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일가, 주식 되팔기로 1900억 챙겨
SK 닮아..총수 자녀들 수백억'갑부'

[집중기획 ①-LG] '부 대물림' 과연 정직했나?

등록 2003.02.24 14:51수정 2003.03.03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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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재용'의 'e-편한세상'. 지난 2000년 중반 <오마이뉴스>가 삼성가 재벌 3세 이재용씨의 편법적인 부 대물림을 고발하면서 모 건설사 광고 카피에 빗대어 쓴 이름이다. 당시 <오마이뉴스>가 던진 질문은 간단하다. 이씨가 과연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국가와 국민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대재벌 삼성을 경영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같은 질문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번 SK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로 사회전반에 또 다시 부의 올바른 대물림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과연 우리사회에 깨끗한 부자, 존경받는 재벌은 존재할 수 없느냐는 것이다. <오마이뉴스>는 [집중기획]으로 다섯 차례 안팎에 걸쳐 국내 유수 재벌들의 2, 3세에 대한 편법적인 부의 대물림과 이를 통한 재벌가의 부당한 내부거래 실태를 고발한다....<편집자 주>


[특별취재팀: 김종철,이병한,박수원,황방열,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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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그룹 총수일가 등이 지난 99년 이후 계열사 주식을 사고파는 과정에서 1900억원대의 부당이득을 얻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 LG본사. ⓒ 유창재

LG그룹 구본무(58) 회장에게는 아들이 없다. 대신 딸이 두 명 있을 뿐이다. 첫째 딸은 구연경(25)씨고, 둘째 딸은 구연수(1996년 2월생)양이다. 둘째 딸은 이제 겨우 7살이다.

한국 재벌가에서 불문율처럼 여기는 '아들이 경영권을 승계한다'는 공식을 구본무 회장은 지킬 수 없는 조건이다. LG가 세습을 중단하고 지주회사 출범을 준비한 이유를 많은 사람들은 여기에서 찾기도 한다.

LG그룹 경영권을 승계할 수 없는 대신 장녀인 구연경씨와 차녀인 구연수양은 아주 어린 나이에 갑부가 됐다. 구연경씨는 2월 20일 현재 주식가격으로 시가총액 499억원의 LG계열사 주식을, 미성년자인 구연수양은 17억원 상당의 주식을 소유하고 있다. 25살과 7살인 자매가 '거부'(巨富)가 된 이유는 단 하나, 아버지가 LG그룹 구본무 회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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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SK그룹 최태원 회장이 구속됨에 따라 2003년 3월 1일 지주회사 출범을 앞두고 있는 LG그룹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LG그룹도 부의 대물림에서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삼성과 SK의 부의 세습이 '이건희-이재용', '최종현-최태원' 등 단일라인으로 흐르는 데 비해 LG그룹은 형태를 좀 달리 하고 있다.

장손인 구본무 회장이 오너인 것은 분명하지만 구씨 형제들과 창업 파트너인 허씨 일가 등 방계에 걸쳐 부의 세습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SK그룹에 대해 진행되는 검찰 내사 내용의 핵심은 '합법을 가장한 편법 부의 대물림'이다.

재계에서는 검찰 수사가 확대될 경우 LG그룹이 다음 타자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점치고 있다. 검찰은 "SK그룹 최태원 회장의 계열사간 비상장 주식 거래가 상속세법 규정에 맞더라도 실제 기업가치를 반영하지 않았을 경우 '배임죄'로 처벌할 수 있다"고 밝혔다.

검찰의 '배임죄' 적용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지난달 27일 참여연대가 LG를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한 내용도 SK그룹의 유형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SK그룹 최태원 회장이 '배임죄'로 처벌받게 되면, LG그룹도 여기서 예외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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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가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한 LG석유화학 주식이동 과정을 잠시 살펴보자. LG그룹의 먹이사슬 구조는 99년 6월 29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99년 6월 구본준 사장 등 LG그룹 총수 일가는 LG화학(현 LGCI)을 통해 LG석유화학 지분의 70%에 해당하는 주식 2744만주를 주당 5500원에 매입했다가 2002년 4월, 분할된 LG화학에 이중 632만주를 주당 1만5000원에 되팔아 주당 9500원의 매매차익을 챙겼다.

