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 뒷거래· 주식 편법 증여·거래까지
천민자본 근성 드러낸 재벌들의 추태

[심층분석] LG, SK 등에 이어 두산그룹 총수 일가도 가세

등록 2002.10.30 11:23수정 2002.11.05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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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말기에 접어들면서 재벌개혁이 사실상 실패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최근 지배주주 일가들의 편법적인 주식거래 의혹을 받고 있는 두산그룹 사옥 전경. ⓒ 공희정

최근 LG그룹 총수일가의 주식 시세차익 취득 의혹과 SK그룹의 이중거래 파문에 이어 두산그룹 지배주주가 편법성 주식거래를 통해 막대한 시세차익을 대물림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파문이 예상된다.

두산의 경우 무엇보다 외환위기 이후 모범적인 구조조정 그룹으로 평가받았으나, 이번 박용성 일가의 특혜성 신주인수권부사채(BW)의 불법적인 주식 취득과정이 과거 재벌의 악습을 답습했다는 비판이 터져 나오고 있다.

특히 최근 재벌 총수일가들의 불법적인 주식거래 등이 잇달아 터져 나오면서 재벌 오너의 구시대적 행태가 전혀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재벌의 족벌 세습경영 차단과 경영 투명성 확보라는 정부의 재벌정책은 사실상 실패했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해외자본 유치는 말 뿐? 지배주주들 대거 주식취득

기업 지배구조만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는 지난 10월24일 보고서 하나를 내놓았다.

'두산 지배주주일가, 특혜성 신주인수권으로 지배권 확대 및 상속'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는 4일이 지난 28일, 참여연대가 이를 토대로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 등 총수일가가 증권거래법과 외환관리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면서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해외발행 물량이 어떻게 지배주주에게 갔을까?

이번 두산의 편법 주식증여 파문과 관련해, 이들 지배주주들이 어떻게 해외에서 발행된 신주인수권부사채(BW)가 흘러갔는지 관심을 끌고 있다.

BW란 기업이 일반적으로 회사채를 발행할 때 새롭게 발행될 주식을 정해진 가격에 살 수 있는 권리까지 부여해서 발행되는 채권을 말한다.

지난 99년 7월15일 발행한 BW는 원래 유로시장에서 공모로 발행됐으며 룩셈부르크 증권거래소에 상장됐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실제로는 물량 대부분을 국내 대주주일가가 사들였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는 "결국 해외에서의 공모 발행이 악성 신주인수권부사채를 대주주일가가 독식하는데 따른 세간의 비판을 피하기 위한 외관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문제는 지배주주들이 이처럼 좋은 조건의 BW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자금을 어떻게 조달했는지, 이같이 많은 물량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외환관리법상의 위반 혐의는 없는지도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 김종철 기자
(주)두산이 지난 99년 7월 15일 해외에서 발행한 1억불 규모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가 문제의 발단. 보통 외국자본 유치를 위해 발행되는 이 사채를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을 비롯해, 박용오, 박용곤 등 두산그룹 3세대들이 대거 사들인 것이다.

하지만 이들 3세대들은 99년 9월 3일께, 신주인수권을 일제히 박정원 등 두산 4세대들에게 넘겼으며, 현재 이들 주식은 박정원 두산(주) 상사BG부문 사장 등 총수일가 25명이 가지고 있다. 불과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문제는 4세대들에게 넘어간 BW의 행사 가격이 당초 발행당시 가격보다 크게 낮아졌다는 것이다. 99년 7월 행사당시 5만100원이었던 주식행사가격은 올 10월15일 현재 9460원까지 떨어졌다. 5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격이다.

이 결과 이 BW를 가진 두산 총수일가가 주식을 살 수 있는 숫자도 당초 159만5056주에서 현재 811만6129주로 5배 이상 늘어나게 됐다. 해외자본 유치보다 지배주주들의 주식 취득 목적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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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인수권의 행사가격과 조정내역 ⓒ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


엄청난 시세차익과 총수일가 지배권 강화 의혹

문제는 두산 지배주주들의 편법적인 주식 증여를 통한 막대한 시세차익이 대물림됐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총수 일가의 지분 역시 크게 높아져 그룹에 대한 지배권 강화도 예상되고 있다. 사실상 '구시대적 족벌세습 경영으로의 회귀'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우선, 지난 99년 7월12일자 공시내용을 보면, 신주인수권행사가격 조정에 대해 "추후 유·무상증자, 주식분할 또는 병합 등으로 인하여 행사가격이 조정될 수 있음"이라고만 표시돼 있다. 정작 중요한 주가하락에 따른 행사가격 하향조정에 대해선 전혀 언급이 없다.

결국 신주인수권 행사가격을 시가에서 할인하지 못하도록 하는 증권관련 법령을 회피하면서 공시의무까지 위반했다는 것이 참여연대 쪽의 주장이다.

무엇보다 두산 지배주주들은 앞으로 주가가 오르면 막대한 시세차익을 누릴 수 있게된다. 왜냐하면 한번 낮아진 BW의 행사가격이 주가가 오르더라도 행사가격이 다시 상향조정되지 않도록 이미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산 지배주주 일가는 싼 값으로 지금보다 훨씬 값이 오른 주식을 살 수있고 그 과정에서 막대한 시세차익을 얻을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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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지분구조도 ⓒ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

또 하나는 지배주주의 그룹지배권 강화다.

