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노조 파업, 주객이 전도된 찬반

등록 2003.06.25 09:14수정 2003.06.25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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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부터 대구,인천,부산 지하철 노조가 파업에 들어갔다. 언론에서는 일제히 노동귀족의 집단이기주의라며 이전과 다름없이 지하철 노조파업을 비난했다.

이러한 비난여론은 대부분 언론의 집중포화에 지난 2월에 있었던 대구지하철 참사의 여파까지 합하여 이전과 다르게 비난의 강도는 예사롭지 않다.

한 네티즌은 인터넷 게시판에서 “대구 지하철 참사가 일어난 게 어제인데 파업이라니...”라며 지하철 노조의 파업을 비난했고, 언론사 역시 “3개 지하철 노조 파업 철도대란 오나” , “지하철 등 정치적 요구 많아 난항” 등을 머리기사로 실으며 이러한 여론을 부추기는데 여념이 없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목소리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지난 2월 대구지하철 참사로 인하여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의 목소리이다. 6월 24일자 문화일보(29면) 에 의하여 대구지하철 참사 유가족들 대부분은 “대구지하철 노조의 파업 취지가 안전요원 확보와 전동차내 내장재를 불연성으로 교체하는 문제, 안전재방시설 확충 등인 것으로 안다. 시민들이 다소 불편하더라도 보다 좋은 지하철 환경을 위해 노력하려는 몸짓으로 봐줘야 한다” 고 말해, 지하철 노조 파업에 대한지지 입장을 밝힌 것으로 보도되었다.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대구지하철 참사의 당사자인 유가족들은 지하철 노조의 파업을 지지하는데, 대부분의 언론과 시민들은 “대구지하철 참사가 어제일인데 무슨 염치로 파업을 하냐” 고 비난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거야 말로 주객이 전도된 현상이 아닐수 없다.

하지만 궤도연대(서울지하철노조, 도시철도노조, 대구지하철노조, 인천지하철노조, 부산지하철 노조, 철도노조)에서 제시한 요구안이나 대구지하철 노조가 합의한 합의안과 대구지하철 참사의 전말을 유심히 살펴보면 유가족들의 지하철 노조 파업 지지입장은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지난 2월 18일 대구지하철 중앙역에서 한 사람의 방화로 인해 많은 인명이 피해를 입었다. 그 원인을 살펴보면, 일차적 원인은 당시 사태에 대해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한 현장 책임자들(승무원을 비롯한)에게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왜 오판하게 되었는가’일 것이다.

지하철·철도 등 공공부문은 지난 98년 이후로 끊임없는 구조조정의 칼바람에 노출되어 왔습다. 수만명의 노동자들이 ‘인력감축으로 인한 효율성 증대’라는 명목으로 거리로 내쫓겨왔고, 그나마 남아있는 노동자들은 살인적인 노동강도에 신음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대구지하철도 기관사와 차장 2인 승무제에서 기관사 1인 승무제로 바뀐 것이다. 원래 차장-기관사의 역할분담이 있어 기관사는 전동차 운행을 담당하고, 차장은 그 이외의 모든 것(사령부와의 교신/안내방송/차문개폐/승객안전 등)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구조조정 이후에 서울도시철도공사와 마찬가지로 대구지하철도 차장을 폐지하고 승무원 1인만이 전동차에 탑승하게 되었다. 대구지하철 참사의 그 다급한 상황에서 승무원 1인이 사령부와 교신을 하고, 대피 안내방송도 하고, 문도 열어주고, 전동차 안전운행도 하는 것이 가능한 일이었을까? 또한 효율성과 예산을 이유로 화재에 약한 내장재 사용을 당연시 했던 정부와 공사의 태도는 작은 사고로 그칠 수 있었던 사건을 대형참사로 이어지는데 일조했다.

다급한 사고 상황에서 수백명의 목숨을 기관사 1명에 맡긴 것과 시민의 안전보다는 예산과 효율성을 이유로 경영이익에만 여념이 없던 공사의 태도는 대구지하철 사고가 대형참사가 될 수 밖에 없었던 필연적 결과를 초래했던 것이다.

그리고 얼마지 지나지 않아 대구지하철 노조가 파업을 벌였다. 그리고 그들은 2인 승무제 도입 등 많은 요구들을 모두 관철시키지는 못 했지지만, △노·사·대구시·시민단체가 추천하는 전문가들로 구성된 지하철 안전위원회 및 기술 자문 설치 △화재시 취약한 지하철 내장재를 2005년까지 불연재로 교체 △무선교신장비 등 안전 시설의 단계적 교체 △장애인 승객을 위한 방독마스크와 안전 경보장치 마련 △모니터 요원 1인 우선 보강 △승강장 안전 관련 공익근무요원 배치을 공사와 합의했다. 대구 지하철 노조뿐만 아니라, 부산,인천지하철 노조의 요구안도 노조 개별 사안을 제외하면 유사하다.

우리는 대구 지하철 참사 유가족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진정으로 대구지하철 참사로 돌아가긴 고인들의 위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이번 사태에 대해 공사측은 “구조조정에 역행하는 요구는 수용할 수 없다”고 반박하고 있고, 조선일보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언론들은 노조의 요구가 정치적 요구로 노사합의를 어렵게 할 뿐만 아니라 정치적 파업이라는 이유로 공사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과연 무엇이 대구지하철 참사로 돌아가신 고인들을 위한 길인가? 그리고 단지 우리들이 좀 불편하다고 해서 노조의 파업을 욕할 일인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어쩌면 유가족들이야말로 고인들의 뜻을 가장 잘 이해하고 전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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