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사람 좋아하면 바람둥이?

여러 연예인 좋아하는 아이와 한 사람만 좋아하는 아이

등록 2001.04.06 12:55수정 2001.04.06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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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누나 유승준 나왔어."
"큰 누나 유지태 나왔어."
"큰 누나 원빈 나왔어."

여섯 살인 막내는 텔레비전을 보다가 누나들이 좋아하는 연예인이 나오면 꼭 알려주곤 한다. 그런데 부르는 것은 거의가 큰 누나이고 작은 누나를 부르는 일은 드물다. 큰 아이는 좋아하는 연예인이 많은데 작은 아이는 좋아하는 연예인이 GOD의 윤계상뿐이다.

큰 아이는 한창 인기가 좋은 남자 연예인 거의 모두를 좋아한다. 그래서 거의 모든 광고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을 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작은 아이는 오직 한 사람만 좋아하니 윤계상이 나오는 광고는 한두 정도에 불과하고 그 횟수도 많지 않으므로 가요 프로그램이나 GOD의 육아일기 같은 프로그램이 아니면 아니면 보기가 힘들다.

큰 아이에게 그 연예인들이 어디가 좋냐고 물어보면 유승준은 눈빛, 유지태는 부드러움, 원빈은 잘생김 등등 그들의 매력을 꼽는다. 내가 여기서 꼽은 것은 대표로 셋이지만 사실 큰 아이가 좋아하는 연예인은 열명 가량 되고 앞으로도 꾸준히 늘어날 것 같다. 큰 아이는 그들 모두 그들만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작은 아이는 오직 윤계상이다. 윤계상을 좋아한 지가 일 년을 훌쩍 넘었는데 아직도 변함이 없다. 그런 둘째가 얼마 전 스타들의 데뷔 전 모습을 올려놓은 홈페이지에서 윤계상의 고등학교 시절의 사진을 보고 실망했던 적이 있었다. 스타들은 자신의 개성을 돋보이게 하려고 외모를 가꾸는데 많은 시간을 들인다고 알고 있다. 그렇게 다듬어진 모습만 보다가, 다듬어지지 않은 평범한 모습을 보고 둘째 아이는 실망이 큰 것 같았다. 이제 윤계상의 시대는 끝났구나 했는데 웬걸 한 이틀이 지나니 그래도 윤계상이 좋다고 했다.

그래서 그 사진을 보고 실망하지 않았느냐고 했더니 둘째는 '과거가 중요한 게 아니라 현재가 중요하다'고 했다. 나는 놀라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나는 둘째 아이가 윤계상만 좋아하는 것이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함께 텔레비전을 볼 때 피곤하기 때문이다. 큰 아이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항상 즐겁고 행복한 얼굴인데 둘째 아이는 윤계상이 나올 때가 아니면 좋은 얼굴을 별로 하지 않는다.

나는 두 아이를 보면서 춘향이의 일편단심을 미덕으로 생각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태어난다. 그리고 모두 자신만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나는 아무 매력도 없어'라고 하는 사람은 그 겸손함이 매력일 것이다. 그런데 오직 한 사람만을 좋아하고 그 사람이 아니라면 모두 싫다는 생각을 한다면 다른 사람의 장점은 봐 줄 수도 인정할 수 없게 된다.

세상에는 저마다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사람들이 넘친다. 그 제각기 다른 매력들을 모두 취하고 싶어서 바람둥이가 되었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나는 바람둥이가 되라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을 인정할 줄 알았으면 하는 것이다. 물론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는 그런 다양성을 인정하라고는 하지 못한다. 상대방의 어떤 단점도 예뻐 보이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예인을 좋아하면서 이 사람만 좋고 이 사람이 아닌 사람은 모두 싫다는 것은 너무 편협한 시각을 가지게 되는 것 같아서 싫다.

인터넷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이 아니면 험담을 하고 욕설을 하는 글들을 많이 보게 된다. 꼭 비난 받아야 할 문제가 아닌데도 그냥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소한 것에도 욕설을 서슴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의 한 면만을 보고 쉽게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구분을 해 버리곤 한다.

그러나 세상에는 나쁜 사람들보다 좋은 사람들이 훨씬 많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쁘다고 생각한 사람도 알고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내가 어렸을 잘 데리고 놀았던 친척 동생이 있는데 그 아이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잘 안했다. 그래서 그 아이는 어른들에게 꾸중을 많이 들었다. 그 아이는 어른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먼저 아는 체를 안했다. 나는 그 아이가 나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다른 아이들은 그 아이가 거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항상 뒤에서 흉을 보고 따돌렸다. 나는 그 아이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다른 아이들과 잘 지내도록 얘기를 해도 듣지를 않았다. 하지만 밝고 싹싹한 성격의 그 아이는 나를 잘 따랐고 내가 하는 것은 뭐든지 잘 도와 주곤 했다.

지금 그 아이도 어른이 되었는데 여전히 인사를 잘 안한다. 작년 쯤 십여년만에 처음 만났는데 그 애는 나를 보고도 모른척 지나가려 했다. 내가 먼저 아는 체를 하자 그제야 예전처럼 다정하게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애가 왜 그렇게 사람들을 피하게 되었는지 얼마전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어려서 그 애의 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가족들을 심하게 때렸다는 것이다. 그 애의 집은 우리 동네에 있긴 했지만 마을과 좀 떨어져 있어서 아무도 그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 애는 항상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다보니 사람들을 두려워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애뿐만이 아니라 그 가족들 모두가 사람들을 보면 피하곤 했는데 사람들은 모두 그 가족들이 거만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라고 생각했다. 그 말을 듣고나니 그 애의 행동이 이해가 되었다. 어려서도 항상 어른들만 보면 뒤로 숨곤 했던 것이 두려움 때문이었다는 것을 그때서야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눈에 보이는 것 뒤에는 남모를 것들이 숨겨진 경우도 많다. 그 때 만약 다른 사람들이 먼저 아는 체를 하기만 했어도, 그 아이가 사실은 밝고 상냥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한 가지 면만을 보고 그 아이를 평가하였고, 그 아이를 소외시키고 말았던 것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다 좋아할 수는 없지만 따뜻한 시선을 가지고 있기만 하다면 더 많은 사람들의 장점을 발견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 아이들이 연예인들을 좋아하는 것에서 나는 아이들의 마음의 깊이를 재어본다. 나는 일편단심 한 사람을 좋아하는 작은 아이보다 바람둥이 같아도 여러 사람을 좋아하는 큰 아이가 더 좋다. 그것은 많은 사람을 좋아하고, 한사람만을 좋아하는 것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얼마나 열려 있고,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따뜻한가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일편단심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다양한 것을 볼 줄 알고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 내게는 훨씬 좋아보여서다. 세상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제각기 다른 개성들을 가지고 사는데 오직 한 사람이나, 한 가지의 기준으로 편가름 당한다면 억울한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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