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은 주당 10만원에 사고
인터뷰 해준 기자는 5천원에 샀다

[윤태식과 언론인 1] 대가성인가 단순투자인가

등록 2002.01.02 16:52수정 2002.01.10 15:20
0
원고료로 응원
(윤태식 씨가 언론인을 상대로 주식로비를 했는지 여부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몇차례에 걸쳐 윤씨 회사인 패스21의 주식을 소유한 언론인들의 사례를 싣는다... 편집자 주)

수지김 살해혐의로 구속기소된 패스21 사장 윤태식 씨가 정관계에 주식로비를 광범위하게 해 왔음이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종합일간지, 경제지, 방송사의 간부-기자-PD 등 20여명이 패스21의 주식을 실명 혹은 차명으로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윤 씨의 언론계 주식로비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서울지검은 이와 관련, 3일 패스21의 주식을 갖고 있는 언론인 2명을 소환할 예정이다.

특히 몇몇 언론사의 기자는 윤태씩 씨와 패스21에 대한 우호적인 기사 혹은 인터뷰가 소속 매체에 보도된 시점을 전후로 패스21의 주식을 시세보다 훨씬 싼 가격으로 보유한 사실이 밝혀져 대가성 논란이 본격적으로 일 것으로 보인다.

가장 먼저 사례가 밝혀진 것은 조선일보사의 기자와 부장 등 2명.

<오마이뉴스>는 2001년 12월 31일 오후 "조선일보사가 발행하는 월간조선 2000년 5월호에는 윤태식 씨에 대한 장문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면서 "이 기사를 쓴 K아무개 기자(현 조선일보 인터넷 자회사 근무)와 당시 데스크였던 K아무개 차장(현 조선일보사 부장)은 인터뷰 기사가 실린 책이 발행된 직후 패스21의 주식을 각각 100주씩 소유했다"고 보도했다.

월간조선이 <[인물연구] 세계 최초로 지문 인식·전송·안보 기술을 개발한 윤태식 회장>이라는 제목의 긴 인터뷰 기사를 게재한 것은 2000년 5월호(4월 18일 발행)이며, 조선일보 사장실에 따르면, 두 조선일보사 기자가 윤 씨 회사의 주식을 소유한 것은 "2000년 4, 5월 경"이다.

이에 대해 조선일보사 사장실의 한 관계자는 12월 31일 오후 "(K기자와 K부장은) 인터뷰 기사를 쓰기 전에 받은 것이 아니고 기사를 쓴 후에 괜찮은 회사 같으니 주식을 사두자는 생각에 현금 (각각) 50만원을 주고 100주씩을 산 것"이라면서 "당시에는 시세도 제대로 형성이 되지 않은 상태였고 소액이기 때문에 별 문제가 안되며 또 대가성도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사장실 관계자는 1월 2일에도 거듭 "조선일보 두 기자는 우리가 보기에 대가성이 없고(월간조선 보도가 나가고 난 다음 투자한 것임), 금액도 소액이고, 순수 투자목적으로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가는 당시 20만원 호가"... 40배나 싼 가격

그러나 이러한 조선일보 사장실의 주장은 그동안 윤태식 씨의 주식로비 사건을 보도해온 조선일보 기사의 내용과 대조해볼 때에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조선일보사의 두 기자는 각각 액면가(5천원)에 100주를 50만원 주고 샀다. 그러나 이들이 주식을 산 2000년 봄에 패스21의 주가는 주당 20만원이었다고 조선일보 기사는 적고 있다.

다음은 조선일보 2001년 12월 28일자 <윤태식 씨 수사 경관 2억원대 주식 받아>에 나오는 대목이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27일 당시 외사분실 수사관 지모(42·현 노원서 방범계 반장) 경위와 김모(45) 경사 등 2명에 대해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지 경위 등은 경찰의 이 사건 내사가 중단된 직후인 작년 3월 초 윤씨로부터 각각 패스21 주식 1100주와 1000주를 가족 명의 차명계좌 등을 통해 받은 혐의다. 벤처기업 패스21 주가는 당시 20만원을 호가해 이들이 받은 주식 가치는 2억~2억2000만원에 이른다. 지 경위 등은 그러나 “윤씨 권유로 액면가(5000원)에 주식을 매입했다”고 주장했다.


이 기사대로 2000년 3월 초 패스21의 주가는 20만원을 호가했고 월간조선 기자와 차장이 주식을 소유한 2000년 4, 5월은 그보다 더 주가가 높아지고 있었다. 100주면 당시 주가로 따지면 2000만원 상당인데 월간조선 기자와 차장은 단돈 50만원을 주고 산 것이다.

위 조선일보 기사는 패스21의 주식 200주를 받아 구속된 사람 이야기로 이어진다.

검찰은 이날 패스21의 요금징수시스템을 채택해주는 대가로 작년 1월 말 윤씨로부터 패스21 주식 200주(4000만원 상당)씩을 받은 혐의로 정모(46) 서울지하철공사 과장과 철도청 직원 이모(39)씨를 구속했다.

이 철도청 직원이 2000년 1월에 받은 200주의 가격을 4천만원 상당이라고 계산했으니 월간조선 기자가 받은 100주는 2천만원 상당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따라서 "소액이기 때문에, 대가성이 없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는 조선일보 사장실의 설명은 조선일보 기사를 보더라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시세형성이 안되어 있어 별 문제 안된다"?