지난 99년 7월 발행당시 가격이었던 5만100원으로 지배주주들이 살 수 있는 주식수는 237만259주. 하지만 현재 크게 떨어진 행사가격 9460원으로 살수 있는 주식수는 무려 1164만9049주로 5배이상 늘어난다. 지분율도 15.68%에서 39.09%로 크게 늘어나게 되고, 반대로 소액주주의 지분율은 40.28%에서 29.09%로 크게 떨어진다. 지배권이 강화된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이같은 지분율 역시 현재 기준이며 주가가 더 떨어질 경우 BW로 살 수 있는 주식물량은 더욱 늘어난다는 점이다.

참여연대 박근용 경제개혁팀장은 "그룹 대주주들이 해외에서 발행된 BW를 사들인 후, 행사가격 하락에 따른 지분확대와 시세 차익의 기회를 자녀들에게 넘겨준 것은 명백한 편법증여로 볼수 있다"고 말했다.

두산 "나쁘게만 보면 끝도 없다"

이에 대해 두산그룹 김진 상무는 28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그쪽(참여연대)에서 삼성과 현대차 등을 건드리더니, 별로 크지도 않은 우리를 왜 건드리는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 "모든 것을 나쁘게만 보기 시작하면 전부 나쁘게 보이며 끝도 없다"며 불만을 표했다.

김 상무는 이어 "그룹 재무쪽 담당 부서로부터 (주식 발행과 취득과정에) 아무런 법적 문제가 없다고 들었다"면서 "어떤 오너가 자신의 회사 주식 가격을 떨어뜨리면서 이득을 얻겠는가. 대주주의 신주인수권은 행사되지도 않았고, 따라서 시세차익 이야기하면서 편법 운운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말했다.

두산은 또 해명자료를 통해 "BW 인수는 증권시장에서 정당한 절차를 통해 매매했고 지분변동 사실을 증권거래법 공시 규정에 의거 공시했다"면서 "따라서 증권거래법 등을 위반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는 29일 반박자료를 통해 "두산쪽에서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는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면서 "유로시장에서 대주주가 BW를 인수한 후 2세들에게 전량 이전한 거래 조건, 주가하락에 따른 조정을 공시하지 않은 사실 등에 전혀 해명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신 못 차린 재벌들, 정권말기에 터져나오는 과거 행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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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희정

LG, SK그룹 등에 이어 두산그룹 지배주주들의 불법적 주식거래 의혹이 불거지면서 현 정부의 최대 개혁과제였던 '재벌개혁'이 사실상 실패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김상조 소장(한성대 교수)은 "현 정부 재벌개혁의 핵심은 재벌총수 일가의 황제경영을 막고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것이었다"면서 "하지만 정부는 재벌의 구조적인 개혁보다는 기업간 빅딜이나 부채비율 200%와 같이 개혁의 가시적 성과에 급급했다"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이어서 "이같은 성과를 내기 위해 (정부가) 개혁의 대상이었던 재벌 총수를 파트너로 인정한 것이 재벌개혁 실패의 원인 가운데 하나"라면서 "두산을 포함해 LG 등 최근 재벌총수들의 행태가 크게 바뀌지 않은 것을 보면, 정부 스스로도 이들의 불법적 행위를 용인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고려대 장하성(경영학과) 교수도 "이번 두산의 경우를 비롯해 최근 재벌들의 과거 행태가 다시 재현되는 것은 현 정부의 재벌 개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정권 말기와 함께 대통령 선거가 맞물리면서 재벌들의 이같은 행태들이 언제, 어디서 더 나올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족벌 경영 미래없다"던 박용성 회장 도덕성 치명타

▲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
ⓒ대한상공회의소
"한국식 패밀리 비즈니스(Family Business, 족벌경영)로 가서는 망한다."

이같은 발언은 두산그룹 지배일가의 불법적 주식거래 의혹과 관련해, 당사자로 거론되고 있는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이 얼마 전에 말한 내용이다.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직을 겸하고 있는 박 회장은 지난 9월19일 기자간담회에서 "글로벌 경쟁시대에 국내기업들이 세계기업으로 성장하려면 비즈니스 패밀리(Business Family, 전문경영)를 추구해야지 한국식 패밀리 비즈니스(Family Business, 족벌경영)로 가서는 망한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이 자리에서 스웨덴의 <볼보>와 <사브> 자동차 회사를 대표적인 비즈니스 패밀리로 들면서, "가업을 이어받아 기업의 경영 핵심부를 가족으로 구성하는 전통의 가업 기업 방식으로는 우리 기업의 미래가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같은 박 회장의 발언은 결국 최근 신주인수권부사채를 4세에게 편법적으로 증여한 의혹을 받게 되면서 사실상 '말 따로 행동 따로'라는 인상과 함께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게됐다.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는 "간담회때 이같은 회장의 발언은 당시 주변으로부터 큰 반향을 일으킬 정도로 호응이 좋았다"면서 "두산그룹과 관련해서는 언급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 김종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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