참여연대에 따르면 LG그룹 총수 일가가 LG석유화학 주식을 매입한 뒤 2001년 LG석유화학이 거래소에 상장됐고, 총수 일가는 2002년 1월부터 9월까지 LG석유화학 주식 1708만주를 주당 1-2만원에 장내 매각했기 때문에 LG그룹 총수 일가가 얻은 시세차익은 공시를 통해 확인된 사항만도 1900억원대에 이른다는 것.

주식시장에 올라온 회사들이 의무적으로 발표해야 하는 공시에 근거해 확인된 액수가 이 정도라는 이야기다. 여기에 처분내역이 알려지지 않은 768만주까지 합하면 LG그룹 총수 일가와 LG석유화학이 부당내부거래를 통해 얻은 이익은 훨씬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참여연대는 이미 99년 LG석유화학 주식 매각 당시 "대주주에게 LG석유화학 주식을 헐값에 매각했다"며 LG화학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한 바 있다. 그 결과 2000년 1월, LG화학은 공정위로부터 부당 내부거래 판정을 받아 79억4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았다.

참여연대 대표주주소송에서 배상금을 823억원으로 책정한 이유는 공정위가 99년 당시 LG석유화학 주식의 적정거래가격을 주당 최소 8500원으로 판단한 점에 착안해 계산한 결과다.((8500-5500)원×2744만주=총823억2000만원).

참여연대는 지난해 4월 LG그룹 총수들이 LG석유화학 주식을 되팔자, 즉각 LG에 총수 일가가 현재 보유하고 있는 LG화학의 지분 중 823억원 상당의 지분을 임의로 무상 소각해 부당이득을 회사에 반환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LG측이 이러한 제안을 거부했고, 주주대표소송에까지 이르게 됐다.

이 사건에 대해 LG그룹 쪽에서는 그룹이 전자와 화학계열의 지주회사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과정에서 생긴 일이라고 강조한다.

그룹 관계자는 "LGCI(화학계열)와 LGEI(전자계열)주도의 지주회사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지주회사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해당 회사가 대주주들의 지분을 사들였을 뿐, 차익을 남기기 위해 한 일은 아니다"면서, "세법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적법하게 처리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세련된' 편법

물론 LG그룹의 주장이 아주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LG그룹은 올해 3월 1일 지주회사 출범을 앞두고 2002년 분주하게 움직였다.

지난해 11월 28일 LGCI와 LGEI가 각각 이사회를 열고, 2003년 3월 1일자로 두 회사를 합병하기로 결의했다. 이를 위해 LG경영의 양축인 구씨와 허씨 일가는 본격적인 지분정리 작업에 들어갔다. 지주회사가 출범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각 자회사 지분을 30%(비상장사 50%)이상 보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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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그룹 구본무 회장. LG그룹은 지주회사 출범을 앞두고 구씨와 허씨의 지분정리를 끝냈다. ⓒ 자료사진

LG그룹은 지주회사 출범이 재벌개혁정책과 기업의 투명성을 요구하는 사회분위기에 부합하고,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설명한다. 지주회사 출범은 그 동안 재벌기업들의 폐해였던 순환출자 등의 악순환 고리를 끊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 의미가 있다. 그 동안 재벌 계열사 중 일부는 장사를 잘하고도 지분을 가지고 있는 다른 계열사들의 실적악화로 봉변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LG그룹이 지주회사를 출범시키면서 '세련된' 방법으로 경영권을 확고하게 만드는 효과를 거뒀다는 평가도 있다.

