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왜 조폭경찰 안 잡아가요?

등록 2001.04.16 12:12수정 2001.04.16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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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토요일 오후 아이들과 서울의 언니집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회사에서 돌아온 남편은 길이 막히니 전철을 타고 가라고 당부를 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전철역은 부평 대우 자동차 옆의 부평구청역이다. 길거리는 이상하게도 차가 많이 밀렸다.

대우자동차 남문쪽의 사거리에는 교통경찰이 나와서 교통정리를 하고 있었다. 횡단보도 앞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신호가 바뀌지 않았다. 신호등을 꺼둔 것 같았다. 할 수 없이 눈치껏 무단횡단을 했다.

대우 자동차 남문앞을 지나는데 굳게 닫힌 문 안쪽에 못보던 컨테이너 박스들이 쌓여 있었다. 요즘 이사 준비로 바빠서 뉴스를 주의깊게 보지 못했는데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궁금증이 일었다.

대우 자동차 앞을 늘 지키고 섰던 경찰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길거리에도 경찰들은 보이지 않았다. 항상 지키고 섰던 경찰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안심할 만한 일인데 이상하게도 폭풍전야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부평경찰서 정문쪽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모두 취재 수첩이나 카메라를 든 기자들이었다. 경찰서 안쪽을 흘깃 보니 진압경찰들이 어쩐 일인지 경찰서 앞마당에 줄지어 서 있었다. 정문 앞을 지나는데 누군가 위험하니 빨리 지나가라고 재촉을 한다. 아이들을 데리고 서둘러 사람들 틈으로 걸음을 재촉하는데 부평역쪽에서 시위대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피켓과 뭔가 사진같은 것을 들긴 했는데 콘택트 렌즈를 안하고 나왔던 터라 알아볼 수가 없었다. 경찰서 옆의 백마파출소 앞을 지나는데 몇몇 사람들이 그 앞에서 "조폭 경찰은 물러가라"고 소리쳤다.

그제서야 언뜻 뉴스에서 노동자들이 폭행을 당하던 모습을 스쳐보았던 기억이 났다. 심각한 일이었는데도 나는 그것을 내 사소한 일상의 일들에 묻혀 소홀히 보았다.

점점 많이 몰려오는 시위대를 피해 서둘러 전철역으로 걸었다. 전철역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시위대를 구경하고 있었다. 우리도 그 자리에 서서 시위대를 보았다. 시위대 속에는 아이들이나 할아버지들도 눈에 띄었다.

고통을 받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직접보니 가슴이 저리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때 아이들이 물었다.
"엄마 조폭 경찰이 뭐예요."

아이들은 시위대의 외침과 들고 있는 피켓에서 발견한 조폭 경찰이란 생소한 단어가 궁금했나 보았다. 나는 당혹스러웠다. 경찰이란 사람들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직업으로 배웠고 그렇게 알고 있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서였다.

그렇지만 이내 왜곡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설명을 하기로 했다.
"그건 조직폭력배처럼 사람들을 때리는 경찰이 있어서 그렇게 말한 거야."
"그럼 왜 경찰들은 조폭경찰들을 안 잡아가요?"
나는 아이들의 말에 실소를 터트리다가 이내 마음이 착잡해졌다.

되풀이해서 묻는 아이들에게 조폭 경찰이라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때린 경찰은 조직폭력배나 다름없다고 그렇게 부르는 것이라고 설명을 해주는데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혹시 이제부터 아이들은 '경찰'하면 먼저 '조폭 경찰'이란 말과 경찰에게 얻어맞아 피투성이가 되었던 사람들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전철을 타고 가면서 아이들은 나에게 끝없이 질문을 했다. 대우자동차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 김우중이란 사람이 잘못하여 그런 것은 아닌지,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해고 되었는지, 해고된 기준은 무엇인지... 나는 아이들의 질문에 속속들이 시원한 대답을 해주지 못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대강의 줄거리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대우 자동차 옆에서 살면서도 내가 관계된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깊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내 무심함이 속속들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집에 가서 자세히 설명을 해주겠노라고 약속을 했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집에 돌아가면 즉시 관련된 기사들을 검색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9시 15분 경에 언니집에 도착을 했다. 아이들은 들어서자 마자 뉴스를 보겠다며 달려간다. 그러나 시위에 관련된 기사는 나오지 않았다. 나는 지나갔을 거라고 아이들을 달랬다. 아이들은 아쉬운 기색이었다.

다음날 집으로 돌아오면서 보니 거리는 평상시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부평경찰서 앞마당엔 여전히 경찰들이 줄지어 앉아 있었지만 토요일처럼 방패를 들지도 않았고, 긴장도 풀린 모습이었다. 장난을 치는 몇몇 경찰들도 보였다. 대우자동차 앞에도 경찰들이 서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문은 여전히 굳게 닫혀있고, 문 안쪽의 콘테이너 박스도 그대로였다.

아이들은 장난을 하며 무심히 지나던 길을 유심히 살폈고 작은 변화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 집에 돌아온 아이들은 일기를 쓰면서 몇 번씩 여러 가지 질문들을 했다. 아이들의 일기는 대우자동차와 관련된 내용이 대부분일 것이고, 아마도 '조폭 경찰'이란 말도 들어 있을 것이다.

경찰은 아이들에게 정의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 경찰들이 정의와는 반대되는 조폭으로 표현되고 말았다. 혹시라도 아이들에게서 정의가 없다는 말을 듣게 되지는 않을까 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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