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호씨는 왜 자살을 선택했나?
한국중공업 특혜인수서 예고됐다

[심층분석] '잘 나가던 회사'의 민영화와 한 노동자의 죽음

등록 2003.01.23 18:00수정 2003.01.28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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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은 한국중공업 인수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사진은 두산그룹 본사

[최종편집 : 1월 23일 밤9시]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

2000년 12월 12일 자산 4조원이 넘는 한국중공업을 두산이 3057억원에 인수했을 때 사람들이 보인 반응이다.

김대중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 정책에 따라 덩치큰 공기업, 한국중공업도 민영화의 도마 위에 올랐다. 김대중 정부는 공기업 민영화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한국중공업 민영화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2년이 흐른 지금, '성공했다는' 두산중공업은 흔들리고 있다.

지난 1월 9일 한 노동자 배달호씨의 자살은 두산중공업뿐 아니라 두산그룹 전체를 기우뚱하게 만들고 있다.

배달호씨는 왜 자살을 선택한 것일까. 배씨의 자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산중공업이 한국중공업을 인수한 2년 동안의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새우가 고래를 삼킨 민영화

한국중공업은 잘 나가는 회사였다. 99년 기준으로 자회사를 제외하고 총 자산 4조 537억, 매출액 2조 2108억, 부채비율 139%로 재무구조가 건실한 편이었다. 그러다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정책에 따라 1999년 12월 발전설비 일원화와 선박엔진 빅딜을 단행하고, 2000년 10월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는 36%의 주식매각을 공고했다.

당시 재계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은 알짜 공기업인 한국중공업을 과연 누가 인수할 것인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런데 치열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2000년 11월 초 진행된 입찰참가 신청에는 두산컨소시엄과 스페코 컨소시엄만이 참가했다.

더구나 스페코 컨소시엄의 경우 컨소시엄에 참여한 (주)스페코(자산 3299억, 매출 324억, 부채비율 218%), 대아건설(자산 3916억, 매출 2626억,부채비율 238%), 한라스페코중공업(자산49억, 매출 0, 부채비율 23%) 등의 기업들은 자산 규모나 매출면에서 입찰자격조차 의심스럽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올 정도로 작은 기업이었다.

이 때문에 당시 언론은 스페코 컨소시엄과 두산의 싸움을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로 비유했으며, 일각에서는 스페코 컨소시엄을 두고 '들러리'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두산의 화려한 변신

두산은 총자산 규모 4조원의 한국중공업을 인수하면서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자산 7조 6500억으로 재계 서열 12위를 기록했던 두산은 한국중공업 인수로 자산 11조 7000억원으로 재계 순위 8위로 껑충 뛰어 올랐다.

두산은 IMF 이전에 구조조정을 완수한 기업이라는 찬사를 받아왔다. 1995년부터 '불변즉사'(不變卽死)를 부르짖으며 변신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두산은 1995년과 1997년 1,2차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29개 계열사를 (주)두산, 두산건설, 두산포장, 오리콤 등 주력 4개사로 대통합했다.

한국중공업을 인수하면서 그룹의 색깔도 바꿨다. '물장사'로 대표되는 주류 ,식품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탈피해 중공업을 대표 사업으로 내세웠다. 두산의 한국중공업 인수는 김대중 정부가 입만 열면 자랑하는 대표적인 민영화 성공사례로 꼽히고 있다. 두산은 한국중공업 인수 이후 2001년과 2002년 연속해서 흑자를 기록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두산 박용만 사장은 "한국중공업은 앞으로 100년간 두산그룹을 이끌어갈 주력 기업이 될 것이다"라고 의미를 부여한 바 있다. / 박수원 기자
한나라당 안영근 의원은 2001년 10월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한중 매각입찰에 참여한 스페코사는 자본금 76억원에 불과한 소규모 플랜트업체로 수천억원에 달하는 인수자금을 마련할 능력도 없었다"며 "이는 두산이 한중 입찰 때 수준 미달인 회사를 들러리로 세우는 전형적인 담합 행위"라고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결국 두산 컨소시엄은 3057억원에 한국중공업을 인수했다. 그러나 석연치 않은 구석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우선 정부가 계획한 한중 입찰매각 추진 현황에 따르면 입찰 참가자격을 '한중과 유사동종업종을 실질적으로 영위하는 국내법인 또는 동 법인이 주요 출자자로 포함된 컨소시엄'으로 규정하고 있다. '물장사'를 주력 업종으로 삼았던 두산이 중공업 쪽 경험이 미미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었다.

여기다 두산컨소시엄에 참여했던 (주)두산과 두산건설은 부채비율이 221.1%와 232%로 당시 정부가 제시한 부채비율개선 200% 이하 방침에 미치지 못한 상태였다. 정부가 두산에 노골적으로 특혜를 제공했다는 의혹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36%의 주식을 소유한 두산이 경영권 행사를 할 수 있도록 외환은행 지분 15.74%에 대해 2002년까지 권리 행사 권한을 위임하기에 이른다.

