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 과연 사기인가?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디자인하우스)

등록 2001.01.22 18:39수정 2001.01.26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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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님의 "정직한 관객"이란 수필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광주 비엔날레 현장에서 나는 아주 정직한 관객 두 분을 만났다. 한 분은 중년의 신사로 아마도 아내와 함께 구경온 것 같았다. 그 중년의 신사가 비엔날레 전시장 나가는 문 가까이에서 이제나저제나 나올 때만 기다리던 아내의 모습이 비치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아니, 뭐 볼 게 있다고 여태껏 있는 거야. 이 따위가 무슨 예술이야, 죄다 사기지."

아마도 광주비엔날레나 현대 설치미술, 추상화 등을 보고 한두번쯤 "아 정말 난 예술을 이해 못하는 무식한 사람인가?라고 탄식해 보 지 않은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입니다. 이 책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는 그런 우리들을 절대로 무식하지 않다고 위로의 말을 던지
는 책입니다.

유홍준 님은 "정직한 관객"에서 현대예술이란 것이 일종의 사기이지만 우리가 신문의 사회면에서 보는 사기와는 다른 "애교 있는 사기"라고 보고 사기는 사기이나 예술임에는 틀림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에프라임 키숀은 이 책에서 오늘날의 난해한 미술평론 설치미술등을 "애교 있는 사기"로 보지 않고 "신문의 사회면에 나오는 사기"로 혹평하고 있는 듯합니다. 키숀이 사기임에 틀림없다고 주장하는 그림들을 몇 가지 살펴보면 그런 그의 주장이 일리가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가령 위 작품의 이름은 미국 예술가 베른하르트회케의 불후의 명작인 <그림들 사이의 공간>이며,









위 작품은 <보이지 않는 조각품>이며 한 독일박물관에서 상당히 값비싼 가격으로 구매를 했습니다.

요즘은 설치미술이나 현대미술을 일반인들도 많이 접해서 "변기"를 전시해 놓고서 "예술작품"이라고 주장해도 우리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감상해야만 하는 의무 같은 것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 그런 것들이 비싼 값으로 팔리는 것을 참 우습다라고 공공연히 말할 만한 용기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그러나 저자는 이 책에서 과감히 그것은 위대한 예술이 아니고 위대한 "구매"라고 주장합니다. 즉 그 예술가가 한 일이란 그 변기를 가게에서 "산"것 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그 구매행위를 예술행위로 볼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사기라고 비난하고 있는 것은 비단 현대예술뿐 아니라 난해한 현대미술비평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음은 현대미술비평의 한 대목인데 무엇을 보고 비평한 것인지 한번 알아맞춰 보기 바랍니다.

문제1번)자기 도취적으로 끓어오르는 힘의 유희가 만들어 낸 팽창하는 부드러운 구조.
문제2번)시대를 초월한 변용으로 인해 우주적으로 상승하는 세포
문제3번)멜로디의 과잉에 대한 시각적 거리로서 스케치된 흔들리는 진테제.

정답)

1번 왼쪽 모서리에 있는 갈색의 얼룩
2번 무(無)
3번 뒷면에 작가의 사인이 있는 텅 빈 캔버스

그뿐 아니라 난해하기 짝이 없는 현대 미술 비평의 부조리를 보여주는 아주 멋진 예가 있는 돼요.

한 텔레비전 몰래카메라에서 기분이 좋아 보이는 침팬지가 물감으로 뭔가를 열심히 그린 것을 <제3세계에서 온 젊은 미개인>이라는 전시회에 출품했는데 놀랍게도 높은 수준의 교양을 갖춘 관람객들과 예술 전문가들은 최대의 찬사를 사용하면서 이 기발한 예술 작품들을 칭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더군요.

함부르크 미술관 관장은 이 작품을 보고 그의 해박한(?) 미술지식과 전문가적인 감식안으로 이 작품(?)을 이렇게 평가했다고 합니다.

나는 이 그림들에 에서 젊음의 신선함과 패기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이 그림의 작가는 최소한의 도구, 단지 네 가지의 색만을 갖고 작업을 하고 있다. 노란 색-초록색-노란 색-초록색, 그리고 처음엔 파란색만을 쓰다가 대칭을 맞추기 위해 위와 아래에 빨간 색을 칠했다. 완벽하다.

우리가 현대 예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스스로를 "무식하다"라고 한탄할 필요도 없고 에프라임 키숀이 물론 이렇게 주장하고 있더라도 우리는 현대예술 전체를 사기다라고 폄하할 수는 없습니다.

소설 <장길산>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주 가난한 한 한량이 배는 고프고 먹고 살 일이 막막해서 어느 부잣집에서 병풍에 좋은
글을 적어줄 문인을 찾는다는 소문을 듣고 당대의 위대한 문인 행세를 하게 됩니다.

물론 극진한 대우를 받았지요. 하지만 병풍에 글을 적어줄 그려줄 기한은 다가오고 물론 그 한량은 천자문도 깨우치지 못한 무식한 사람이었지요.

한동안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그 한량은 죽을 힘을 다해 최고급임에 틀림없을 빈 병풍에 한 일자를 큼지막하게 쓴 후에 자결을 하게 됩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요. 그 병풍 전체에 쓰여진 한 일자는 그 자가 쓸 수 있는 유일한 한자였을 겁니다.

그런데 후대에 유명한 서예가가 그 글씨를 보니 아주 잘 쓴 훌륭한 명필이란 것이지요. 그러고 보면 예술이란 것이 꼭 보기에 좋고 이해하기 쉬운 것만이 좋은 예술품이다라고는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는 이러한 작가의 혼도 기교도 없는 현대예술은 당연히 추방되어야 하며, "신문지상에 나오는" 사기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고 말합니다.

유홍준님이 말한 것처럼 "정서함양에 유익한", "애교 있는 사기"와 이런 어처구니 없는 "사기"는 분명히 구별되어야 함은 틀림없는 과제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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