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학에 새 살, 새 기운이 돋는다

다시 보는 2001년 '한국문학 아홉 장면'

등록 2001.12.27 16:28수정 2002.01.02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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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고사(枯死)할 것이다'는 성급한 21세기의 예언은 빗나갔다. 민영(시인)과 김원일(소설가), 이성부(시인) 등 원로들은 회갑을 넘기거나 가까운 나이임에도 의욕적으로 신작들을 독자들에게 선보였고, 김연수(소설가)와 오수연(소설가) 등 신진들의 문학적 각개약진도 두드러졌다.

문학 내적인 것은 물론 외적인 논란과 논쟁에도 문인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함으로써 '문인=지식인=여론 주도자'라는 등식이 한국사회에선 여전히 유효함을 입증하기도 했다.

고은(시인)과 서정주(시인, 타계)의 제자들이 주도했던 '미당 공과논쟁'이 그러했고, '언론사 세무조사'를 둘러싸고 벌인 이문열(소설가)과 추미애(민주당 국회의원)의 설전과 이어진 추미애의 취중 막말, 이런 일련의 상황을 소설로 쓴 이문열의 <술단지와 잔을 끌어당기며>도 세간의 뜨거운 관심을 끌었다.

김지하(시인)는 <실천문학> 여름호를 통해 91년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에 대해 유감을 공식표명했고, 이를 둘러싸고 오간 "이제 됐다" "모자란다" 등의 설왕설래도 폭염의 날씨만큼이나 뜨거웠다.

지난 1년간 오마이뉴스에 소개된 문학과 문인관련 기사를 정리해 '다시 보는 2001년 한국문학 아홉 장면'으로 묶어본다.

# 1 노병들의 저력-창작은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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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현기영 ⓒ자료사진
올 1월 신경림과 현기영을 인터뷰했다. 66세와 61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구, 문학에 대한 그들의 열정은 여느 젊은 작가 못지 않았다. "요새 시가 너무 잘 써져서 걱정이다"며 미소 짓는 신경림의 얼굴과 "디지털 시대에도 문학의 중요성은 여전하다"는 현기영의 말에서 문학의 미래를 비관하며 떠도는 풍문과는 관계없이 한국문학에 대한 넉넉한 낙관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낙관은 12월까지 이어졌다. 그들 역시 노병의 범주에 포함되는 송기숙과 정희성도 "새로운 시대가 왔다지만 지난 시대와 마찬가지로 작가에게 역사의식은 여전히 중요하고, 새로운 시대에 적응할 새로운 문학적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며, 늙은 몸에서 끓고 있는 젊은 창작욕을 과시했다. 그들이 한국문학의 버팀목으로 자리하는 동안 독자들은 '문학을 통한 세계변혁의 가능성'을 믿어도 될 듯하다.

# 2 소장 비평가들, 문학권력을 향해 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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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 이명원 ⓒ자료사진
서울대 김윤식 교수의 가라타니 고진 저작 표절혐의 제기로 다니던 대학을 자퇴한 평론가 이명원과 소장 비평가 그룹의 홍기돈, 고명철은 그들이 참여하고 있는 잡지 <비평과 전망>을 통해 한국의 3대 메이저 문예지인 <창작과비평> <문학과사회> <문학동네>를 문학권력으로 규정하고, 이를 향해 십자포화를 날렸다.

'문학권력이 실재한다', '상징적 의미일 뿐이다'는 논란과 논쟁은 1년 내내 이어졌다. 동덕여대 교수이자 문학평론가인 권성우와 <문학동네> 진영의 평론가 남진우의 설전은 감정싸움으로 치닫는 양상까지 보여 이를 지켜보는 독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최근에는 '공격적 글쓰기'로 이름이 높은 <인물과 사상>의 강준만도 이 논쟁에 가세해 판을 가열시키는 형국이다. 그런 이유로 '문학권력 논쟁'은 해를 넘겨 내년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 3 작가회의 이사장, 이문구에서 현기영으로

지난 2월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이자 <관촌수필>의 작가인 이문구가 위와 담낭을 모두 절제하는 대수술을 받았다. 그는 '건강상의 이유로 이사장직을 수행하기 어렵다'며 사임을 표명했고, 정희성 대행체제로 한 달여를 끌어가던 작가회의는 3월 <순이 삼촌>의 현기영을 새 이사장으로 맞았다.

