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락가 모텔에서 보낸 하룻밤

<목격기> 카운터에 앉아서 본 일상적인 성매매 현장

등록 2002.04.23 00:24수정 2002.04.25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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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을 잊은 러브호텔 주변 경관. 모텔을 출입하는 차량의 불빛이 길게 꼬리를 잇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윤락허용 모텔업주 벌금형."
"숙박업소 주인이 윤락을 방치했다면 이것도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서울 시내 한 모텔, 저녁 뉴스를 듣고 업주 박 씨는 단골 술집들에 전화를 건다. 오늘 저녁 손님은 보내지 말기를 바라는 그에게 돌아온 것은 "무슨 소릴 그렇게 해요? 갑자기 이러면 우리 장사는 어떻게 하라고..."라는 핀잔뿐이다. 사실 그 손해는 박 씨도 원치 않는다.

"안녕하세요? A 둘이예요."
밤 11시 무렵, 본격적으로 '2차' 손님들이 들어온다. 단골 술집 A에서 온 세련된 미모의 두 아가씨, 그런 인사와 함께 방 열쇠와 콘돔을 가져간다. 방마다 콘돔 자판기가 있지만 단골 술집 아가씨들에겐 여관이 서비스로 제공한다. 이어 남자 둘을 '모시고' 온 웨이터가 방을 확인한다. 그는 남자들을 귀빈인 양 각 방으로 안내한다. 방에서 기다리던 아가씨가 손님을 맞아들인다.

"지금 여관비 얼마 남았죠?"
그가 입구로 돌아와 계산을 한다. 단골 술집 손님들과 여관은 직접 방 값을 계산하지 않는다. 웨이터가 손님에게서 3만 원을 받아 여관에 만 원을 떼준다. 손님이 아침까지 자면, 1만5천 원을 웨이터가 여관에 더 내는데 주로 외상이 된다. 몇 백만 원이 되기도 하는데 그는 남은 여관비를 묻는 것이다.

"B 셋이요!"
이번에는 단골 B에서 한 웨이터가 남자 셋을 안내하며 들어선다. 방에 들어가자 3만 원을 내라는 웨이터에게 한 남자가 따진다. "아까 아가씨 하나에 12만 원씩 계산한 건 뭐지?" 그러나 순순히 또 지갑을 여는 남자들, 곧 세 아가씨가 온다.

"손님은 한 시간만 자고 간데요. 깨워 주세요."
40분만에 나온 한 아가씨가 말한다. 다른 방에서 나온 남자는 머리를 빗으며 간다. 웨이터들은 쉼 없이 남자들을 데려오고 아가씨들이 따라 들어온다.

"러시아 아가씨 있어요?"
혼자 들어와 여자를 불러달라고 주문하는 남자다. 한 달 백만 원 이상 더 벌 수 있지만 박 씨는 얼마 전부터 그런 손님은 돌려보내고 있다. 불러준 아가씨가 마음에 안드네, 아가씨가 돈을 훔쳐갔네 시비를 거는 남자들이 있었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결국 '윤락알선'에 걸려 경찰에 불려가고 영업정지를 당한 경우를 보았기 때문이다.

자정, "손님은 주무시고 가니까 6시에 모닝콜 해주세요"하며 한 아가씨가 나가고 박 씨는 웨이터 이름에 외상 금액을 기록한다.

▲ 모텔 입구에 깔린 긴 카페트. ⓒ 오마이뉴스 권우성
12시15분, 전화를 받고 급히 방 다섯을 확인하는 박 씨, 일반 손님이 오자 방이 없다고 돌려보낸다. 곧 이어 다섯 명의 아가씨가 한꺼번에 오고, 다섯 명의 남자가 방 다섯에 나누어 들어간다. 물론 술집에서 그들을 데려온 남자 직원의 친절한 안내를 따라서다.

"30분밖에 안됐는데 빨리 나오네요."
"그래도 할 건 다 했어요."
나가는 한 아가씨와 모텔 주인이 가볍게 주고 받는 말이다.

박 씨가 방으로 전화해 "40분이 됐음"을 한 아가씨에게 알린다. 하룻밤에 세 번까지도 '뛰는' 이들이 한 번에 40분이라는 원칙을 지키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때 방금 나갔던 한 남자가 헐레벌떡 들어온다.
"제가 나온 방이 몇 호예요?"
휴대폰을 찾는 것이다.

