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가 '형제국'이라고?

과거 역사에 드러난 터키의 '원죄'

등록 2002.09.10 11:35수정 2002.09.13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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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 아가시를 아시나요?

유럽과 아시아의 관문에 놓인 나라 터키의 2002 피파 월드컵 참가와 함께 터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역사를 돌아보면 언론에서조차 한 면만 강조하며 '형제국'이라느니 하는 일방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역사적 맥락을 무시한 그야말로 무식함에서생겨난 행태이다.

어떤 나라를 집단적인 단위로 이해하겠다면 다양한 면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역사에 '순진한' 죄를 짓지 않으려면 말이다.

미국 가수 셰어를 아는가? 테니스 선수 안드레 아가시는? 이 사람들과 터키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아르메니아라는 나라와 민족이 있다.

우리가 흔히 카프카스(영어로 Caucasus)로 부르는 지역에 있는 나라. 소련의 일부였다가 최근에 소련의 붕괴 이후 독립했다. 지도를 보면 이란의 위에 있는 카스피해와 터키의 위에 있는 흑해 사이에 있는 지역이 카프카스다. 셰어나 안드레 아가시는 아르메니아 민족 출신이다.

오스만 투르크 그리고 발칸

오스만 투르크 제국은 13세기에 세워진 이후 오랜 기간 동북 아프리카, 서남 아시아, 동남 유럽이 만나는 지역을 중심으로 번영했다. 제국의 팽창은 다 비슷한 결과를 낳지만, 이 회교권 제국의 팽창도 그만큼 피압제국의 고난을 낳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수년 전에 유럽인들에게 나치의 대학살의 기억을 생생하게 떠올리게 만든 보스니아 전쟁의 무대인 발칸반도. 에게해를 사이에 두고 그리스와 터키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지역부터 그리스의 위에 있는 옛 유고슬라비아 지역(보스니아,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등)이 모두 발칸이다. 흔히들 '유럽의 화약고'라고 부른다.

코소보에 사는 알바니아인들은 회교도이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점령해서 회교도로 강제로 개종시켰기 때문이다. 개종하지 않으면 그저 죽음이었으니까. 역시 지금은 회교를 따르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 코소보에서 인종청소를 저지른 세르비아는 범 슬라브족에 속해 러시아와 민족적 공통점이 있다.

역시 민족뿐만 아니라 종교도 충돌한다. 러시아 정교나 그리스 정교 등은 기독교 계열이다. 물론 그 종교적 갈등의 근원은 십자군 전쟁 이전으로도 올라간다.

아르메니아 없애기

오스만 투르크 제국은 오랜 팽창과 번영 이후 서유럽과 같은 근대화에 성공하지 못해 쇠락하는 지경에 이른다. 영국 같은 서구 강대국의 영향력이 커지고 러시아는 남진을 시도하고 제국 내의 각 식민지는 독립의 열망을 꿈꾼다.

아르메니아도 그 중의 하나였다. 러시아와 앙숙인 오스만 투르크는 지금의 터키 땅인 아나톨리아 지역의 아르메니아인들을 핍박하기 시작한다. 인류 역사상 가장 먼저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한 카프카스 지역의 아르메니아인들이 투르크의 적인 러시아와 같은 편이라고 여기고 이들을 내부의 적으로 여긴 것이다.

먼저 아르메니아의 작가나 교사, 종교인 등의 지식인이나 지도층을 어느날 갑자기 전원 끌고 가서 목을 매달았다. 인근 지역의 그리스인들과 아르메니아인들에 대한 학살은 이어졌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총을 들 수 있는 남자들은 모조리 끌어내어 처형했다.

부녀자들은 시리아로 뻗은 메소포타미아 사막으로 몰아냈다. 이 사막에서 수많은 이들이 강간당하고 결국 희생되었다. 아이들은 부모가 끌려가는 도중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버려졌고 숱하게 굶어죽었다. 실로 이슬람의 이름으로 기독교도의 씨를 말리겠다는 작전이었다.

