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100억 물고 11조 그룹 지배?
8년여 '주식 되팔기'로 지분확대

[집중기획-⑤ 동부그룹] 부의 대물림, 과연 정직했나?

등록 2003.03.06 15:54수정 2003.12.01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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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서울 강남 테헤란벨리 한복판에 2000억원짜리 대형 빌딩하나가 세워졌다. 다른 재벌과 달리 외환위기를 나름대로 잘 견뎌온 ‘동부그룹’이 동부금융센터라는 이름으로 지은 건물이다. 이 빌딩에는 그룹 주력사인 동부화재를 비롯해 생명 등이 자리잡았고, 지난해 새롭게 출발한 반도체사업도 둥지를 틀었다. 일부에서는 빌딩을 빗대어, 그룹 창업자인 김준기 회장의 34년 땀의 결과물이라는 이야기도 나돈다. 하지만 다른 재벌과 마찬가지로 재벌 오너일가의 그룹 지배권 강화 과정의 투명성과 정당성에 대해선 여전히 많은 의문이 남기게 한다. <오마이뉴스>가 김씨 재벌오너 일가의 부의 대물림을 짚어봤다...<편집자 주>

[특별취재팀: 김종철 이병한 박수원 황방열 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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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서울 강남 대치동에 들어선 동부그룹 빌딩 전경. ⓒ 김종철

지난해 10월 8일, 동부그룹은 짤막한 보도자료 하나를 냈다. 김준기 회장이 이공계, 해외 유학생 등을 위해 주식 및 부동산 200억원을 동부문화재단에 내 놓았다는 것이다.

갑작스런(?) 재단의 출연 배경에 대해 회사는 그동안 재단 사업비가 적어 설립 취지에 부응하지 못해왔다는 김 회장의 판단이 작용했다는 것과 당시 기업들이 대규모 장학재단 설립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상황 등의 설명이 이어졌다.

하지만 여의도 증권가의 반응은 달랐다. 동부화재는 이날 공시를 통해 김 회장이 화재 지분 3.31%를 문화재단에 내놓아 지분이 감소했다고 밝혔다. 김 회장의 지분은 12.01%로 줄었고, 지분 14.06%를 가지고 있으면서 2대주주였던 김 회장의 장남인 김남호(28)씨가 동부화재의 최대주주로 떠올랐다.

그룹의 사실상 지주회사격인 동부화재의 최대주주로 20대 젊은 청년이 나타나자 증권가에서는 김 회장이 본격적인 경영권 승계 작업을 벌인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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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호씨, 19세부터 지분늘리기...치밀하게 진행된 사전상속

김남호씨가 동부그룹에 이름을 올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 94년. 당시 19살이던 김씨는 한국자동차보험(현 동부화재)의 지분 0.1%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94년 2월말 30억원이 넘는 유상증자에 참여해 지분 67만주를 얻게된다. 13.4%로 아버지 김회장에 이어 2대주주로 올라선다. 미성년자이면서 학생신분이었던 남호씨의 후계구도가 시작된 셈이다.

김씨가 본격적으로 계열사 지분을 늘리기 시작한 것은 95년부터다. 당시 아버지로부터 한국자동차보험 주식 52만주(21%), 동부증권 71만주(6.4%), 동부건설 77만주(10.4%)를 2년여동안 물려받게 된다. 남호씨의 누나인 김주원(당시 22세)씨도 자동차보험 주식 36만주를 받았다. 이를통해 남호씨는 95년 3월말 한국자동차보험과 96년 동부건설의 1대주주로 올랐다.

김 회장이 자녀들에게 넘겨진 주식을 환산하면 220억원 규모였으며, 2세들은 당시 증여세로 100억원정도 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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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그룹의 창업주인 김준기 회장 ⓒ 전경련

95년 당시 동부그룹의 증여에 대해 증권가와 재계에서는 말들이 많았다. 왜냐하면 증여 직후 주가가 폭등하면서 막대한 시세차익 의혹이 나왔기 때문이다.

남호씨가 물려 받을 당시 한국자동차보험의 주가는 한주당 6500원. 하지만 증여후 4개월정도가 흐르면서 주가는 2만원대로 3배이상 뛰어올랐다. 당시 한국자보가 자사주 펀드에 가입하면서 주가상승을 부추겼다. 자사주 펀드는 당시 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회사 돈으로 자기회사 주식을 살수 있도록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제도였다.

남호씨는 한국자보가 자사주펀드를 설정한 후 주식 17만2000여주를 내다팔았고 20억원이 넘는 시세차익을 얻었다. 증권가에서는 대주주의 막대한 물량을 회사에서 자사주 펀드 명목으로 비싼 값에 사들였을 가능성도 흘러나왔다.

김씨의 주가 매매를 통한 시세차익 의혹은 이후에도 이어진다. 지난 99년 4월 동부건설은 대규모 유상증자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건설의 발표전까지 만해도 5000원대에 있던 주가는 4월중순 이후 1만4000원대까지 올랐다. 건설 지분 12.54%를 가지고 있으면서 최대주주였던 남호씨는 회사 발표 후 주식을 대거 내다 팔았다.

