는 거리에 있습니다.
ABC 방송을 통해 뉴질랜드 근방의 날짜 변경선을 시작으로 각 국의 새 천년을 맞이하는 순간을 하루종일 보다가 파리와 바티칸시국을 끝으로 TV를 끄고 LA로 향했습니다. 일생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새 천년을 많은 민족과 함께 맞이하고 싶어서 저희 가족과 또 한명의 유학생 후배를 데리로 나섰습니다.

다운타운에 도착하니 빗방울이 쏟아졌습니다. LA는 사막에 세운 도시입니다. 따라서 비가 적지요. 12월 부터 3-4월까지는 간헐적으로 비가오는 우기에 해당되는데 그나마 올해는 비를 본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근데 가는 날이 장날 이라고 비가 와서 그런지 통제된 거리엔 차는 물론 사람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헐리웃엔 어떨까 해서 유명한 스타의 거리와 근방의 산 위를 돌아다녀봤지만 행사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더군요. 나름대로 행사안내 기사를 스크랩해서 다녔는데도 말입니다.
다시 LA로 돌아가 한인타운에서 저녁을 먹고 다시 다운타운으로 가봤는데 알고 보니 비 때문에 음향기기가 고장나서 2년간 준비했던 행사를 취소했다고 합니다.

LA에서 남쪽으로 조금 더 내려오면 산 페드로라는 항구가 있습니다. 그곳은 멕시코인이 많이 사는 동네인데 언덕배기로 조금 올라가면 미국 독립 2백주년 때 한국 정부가 기증한 '우정의 종각'이 있지요. 마치 보신각의 종각 같습니다. 그 산 페드로 항구에서 멕시코인이 주종을 이루는 이벤트 장에 들러 자정을 기다리는 그들의 정열적인 춤과 음악, 그리고 불꽃 놀이를 봤습니다. 밀레니엄 테러를 우려해서인지 그곳은 경비가 삼엄했습니다. 차는 한참 떨어진 곳에 주차하게 하고 행사장까지 셔틀을 타고 가게 하더군요. 행사장 입구에선 일일이 소지품 검사와 폭발물 소지 여부를 검사하고 들여보냈습니다.

우린 KBS에서 생중계한다는 우정의 종각 타종식을 보기 위해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 때가 10시 정도. 한참 리허설을 하는데 보니까 MC가 최은경 아나운서였습니다. 미국에 유학왔다더니 얼굴을 보이네요. 기술 요원들은 이곳의 사람들인데 음악 준비하면서 춤을 계속 추더군요. 그에 맞춰 관중들도 춤을 추는데 모두가 멕시코인이나 미국인이었습니다. 우리 교포들은 쭈뼛거리고 나서지 못하고요. 우정의 종각은 태평양이 치맛자락처럼 둘러쳐진 언덕배기에 있습니다. 지금 LA는 한국의 가을날 같은 기온인데 비가 온데다 밤이고 바닷가니 얼마나 추웠겠습니까. 아쉽지만 결국 11시가 되기 전에 우린 철수했습니다. 그때까지 모인 사람들이 2백여명(수십만이 사는 LA 지역의 대표적인 한인 행사인데도). 12시 상황은 여러분이 더 잘 아실 겁니다.

돌아오는 길엔 해안선을 따라 내려왔는데 정말 조용했습니다. 바닷가라 휴양지가 많았는데 모두 어디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라스베가스는 밀레니엄 특수를 겨냥해 한 때 고급 호텔 방값이 1천불(약 130여만원)까지 올랐었는데 막상 닥치고 보니 사람이 너무 없어 고객에게 '방을 무료로 주겠다'는 러브콜을 하기도 했답니다. 그러니 라스베가스에도 가지 않았다는 얘기고... 나중에 미국인의 휴가 풍속도를 한번 쓸 기회가 있겠습니다만 이번엔 정말 배신감(?)까지 느꼈습니다. 모두 가족과 함께 조용한 휴가를 보내고 있음을 발로 확인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아파트 입구에 들어설 때의 시각이 12시 정각이었습니다. 갑자기 집을 사이에 두고 동, 서쪽에서 폭죽이 터졌습니다. 동쪽의 디즈니랜드와 서쪽의 넛츠베리 팜이란 놀이공원에서 터뜨리는 것이었습니다. 작년의 경험을 통해 그런 놀이 공원에서 새해를 맞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알았지만 올해는 좀 다를 줄 알았는데 여전했네요. 집에 돌아와 TV를 보니 LA의 어디선가 행사를 하긴 했더군요. 하지만 인원은 그리 많지 않더군요. LA는 비교적 조용하고 조심스럽게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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