또 조선일보 사장실 관계자는 "당시에는 (패스21의 주가가) 시세형성이 안되어 있었다"면서 "(액면가 5천원만 주고 산 것이) 별 문제가 안된다"고 했다. 그러나 조선일보사의 두 기자가 주식을 취득한 2000년 봄을 전후로 패스21은 장외에서 활발하게 시세를 형성하고 있었다.

2000년 1월 패스21 주식을 실명으로 소유한 서청원 한나라당 의원은 당시 1주당 10만원에 1천주 1억원어치를 샀다.

서청원 의원은 지난 12월 20일 "K 전 의원이 패스21 감사로 있으면서 주식투자를 권유해 적금 등을 깨서 1억 원을 투자했다"면서 "당시 패스21 주가의 액면가는 5000원이었지만 장외에서는 10만 원 선에 거래되고 있어서 주당 10만 원을 주고 1000주를 산 것"이라고 말했다.

또 윤태식 씨를 정관계에 소개시켜준 것으로 알려진 서울경제 김영열 사장은 2000년 5월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패스21 주식 6500주를 주당 15만원에 매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검찰이 1월 2일 밝힌 바에 따르면 한 검찰 관계자는 2000년 6월 부인 이름으로 주당 30만6천원에 패스21 주식 20주를 샀다.

이렇듯 패스21의 주식은 장외에서 액면가보다 훨씬 높게 시세가 형성되고 있었고 윤태식 씨에 대한 심층 인터뷰를 한 기자라면 그의 회사의 주식의 액면가가 시장에서 어느 정도로 평가받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기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원은 10만원 주고 사고

인터뷰한 기자는 액면가 5천원에 사고


조선일보는 2001년 12월 21일자 기사 <주주명부에 300여명, 실소유주 추적>에서 "검찰은 액면가 5000원인 주가가 한때 80만원까지 치솟았던 점을 감안하면 윤씨가 유망한 자사 주식을 정·관계 유력인사에게 제공, 거액의 시세 차익을 얻게 해주는 ‘주식 로비’를 벌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고 적고 있다.

검찰은 윤 씨의 로비대상이 된 사람들이 대부분 부인 명의 등 차명으로 패스21의 주식을 소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이 파악하고 있는 20여명의 언론인 주주도 대부분 차명이다. 조선일보사의 두 기자도 차명으로 소유하고 있다.

따라서 시중에서 주당 20만원하는 것을 액면가 5천원에 살수 있는 '특혜'를 받은 것이 과연 우호적 인터뷰 기사와 관련이 있는지, 순수 투자차원이라면 한나라당 서청원 의원처럼 실명으로 하지 왜 차명으로 주식을 보유했는지 등이 대가성 논란과 기자윤리 논란의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조선일보사 사장실 관계자는 "경제부 기자들도 아니어서 그런 개념을 잘 몰라 특혜인 줄도 모르고 샀다"고 말했다.

검찰 재수사 결정 앞두고 월간조선과 인터뷰

한편 왜 월간조선이 2000년 3월에 윤태식 씨를 인터뷰했는지도 관심거리다.

조선일보 사장실의 한 관계자는 "2000년 2월 패스21 홍보실에서 취재의뢰서가 팩스로 전달돼 3월에 취재해 5월호에 게재됐다"고 밝혔다.

87년 1월 3일 발생한 수지 김 살해사건이 본격 재조명된 것은 2000년 1월 <주간동아>에서 수지 김 살해 의혹을 보도하면서부터다. 그해 1월 29일 경찰청 외사과가 내사에 착수했고 2월에는 경찰이 윤태식 씨를 두 차례 소환해 살인 혐의를 추궁했으나 윤씨는 혐의를 부인했다.

2월 17일 경찰은 국정원의 요청을 받고 내사를 중단했다. 이어 3월에는 수지 김 가족이 윤태식씨를 살인혐의로 서울지검에 고소했고 검찰은 4월 26일 재수사를 결정한다.

그러니까 월간조선이 윤태식 씨에 대한 우호적 인터뷰를 기획하고 기사를 작성한 3, 4월은 윤태식 씨에겐 매우 절박한 시기였다. 경찰과 국정원이라는 고개는 넘었지만 검찰 재수사 여부라는 또 하나의 고개와 맞닥뜨려 있던 상황이었다. 당시는 수사당국 뿐 아니라 언론계 일부도 윤 씨가 살해범일 수도 있다는 의심을 품고 있었다. 바로 그때 월간조선은 윤태식 씨에 대한 우호적 인터뷰를 장문으로 실었던 것이다.

이와관련 조선일보 사장실의 관계자는 "당시에 누가 검찰에서 조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겠나"라고 반문했다.

하지만 윤씨의 입장에서는 월간조선 인터뷰를 '또 하나의 면죄부'로 활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AD

AD

AD

인기기사

  1. 1 61세, 평생 일만 한 그가 퇴직 후 곧바로 가입한 곳
  2. 2 천연영양제 벌꿀, 이렇게 먹으면 아무 소용 없어요
  3. 3 버스 앞자리 할머니가 뒤돌아 나에게 건넨 말
  4. 4 "김건희 여사 라인, '박영선·양정철' 검토"...특정 비서관은 누구?
  5. 5 죽어라 택시 운전해서 월 780만원... 엄청난 반전이 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