학생신분으로, 잦은 주식매매와 시세차익 의혹

지난해에도 남호씨의 계열사 주식매매를 통해 막대한 이득을 얻었다. 그는 작년 1월 한달동안 가지고 있던 동부화재 주식을 6차례에 걸쳐 170만주를 주당 4000원 안팎에 내다 팔아 64억원의 현금을 모았다.

동부그룹은...

지난해 9월 아남반도체를 인수한 동부그룹은 자산규모만 따져도 11조3000억원, 재계 순위 14위 중견 재벌이다. 계열사는 모두 21개사로 크게 금융과 비금융부문으로 나뉜다. 금융부문에는 손해보험사인 동부화재를 비롯, 동부생명보험, 동부상호저축은행, 동부증권, 동부캐피탈 등이 있다. 비금융부문은 동부제강, 동부건설, 동부전자, 동부한농화학 등으로 구성돼 있다.

그룹의 효시는 지난 69년 설립된 미륭건설(현 동부건설)이다. 현 김준기 회장이 당시 부친이었던 김진만 전 국회부의장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작해 70년대 중동 붐으로 크게 성장했다. 80년대 들어 한국자동차보험(현 동부화재), 동진제강(현 동부제강) 울산석유화학(현 동부화학)등을 잇따라 인수하면서 재벌로서의 위상을 갖춰갔다.

이후 동부는 철강과 건설 등으로만 그룹 발전이 어렵다고 판단, 금융과 반도체 산업에 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금융의 경우 동부화재 정도만 업계 3위를 기록하고 있을뿐 나머지 생명, 증권 등은 업계에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반도체산업의 경우 지난 83년 반도체 간접소재인 실리콘웨이퍼를 생산하는 회사를 세웠지만 6년만에 LG에 지분 51%를 넘겼고, 이후 지난 97년 미국의 IBM과 제휴해 메모리 256메가 D램 사업진출을 추진했지만 외환위기로 중도포기 했다.

이후에도 동부는 반도체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지난 2000년에 일본 도시바와 파운드리 반도체 위탁생산을 맺고 동부전자에서 생산을 하게 되고 작년 9월 동부건설을 비롯해 생명, 화재 등을 동원해, 아남반도체를 전격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 김종철 기자
주가가 크게 떨어진 작년 6월18일 남호씨는 주식시장이 아닌 장외거래를 통해 동부화재 주식을 다시 사들인다. 당시 그룹 계열사인 동부상호저축금고가 내놓은 화재 180만9640주의 주당 가격은 3060원. 이 가운데 남호씨는 160만주를, 나머지 20만9640주는 남호씨의 누나인 김주원씨가 사들였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당시 동부상호저축 금고가 은행 건전성 척도인 BIS 자기자본비율을 맞추기 위해 주식을 처분하게 됐다”면서 “금고쪽에서 남호씨 등에게 장외시장을 통해 매입을 요청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결국 그룹 계열사 스스로가 지배오너 일가에게 시세차익을 넘겨준 꼴이 된 셈이다.

문제는 대주주의 주식투자에 있어서 도덕성 부분이다.
그룹이나 계열사를 책임지는 대주주가 주가가 올랐을때 주식시장을 통해 내다팔고, 떨어졌을때는 장외를 통해 주식을 사들이는 것이 과연 대주주로서 올바른 투자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A 증권의 금융담당 애널리스트는 “대주주라면 주가가 떨어지면 주가를 높이기 위해 주식시장을 통해 주식을 사들이는 것이 정도”라면서 “하지만 이같은 경우는 많지 않고, 일부 대주주들은 시세차익을 통해 계열사 지분을 늘려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또 남호씨의 경우처럼 재벌 2세들의 나이가 이제 겨우 2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학생 신분에서 잦은 계열사 주식거래가 이뤄진 점은 그룹 내부의 도움 없이는 이같은 차익을 남기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100억원 세금물고 11조원대 재벌을 지배한다?

현재 국내에서 외국계 컨설팅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남호씨는 이같은 사전상속과정과 계열사 주식 매매를 통한 지분확대 등으로 사실상 그룹 2인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말 기준으로 그룹의 지주회사격인 동부화재의 경우 남호씨가 개인 최대주주로 올라있다.

