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를 위한 논술 첨삭지도(1)

대입개선방안 비판 사설 별 근거없다

등록 2004.10.29 19:51수정 2004.11.01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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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는 10월 28일 오후 인터넷 판에 올린 '당신들의 아이라면 이런 교육 받게 하겠는가'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교육부가 발표한 2008 대입개선방안이 "학부모의 가슴과 나라의 장래만 멍드는 것"이라고 혹평했다.

<조선일보>는 그 이유를 "이 안이 시행되면 철부지 학생들은 공부에 매달리지 않아도 되니 좋아할 것이고, 교사들은 학생들 대학 가는 게 자신들 내신평가에 달렸으니 좋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선일보>는 또 "전체 수험생 60만 명 중 4만 명 넘게 1등급 점수를 받게 될 것이므로 어지간한 대학들은 모두 1등급으로 평준화된 점수를 받은 학생들로 채워지는 것"이라며 "사실상 변형된 대학평준화가 시행되는 셈이어서 '전교조의 꿈이 이뤄진 것'"이라고 친절한 해설까지 덧붙였다.

<조선일보>는 다시 새 대입안이 시행되면 "수능이 무력화되는 반면 내신비중은 강화"된다며 "고교 간 학력격차가 반영되지 않아 '내신사기'라는 말까지 돌고 있는 그 내신점수가 합격 여부를 결정"하게 되므로 "결국 한국의 대학입시는 운에 맡겨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내신점수가 대학입학을 좌우하게 되면 교사의 권한은 더 커지게 되고, 2010년부터 교사별 평가제까지 도입하면 "겉으로는 참교육이니 뭐니 말하면서 뒤로는 내신 사기나 벌여온" 전교조의 손에 학생과 학부모가 실험용 쥐처럼 놀아날 수밖에 없다며 "교육을 계급투쟁의 수단으로만 여기는 그들에게 내일을 짊어질 시민을 길러내는 교육을 넘겨버린 나라에 무슨 미래가 있겠는가?"하고 비관적인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 사설이 가지고 있는 논리구조를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이 사설은 다음과 같은 세 개의 작은 가설을 설정하고 있다.

<전제 1-1> : 새 대입안은 수능 9등급제를 도입하려 한다.
<전제 1-2> : 수능 9등급제는 변별력이 없다.
<소결론 1> : 그러므로 새 대입안이 시행되면 대학이 평준화된다.

<전제 2-1> : 전교조는 대학평준화를 주장한다.
<전제 2-2> : 새 대입안은 대학을 평준화한다.
<소결론 2> : 그러므로 새 대입안은 전교조가 바라던 것이다.

<전제 3-1> : 새 대입안이 시행되면 교사의 권한이 커진다.
<전제 3-2> : 전교조 교사들은 내신사기의 주범이다.
<소결론 3> : 그러므로 새 대입안이 시행되면 전교조가 교육을 지배한다.

그리고 이 세 개의 가설을 조합하여 다음과 같이 무시무시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소결론 1> : 새 대입안이 시행되면 대학이 평준화된다.
<소결론 2> : 새 대입안은 전교조가 바라던 것이다.
<소결론 3> : 새 대입안이 시행되면 전교조가 교육을 지배한다.
<대 결 론> : 그러므로 우리 교육에는 미래가 없다.

<조선일보>의 이 결론이 타당한지 가리기 위해서는 당연히 그 전제가 되는 세 개의 가설이 타당한지부터 먼저 따져봐야 할 것이다. 성가시지만 <조선일보>의 논술 능력 향상을 위해 인내심을 가지고 하나하나 살펴보자.

먼저 첫째 가설을 살펴보자. <전제 1-1> '새 대입안은 수능 9등급제를 도입하려 한다'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객관적 사실이다. 그러나 <전제 1-2>'수능 9등급제는 변별력이 없다'는 지극히 주관적인 해석이다.

전체 수험생 60만 명 중 1등급을 받는 학생이 4만 명 정도 된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변별력이 없다"고 서둘러 단정짓는 것은 무리한 결론이다. 수능등급은 총점이 아니라 과목별로 매겨지기 때문에 서울대 응시생 전원이 모든 과목에서 1등급일 것이라고 미리 단정 지을 수도 없다.

더욱이 서울대 응시생들이 모두 1등급이라고 해서 전국의 다른 대학 응시생들도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따라서 "9등급제는 변별력이 없다"는 주장은 서울대 같은 극소수 명문대학에 한해서만 어느 정도의 개연성이 인정될 뿐 전국의 대학을 대상으로 놓고 볼 때에는 전혀 그렇지 않다.

이것은 곧 '서울대 같은 극소수 명문대학만 대학'이라는 사실에 미리 사전 합의가 되어있지 않고서는 논리적으로 도저히 성립할 수 없는 주장이다.

또 설령 이 두 가지 전제가 타당하다고 하더라도 그 결과가 필연적으로 <소결론 1>'그러므로 새 대입안이 시행되면 대학이 평준화된다'를 유도하는 것은 아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 등급제로 인해 수능의 변별력이 사라진다고 해도 내신성적과 대학별 전형이라는 다른 기준에 의해 수험생의 학력이 평가되는 상황에서는 '수능 등급제 때문에 대학이 평준화된다'는 결론은 아무런 논리적 근거도 없는 공허한 주장이다.

