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난곡에서의 마지막 크리스마스

재개발 전 마지막 흔적이라도 느끼고 싶었습니다

등록 2001.12.27 19:00수정 2001.12.30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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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곡의 겨울표정. 난곡은 야트막한 한옥집들과 산의 선을 딛고 올라선 아파트로 나뉘어져 있었다. 재개발이 끝나고 나면 아파트가 난곡에 들어찰 것이다.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난곡을 떠나온 지 1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시간이 지나는 동안에 가끔씩 생각이 나면 가보고는 했지만 늘 변하지 않은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난곡 하면 제일 먼저 달동네를 연상하고는 합니다. 그렇지만 그곳에 살았던 저에게나 가족들 그리고 그곳에서 살았던 모든 분들은 난곡을 신림7동이라는 행정구역 상의 명칭을 달리 부를 때 그렇게 이야기하고는 합니다(참고로 난곡은 달동네쪽과 국회단지라 불리는 동네 두 곳으로 나뉩니다. 저는 이 두 곳에서 다 살아 봤는데 너무도 다르죠).

그 난곡의 달동네가 재개발되고 있습니다. 조만간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죠. 그래서 아직 난곡 달동네의 흔적이 남아 있는 모습을 보고 싶었습니다. 또 그곳에서 마지막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어 친구 윤기와 함께 난곡으로 갔습니다.

사실 난곡에 오기 전에 여러 언론매체에서 난곡을 다룬 프로그램과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렇지만 뭐랄까, 너무나 동정적인 시각에서 접근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제가 느끼던 그것과는 상당히 달랐습니다.

종점에서 내려 내가 태어나서 10여 년을 다녔던 교회로 향하면서 달동네를 올려다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이주를 해서 그런지 몰라도 가로등 불빛만이 동네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예전의 그 환하던 불빛은 어디로 간 것인지...

교회로 올라가는 길가에는 유난히 부동산 소개업소가 많았습니다. 예전에 과일을 자주 사다먹던 자리에도 부동산 소개업소가 있었고 교회 앞쪽에 한 개밖에 없었던 부동산 소개업소는 제가 본 것만 해도 다섯 개나 되었습니다. 개발의 산물이겠죠?

교회로 들어서니 크리스마스 이브의 축하예배와 칸타타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난곡중앙교회. 제가 다니던 이 교회에는 달동네에 사시던 신자분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많은 세대가 이주를 해서 그런지 한 의자에 4-5명씩 앉던 자리가 3명씩으로 줄어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도 달동네의 재개발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남자와 여자들의 좌석을 구분해서 앉아 있는 모습은 그대로였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그대로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교회에서 그 옛날 동네에서 살던 추억이 샘솟았습니다. 좁은 골목길을 걸어가다가 개에게 물려서 동사무소 근처의 의원에서 치료받던 일, 어머니 쌈짓돈을 훔쳐서 오락실 갔다 걸려 알몸으로 집 문 밖에서 벌서던 일. 또 놀이터 담 너머로 영화 촬영을 하던 것을 빤히 쳐다보던 기억들. 너무나도 새로웠습니다. 아직도 그런 기억들이 남아 있구나 하는 마음에 괜히 기분이 좋았습니다.

▲난곡의 겨울을 비추는 달.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사실 우리 가족이 처음부터 달동네에서 살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국회단지에서 살았는데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한 이후 달동네로 이주를 하게 되었습니다. 달동네로 이사짐을 옮기면서 할머니와 큰 항아리를 굴려서 옮기던 기억이 납니다. 눈 언저리가 시큰하고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달동네에서의 생활은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비좁은 집 구조와(그래도 비교적 아랫쪽이어서 집은 괜찮았습니다) 공동 화장실이라는 색다른 경험, 참 많은 것이 머리를 아프게 만들었습니다.

게다가 초등학교가 두 개나 되었는데(난향과 난화가 있었는데 지금은 난화초등학교가 특수학교로 바뀌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주로 난향은 달동네에 거주하던 친구들이 많이 다녔습니다. 난화는 국회단지 쪽 친구들이 주를 이루고요. 지금은 모두 난향으로 통합되었더라구요) 원래 다니던 난화 초등학교까지 가는 게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비교적 가까운 거리여서 그랬는지 전학은 안 가게 하더군요. 뭐랄까요, 학교가 끝나면 애들하고 가는 방향이 다른 것에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항상 같이 돌아가곤 하던 길이었는데.

