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년 3반 선생님의 마지막 수업

등록 2002.03.02 10:12수정 2002.03.03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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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앞 대형 텔레비전 화면속에서 여자아이가 지휘를 한다. 교실의 아이들은 자리에 서서 애국가를 부른다. 지휘하듯 팔을 흔드는 아이도 있고 춤추듯 몸이 흔들리는 아이도 보인다. 화면에서 교장선생님이 보이고 교무선생님의 구령이 들린다. 몇 명의 어린이들이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상을 받고 구령에 따라 돌아간다.

"교장선생님께 경례!" "모두 제자리에 앉아!"
아이들은 텔레비전을 향해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는다. 교장선생님의 말씀을 집중해서 듣는 아이는 별로 없다. 그리고 다시 구령에 맞춰 아이들은 화면을 향해 경례를 하고 구령과 교가가 이어진다. 애국가 때처럼 지휘흉내를 내는 아이, 흔들흔들 춤추며 부르는 아이들은 아주 신이 나 보인다.

종업식이 끝났음을 알리는 말과 함께 텔레비전이 꺼진다.
담임 한명희(45) 선생님이 익숙한 동작으로 손뼉을 치며 '2학년'을 외치면 아이들이 '3반'이라 답한다. 역시 재잘대는 아이들, 더 커지는 선생님 목소리다.
"자, 어느 모듬이 제일 예쁘게 앉았나 보자. 끝까지 예쁘게 하는 모듬은 선생님이 상 주겠어요."
선생님은 돌아서서 칠판에 1,2,3...8이라 쓴다. 아이들이 한결 조용해지고 선생님을 바라본다.

"방송 종업식할 때 듣는 태도가 안 좋은 친구가 있었어요. 3학년 돼서는 안 그러겠지요? 안 그럴 사람 손들어요."
아이들이 모두 손을 번쩍 들었다 내린다. 그 때 한 아이가 외친다.
"전 자신 없어요!"
아이들이 키득키득 웃는다.
"강상영, 나한테 맡겨."
책상위에다 탑블레이드를 돌리다 걸린 아이다. 이어서 선생님은 잘 보관하라는 말과 함께 아이들에게 사진 남은 것들을 나누어준다.

"선생님은 오늘이 2학년 3반하고도 마지막이고 우리 학교 하고도 마지막이예요. 선생님이 이제 다른 학교로 가니까 여러분이 많이 보고 싶을 거 같아요...."
석별의 아쉬움을 말하는 선생님의 말씀도 아이들에겐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선생님 목소리가 더 커진다.
"조용히 할 때까지 말 안 해."
아이들 소리가 조금 줄어든다. 선생님은 3학년이 되면 친구와 잘 지내라고 당부하며 한 아이를 가리킨다.

"한솔이는 오늘까지만 우리 학교에 있고 3월에는 충청도로 이사가요. 한솔이 이리 나와."
쑥스런 얼굴로 앞으로 나간 어린이 선생님이 일러준 말로 간신히 인사를 한다.
"한솔이는 이담에 스타가 될 수도 있어요. 미리 사인을 받아 두는 게 좋을 걸. 지난 번에 노래하고 춤추는 것 봤죠?"
3학년 교재로 내 준 CD를 상기시키며 집에 컴퓨터가 없는 사람 손들어 보란다. 45명 중 4명이 손을 든다.

이어서 아이들은 한 명씩 통지표를 받는다. 교실은 다시 왁자지껄해 진다. 3학년 몇 반이 되었는지, 누구랑 같은 반이 되었는지 서로 확인한다. 얼싸안고 팔짝팔짝 뛰는 아이들, 꺅꺅 소리지르며 아쉬워하는 아이들로 교실은 흥분의 도가니다. 통지표를 다 나누어 준 선생님, 잠시 숨을 돌리고 기다려야 한다. 아이들은 선생님에게 관심이 없다. 선생님은 플라스틱 자로 교탁을 두드려 다시 주의를 모은다.

"20년 후에 선생님과 만나자는 친구가 있었어요. 20년 후면 여러분은 몇 살이죠?"
"서른살요!"
"선생님은?... 65세가 돼요. 할머니가 돼 있겠죠?"
"와~"
"20년 후에도 선생님 기억하겠어요?"
"네~"
"선생님이 준 꿈나무 학급문집이랑 사진들 잘 보관하세요. 20년 후에 여러분의 아들딸들에게 보여 주는 거예요..." 선생님은 마지막으로 아이들 하나 하나 악수와 포옹으로 보낸다.