오스만 투르크의 권역 내 이교도들에 대한 시각이 그러했다. 한마디로 벌레만도 못한 이들로 본 것이다. 또 투르크는 역사적으로 포용보다는 싹쓸이를 일삼았다.

독일이 제국주의적 파시즘의 배후

당시 독일은 투르크를 이용했다. 1차 대전에 터키가 독일과 합세하는데, 당시 독일은 오스만 투르크의 군 지휘권을 장악하고 군을 개혁하려고 했다. 독일의 빌헬름 2세는 대독일제국의 야망을 꿈꾸고 있었다.

남진하려는 그의 독일제국에 걸림돌이 있었다. 원유매장량이 엄청난 카프카스나 걸프지역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그리스와 세르비아가 눈엣가시로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2차 대전 때도 히틀러의 목표는 카프카스의 유전이었다. 전쟁 수행을 위한 원유가 필요했던 독일군에게는 석유가 유전지대로 가는 길목에 있는 발칸반도의 그리스와 유고슬라비아를 먼저 침공한 주된 원인이었다.

세르비아는 슬라브 민족이다. 슬라브 민족에는 러시아도 포함된다. 코소보 전쟁 당시 세르비아가 러시아의 지원을 받은 것은 당연하다. 또 그리스인들이 왜 영미의 코소보 전쟁을 가열차게 비난했는지도 역사를 보면 이해할 수 있다.

터키가 독일과 합세한 이유

13세기부터 중부유럽의 패권을 장악한 합스부르크 왕가. 19세기 중반에 헝가리와 합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출범시킨다. 오스트리아는 1908년에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를 합병함으로써 그 이웃인 세르비아를 화나게 만든다.

그 즈음의 합스부르크 왕가의 권력은 프란츠 요제프가 쥐고 있었다. 그의 아들 루돌프는 정부와 함께 별장에서 자살한 채 발견되었고, 그의 동생, 막시밀리안은 멕시코에 나폴레옹 3세의 제국을 건설하려는 프랑스군을 따라갔다가 외톨이가 되어 처형당했고, 그의 부인 엘리자베트는 제네바에서 이탈리아인에게 암살 당했다. 이렇게 비극 속에 살다간 요제프는 독자인 루돌프 대공이 죽자, 대를 이을 사람이 없어서 조카인 프란츠 페르디난드을 대공으로 만들어 후계자로 삼는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후계자가 된 페르디난드 대공은 1914년에 6월28일 사라예보를 방문한다. 1429년부터 투르크가 다스리다가 1878년에 오스트리아-헝가리에 포기한 땅인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 페르디난드 대공과 부인 소피는 세르비아 민족주의자인 한 고등학생의 저격을 받고 암살 당한다. 세르비아에 최후통첩을 보낸 한 달 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한다.

기독교와 이슬람의 정면충돌

이렇게 발칸반도의 역사를 짧게나마 되짚는 이유는 터키의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을 이해하려면 이 발칸 지역을 둘러싼 동남부 유럽의 역사를 꼭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페르디난드 대공 부처 암살로 2차 대전이 발발하자 독일은 당연히 오스트리아 편을 든다.

터키는 세르비아의 적이니 독일 편을 드는 것은 물론이다. 영국, 프랑스는 서로 앙숙이지만 독일을 견제하기 위해 세르비아 편을 든다.

최근 세르비아가 다시 차지하려고 한 코소보 지역은 1429년 오스만 투르크에 복속되기 전에 10만명의 세르비아인이 투르크에 저항하다가 몰살당한 전적지를 포함하고 있다. 즉 세르비아인들에게는 오랜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로 이슬람화한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는 투르크에게 빼앗긴 땅이라는 의식이 있는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세르비아는 남슬라브족에 속하면서 러시아인들과 같은 범슬라브족이다. 종교도 같은 러시아 정교를 믿는다. 그리스인들이 그리스 정교를 믿는 것도 역사적 관련성이 있다. 큰 지도를 그리면 러시아는 남진하려고 하고 독일은 그 러시아를 두려워한다.

