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미움받고 사는가?

등록 2002.10.12 12:35수정 2002.10.12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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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에 낯선 목소리의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다. 누구냐고 했더니 학교 앨범사진을 맡아 하는 사진관의 사장이란다. '전화를 왜 했느냐'니까 만나서 소주라도 한잔 하잔다. 사진관 사장이 누군지 얼굴도 잘 모르는데 내게 술을 사겠다는 것은 속이 보이는 소리다.

아마 오늘 낮에 앨범업체 선정에 관한 안건을 학교운영위원회에 제출했더니 내가 안건을 냈다는 것을 알고 전화를 한 모양이다. 아마 행정실의 누가 부지런하게 사진관에 연락을 해줬는가 보다. 사진관과 행정실이 무슨 관곈데 그런 정보까지 흘려줬는가? "할 말이 있으면 학교에 오셔서 차나 한잔하면서 얘길 합시다"하고 정중하게 거절했다.

전화를 끊고 생각하니 공무원이 무슨 할 일이 없어 운영위원회 안건까지 사진관에 알려줬을까?, 하는 괘씸한 생각이 든다. 만약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입찰을 하기로 결정되면 50년 가까이 해오던 단골(?) 사진관이 내년부터 바뀌게 될지도 모른다.

위기를 느낀 사진사가 나를 만나서 회유(?)를 한 계산이었던 것 같다. 수십년 동안 이 학교앨범을 독점해오던 사진사는 '속으로 얼마나 성이 날까' 나만 없으면 앞으로 몇 년 아니 몇십년을 더 안심하고 독점이 가능할텐데...

만약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입찰로 결정되면 욕할 사람은 사진사뿐만 아니다. 사진관에 재빨리 정보를 제공해준 행정실 사람도 욕을 할 게 뻔하다. 정년 퇴임을 하지 않았으면 그렇게 입찰을 반대하던 교장선생님에게도 욕을 먹을 것이다. 인간적으로는 사진사에게 미안하다.

그러나 입찰로 결정이 되면 학생들이 5만원 가까운 앨범 가격이 권당 1만원 정도는 더 싸게 살 수 있을 것이다. 3학년 450명이 한 사람 당 1만원씩 450만원을 싸게 구입할 수만 있다면 내가 욕먹어도 할 만한 일이다. 지난 교복 입찰 때도 그랬다. 한 벌에 20만원 가까이 하는 동복을 10만6070원에 바지 한 벌까지 입찰을 하기로 결정했을 때 욕도 많이 먹었다.

브랜드 업자가 직접 찾아오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눈총을 여러 사람에게 받아야 했다. 덕분에 신입생들에게 교복 장사 아저씨 대접을 받아야 했다. 결과적으로 폼 안 나는(?) 일해 가지고 고맙다는 말은 한마디도 듣지 못했다.

우리 학교에는 학교운영위원회의 교원위원 다섯명 중 교장을 뺀 나머지 4명은 전교조 교사다. 운영위원회가 있기 일주일 전에 안건을 받으면 교사위원들이 만나 안건 검토를 한다. 안건에 대한 자료를 준비하고 대안을 마련하기도 한다. 지난해는 지불해서는 안돼는 특기적성교육의 간접수당 때문에 참 많이도 다투었다.

지금은 전출을 가셨지만 '김용택선생 때문에 잠이 안 온다'는 교장선생님도 있었다. 내가 이렇게 욕을 듣기로 작정한 것은 개인의 이익보다 학생편에 서야겠다는 신념 때문이다. 물론 전교조 소속 선생님의 신념이기도 하다. 교사위원으로 일하면서 사익과 공익을 구분할 수 있는 가치관과 토론문화가 절실하다는 것을 자주 느낀다.

나도 인간적으로는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인정(?)도 받고 동료교사들과 부딪히며 살기 싫다. 그러나 공사가 구별되지 않는 문화, 패거리문화가 정리되기 전까지 나는 미움을 받으면서 살아야 할 것 같다.

한번은 '정직보다 정의를 가르쳐야 한다'는 글을 오마이뉴스에 올렸더니 참 논란이 많았다. 어떤 네티즌은 '정의와 정직, 이 두 덕목의 가치를 저울질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제 각각 인간의 가장 고귀한 성품 중 하나이기 때문이지요. 정직은 지키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정의와 정직이라는 가치가 충돌하면 어떤 가치를 선택할 것인가는 논란거리가 아니다. 정직은 개인적 가치요, 정의는 사회적 가치다. 개인적 가치보다 사회적 가치가 우선이라는 것은 초등학생도 다 아는 일이다.

전임지에 있을 때의 일이다. 학교급식이 나쁘다는 학생들의 건의가 학교 홈페이지를 비롯해 다양한 경로로 제기됐다. 급식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을 때는 반찬이 달라졌다가 하루 이틀이 지나면 그만이다. 그런데 교장선생님이 새로 오시면서 문제가 달라졌다.

교장선생님이 바뀐 것과 학생의 급식이 무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이 교장선생님은 돈에 관해서는 청렴결백하다는 소문이 나 있었던 것이다. 학교는 달라져야 한다.

교육을 하는 학교가 도덕적으로 투명하지 못하면 교육은 끝이다. 민주주의를 가르쳐야 하는 학교가 민주적이지 못할 때도 마찬가지다. 교육은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모범을 보이고 실천과 연결되지 못하는 교육은 교육일 수 없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http://report.jinju.or.kr/educate/ '교육칼럼'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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