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으로 보내는 연하편지

평양의 김성혜 누님에게!

등록 2001.12.31 17:33수정 2002.01.01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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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님! 안녕하세요.
저 기억나시는지요. 지난 8월 15일 평양에서 열린 민족통일대축전에 남측 대표단으로 참가했던 대구의 김두현입니다. 왜 '샘(선생님의 경상도 사투리)'이라고 불러 놀림받던 키 작은 노총각 기억나시죠?

제가 사촌들 중에서도 제일 맏이라 늘 누님 한 명 있기를 소망하며 컸었죠. 그래서 누님과 같은 분을 만나면 왠지 친누나 삼고 싶은 마음이 들었었지요. 저는 그 때 누님에게 이번 방북 목적이 '평양처녀, 한 명 꼬시는 거'라고 매일 아가씨 소개 시켜달라고 졸라댔었지요. 그러면 누님께서는 '올케를 고르려면 신중해야지 기다려 봐'라며 진지하게 화답해주셨죠.

성혜 누님!
벌써 우리가 만나고 헤어진 지 4개월하고도 보름이 되어 갑니다.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던 지난 8월 15일, 평양순안공항에 발을 내딛던 그 순간을 여전히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33℃의 더운 날씨 탓에 환영 나온 여성들의 화장은 땀과 뒤섞여 범벅이 되어 있었고 남자 분들도 연신 땀을 훔치고 있었지만 우리를 진심으로 환영해주며 연신 외쳐대던 '반갑습니다'는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돌고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분들의 얼굴 얼굴이 하나 하나 떠오르지는 않지만 만면에 미소를 띠고 진심으로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주던 그 표정들은 선명히 남아 있습니다.

성혜 누님!
누님은 참 멋쟁이였죠.
매일 입는 옷이 달랐고 어느 날에는 오전 오후 입는 옷이 달랐지요. 검은색 원피스를 입기도 했고 어느 날은 베이지색 투피스를 입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즉 '평양 멋쟁이'였었죠. 지금도 늘 그때처럼 참한 누님의 모습이 변하지 않았겠지요.

참! 건강은 어떠하신지요. 그리고 다들 잘 계시는지 궁금하군요. 농구선수를 했다는 리용호 형님, 묘향산을 떠나기 전 저에게 '통일될 때까지 다른 여자 보지 마시라요'라며 분단 이후 최초로 북쪽여성에게 프로포즈 받은 총각이 되게 해준 전명옥 국제친선전람관 강사님, 그리고 1주일 내내 위염에 걸려 고생하던 저를 정성으로 돌봐주시던 평양 적십자병원의 김룡범 선생님, 내가 고려침을 맞고 아파하자 '남쪽 남자들은 그것도 못 참느냐'며 놀려대던 홍미순 간호사님.
모두 모두 잘 있겠지요.

정말 다들 너무나 보고 싶습니다. 이토록 보고 싶고, 다시 가고픈 평양이요, 평양사람들이지만 또 쉽게 가지 못하니 이제야 분단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느낄 것 같기도 합니다.

누님!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지금은 2001년의 마지막 날입니다.
누님도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계획하며 마지막 날을 보내고 있을 테지요. 얼마전 온 '민족21'이라는 잡지에 2001년 작년 새해를 맞이하던 평양의 모습이 실려 있더군요. 천리마 거리의 눈사람의 모습과 '새해를 축하합니다'라는 현수막의 구호가 참으로 이색적이었습니다.

저는 달마다 오는 '민족 21'을 이번호에는 또 어떤 북녘 소식이 있을까하며 설렘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누님!
지난 6·15남북공동선언이 나왔을 때는 반세기 동안의 대립과 갈등의 시대를 끝장내고 이제 화해와 협력, 평화와 통일의 시대로 갈 것이라는 7천만 겨레의 기대가 넘쳐 났었지요. 6·15남북공동선언으로 인해 분단 이후 최초로 8·15행사도 함께 할 수 있었고요.

공동선언 이후 1년간 정말 남북관계는 과거와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변화하였습니다. 백두산에 갔을 때 북녘 안내원 한 분이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백두산 자락에서 이 많은 남북동포들이 한자리에 앉아 함께 도시락을 먹는 모습을 6·15공동선언 전이라면 상상할 수 있었겠느냐'며.

저도 방북을 마치고 내려와서 동네사진관에서 '평양의 대동강과 주체사상탑을 배경으로 한 사진'을 현상하며 과연 6·15공동선언이 없었다면 이런 일이 가능했겠느냐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남과 북의 관계가 기대만큼 그렇게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의 대북강경책과 9·11테러사건으로 인해 6차 장관급 회담이 큰 성과 없이 만날 약속도 하지 못하고 헤어졌고 내년의 전망도 그리 밝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남쪽의 대북 문제 전문가들도 그리 긍정적이지 못한 견해들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믿고 있습니다. 7천만 겨레의 염원이 하나로 모아진다면 이 난관도 어렵지 않게 돌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누님!
지난 평양민족대축전이 당국간 대화의 막힌 곳을 뚫는 역할을 했듯이 다시 통일을 바라는 우리가 만난다면 지금의 이 어려운 국면도 헤쳐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봅니다. 다행히 설맞이 공동행사가 진행되고 있어 다시 한번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해봅니다. 혹 이번에도 갈 기회가 생긴다면 누님을 만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가져보기도 합니다.

내년에 북에 큰 행사가 있다지요.
10만의 대규모 인원이 참가하는 '아리랑'이라는 집체예술을 준비하고 있다고 남쪽 언론에도 여러 번 소개가 되었습니다. 누님도 '아리랑' 공연 준비로 바쁠 것이라 미뤄 짐작해 봅니다. 해외의 많은 관광객들은 초청한다는 말도 있고 남쪽에도 관람단을 초청한다는 이야기도 들리더군요. 저도 못 보면 평생 후회한다는 그 '아리랑'이라는 공연을 꼭 한번 어떤 공연인지 보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누님!
비행기로 1시간이면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곳인데 편지 한 장 띄울 방법이 없군요. 그나마 이렇게 공개적으로 편지를 띄우며 이 글이 누님에게 전달되기를 기대해봅니다.

지날 여름 1주일 동안 함께 지내며 차 한 잔 함께 마시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우리 다시 만난다면 서로 하고픈 이야기, 궁금한 이야기 밤을 새워 나누고 싶습니다.

누님! 다시 만날 그날을 기대하며 늘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새해에는 반드시 평화와 통일의 힘찬 물결이 넘실대리라는 희망을 갖고 2001년의 마지막 날 이 편지를 보냅니다.
그럼 이만.

덧붙이는 글 | 이 편지에 대한 답장을 받을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합니다. 그리고 일상적으로 서신교환이 이루어질 수 있는 날이 곧 오리라 믿어봅니다.

덧붙이는 글 이 편지에 대한 답장을 받을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합니다. 그리고 일상적으로 서신교환이 이루어질 수 있는 날이 곧 오리라 믿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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