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3년, 34세에 그룹 부사장으로
정회장 아들 정의선의 특권과 반칙

[집중기획] '부의 대물림' 과연 정당했나 ③ 현대자동차

등록 2003.02.28 10:31수정 2003.02.28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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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칙적인 재벌 2, 3세의 부 대물림에 대한 <오마이뉴스>의 보도가 이어지면서 사정당국의 엄정한 대응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7일 전국의 법학교수등이 삼성 이재용 상무에 대한 검찰의 수사를 촉구했고, 해당 기업들의 주총을 앞두고 시민사회단체의 대응도 본격화되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LG, 삼성그룹에 이어 재계 순위 4위인 현대-기아자동차 그룹의 재벌 3세 정의선 부사장의 부당한 내부거래 의혹을 고발한다. 지난해 다른 총수 아들과 마찬가지로 비상장회사를 통한 그룹 지배권 강화를 노렸던 정씨의 야망은 일단 시장의 역풍을 맞아 좌절됐지만 여전히 진행중이다. 또 그룹에 들어온 지 3년밖에 되지 않은 정씨가 부사장까지 초고속 승진하면서, 현대차 정씨 오너일가의 족벌 세습경영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편집자 주>


[특별취재팀: 김종철 이병한 박수원 황방열 공희정 기자]

"특권과 반칙이 용납되는 시대는 끝나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25일 취임식에서 연설한 취임사의 한 대목이다. 34세의 청년이 입사 3년만에 현대자동차라는 대그룹의 부사장으로 초고속 승진한 것은 분명 '특권'이다. 그 특권에는 동전의 앞뒷면처럼 '반칙'이 있다.


“SK 수사로 비상장회사의 주식을 이용해 경영권을 넘기는 것도 이제 어려워졌고, 이제는 일반적인 것이 됐지만 삼성 이재용 상무의 BW(신주인수권부사채)를 통한 방법 같은 기발한 것이 나오지 않을까요?.”(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센터 이은정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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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최태원 회장의 구속으로 현대차 정의선 부사장에 대한 경영권 승계 문제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사진은 서울 양재 현대차그룹 본사와 정의선 부사장.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오마이뉴스>가 27일 오후 현대-기아차 그룹의 재벌 3세 정의선씨(34세)가 앞으로 어떻게 그룹의 지배권을 강화해 나갈 것으로 보는가라고 질문을 하자, 이 연구원이 내린 답이다.

지난 2000년 이른바 ‘왕자의 난’을 거쳐 현대-기아차 그룹 총수로 올라선 정몽구 회장도 올 3월이면 만 65세다. 지난해부터 34세인 외아들 정의선씨에 대한 기대도 부쩍 커졌다. 그룹 주력계열사의 합병 시도와 대규모 승진 등은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보여주는 사례다.

정회장의 이 같은 관심은 결국 아들에게 자산 규모 43조원, 재계 4위의 자동차 재벌 경영권을 어떻게 물려주느냐로 귀결된다.

지난해 5월 현대자동차의 이상한 투자는 재벌 오너 일가가 어떻게 경영권을 세습하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지적되기도 한다.

지난해 5월 현대차에서 생긴일...

2002년 5월 8일, 줄곧 추락하던 종합주가지수가 20포인트 가까이 뛰어올랐다. 거의 대다수의 주식 종목들이 올랐지만 현대자동차를 비롯해 현대모비스, 기아자동차 등 현대자동차 그룹 계열사들은 약세를 면치 못했다. 현대자동차는 이날 1700원이나 빠지기도 했다.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상위 15개 종목 가운데 현대, 기아자동차만 주가가 떨어졌다. 외국인들은 현대-기아차 주식 수백억원어치를 시장에 내다 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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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초반부터 치솟던 현대차 주식은 본텍와 현대모비스간 합병소문이 퍼진 5월을 기점으로 끝모를 추락을 했다.