이브 행사가 끝난 후 교회 뒷자리에 않아서 가만이 앞을 바라보았습니다. 눈에 띄게 줄어든 신자들 그리고 달동네에 위치한 교회에서의 마지막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교인들 모두가 아쉬웠는지 자리를 쉽게 뜨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도 철거대상이어서 이주를 해야 하니까요. 그나마 마음의 위안이 주고 있는 교회마저 사라지게 되는 것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왜 재개발을 해 굳이 아파트를 지어야만 하는가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주택은 안되는지 하는 어리석은 생각과 함께...

교회를 나와서 예전에 살던 곳으로 올라갔습니다. 제가 살던 집도 이주를 한 것 같았습니다. 컴컴해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벽에 페인트로 '개조심'이라고 쓴 문구는 아직도 그대로였습니다. 머리를 자주 깎았던 이발소도 이주했고 쥐포와 쫄쫄이를 구워서 먹었던 작은 구멍가게도 이주를 했는지 가게 안이 컴컴했습니다.

또 10원짜리 오락을 하던 그 문방구도, 개를 잡았던 그리고 시장이 있었던 자리도 모두가 인적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나마 시장은 11월 초에 왔을 때는 배추가 좀 쌓여 있어서 사람이 있기는 있구나 했는데 이제는 그것마저 느낄 수 없었습니다.

더 올라가서 동네를 내려다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맨 위 신림동과 안양을 연결하는 도로로 올라갔습니다. 어렸을 때 이곳에 올라가면 63빌딩까지 보일 정도로 전망이 좋은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국회단지쪽과 대비하여 너무나도 컴컴해져버린 달동네를 바라보면서 마음이 한편으로 무거워졌습니다.

다음날 성탄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목사님께서 성탄 설교를 하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KBS일요스페셜에 '난곡의 사계' 해가지고 나왔었죠. 거기서 우리 교회도 나왔었고 또 우리 교회의 신자분으로 보이는 분의 집의 교패도 잠시 비쳤죠... (중략)... 그 프로를 보고 제가 아는 주변 여러 분들이 전화도 주시고 이야기를 하면서 그렇게 극빈한 곳에서 사는게 얼마나 힘든지 위로를 해주시더군요. 이게 한편으로는 동정 같으면서도..."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목사님이 하셨던 말씀 중에서 기억에 남았던 것은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마음이 행복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아무리 극빈해도 마음이 행복하면 된다고 하셨던 말씀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사실 밖에서 사람들이 난곡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모르겠지만 그곳에서 살던 사람들은 분명히 행복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희망을 가지고 살았을 것이고요.

예배를 마치고 종점으로 향하는 길에 다시 한번 난곡의 달동네를 올려다보았습니다. 친구 윤기도 너무나 서운하고 아쉬운 감정을 보이면서, 이제 다시는 예전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될 그곳을 떠나야 했습니다. 하지만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얻기 위한 개발인지... 지금 그곳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마음만이라도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기 예수님의 은총이 난곡 땅에도 늘 함께 하기를 바라며...

▲앞 부분에 노란 불빛으로 감싸져 있는 곳이 난곡이다. 가운데 산의 검은 그림자 사이로 나가면 푸른 불빛이 감도는 시내로 나가게 된다. 같은 서울 하늘아래 동네들이지만, 불빛 색깔만큼 다른 삶을 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쓸 때 달동네라는 표현을 쓰기가 싫었습니다. 왠지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어렸을 때는 산동네라고 불렀던 것 같은데 은근히 기존 언론에서 그렇게 부르니 그렇게 굳어진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네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부디 난곡의 땅에 새로운 희망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쓸 때 달동네라는 표현을 쓰기가 싫었습니다. 왠지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어렸을 때는 산동네라고 불렀던 것 같은데 은근히 기존 언론에서 그렇게 부르니 그렇게 굳어진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네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부디 난곡의 땅에 새로운 희망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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