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은 싸우고 아이들은 사이좋게 놀고

아이들이 새로 사귄 친구의 아버지는

등록 2001.04.18 11:37수정 2001.04.18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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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놈 성질이 못돼서 동네에서 안 싸운 사람이 없단다."
"아무리 성질이 못됐어도 그렇게 억지를 쓰면 안되죠."

아버지는 전화하는 내내 화가 나셔서 어쩔줄을 모르셨다. 우리가 관리하던 친척집 밭 아래의 논 주인이 얼마전 논둑을 만든다며 포크레인을 불렀단다. 한 이틀 수선을 떨더니 밭위로 흙을 쌓아 올리고 자기네 논둑이라고 우긴다고 했다.

어머니의 건강이 좋지 못하여 올해부터는 다른 집에서 그 밭을 관리하기로 했는데 그런 일이 생긴 것이다. 지금껏 관리한 사람으로서 일을 제대로 바로잡고 넘겨주어야 할 것이기에 아버지는 골치가 아프신가 보았다. 벌써 보름이 넘게 그 문제로 속을 썩이고 계시는 것이었다.

그 논 임자는 사십대 초반의 젊은 사람인데 성질이 사나워 동네사람들도 섣불리 건드리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몇 년 전에는 사소한 문제로 기분이 상했던지 우리 밭으로 가는 길을 막아놓아, 아버지께서 한동안 멀리 돌아서 다니시기도 했다. 아버지도 그리 녹록한 성격은 아니셨지만 연세가 드시고 나니 젊은 사람들에게 쉽게 밀리고 마신다. 젊은 사람들이 힘을 내세우며 눈부라리고 달려드는데야 노인이신 아버지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때는 어머니께서 사정하여 겨우 길을 터 주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문제가 그리 쉽게 마무리 될 것 같지 않다고 했다. 밤에 아버지께 찾아와 밭의 흙이 자기네 논으로 흘러 들어왔다고 억지를 쓰며 소리를 지르더라고 했다. 아버지 혼자서는 안될 것 같아 밭 주인인 친척에게 연락을 해놓았다고 하셨다.

통화를 끝내고 심란하게 앉아 있는데 큰 아이가 편지 봉투를 들고와서 지난 번 시골에서 사귄 친구에게 편지를 한다며 주소를 가르쳐 달라고 했다.

아이가 새로 사귄 친구의 아버지는 그 논 주인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며 아이를 쳐다보았다. 아이는 내 안색이 그리 좋지 못하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입을 삐죽거리며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순간 어른들의 문제로 아이들까지 떼어놓아야 하는지 갈등이 생겼다. 하지만 그 아이들이 우리 아이들과 함께 논다는 생각에 이르러서는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아 새삼 아이를 불러 주소를 가르쳐 주지는 않기로 했다. 그 후 아이도 주소를 묻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 후 우편함에서 반송된 우편물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이는 자기가 알고 있는 그 곳의 지명들을 나열해 주소를 만들어 편지를 보냈던 것이다. 시골이라 아이가 적은 주소만으로도 그럭저럭 주인을 찾아갈 수 있었을 것이지만, 우표를 붙이지 않아 되돌아 온 것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말았다. 그리고 내가 옹졸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들의 잘못으로 아이들까지 한 무더기로 싸잡아 매도한다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렸을 때 부모님과 이웃집이 그리 사이가 좋지 못했던 적이 있었다. 그 집이 우리 집에서 빌려간 돈을 몇 년이 지나도 돌려주지 않아서 생긴 일이었다. 어른들이야 어떻든 아이들은 항상 붙어서 놀았다. 그러던 어느날 그 집 아이와 놀다가 심술이 난 내가 그 아이에게 돈을 갚으라고 했던 적이 있었다. 아마 밥상머리에서 부모님이 나누시던 말씀을 듣고 한 얘기였을 것이다.

그때 나는 어머니께 많이 혼이 났다. 어른들의 문제는 어른들이 알아서 할 일이니 아이들이 그런 말을 해서는 안된다고 하셨다. 나는 그때 어렸지만 많이 부끄러웠다는 기억이 난다. 그때 어머니는 내게 정말 어른다운 어른으로 보였었다.

나는 내가 큰 아이에게 썩 어른답지 못한 행동을 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그 아이의 주소를 가르쳐 주고 반드시 우표를 붙이고 편지를 부치라고 당부를 하였다. 아이는 내 태도가 변한 것을 의아해 하면서도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며칠 전 어머니를 뵈러 시골로 내려갔는데 아이들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그 친구네 집쪽으로 달려갔다. 나는 그 집을 보자 그애 아버지 생각이 나서 기분이 불쾌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과 그 집의 아이들은 붙어서 떨어질 줄 몰랐다. 우리 아이들과 학년들이 같아서 마음이 잘 통하는 것 같았다. 그 아이들은 심성이 곱고 행동도 예의가 발랐다. 그 아이들은 할머니께서 돌봐 주신다고 했다. 엄마는 작은 아이를 낳은 직후 집을 나갔다고 했다. 그래서 작은 아이는 엄마의 얼굴도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얼굴에는 어두운 기색은 찾아 볼 수도 없었다.

동네 사람들의 말로는 아이들의 엄마가 집을 나간 것이 아버지의 성격 때문이었다고 했다. 그 아이들의 엄마는 그나마 성격이 무던하여 꽤 오래 참고 견딘 것이라고 덧붙였다.

동네에는 그 사람과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들이 많아 어느 정도 과장되었을 수도 있지만, 사실에 가까울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그리 고운 심성을 간직하며 자랄 수 있을까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볼수록 선해 보이는 그 아이들이 마음에 들었다. 가지고 간 카메라로 동네 여기 저기 꽃 핀 곳을 찾아다니며 우리 아이들과 함께 세우고 사진을 찍어 주었다.

아이들을 집으로 불러들여 간식을 주고나서는 밭 위로 올려놓았다는 흙더미를 직접 보려고 혼자 밭으로 나가 보았다. 밭 가로 두둑하게 쌓아놓은 흙더미 위로 벌써 길이 생겨 있었다. 그 흙더미 위에 난 길은 발자국으로 제법 다져져 있었다. 흙을 치워줄 생각은 아예 없는 것 같았다.

논 주인을 생각하기만 하면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졌다. 생각할수록 기분이 나빴지만, 되지도 않는 억지만 쓰고 있다는 사람에게 내가 뭐라고 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일도 없을 것이었다.

아버지께도 괜히 나서시다가 봉변 당하지 마시고 밭 주인이 올 때까지 그냥 계시라고 했다. 아버지도 논주인과 대면하는 일이 두려우셨던지 그러마고 하셨다.

다음날 집으로 돌아오려는데 그 집 아이들이 달려나와 손을 흔들었다. 우리 아이들도 여름방학때 만나자며 헤어지는 것이 못내 아쉬운 듯 손을 흔들었다. 아이들을 따라 나도 무심결에 손을 흔들어 주다가 그 애 아버지가 떠올라 언뜻 손이 움츠려 들었다. 하지만 이내 다시 손을 활짝 펴서 흔들어 주었다. 그 아이들은 차가 산 굽이를 돌 때까지 손을 흔들고 서 있었다.

우리 아이들은 산에 가려 그 아이들이 보이지 않게 되자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 여름방학이 너무 기다려진다."
나는 그런 아이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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