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발달사항 '다'에서 '가'로 바뀐 사연

스승의 날에 대한 우울한 추억

등록 2004.05.18 01:26수정 2004.05.18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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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다양한 행사가 많은 달이다. 5월은 인간의 기본이 되는 가정과 학교와 관련된 기념일이 많은 달이기도 하다. 유독 5월에 이런 날들이 집중되어 있는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장가를 들고, 아이가 생기고 보니 마냥 5월이 즐겁지만은 않다.

5월 15일, 스승의 날은 아이를 둔 부모가 되면 필히 알아야 할 날이다. 의식있는 선생님들이 앞장서 학부모들의 과중한 짐이 되었던 촌지와 선물을 받지 않겠다고 하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촌지없는 사회'가 과연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든다.

우울했던 기억

나에겐 청소년 시절 선생님에 대한 우울한 추억이 있다. 아버지가 학교 선생님이었던 까닭에 많은 혜택(?)을 받았던 나는 중2때 아버지의 전근으로 시골에서 도시지역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고, 학교도 전학을 해야 했다.

모든 것이 낯설고 친구들을 새로 사귀어야 하는 시절이라 무척 힘들었던 것 같다. 다행히 공부는 따라갈 수 있어서 시간이 갈수록 적응이 되었지만, 새로운 장애에 부딪치고 말았다.

그것은 담임선생님의 알 수 없는 푸대접이었다. 별로 잘못을 한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한 사건인데도, 강한 체벌을 받게 됐고 선생님 앞에 서면 늘 주눅이 들었다. 어린 나이에도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고민을 한 것 같다.

그때부터 나는 선생님의 사랑(?)을 받는 요령을 체득하려 노력했다. 소위 선생님에게 사랑을 받는 모범생이라는 아이들의 행동들을 나와 비교하고, 무엇 때문에 그들이 주목받나를 살피기 시작했다. 친해진 친구들과 그 문제를 가지고 심각하게 토론도 하면서 말이다.

더욱 위기감을 느낀 계기는 학기말에 받는 성적표에 행동발달평가란에 모두 '다'를 득점하는 영광(?)을 안게 되면서 부터다. 반에서 성적도 좋은 편인 나로서는 억울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수개월의 진지한 수사(?)끝에 내린 결론은 부모님의 정성이 부족했다는 것이었다. 새학기가 되고 나는 이 부분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방안을 강구하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선생님에게 잘 보이는 그 무엇인가를 해야 했고, 어머니에게 심각하게 부탁했던 거 같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신 어머니가 무엇을 준비할 수 있으랴? 가을에 시골에서 나는 밤이 소위 촌지가 됐다. 나는 어머니가 준비한 밤 몇 되를 가지고 선생님의 책상을 찾았다. 난생 처음 하는 소위 잘 봐달라는 청탁이었다. 그 학기의 나의 행동발달평가는 모두 '가'였다.

성인이 되어 스승의 날이 오면 어린시절의 추억에 실소를 하곤 한다. 무척이나 소박한 학교에서 벌어진 나에게는 큰 사건들이었다. 얼마 전 한 학교의 학부모들이 촌지를 단체로 준비하다 이슈가 된 일도 있었지만, 촌지는 반드시 사라져야 할 문화인 건 분명하다.

선물 준비로 때론 촌지준비로 고민하는 학부모나 학생이 줄어 들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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