잡음도 없지 않았다. 내정자 자격으로 인터뷰한 기사가 마치 이사장 인터뷰인 양 한 일간지에 실렸고, 이에 대해 현기영이 직접 문제를 제기하며 오마이뉴스와 한겨레신문을 통해 일련의 상황을 해명하는 일이 벌어진 것. 이후 현기영은 김지하와 젊은 작가들의 화해를 주도하고, '박정희기념관 건립반대 문인 1인 시위'를 조직해내는 등 적극적인 사회참여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 4 스승 서정주에 대한 제자 조정래의 단호한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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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조정래 ⓒ자료사진
"미당은 우리 부부의 스승이지만, 이광수처럼 수십 년을 비판받아 마땅하다." 올 봄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와의 인터뷰 중에 들은 말이다. 그의 '미당 비판'은 단호했다. 서정주는 조정래 김초혜 부부의 결혼식 주례까지 선 사람임에도. 그 역시 미당의 애제자였던 고은도 <창작과비평> 여름호를 통해 입을 열었다. '미당의 몰역사성은 심각한 수준'이고, '그의 시세계 또한 과도하게 평가되었다'는 신랄한 비판.

서정주의 시를 흠모하는 제자그룹은 역비판의 화살을 날렸다. 문정희와 이근배, 이남호 등은 '스승에 대한 부관참시다' '봉황의 높은 뜻을 뱁새가 몰랐기를 바랄 따름이다' '죽은 뒤에 돌을 던진다고 보석처럼 좋은 시가 깨어질 리 없다'는 말로 미당을 옹호했고, 동시에 고은을 힐난했다. 이어 가을에는 '미당문학상' 제정과 제정반대 논란까지. 살아서도 그랬지만 죽어서까지 서정주는 한국문학의 어쩌지 못할 '화두'임은 분명해 보인다.

# 5 박정희와 김지하, 2001년 서울시청에서 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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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지하 ⓒ자료사진
"더 이상 오욕의 역사를 반복할 수 없다"는 성명서를 발표하며 작가회의 소속 작가들이 '박정희기념관 건립 국고지원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김지하와 현기영, 이경자와 김영현 등이 4월30일부터 4일간 서울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인 것. 한 시간 내내 땡볕에 서 있어야 하는 현기영을 격려하러온 시인 이승철은 "죽은 박정희가 산 현기영을 또 고문하네"라는 웃을 수만은 없는 뼈있는 농담을 던지기도.

마지막 날 1인 시위자로 참석한 김지하는 "부모까지 잡아다 고문한 박정희지만 다 용서했다. 그러나 그를 기념하거나, 기억할 필요까지 있는가"라는 말을 전하며 쓸쓸하게 웃었다. 이전 시위자와는 다르게 전경버스 5~6대가 서울시청 정문을 둘러싸는 것을 보며 '박정희 기념관 반대 국민연대' 이관복 상임대표도 "아직도 김지하가 무섭긴 무서운 모양"이라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이날 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장인 소설가 김영현은 "이번 1인 시위를 계기로 작가들의 사회참여를 가속화시킬 것"이라는 계획을 천명하기도 했다. 시위 참석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김지하는 <실천문학> 여름호를 통해 91년 조선일보 기고문에 대한 사과와 유감의 뜻을 10년만에 밝혔다.

# 6 노동소설 작가들, 그들은 여전히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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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화진 ⓒ자료사진
유난히 무더웠던 2001년 여름. 열기 오르는 아스팔트를 걸어다니며 <쇳물처럼>의 정화진, <우리 억센 주먹>의 이인휘, <천만개의 불꽃으로 타올라라>의 정도상을 만났다. 시대가 변했다지만, 삶과 문학을 대하는 그들의 성실하고 뜨거운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정화진은 인천에서 하나에 500원짜리 액세서리를 팔며, 이인휘는 <삶이 보이는 창>이란 가난한 잡지에 매달려, 정도상은 '문익환 목사 기념사업회'의 실무를 맡아 다들 말 그대로 '열심히' 살고 있었다.

보아주는 사람 하나 없어도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자하는 그들의 자세는 '산다는 것의 아름다움을 뛰어넘는 문학은 없다'는 명제를 다시금 떠올리게 했고, 동시에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낯뜨겁게 했다. 정화진과 이인휘는 각각 신작을 준비중이다. '민중'과 '억압받는 자'의 목소리가 거세된 21세기 한국문학. 그들이 어떤 방법으로 그 목소리를 복원해낼지 기대가 크다. 아직도 생생하다. "나? 액세서리 장사꾼이지"라며 당당하던 정화진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 7 "홍위병이다" "곡학아세다"- 이문열을 둘러싼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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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문학연구소 ⓒ자료사진
'정부인 안동장씨 유적비'가 세워져 있는 이문열의 고향 경북 영양군 석보면에선 올 5월 '광산문학연구소'가 설립됐다. 개소식에는 이의근 경북지사와 소설가 김주영 등 1200여 명의 하객이 참석, 성황을 이뤘다. 이 자리에서 이 씨는 "이제 태어난 곳으로 돌아왔으니 조용히 글을 쓰며 살겠다"는 인사말을 전했다.