그룹 총수 일가들이 지주회사 출범을 명분으로 주식을 교환하면서 엄청난 시세차익과 지주회사와 기타 계열사에 대한 경영권까지 장악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었기 때문이다. 이런 지적을 뒷받침하는 근거도 있다. <에퀴터블>이 2월 발표한 '2002년 1년 간 보유주식 평가액 상승리스트' 10위안에 LG계열사 임원들이 대거 포진된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보유주식 평가액은 2002년 초 1017억원에서 연말에 2300억원으로 상승했다. 상승액이 무려 1283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밖에도 허창수 LG건설회장(3위)이 777억, 구자열 LG전선 사장(4위)이 756억, 구본준 LGEI 사장(5위)이 745억, 구자엽 LG건설 상근 고문(9위)이 535억원 등으로 보유주식 평가액 상승폭이 어마어마했다.

한편 허창수 LG건설회장은 2002년 1000억원에 달하는 LG석유화학과 LG카드 지분을 매도한 후 이 자금으로 LG건설 지분을 약 883억에 매입했다. 이 결과 허창수 회장은 LG건설 지분 12.94%을 확보해 최대주주로 뛰어올랐다.

결과적으로 '합법을 가장한 편법적' 방법을 통해 시세차익을 남기고 구씨와 허씨 일가들이 LG지배권을 공고히 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LG그룹의 동반 창업주인 구씨, 허씨 일가는 3세, 4세인 20대와 미성년자들에게까지 대량으로 주식 증여를 통해 부를 세습하고 있다. 구본무 회장 딸인 구연수양 뿐 아니라 20여명이 넘는 구씨·허씨 미성년자들이 수십억원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물론 미성년자나 20대에게 주식을 증여했을 경우 증여세 포탈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불법은 아니다. 하지만 미성년자의 경우 상장이 확실시되거나, 상장을 계획중인 비상장 법인 주식을 싼값에 증여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에 '합법적인' 조세 회피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 구씨, 허씨 3, 4세 미성년자들 15명 정도가 작년 4월 상장해 대주주들을 돈방석에 앉게 해준 LG카드 주식을 소유하고 있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더욱 큰 폐해는 재산 상속 뿐 아니라 경영권 상속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모르지만 LG그룹 구본무 회장의 장녀인 구연경씨는 2월 4일부터 2월 12일 LG투자증권 주식을 집중적으로 매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구연경씨의 LG투자증권 지분율이 2.01%로 상승했다. 최대지분을 보유한 작은아버지 구본준 LGEI 대표이사(2.7631%)에 이어 두번째로 주식을 많이 소유한 셈이다. 이를 두고 벌써부터 증권가에서는 "구본무 회장이 장녀를 경영에 참여시키려는 뜻 아니겠느냐"는 이야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큰 틀에서 보면 LG그룹은 지주회사(주)LG와, 대주주 관리형태의 금융계열사, 지주회사에 편입되지 않은 LG상사와 LG건설 등의 계열분리기업으로 나눌 수 있다.

그 가운데 LG그룹 구본무 회장이 지주회사로 편입될 LGEI, LGCI, LG생명과학의 대주주로 있다. 지주회사에 편입이 될 수 없는 LG투자증권의 대주주는 구본준 회장이다. LG건설의 대주주는 허창수 회장이고, LG상사의 최대주주도 구본무 회장이다. 한눈에 봐도 복잡한 경영 구도를 교통정리 했음을 알 수 있다.