히틀러도 내부적인 단합을 위해 '볼세비키의 위협'을 늘 강조했다. 즉 극우 파시스트에게는 사회주의자가 적인 것이다. 그러한 독일이 오스트리아 편을 들고 오스만 투르크와 연합하는 것은 당연한 계산이고, 그들에게 당하고 산 세르비아에 러시아가 편을 들어주는 것도 당연한 예측이었다.

터키 대 그리스와 아르메니아

그렇다면 왜 오스만 투르크는 그리스인들이나 아르메니아인들을 대량 학살했을까? 어느 정도 역사적인 배경이 정리되고 설명되었다고 생각한다. 투르크, 즉 이슬람이 중세 유럽의 십자군 전쟁에 맞서 중부 유럽으로 뻗어나가는 길목이자 기독교와 이슬람이 격렬하게 충돌하는 최전선에 바로 세르비아나 보스니아 같은 발칸 제국(諸國)이 있었던 것이다.

1095년에 시작해서 1291년까지 이어진 십자군 전쟁은 10차례나 반복되었고, 4차 원정은 콘스탄티노플 (지금의 터키의 이스탄불) 을 함락시키기도 했다. 이슬람이 당하던 시기라면 그 다음 이어진 세기부터는 복수에 나선 시기라고 해야겠다. 이 점을 강조하는 것은 그 이전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가면 반드시 터키만 '악랄한 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1차 십자군 원정을 일으킬 때 명분 중의 하나가 소아시아 지역을 비잔틴 제국으로 다시 회복하는 것이었다. 1071년에 셀주크 투르크에 소아시아를 빼앗긴 이후 계속된 이슬람 투르크와 그리스-로마 문명을 잇는 비잔틴 제국의 대립은 결국 20세기 벽두에도 엄청난 대학살을 낳는다.

쿠르드족의 착각

정복자로서의 오토만 투르크는 잔학했다. 기독교도들에 대한 증오심이 넘쳤고 학살의 대상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독일의 야심과 결합해서 발칸반도와 소아시아 지역의 그리스인, 아르메니아인들을 (즉, 기독교인들을) 포용하기보다는 깨끗이 정리하기로 결정한 오스만 투르크는 무려 150만명의 아르메니아인을 학살한다.

당시 그리스군이 이러한 행위를 거의 저지르지 않은 것에 비하면 원시적 잔학성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아르메니아인들의 목을 베어서 전적으로 자랑하는 투르크 병사들의 모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당시 같은 소수민족으로서 끌려가는 아르메니아인들의 탄압에 동조한 쿠르드족은 역사의 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이제 자신들이 몰리고 있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후계자로 현대국가인 터키의 군부는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쿠르드 반군에 대해서 초토화 작전을 펴고 있다.

터키와 국경을 맞댄 이라크의 북부 지역에는 쿠르드족이 많이 산다. 1980년대 이라크의 후세인은 이란과 전쟁을 치르는 와중에도 반란을 일으킨다며 쿠르드인들을 독가스로 집단 학살한 바 있다. 터키군도 쿠르드 반군의 목을 자르는 모습을 여전히 보이고 있어 오스만 투르크 시대의 습성을 완전히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또 하나의 '발칸'

한반도의 운명도 마찬가지이다. 영어에 'Balkanization'이라는 단어가 있다. Balkan은 바로 그 유럽의 화약고로 불리우는 세르비아부터 그리스 지역을 일컫는다. 동로마 제국의 후계인 비잔틴 제국의 본거지였던 지역. 후에 오스만 투르크가 패권을 잡았지만 유럽 열강이 작은 국가로 갈기갈기 찢어 독립시켜서 다루기 쉽게 만든 곳(코소보에 미사일과 전투기로 쳐들어가는 영미를 보라). Balkanize라는 동사는 바로 그러한 뜻을 가지고 있다. 작은 나라들로 분열시켜서 서로 죽으라고 싸우게 만든다는 뜻이다.