당시 한국중공업 민영화를 추진했던 기획예산처 박종구 공공개혁관리단장(현재 국무조정실 수질개선기획단 부단장)은 "외환은행이 자율적으로 지분에 대한 권한을 위임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두산중공업은 이메일 답변을 통해 "외환은행 지분 위임은 공개입찰에서 입찰 조건에 명시된 조항"이라고 '다른' 주장을 내놓았다.

정부가 두산에 특혜를 줬다는 근거는 또 있다. 2001년 5월 공정거래위원회는 두산그룹의 한국중공업 인수가 출자총액제한 제도의 예외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해 법적 검토 작업에 들어갔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두산이 한국중공업 인수로 타법인 출자총액제한에 걸리게 되자 뒤늦게 '구조조정을 위한 타법인 출자는 예외로 인정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공정거래법을 '뜯어 고쳐' 두산의 문어발 확장에 나서는 길을 터 주었다.

정부가 법까지 고쳐가면서 두산이 성장하는 데 자원 봉사를 한 셈이다. 이 덕분에 두산은 주력업종을 아예 중공업으로 바꿔 두산중공업 뿐 아니라 발전설계회사인 한전기술, 한전기공까지 인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게 된다.

한국중공업 인수가 특혜라는 지적에 대해 두산중공업은 "한중 민영화는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정부의 결정이었고, 두산이 전략적으로 사업구조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한중 민영화 추진이 두산의 전략과 일치해 진행한 일"이라며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루어진 민영화를 특혜라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라고 반박했다.

'자기 주머니에서 또 자기 주머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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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6일 두산타워 앞에서 한국중공업 노조 조합원과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고 배달호씨의 분신과 관련 박용성 회장의 퇴진을 요구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두산기계 최승철 사장(현 두산 매카텍 사장)은 2001년 11월 16일 두산기계 임원들과 연구원들에게 한 통의 이메일을 보냈다. 이메일 제목은 '합병회사 신사명(新社名) 공모'였다. 잠시 메일 내용을 살펴보자.

"어제(11.15)부로 우리 두산 기계BG는 외형상으로는 한중DCM에 사업이 양도되는 모양을 갖추었으나 실제는 기계BG가 한중DCM을 흡수 합병하게 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회사가 12월 말에 탄생하는 것이지요. 내용적으로는 여러 가지가 바뀌게 됩니다.

제가 우리식구들에게 다 아시는 내용을 새로 이야기하는 것은 부탁 말씀이 있어서입니다.

새로 출발하는 회사의 사명을 정하기 위해 여러분들의 좋은 IDEA를 찾고자 함입니다. 최근 타회사들이 바뀐 이름들은 한번 REMIND하시고 작명을 하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기아중공업이 WIA로
현대정공이 현대 MOBIS로
삼성항공이 삼성 TECH WIN으로
현대전자가 HINIX로 바뀌었음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오래 생각하신다고 좋은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들의 번뜩이는 기지를 기대합니다."


위 메일에 기록된 대로 2001년 11월 15일 한국중공업의 자회사인 한중DCM과 두산기계는 합병됐다. 두산그룹의 계열사인 두산기계는 한중DCM에 토지와 영업권을 포함해 모두 3000억원에 팔렸다. 말이 좋아서 팔린 것이지 두산기계 최승철 사장의 표현대로 "두산 기계BG는 외형상으로는 한중DCM에 사업이 양도되는 모양을 갖추었으나 실제는 기계BG가 한중DCM을 흡수 합병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두산은 총 자산 4조원이 넘는 한국중공업을 3057억원에 인수해 1년이 채 되지 않아 한국중공업의 자회사인 한국DCM을 앞세워 3000억원을 주고 두산기계를 사는 '자기 주머니에서 또 자기 주머니'로 돈을 옮기는 내부거래를 진행했다.

합병이 추진될 당시 두산기계의 규모와 경영현황은 두산이 인수자금 회수를 위해 부당 내부 거래를 진행했다는 의혹을 갖게 만든다. 두산기계는 자산이 2367억원이고 부채가 867억원에 불과한 회사였다. 한국중공업과 비교가 될 수 없는 작은 기업이다. 그런데 산술적으로 한국중공업 인수 가격과 두산기계 인수 가격은 비슷하다.

결국 두산은 몇 번의 되팔기를 통해 인수 자금을 회수하는 '엄청나게 남는 장사'를 한 셈이다. 이익이 쏠쏠한 장사는 계속됐다. 두산은 서울 강남에 위치한 한국중공업 사옥을 2001년 12월 푸르덴셜 보험사에 1079억원을 받고 매각했다.

부당내부거래라는 지적에 대해 두산중공업측은 "사업양수도 가격이 공정하지 않으면 부당 내부거래로 제재를 받기 때문에 외부 회계법인의 실사를 거쳐 가치 평가를 거친 후 가격을 결정했다"며 "법에 따라 투명한 절차에 의하여 사업을 양수도 했다"고 설명했다.