반 아이들을 다 보내고 나니 한 엄마가 두 딸을 데리고 선생님께 인사하러 온다. 뒤이어 세 여자아이들이 달려와 선생님과 눈물의 포옹을 한다.
"그래 그래, 우리 딸 왔구나." "엄마!"
"미진이 엄마 아직 안 돌아오셨다고? 아빠랑 사이가 좋아지지 않나 보구나. 그래도 할머니랑 잘 지낼 수 있지? 사진 가지고 왔다고? 와, 정말 예쁘구나..."
함께 온 이슬이를 안으며 볼을 어루만진다.
"아토피가 아직도 여전하구나. 엄마 전화번호 알지? 결혼할 때도 연락하는 거야...." 두 아이가 자기들 사진을 확대해서 편지와 함께 선생님께 선물로 드린다. 아이들은 모두 떨어지기 싫어하며 눈물을 훔친다.

"2년 전 6개월 간 담임했었는데, 결손가정 아이들과 정이 들었어요. 아이들이 엄마를 너무너무 불러보고 싶어했어요. 그래서 수업시간 빼고 따로 만날 때는 절 엄마라고 부르라고 했죠. 저도 딸이라 불렀고요. 물론 다른 아이들에겐 비밀로 했죠. 아이들의 생일을 엄마로서 함께 했던 기억이 나네요. 우리 반에도 5-6명은 엄마 아빠가 별거, 이혼, 사별 등으로 그런 아이들이지요.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급식후원을 찾아 주었는데 제가 떠나도 잘 이어져야 할텐데..."

학년이 바뀔 때마다 늘 아쉬움이 남지만 학교를 옮기는 올해는 더욱 그렇다. 교사 일을 너무 즐기기 때문이란다. 1년간 함께 했던 아이들을 위해 며칠 전까지 학급문집을 손수 만들었을 정도다. 워드작업을 하려다가 시간에 쫓기면서 아이들의 글씨대로 묶어주기로 했다. "해 놓고 보니 더 잘된 거 같아요. 비뚤비뚤 글씨와 그림을 고스란히 담을 수 있었어요. 아이들이 2학년 3반 시절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하게 해 주고 싶었어요."

'꿈나무'가 학급문집의 이름이다. 겉장을 열면 아이들의 추억이 담긴 사진들이 붙여져 있고 선생님의 글이 나온다. "2학년 3반 친구들아!"라고 시작하여 "...이 다음에 기쁘게 만나는 선생님과 제자가 되자꾸나! 안-녕!"이라고 맺고 있다. 동시, 일기, 편지 등이 장난스런 글씨 그대로 엮어져 있다. 그리고 맨 뒤에는 모듬 자랑으로 함께 한 마디씩 써놓은 말들이 아이들의 생활을 생생하게 느끼게 한다.

"아이들이 많이 영악스러워지고 아는 것도 많아요. 대중문화로 웃자라서 동심을 많이 잃어버려 안쓰러운 게 요즘 아이들이죠." 학급문집에다 동심을 담고 싶었던 선생님이다.

대가족의 며느리로 두 아이들의 엄마로서, 선생님은 직장을 그만 두어야 할 고비를 많이 넘어 왔다. 적성에도 맞고 아이들과 일을 좋아해 23년을 지켜온 교단. 지금은 또 다른 면에서 고비란다. "아이들 세대와 차이가 너무 많아요. 경험이나 경력은 있지만 순발력이 딸리고 체력이 딸려요. 아이들은 점점 다루기 힘들고 자기 주장은 강하지. 눈높이를 맞추기도 어렵고... 수업 시간을 조정할 수 있다면 좋겠는데 주당 34시간 이상하면 정말 힘들어요. 40대 중반 여교사로서 승진의 길은 아주 좁거든요." 이번 전근도 승진에 대한 고민과 관련이 있다.

딸아이의 1학년 첫 담임은 50대 남자 선생님이었는데 지옥 선생님이었다. 1학년 그 어린 아이들을 지금도 이해하기 힘들게 다룬 선생님. 아이는 날마다 선생님 무섭다는 소릴 했다. 단체로 받는 벌의 공포, 손바닥이며 머리며 맞고 왔다. 아무 데나 쥐어 박혀 집에 와서도 우는 아이를 보며 도대체 정신이 온전한 선생님인지 의심했다. 학교를 계속 보내야 할지 고민하기에 이르렀을 때 정말 다행히도 그가 전근을 갔다.

2학기 한명희 선생님과 함께 아이는 학교를 즐거워했고 2학년에도 담임으로 만났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고루 사랑하고 돌보는 분이었다. 나는 나름의 엄격함 때문에 선생님께 따로 선물 한 번 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문제 많은 사회에 문제 많은 학교인데 문제 많은 학부모라도 면해 볼까 해서. 모두 귀한 아이들이니 선생님이 내 아이를 특별히 기억하게 하는 건 불공정하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2년간 딸아이를 담임한 한명희 선생님이 전근가신다니 꼭 찾아뵙고 감사의 말을 하고 싶었다. 종업식날이 그날이었다. 이 글은 그날 교실에서 보고 들은 것들이다. 그 날도 뺀질뺀질 맨손으로 간 건 너무 심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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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 운동하고, 보고 듣고, 웃고, 분노하고, 춤추고, 감히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읽고, 쓰고 싶은대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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