1시 40분, 두 시간 전 다녀간 아가씨 셋이 다시 오고 넥타이 맨 남자들이 따른다. 2시가 넘어 역시 두 번째인 아가씨가 이번엔 남자와 단둘이 들어온다. 2시 30분, '두 번 뛴' 아가씨가 남자 손님과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다정하게 나간다. 또 한 아가씨가 두 번째로 들어온다. 새벽 3시가 넘어가도 '일상'은 계속된다.

성매매 불감증을 취재하는 모텔에서의 하룻밤, 카운터에 앉아 있자니 내 가슴이 답답하다. 너무 당연하고 익숙한, 그리고 치밀하게 조직된 일상에 무력감을 느낀다. '윤락알선 모텔업주 구속처벌', 얼마나 공허한 말인가. 법으로 과연 이 거대한 시장을 막을 수 있을까. 그래서 어쨌다는 거냐, 모두 다하는 일상적인 일에 누가 딴지를 거냐고 웃는 거 같다.

▲ 아파트 단지 안에 들어선 한 모텔 건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이제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열심히 돈벌어 자식 공부시키는 평범한 아버지요, 남편인 박 씨가 날마다 하는 일을 보라. 아들 같고 딸 같은 사람들이 성을 사고 팔도록 장소를 빌려주고 돈을 버는 것. 너무나 일상적인 일일 뿐이다.

2차하러 온 남자들은 거의가 넥타이에 양복을 입은 젊은 직장인들로 보인다. 성공적인 협상도 하고 앞서가는 아이디어도 내놓았을 그들. 독신도 있겠지만 그들 대부분은 누군가의 남편이고 아버지일 것이다. 그들 얼굴 위로 서글프고 불행하며 분노에 찬 아내들, 그리고 아이들이 겹쳐 보인다.

모텔에는 돈이라는 제왕만 남고 남자도 여자도 모두 팔리는 물건이고 끌려온 노예다. 성을 팔고 사는 사람들의 관계를 보아도 그렇다. 돈의 힘이면 무엇이라도 사고 팔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이 사업에 불황이 없게 한다. 돈과 욕망에 포로가 된 무기력한 사람들은 일종의 집단 최면 상태에서 빠져 있는 셈이다.

"서로 사랑하는 마음 없는 섹스는 한 순간의 배설일 뿐, 쾌락도 만족도 없어요. 욕망과 돈이 그걸 달콤하다고 속이는 거뿐이죠.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 몸은 여기 와 있어요." 한 남자 투숙객(29)이 이 아줌마에게 털어놓는 말이다.

조직생활과 생존경쟁에서 받는 스트레스로 몸과 영혼이 지친 남자들, 그걸 적절히 다루는 건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하지만 그렇게밖에 풀 수 없는 그 한계가 불쌍하다. 자신의 연약함을 사람과의 친밀함으로 나누는 데 서투른 그들에게 삶의 무게는 더 무겁다. 섹스를 배설의 즐거움 이상으로 배우지 못한 사람들, 충동과 욕망을 따라 어느 곳에라도 배설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 한 모텔 전경 ⓒ 오마이뉴스 권우성
사랑하는 사람과의 친밀함과 성실함, 키우고 가꾼 사랑의 즐거움, 그리고 그와 함께 오는 섹스의 '깊은 참 맛'을 그들은 잘 모른다. 단지 힘 안들이고도 '새롭고 자극적인 것'을 얻고 싶고, 2차로 '확 풀고' 뭔가 새로워지길 기대한다. 그러나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도 않거니와 새로워질 것도 없다. 이건 아닌데 하면서도 익숙하고 쉬운 쾌락에 또 몸을 던지는 그들. 강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너무 초라하고 왜소하고 연약한 속모습이다.

너무, 너무도 일상적이 된 성매매. 과연 대안은 없는가 고민하게 되는 모텔에서의 하룻밤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오늘자(4월23일) 한겨레신문(22면)에 실려 있습니다. 
김화숙 기자는 줌마넷 아줌마내공팀 1기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오늘자(4월23일) 한겨레신문(22면)에 실려 있습니다. 
김화숙 기자는 줌마넷 아줌마내공팀 1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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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 운동하고, 보고 듣고, 웃고, 분노하고, 춤추고, 감히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읽고, 쓰고 싶은대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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