동부그룹도 다른 그룹처럼 계열사간의 상호 출자 형식으로 지배관계가 이뤄져 있다. 특히 동부화재가 출자한 동부제강과 동부건설의 경우 그룹 대부분의 계열사 최대주주 역할을 하고 있다. 제강은 증권과 한농화학, 전자, 생명의 대주주이고, 건설은 제강의 대주주이면서 상호저축은행과 전자에 지분을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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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그룹도 다른 재벌과 유사하게 계열사가 순환출자고리를 가지고 있다. ⓒ 오마이뉴스 고정미


김 회장의 장남인 남호씨는 동부화재를 비롯해 제강, 건설 등 주력 계열사의 주식을 가지고 있다. 대주주 지분변동을 조사하는 에퀴터블에 따르면 남호씨의 계열사 지분은 지난 3월3일 현재 동부화재가 14.06%로 가장 많고, 동부정보기술(11.67%), 동부증권(6.84%), 동부건설(4.01%) 순을 보이고 있다. 이어 동부제강(2.08%), 동부한농화학(1.37%), 동부정밀화학(0.14%)등의 지분도 가지고 있다. 누나인 주원씨도 동부화재(3.43%), 동부정보기술(4.67%), 동부제강(1.32%), 동부건설(0.02%)을 가지고 있다.

3월3일 현재 남호씨가 가지고 있는 계열사 주식의 시가총액은 300억원대, 지난해 7월만해도 570억원대에 비하면 크게 떨어져 있지만 그룹 지분율은 여전히 높다. 또 지난 95년까지만 해도 동부화재, 동부증권에 그쳤던 남호씨 남매의 계열사 종목과 주식의 시가총액도 크게 늘어났다.

동부 지배주주 일가는 결국 8년여 동안 계열사 주식의 반복적인 매매와 증자 참여 등으로 지분을 확보하면서, 안정적인 경영권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또 이미 동부화재의 개인 최대주주로 있는 남호씨 역시 아버지로부터 추가로 상속이나 증여 없이도 동부화재를 중심으로 자산규모 11조3000억원, 연간매출 7조원이 넘는 동부재벌의 경영권을 아버지로부터 넘겨받는데 아무런 걸림돌이 없는 셈이다.

이에 대해 동부그룹쪽은 “지난 95년에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계열사 주식을 사고 파는 과정에서 얻어진 이익을 다시 회사에 재투자해서 된 것”이라며 “개인 대주주로 회사 주식을 매매하는 것을 막을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 아닌가”라고 밝혔다.

이어 그룹 경영권과 관련, 그룹 관계자는 “김 회장의 경우 자식을 비롯해 친인척에 대해 매우 엄격해, 다른 재벌과 달리 친인척이 그룹 경영에 참여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면서 “남호씨의 경우도 아직 나이가 어리고, 동부에 근무하지도 않고 있어서 경영권 승계를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 이르다”고 말했다.

그룹계열사 동원해가며 우회지원으로 반도체 진출?
동부의 아남반도체 인수 논란

동부의 반도체 사업이 출발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동부그룹은 지난해 9월 아남반도체를 전격적으로 인수하면서 동부의 ‘반도체 한(恨)’을 풀고 그룹의 차세대 주력 사업으로 도약을 선포했다.

하지만 동부의 ‘반도체 호(號)’는 출항부터 심한 격랑에 휩싸였다. 대표적인 것이 반도체 인수과정에서 불거진 계열사 간 부당지원과 순환출자 의혹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17일부터 19일까지 3일동안 아남반도체 인수과정에서 계열사를 부당하게 지원한 의혹을 받고 있는 동부화재와 동부생명에 대한 특별검사를 실시했다. 금감원은 화재와 생명이 아남반도체 지분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불법이나 편법이 있었는지를 조사했으며 이에 대한 최종 법률검토 작업을 벌이고 있다.

현행 금융산업의구조개선에관한법률(이하 금산법)에 따르면 동일계열 금융기관이 속하는 기업집단이 다른 회사의 의결권 있는 주식의 5% 이상을 소유하고 동일계열 금융기관 또는 동일계열 금융기관이 속하는 기업집단이 다른 회사를 사실상 지배하는 것으로 인정될 경우 미리 금감위의 승인을 얻도록 규정하고 있다.

동부화재와 생명의 경우 지난해 7월25일 아남반도체에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형식으로 반도체 주식 8.07%(500억원)와 1.61%(100억원)를 취득했다. 이에 앞서 동부건설은 같은달 10일 반도체지분 16.14%를 인수하기로 계약, 9월30일 잔금을 지급하면서 그룹이 반도체 최대주주가 됐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는 지난해 동부쪽이 건설, 화재와 생명 등 계열사 를 동원해 반도체 인수를 우회적으로 지원하고 있다면서 부당지원 의혹을 제기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5일 “현재 법률적 검토작업을 진행중에 있으며 빠른 시일안에 결론을 내릴 것”이라며 “검토결과 위법내용이 확인되면 해당 기업을 검찰에 고발하는 등의 징계가 내려질 방침”이라고 말했다.

한편 금융계 일부에서는 금감원이 지난해 7월 동부화재 등에 대한 검사 과정에서는 이같은 내용을 발견하지 못하고, 6개월이 지난 시점에 와서 뒤늦게 특별검사를 벌인데 대해 시선이곱지 않다.

한마디로 최근 검찰의 SK수사 등 금감원의 과거 재벌 금융기관의 조사가 형식적으로 이뤄지거나 솜방이 처벌이라는 지적이 일어, 이에 대한 ‘면피용’이라는 지적이다.
/ 김종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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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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