인수가격과 관련 두산중공업은 "한중DCM은 두산중공업에서 800억을 증자 받았고, 1300억 부채로 인수한 것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800억 현금만을 지급하고 두산기계를 인수한 셈"이라고 덧붙였다

계속된 노조와 두산의 마찰

이런 과정을 처음부터 지켜본 한국중공업 노조는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반대로 두산에게 강성 노조로 분류됐던 한국중공업 노조는 제거해야할 '눈에 가시'였다.

두산중공업은 한국중공업을 인수한 직후인 2001년 1월부터 대대적인 구조조정 작업에 착수했다. 1124명이 명예퇴직 형식으로 잘려나갔다. 2000년 7500여명이던 직원은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2001년에는 6270명으로 줄어들었다.

대대적인 구조조정 이후 노사는 계속 칼끝에 서서 날카롭게 대치했다. 2001년 임금단체협상에서 회사가 소사장제 실시를 요구하자 또 다시 고용불안을 느낀 노조는 3개월 동안 파업을 통해 소사장제 철회를 관철시키고 임단협을 마무리지었다. 2002년에도 노사 대립은 계속됐다. 2001년 단체협상에서 합의된 집단교섭 약속이 지켜지지 않자 교섭은 진행되지 않았고, 노조는 다시 47일 동안 파업을 진행했다.

47일 파업으로 61명이 고소·고발된 상태고, 해고 18명을 포함해 89명이 징계를 받았다. 여기에 파업으로 인한 가압류 금액이 65억원, 부동산 가압류자가 21명, 조합비 및 급여 가압류자가 63명에 이른다.

분신 자살한 고 배달호씨는 두산과 노조의 싸움을 중심에서 지켜본 인물이다. 그는 노조 대의원으로 노사가 가장 극심하게 대립하던 2002년에 교섭위원을 지냈으며 47일 파업으로 구속까지 경험했다.

두산중공업은 2002년 5월 22일 단체협약 일방해지 통보 이후 6개월 넘게 단협이 체결되지 않다가 12월에야 단협을 체결했다. 노조가 있는 기업에서 '단협 일방해지'는 드문 일이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단체와 시민단체는 배달호씨의 분신을 계기로 두산제품 불매 운동을 벌이는 등 두산그룹을 압박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참여연대, 경실련, 환경연합, 녹색연합, 여연, 민변, 보건의료단체연합, 교수노조 등 50여개 시민사회단체는 23일 기자회견을 열고 △ 신종 노동탄압 손해배상 가압류 해결 대책과 법개정 △ 두산재벌의 한국중공업 인수 특혜 의혹 규명 특검제 도입 △ 두산중공업 편법 재산상속 의혹 규명과 처벌 등을 강력히 촉구했다.

알짜배기 공기업 한국중공업을 손쉽게 삼켜 재계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았던 두산이 한 노동자의 분신 자살로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놓여 있다.

'괴로운' 두산중공업 박용성 회장

▲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
지난 1월 16일 민주노총이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직 사퇴를 요구하자 두산중공업 박용성(63) 회장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 동안 노동자 단체에서 노동운동이라는 명목 아래 불법행위를 벌였지만 사용자단체에서 노동자단체 대표의 거취문제를 거론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런데도 민주노총 등 노동단체가 두산중공업 노조원 분신 사망 사건과 관련, 대한상의 회장 거취 문제를 거론하고 있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고 온당치 못한 주장이다."

두산그룹의 로열 패밀리로 고 박두병 회장의 3남인 박용성 회장은 두산중공업 노동자의 분산자살이 있기 전까지는 적어도 '행복한' 경영자였다. 지난해 11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상업회의소(ICC) 이사회에서 부회장으로 피선되자 박 회장은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나는 행복합니다."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이 "행복하다"고 말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에다 2년 후 회장으로 자동 승계 되는 ICC부회장 자리를 움켜줬다. 어디 그 뿐인가. 2000년 5월부터 대한상의 회장을 맡으면서 소신을 가지고 '하고 싶은' 말은 모두 하고 살았다. 2002년 대한상의 송년회 행사에서 그는 "스키장이 백두대간을 파괴한다"는 지적에 대해 소신을 피력했다.

"백두대간? 풍수지리하는 사람이나 따지는 거지. 우리는 스키장 시설을 늘려야 해요. 동남아에서 30만명이 일본보다 싼 한국으로 스키타러 오는데, 1인당 100달러만 써도 어딥니까."

지난해 9월에는 한국중공업 노조를 공격했다.

"노조는 아직 민영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아무리 내 욕을 해도 결코 노조에 항복하지 않겠다."

자신만만했던 '행복한' 경영자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은 한 노동자의 분신자살로 요즘 괴롭다. '따논당상' 인줄 알았던 대한상의 회장 재임도 어렵다는게 주변의 반응이다. / 박수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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