한반도도 '화약고'로 불리우니 별다른 운명이 아니다. 전형적인 서구 세력이 하는 짓거리다. 반으로 잘라서 힘을 빼는. 그리고 자기들끼리 죽으라고 싸우는 작은 분열 제국들. 종교가 계기가 되지만 인도의 독립과 분열 과정도 마찬가지이다.

이라크를 악마로 취급하며 잡으려고 하는 미국에 공군기지를 빌려주는 터키. 그들에게 1천만명의 쿠르드족은 20세기초의 대학살을 겪은 아르메니아인 취급을 당하고 있는데도 미국은 거들떠보지 않는다.

히틀러가 유태인 대학살을 옹호하며 했다는 말.
"아무도 아르메니아인의 학살을 기억하지 않는다!"

'형제국'이 참전한 이유

한국은 약소국으로, 역사적으로 소아시아의 아르메니아인들과 같은 운명을 겪은 지역이다. 그런데 역사를 모르니 터키가 한국전쟁에 군대를 파견했다고 '형제국'이라는 헛소리가 나오니 이 무슨 엿 같은 무식의 소치이고 망발인가?

역사적 맥락을 볼 때 터키는 당시 파병할 수밖에 없었다. 독일과 1차 대전에 연합한 것은 러시아를 막기 위한 것이었고 아르메니아인들을 잔인하게 학살하면서 아르메니아인들이 러시아 편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가 북한의 뒤에 있으니 그에 대항하기 위해서 남한에 온 것이다. 무슨 남한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터키에서는 한국전쟁 이후 50년대까지도 그리스인에 대한 학살이 이어졌다. 즉 정치 이념으로 따지자면 독일의 히틀러가 볼셰비키를 잡으러 간다고 러시아 침공을 결정하듯이, 그와 비슷한 성향의 터키도 그렇게 행동한 것이다.

역사를 잘 둘러보면 바보들을 빼고는 터키가 한국의 '형제국'이 되어야 할 이유를 전혀 찾을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의 오랜 적인 러시아가 미국과 맞선 꼴이 되자 같이 뛰어든 것뿐이다.

'쿠르드족'이 된 한국인들

1974년에 터키 남부의 키프로스섬에서 쿠데타가 일어나자 그리스계 키프로스군에 맞서기 위해 터키군이 전격 진주한다. 그리스가 군대 동원령을 내리고 당시 소련도 군대에 비상령을 내린 것은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설명한다.

즉 한국 입장에서는 그리스인들이 일시적인 도움을 줬다고 일본에 대해서 '형제국이요 은인 나라'라고 하는 짓거리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약소국은 발칸 반도의 교훈을 직시하지 못하면 투르크 제국에 빌붙어서 처형당하러 끌려가던 아르메니아인들을 덩달아 고문하고 약탈했던 쿠르드족 신세가 된다.

현대의 터키에 물건을 파는 것과, 20세기 전반부에 일어난 150만 아르메니아인 학살이라는 죄악의 역사를 인정하지도 않는 터키의 근세사에 엄정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올 가을에 나올 영화 <아라라트(Ararat)>에서 한국에서는 완전히 잊혀진 아르메니아의 피맺힌 역사를 돌아봄으로써 한국인들이 역사에 대해 저지른 '순진한 죄악'을 씻으시라. 한국이 언제부터 '쿠르드 민족'이 되었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필자가 일하는 사이트에 올린 글이다. 각종 대중매체에서 들리는 '형제국' 소리에 질려서 역사 망각의 심각함을 고발하고자 여기에 옮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가 일하는 사이트에 올린 글이다. 각종 대중매체에서 들리는 '형제국' 소리에 질려서 역사 망각의 심각함을 고발하고자 여기에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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