이번 LGCI 주주대표소송을 담당하고 있는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하승수 변호사는 "상장계획과 주식 되팔기를 진두지휘한 사람은 총수일가 이기 때문에 지주회사 출범을 위한 지분 확보 차원에서 어쩔 수 없이 진행한 일이라는 LG의 설명은 궁색하다"면서, "결과적으로 총수 일가의 지분을 보장하기 위해서 몇 차례의 주식 되팔기를 통해 시세차익도 남기고 경영권도 확보한 셈이 됐다"고 반박했다. 하 변호사는 "LGCI 사건은 SK그룹건과 유사한 '비상장주식'문제이기 때문에 SK그룹이 사법처리 된다면 LG도 피해갈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재벌 총수일가의 비상장주식에 대한 편법 되팔기를 막기 위해서는 국세청이나 금감원 등의 행정기관이 일상적인 감시, 감독을 진행해야 하며, 주식시장에 공개되는 정보를 일반 투자가들에게 자세하고, 투명하게 공개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주회사 출범을 통해 LG가 기업 투명성을 높일지, 아니면 대주주의 지배권을 공고히 만드는 계기로 삼을지는 전적으로 LG의 선택에 달려있다. LG가 어떤 선택을 할지 국민들의 관심이 그 어느 때 보다 높다.

LG그룹이 지주회사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
구씨와 허씨의 3대에 걸친 동거

LG가 대기업 최초로 지주회사 설립 계획을 발표한 것은 LG만의 독특한 지배구조에서 기인한다. 구씨와 허씨의 연합체인 LG그룹은 그 동안 소유와 경영이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재계 관계자들은 LG그룹의 복잡한 지배구조가 SK나 삼성과 비교해 의사결정 효율성을 크게 떨어뜨린다고 보고 있다.

LG그룹 구씨와 허씨의 특수관계는 194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구인회 LG그룹 창업주는 1940년 경상남도 진주에서 '구인상회'라는 간판으로 장사를 시작했다. 그 뒤 구인회 창업주는 우리나라의 무역업 등록 1호인 조선흥업사를 설립하고 일본과 무역사업을 하지만 조선흥업사의 사업은 실패하고 만다.

이 때 구인회에게 손을 내민 사람은 고향 아랫마을에 살던 허만정. 사업 실패로 실의에 빠진 구인회 사장에게 허만정은 아들이 사업에 눈을 뜨도록 가르쳐 달라며 공동투자를 제안한다. 당시 경남 진주에서 만석지기 대지주였던 허씨 가문은 위기에 빠진 구씨 가문의 조선흥업사에 출자하고 회사를 살려내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이 때부터 LG그룹은 구씨와 허씨 양대 가문의 명실상부한 동업체제를 갖추게 된다. 조선흥업사에 허씨 가문이 출자한 금액은 당시 자본금의 4분의 1 정도여서 회사 경영의 최종 책임과 권한은 구씨 가문이 맡았다.

구인회 창업 회장에 이어 구자경 2대 회장, 구본무 현 LG 회장까지 구씨 가문 장자가 그룹 경영권을 승계해왔다. 이 때문에 일반인들에게 LG그룹은 구씨 가문이 중심이 된 재벌그룹으로 알려져 있다. 허씨 가문은 단지 구씨 가문을 보좌하고 뒷받침한다고 인식돼 왔다.

재계 순위 2위인 LG그룹은 60여년 동안 원만한 동업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이면에는 구씨와 허씨 가문의 씨족 지향 지배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주식시장과 여론으로부터 때때로 비판적 평가를 받은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구씨·허씨 3, 4세인 미성년자들이 갑부소리를 들을 정도로 엄청난 주식을 소유하고 있는 점과 참여연대가 고발한 LGCI 사건은 대표적인 사례다.

LG계열사는 지주회사 출범을 앞두고 지분 정리를 통해 구씨가 전자, 통신, 화학, 금융 부분을 맡고, 허씨가 건설, 유통, 정유 부분을 책임질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같은 상황을 반영하듯 2002년도 상장 및 등록 주식의 매수 및 매도 리스트 상위 100명 중 30명이 LG그룹 특수관계인들로 채워져 있다. / 박수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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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오마이뉴스 정신을 신뢰합니다. 2000년 3월, 오마이뉴스에 입사해 취재부와 편집부에서 일했습니다. 2022년 4월부터 뉴스본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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