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얼마나 천천히 걸을 수 있나요?

천천히 걷는 것은 여유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등록 2001.04.19 13:34수정 2001.04.21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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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단지에 하얗게 벚꽃이 피나 싶더니 어느덧 지고 있다. 벚꽃잎이 눈처럼 휘날리는 것을 보니 꽃잎이 참 빨리도 지는구나 싶다.

빨리 피고 빨리 지는 것이 벚꽃만은 아니다. 컴퓨터도 가전제품도 신제품이 나오기 바쁘게 구형이 되어 버린다. 자동차도 빨라야 하고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시간들도 빨라야 한다. 빠르지 않으면 도태되고 말 것 같은 조급함이 인다. 모든 것에서 속도감을 느끼게 되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서는 느림이 죄악처럼 느껴진다.

나도 아이들을 자주 재촉한다. 물론 아이들이 생각 이상으로 시간을 낭비해서긴 하지만 어떤 때는 습관처럼 빨리빨리를 외친다. 그렇게 재촉을 할 때는 머리속이 터질 듯하다. 작은 틈도 용납이 안된다.

그렇게 시간에 쫓김을 당하며 긴장되어 있던 어느 순간, 햇살 한 줄기가 어둠속으로 비쳐들 듯이 옛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초등학교 6학년때였다. 그 시절의 가을 운동회는 아이들보다 어른들의 축제 같았다. 동네마다 어른들이 모두 바쁜 일손들을 제치고 한껏 차려입고 운동회에 왔다.

그때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청군 백군이 아니라 동네별로 시합을 하였는데 우리 동네는 해마다 우승기를 차지했다. 하지만 그 해에는 선수가 없었다. 거의 모든 종목에서 우리 동네는 꼴찌를 하고 말았다.
기가 죽어 응원을 할 기운도 나지 않았다. 풀이 죽은 아이들은 땅바닥에 낙서를 하고 응원을 지휘하던 아이도 흥이 나지 않던지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런데 운동회가 거의 끝나 갈 무렵, 어른들의 경기에서 우리 마을이 우승을 하였고, 그 경기로 우리는 우리 마을이 꼴찌를 하였음에도 웃으면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경기에서 우승을 한 사람은 큰아버지셨다. 내겐 큰아버지가 모두 세 분이신데 그 중에서도 제일 위 큰아버지셨다. 나는 우선 그 큰아버지께서 운동회에 참가하셨다는 것만으로도 인상이 깊은 운동회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큰아버지께서 운동회에 오신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자식들이 학교에 다닐 때도 안 오시던 분이 그 해에는 어쩐 일인지 운동회에 오셨다.

큰아버지는 마을에서도 주변에서도 가장 오랫동안 상투를 틀고, 갓을 쓰시고 두루마기를 차려입고 사셨던 분이셨다. 어디를 가셔도 느긋하게 천천히 걸어다니셨고, 말씀이 거의 없으셔서 큰아버지의 목소리가 어떤지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정도였다.

큰 아버지께서 참가한 경기의 이름은 '천천히 걷기'였다. 방송에서 경기 이름을 듣고 사람들은 너도 나도 경기에 참가하겠다고 나섰다. 빨리 뛰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천천히 걷기만 하면 되는 것인데 뭐가 어렵냐고 하면서 말이다.

규칙은 천천히 걷되 멈추어서는 안되고 되돌아와도 안된다는 것이었다. 구간은 백미터였다. 더 먼 거리면 아마 경기의 성격상 밤을 새워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처음보는 경기라 모두 흥미있어 했다. 경기가 시작되자 사람들은 나름대로 천천히 걸으려고 애를 썼다. 그런데 시작하자마자 이미 어떤 사람은 저만치 앞서서 걷고 있었다. 평생 빨리하는 것에 물들어 있던 사람들에게는 속도를 늦추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 것 같았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발이 왜 그리 빨리 가는지 이해가 안되는지 연신 고개를 흔들었고, 천천히 걷는 것이 답답했던지 중반쯤에선 냅다 달리는 사람도 있었다. 달리기를 하면 모두 앞을 보며 달리는데 이 사람들은 뒤를 보며 걸었다. 뒤에 오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는지 자신의 등수가 어떻게 되는지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별 차이가 나지 않는 듯하더니 중반도 되지 않아서 우승은 거의 확실해졌다. 큰아버지는 갓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으신 모습으로 뒷짐을 지고 한 발 한 발 천천히 옮기셨다. 그것은 큰아버지의 평상시의 모습이셨다.

큰아버지께서 중간쯤에 오셨을 때는 이미 모든 사람들이 결승점에 들어와 있었다. 그때부터는 달려 들어와도 우승이었다. 하지만 변함없는 걸음으로 그 거리를 걸으셨다. 기다리던 사람들은 천천히 걷지 않으셔도 된다고 소리를 쳤지만 큰아버지는 들은 척도 않으셨다. 넓은 운동장에 큰아버지 혼자 천천히 걷고 계셨다. 재촉을 하던 사람들도 나중에는 조용히 그 걸음을 보고 있었다.

운동장 전체가 고요해진 것 같은 시간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어쩜 그리도 여유롭던지 부러운 마음이 들던 순간이었다. 그 걸음에 깃든 여유는 큰아버지의 마음 그 자체인 것 같았고, 운동장 전체가 큰아버지의 마음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 경기에서 큰아버지는 당연히 우승을 하셨지만, 우리 동네는 운동회에서 꼴찌를 하였다. 하지만 전혀 속상하지 않았다. 꼴찌를 하였어도 큰아버지의 여유를 얼마쯤 얻어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큰아버지께서 우승을 한 것도 우리가 그때껏 했던 경기의 관점에서 보면 꼴찌였던 것이다. 속도를 내서 이기는 것만이 우승은 아니라 어디에 기준을 두는가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결정된다는 큰 진리를 깨닫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오래도록 그 일을 얘기하곤 했다.

몇 년 전 큰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까지 큰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은 기억이 많지 않다. 말씀 한 마디도 오래도록 묵혀서 내놓으시고 걸음도 여전히 그렇게 여유로우셨다. 그래서인지 큰아버지의 무덤옆에 서 있으면 이상하게도 햇살이 그 곳에서만 오래 머무르는 듯하고 세상은 천천히 흘러가는 것 같다.

속도감으로 세상이 핑핑 도는 듯한 느낌이 드는 요즘이다. 세상의 속도에 휘둘려 빨리빨리 쫓아가기보다 느긋하게 뒤처져 보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빨리 가면서 보지 못하던 것들을 천천히 가면 자세히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앞서는 것만이 이기는 것은 아니다. 천천히 가는 것은 마음속에 여유를 가지고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그러므로 천천히 가지 못하는 것이 지는 일일 수도 있다.

봄 햇살이 참 좋다. 나도 아이들과 흩날리는 벚꽃잎 속으로 천천히 걸어봐야겠다. 내가 얼마나 천천히 걸을 수 있는지 내 마음 속에는 얼마만큼의 여유가 남아 있는지 짚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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