왜 당시 현대차의 주가가 떨어졌을까?. 업계 한 관계자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당시 현대모비스가 본텍이라는 자동차 관련업체 인수를 추진 중이었는데, 본텍의 주요 주주가 정몽구 현대차 회장의 장남인 정의선씨라는 것이 알려지게 됐습니다. 증권가에서는 '현대모비스가 대주주의 특수 관계인을 위해 비싼 값에 본텍 지분을 인수할 것'이란 설이 나돌았죠. 이를 통해 현대차 정 회장은 외아들에게 그룹 지배권을 넘겨주기 위한 작업이 시작됐다고 본 거죠. 그때부터 현대차 주가는 곤두박질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말은 결국 외국인을 비롯해 일반 투자자들은 현대자동차의 지배구조에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고, 이는 경영 투명성에 대한 불안감으로 이어지게 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당시 현대차 상무로 있던 정의선씨는 한국로지텍의 개인 최대주주였고, 본텍의 지분 30%를 가지고 있었다. 한국로지텍은 당시 본텍의 대주주로 있었기 때문에 정씨는 본텍을 사실상 장악하고 있었다.

은밀하게 시작된 현대차 2세의 비밀 승계 작전

현대모비스가 본텍을 인수할 것이라는 소문은 점차 사실로 나타났다. 2001년 5월 29일 현대모비스는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을 데리고 충북 진천에 있는 본텍 공장을 방문, 본텍 인수의 당위성 등을 설명했다. 이어 6월중 시장에 합병을 공시하고, 8월 본텍 인수를 마무리짓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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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5월 30일 현대모비스와 본텍간의 합병소식이 전해지자 현대모비스 주가는 전날보다 12%나 폭락했다.

모비스쪽은 자신들의 연구개발을 확대하기 위한 생산기반 시설을 위해 본텍과의 합병을 설명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물론 모비스의 주가는 시너지를 통한 상승 기대보다 오히려 폭락하고 만다.

증권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당시 증권가에서는 모비스와 본텍간의 합병이 3~4 대 1 수준으로 될것이라는 설이 나돌았습니다. 만약 이대로 될 경우 정의선씨는 수백억원에 달하는 시세차익을 얻게 됩니다. 또 모비스의 지분 약 1,2%를 확보하게 되면, 향후 그룹 경영권 승계를 위한 기반을 확보하게 됐을 것이고, 결국 이는 치밀하게 계획된 경영권 승계 과정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정씨가 아버지인 정몽구 회장의 대를 이어 현대차 그룹의 총수가 된다는 것은 이미 상식적인 이야기다. 하지만 그가 현재 보유하고 있는 현대자동차 주식은 겨우 6445주에 불과하다. 금액으로 따지면 1억7000만원 정도다. 재벌 3세로서 (주)SK 최태원 회장이나 삼성의 이재용 상무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한 편이다.

그가 무리없이 그룹 총수 자리에 올라설 수 있는 방법으로 나온 것이 바로 현대모비스와 본텍의 합병인 셈이다.

100억짜리 회사가 5000만원짜리로, 다시 50억짜리로 바뀌고…

본텍은 지난 97년 기아자동차 부도유예 협약 당시 부도 처리된 기아전자가 모체다. 2000년 4월 이름을 바꾼 이후 카오디오와 자동차에 들어가는 전자장치를 전문적으로 생산해 왔다.

수십년 일해야 오를 ‘부사장’, 정씨는 3년만에 '질주'

재벌 3세 정의선(34) 부사장의 출발도 다른 재벌가의 아들처럼 임원부터 시작한다. 지난 99년 12월 현대차 구매담당이사로 경영수업을 시작한 정 부사장은, 1년 4개월만에 상무로 올라 기획과 마케팅을 담당했다. 2002년 2월에는 전무로 국내 영업본부 부 본부장을 맡다가 지난달에는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회사에 들어와 만 3년정도 일하고, 그는 곧 수십조원대 재벌의 최고경영자로 오르게 됐다. 세계 주요 자동차 회사 가운데 하나인 현대차의 최고 경영자에 경영 검증 노력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단지 총수의 아들이라는 이유만 존재할 뿐이었다.