그러나, 조용히 집필하겠다는 다짐은 정부의 '언론사 세무조사'로 인해 얼마 되지 않아 깨어졌다. 이문열은 국세청의 언론사 세무조사 결과발표가 있은 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언론사 세무조사에 불순한 정치적 의도가 있어 보인다"는, "일련의 언론개혁 운동에서 중국 문화혁명 당시의 홍위병적인 요소가 보여 우려된다"는 기고문을 연달아 발표했다. 민주당 국회의원 추미애는 이 씨의 이런 태도를 '곡학아세(曲學阿世)'라며 몰아붙였고, 이문열은 '단장취의(斷章取義) 하지 말라'며 맞섰다.

생경한 '사자성어(四字成語)'가 분분했던 이 논쟁은 '조선일보 반대 시민연대'가 <홍위병을 떠올리는 이유>를 문제삼아 이문열을 고소하겠다고 나서는 것으로까지 비화됐고, 부산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는 화덕헌(이문열 돕기 운동본부 본부장) 씨를 한국 언론이 주목하는 인물로 만들기도 했다. 이후 이 씨가 발표한 소설 <술단지와 잔을 끌어당기며>와 화 씨가 주도한 '이문열 책 반환운동'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 또한 뜨거웠다.

# 8 "남북의 철조망 문학이 먼저 허물자"- 8.15 문인 방북

'만경대 방명록 서명파문'과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탐 행사참여' 등의 문제로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8.15 방북. 방북단에는 정희성, 김준태, 도종환, 황석영 등의 문인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은 '남북 문인교류'와 '통일문학전집' 등에 대해 활발한 논의를 가졌고, 숙소에서나마 북한의 작가들과 약식 시낭송회를 가지며, 취소된 백두산에서의 '남북 공동 시낭송회'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기도 했다.

방북한 도종환 씨는 돌아온 뒤 쓴 기행문을 통해 '남한 작가들에 대해 북한 작가들이 너무나 소상하게 알고 있는 것이 놀라웠다'는, '공항에 배웅 나와 통일되면 다시 만나자며 울먹이는 북한 어린이의 여윈 어깨를 보며 나도 울음을 참지 못했다'는 이야기들을 들려줬다. 정희성 또한 방북에 얽힌 소회를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3편의 시를 발표하며 피력했다.

# 9 그러나 희망은 있다 - 김성동의 귀환과 신진들의 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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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성동 ⓒ자료사진
지난 달 개작·재출판된 김성동의 <만다라>는 작가와 그 작가의 고뇌의 산물이라 할 작품이 어떻게 서로를 변화시키는지 보여준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될 만하다. 22년 세월은 속세에서 세상을 변혁해보려는 젊은 작가를 재입산을 꿈꾸는 노인으로 변하게 했고, 그런 작가의 변화는 속세에 머물던 <만다라>의 주인공 법운을 산으로 들어가게 만든다. 하지만 그렇다고 김성동이 '세상에 대한 고민의 끈'을 늦춘 것은 아니다. 그는 여전히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강원도 산골에서 '병 속의 새'를 꺼내고자하는 고행을 멈추지 않고 있다.

2001년 '동서문학상' 수상자 김연수가 올 2월 내놓은 장편 <꾿빠이, 이상>은 한없이 가볍고, 사변적인 한국의 젊은 작가들을 반성케 하기에 충분했다. 철저한 고증과 준비를 통한 치밀한 글쓰기의 전범을 보여준 김연수는 재론의 여지없이 한국에서 가장 주목받아 마땅한 30대 작가다.

올해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한 <부엌>의 오수연 역시 독자의 관심에 실망을 주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게 한다. '삶 속에 포진한 식욕과 성욕의 연관성'이란 뻔한 소재를 그처럼 독특하면서도 기이(?)하게 변주하는 작가는 어디서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작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해 겨우 3편의 단편을 선보였을 뿐이지만, 김지우가 보여주는 '튼튼하고 실한 리얼리스트'로서의 가능성도 한국문학의 미래를 희망 쪽에 걸어볼 수 있게 하는 작지만 선명한 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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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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