이 같은 정 회장의 족벌세습 경영 체계 확립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크다. 현대차 노조는 지난 1월 성명을 통해 "철저한 차별, 특혜 인사조치로서 기업 인사정책의 객관성을 파괴하는 행위인 동시에 검증되지 않은 2세에 대한 '세습의 수순 밟기'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업계에서도 현대차그룹이 '로열 패밀리'를 주요 계열사에 골고루 포진시켜 일시에 승진시킨 것은 새 정부 출범 전에 후계 체제의 구도를 하루 빨리 세우려는 의도로 파악하고 있다. / 공희정 기자
자본금 100억원짜리 회사였던 본텍은 2001년 1월 채무조정을 위해 200대 1의 무상감자를 실시해 자본금 5000만원 짜리 회사가 된다. 이때 정의선씨는 본텍 주식의 30%를 주당 5000원씩, 15억원(30만주)에 구입하고, 정씨가 최대주주로 있는 한국 로지텍도 같은 가격으로 30%의 지분을 사들인다. 하지만 불과 몇 개월 후 본텍은 제3자 유상 증자를 통해 자본금 50억원 짜리 회사로 성장하게 된다.

본텍의 증자과정을 통해 몇 개월만에 정씨는 엄청난 이득을 보게 된 것이다. 물론 이것만이 아니다. 정의선씨가 본텍의 대주주가 된 후 회사 카 오디오는 기아차뿐 아니라 현대차에도 공급하게 되고, 회사의 기업가치도 급상승하게 된다. 자본금 50억 짜리 회사가 2002년도에만 순이익을 120억 이상 올렸으니 주당 가치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어 올랐다. 당시 몇몇 애널리스트들은 비 상장회사인 본텍이 상장이 될 경우 주당 가치가 20만원을 호가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한 증권사의 애널리스트는 "당시 현대모비스와 본텍이 합병을 하게 될 경우 본텍의 주주들은 주식 1주당 현대모비스 주식 4.08주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

본텍에 15억원을 투자했던 정씨가 합병을 이루게 되면 300억원대의 자산가로 바뀌게 된다. 또 본텍과 함께 15억원을 투자해 60%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한국로지텍이 받을 수 있는 주식까지 합하면, 정씨는 현대차그룹의 사실상 지주회사격인 현대모비스에 대해 2.7%의 주식을 얻게 된다. 아버지인 정몽구 회장(7.96%)에 이어 그룹 지주회사의 2대 주주로 자연스럽게 등극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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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계열사의 지배구조 관계


이 과정을 살펴보면 최근 구속된 SK 최태원 회장이나 삼성의 이재용 상무가 그룹의 지배권을 확보하는 상황과 매우 흡사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이재용 상무는 이미 기업가치가 높아져 있는 비상장사의 주식을 헐값에 넘겨받는 방법을 섰다면, 최 회장이나 정 부사장은 먼저 비상장사 지분을 인수한 뒤 계열사의 도움을 받아 그 회사를 키웠다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이 과정에서 손해를 보는 것은 계열사 주주들이다. 이는 경영진의 '배임'으로 이어진다. SK 최태원 회장이 구속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미수'에 그친 그룹승계 작전

하지만 이 같은 정 회장의 아들에 대한 경영 승계 작업은 시장으로부터 곧바로 철퇴를 얻어맞게 됐다. 현대모비스의 본텍 인수가 공식적으로 확인된 지난해 5월30일, 외국인 투자가들은 증권시장에서 모비스 주식을 대거 팔아치웠다. 이로 인해 모비스의 주가는 전날보다 12%나 폭락해 22500원에 거래됐다. 한달만에 36.8%나 빠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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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결국 이를 버티지 못한 현대모비스쪽은 같은해 6월 12일 열린 이사회에서 내부적으로 기정사실화 했던 본텍 합병을 안건으로 상정조차 시키지 못하고 철회하고 만다. 회사는 당시 본텍 합병 추진의 순수 동기와 목적이 왜곡되고, 기업 투명성 문제가 제기되는 상황이 발생해 합병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백기를 든 셈이다. 물론 주가는 올랐다.

정의선씨의 경영권 승계에 대해 현대차의 고위 관계자는 "당시 정 부사장은 본텍의 대주주가 되면서 당시 이미 증여세를 다 납부하는 등 절차상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면서 "본텍과 현대차간의 부당내부거래 의혹도 공정한 절차에 따른 합법적인 거래"라고 해명했다.

그는 이어 "본텍의 지분을 인수할 때 시가를 낮춰 산 것도 아니고 부도난 회사를 그 값에 맞게 산 것 뿐"이라며 "오히려 정 부사장이 최대주주가 됨에 따라 회사가 더 잘나가게 됐으니 좋은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한편 지난해 보류됐던 의선 씨의 석연치 않은 본텍 지분 인수 과정과 현대자동차와 본텍 간 부당내부거래에 대한 공정위 조사가 SK 최태원 회장의 구속을 기점으로 다시 재개될 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비록 시장과 여론에 밀려 현대모비스와 본텍의 합병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앞으로 현대차그룹의 경영권 승계작업은 어떤 식으로든 수면 아래위에서 계속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모비스 최대주주가 현대차 그룹 장악?

1999년만 해도 컨테이너나 철도차량 등을 만들던 현대모비스(옛 현대정공)는 2000년 자동차 부품 전문회사로의 탈바꿈하게 된다. 이후 현대·기아차의 독점적 지위를 기반으로 현대차 그룹의 서열 3위까지 뛰어 올랐다.

모비스의 성장은 매출액을 통해서도 잘 나타난다. 1999년 1조6333억원, 2000년 1조9761억이었지만 2001년에는 2조6947억원, 2002년에는 3분기까지만 해도 2조8620억원으로 증가했다. 당기순이익도 99년에는 217억원이었지만 2000년에는 1131억원, 20001년 2744억원, 또 2002년 3분기까지 3020억원에 이르렀다.

물론 현대모비스의 이 같은 성장은 현대차그룹이 버티고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 업계의 일반적인 평가다. 국내외 1600만대가 굴러다니는 현대·기아차의 부품 판매 사업은 경기와 관계없이 안정적인 고 수익을 담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비스에 주목해야 할 것은 현대차그룹의 실질적인 지주회사라는 점. 정몽구 회장이 아들인 의선씨에게 모비스의 지분을 넘기려는 이유다. 정회장은 이미 3~4년 전부터 현대차그룹의 지분 구조를 모비스를 중심으로 재편해 왔다. 현재로서는 현대모비스만 확실히 장악하면 자산총액 41조원의 현대차그룹을 지배할수 있게 된다.

현대자동차의 최대주주가 현대모비스(11.49%)이고, 현대모비스의 최대주주는 기아자동차(16.27%)다. 그리고 기아자동차의 최대주주는 현대자동차(36.32%)다. 이처럼 현대차그룹 주력 3사는 순환출자 형식으로 지분구조가 얽혀 있어, 정몽구 회장은 현대모비스 지분 7.96%, 현대차 지분 4.08%를 통해 전 계열사의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가능한 것은 현행 공정거래법이 자산이 일정 규모를 넘는 재벌에 대해서는 계열사들이 서로 지분을 사주는 이른바 상호출자를 금지하고 있지만, 중간에 다른 계열사를 하나 끼워 넣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식으로 하는 순환출자는 허용하고 있는 허점이 있기 때문이다. / 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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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오마이뉴스 정신을 신뢰합니다. 2000년 3월, 오마이뉴스에 입사해 취재부와 편집부에서 일했습니다. 2022년 4월부터 뉴스본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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