이 주장이 논리적으로 타당성을 가질 수 있는 경우는 단 하나, 전국의 모든 대학이 수능점수 하나만 가지고 학생을 선발하는 경우뿐이다. 결국 <소결론 1>은 잘못된 전제에 근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두 개의 전제와는 아무런 논리적 연관도 없이 혼자 허공에 붕 떠서 따로 놀고 있는 셈이다.

<조선일보>가 논술에 대한 기초 지식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다른 언론매체들이 수능 등급제 도입에 따른 '변별력 약화'를 지적하고 '보완책 마련'을 촉구하는 정도에서 그친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 것이다.

다음엔 두 번째 가설을 살펴보자. <전제 2-1>'전교조는 대학평준화를 주장한다'는 객관적 사실이다. 전교조는 대학의 서열구조와 학벌주의를 입시 경쟁의 주범으로 규정하고 이것을 혁파하지 않고는 입시경쟁의 근본적 해소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 대안으로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 구축 등 대학 평준화를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전제 2-2>'새 대입안은 대학을 평준화한다'는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논리적 비약과 주관적 판단으로 점철된 엉터리 논리다. 따라서 <소결론 2>'그러므로 새 대입안은 전교조가 바라던 것이다'는 볼 것 없이 '논리적 오류'다.

실제로도 전교조는 새 대입안이 대학을 평준화한다고는 전혀 생각지 않는다. 반대로 수능등급제를 빌미로 대학들이 '대학의 학생선발권', '변별력 보완'을 앞세워 변칙적인 본고사를 부활시키고 고교등급제 같은 자의적 선발기준을 적용하지나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그 결과가 대학 평준화는커녕 명문대학이 우수학생을 독점함으로써 기득권을 더욱 굳히는 쪽으로 작용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조선일보>가 이런 사정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새 대입안은 전교조가 바라던 것"이라고 아득바득 우기는 이유는, 새 대입안과 전교조를 어떻게 해서든 한 덩어리로 엮어 '전교조의 교육 지배'를 입증하고 싶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논술에서 흔히 범하기 쉬운 잘못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런 것이다. 미리 결론을 내려놓고 그럴 듯한 근거를 끌어다 꿰어 맞추거나, 논리전개 과정에 자신의 주관적 희망을 섞어놓고 어물쩍버무려대는 것 말이다.

이런 경향은 셋째 가설에서도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전제 3-1>'새 대입안이 시행되면 교사의 권한이 커진다'는 굳이 치밀한 논증과정을 거칠 것 없이 그런대로 무난한 진술로 받아들일 수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진술은 '새 대입안이 시행되면 내신 비중이 커진다'는 진술과 '내신 비중이 커지면 교사의 평가권이 강화된다'는 진술이 합쳐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느닷없이 등장한 <전제 3-2>'전교조 교사들은 내신사기의 주범이다'는 뽕밭에 떨어진 메뚜기처럼 생경하기 짝이 없다.
사실 내신 부풀리기의 혐의를 완전히 벗을 수 있는 교육주체들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교사라면 전교조든 교총이든 '내신 부풀리기'를 '집행'한 혐의를 벗을 수 없으며 교장과 학부모들은 '내신 부풀리기'를 '사주'한 혐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석차백분율을 굳이 마다하고 평어를 고집해 온 대학과 이것을 알고도 방치해 온 교육부와 교육 관료 역시 '내신 부풀리기'를 '방조'한 혐의가 있다. 또 내신의 상대적 불이익을 만회하기 위해 학교 차원에서 집단적으로 '내신 부풀리기'를 공모한 특목고나 강남지역 사립학교의 경우와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문제를 좀더 쉽게 출제한 변두리 학교나 시골학교 교사의 경우는 옥석을 가려야 할 것이다.

따라서 '내신사기의 주범'이 누구인지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내신 부풀리기'에 참여한 모든 주체들을 대상으로 혐의의 경중과 선후, 범행의지의 강약과 주범, 종범 여부를 가려야 한다.

따라서 '내신사기의 주범은 전교조 교사'라는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는 '내신 부풀리기' 경쟁을 맨 앞에서 선도한 특목고와 강남지역 사립학교의 의사결정 과정을 전교조 교사들이 좌지우지했고, 다른 지역에서도 전교조 교사들이 내신 부풀리기를 위해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는 사실을 먼저 입증해야만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특목고와 강남지역 사립학교들은 아직도 전교조의 '조직 취약지구'로 남아 있어서 영향력 면에서는 거의 '사각지대'나 마찬가지다. 또 통상 '내신 부풀리기'를 주문하는 '유지급 학부모들' 역시 전교조에게는 '협력자'라기보다는 '비판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쯤 되면 <조선일보>는 전교조를 '내신사기의 주범'으로 지목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거 왜 '미란다 원칙'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범죄 용의자를 연행할 때 "당신을 이런저런 이유로 체포하니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진술을 거부할 수 있으며…" <조선일보>는 경찰이 아니니 미란다 원칙까지 바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전교조를 '내신사기의 주범'으로 지목한 이상, 그런 혐의를 두게 된 근거는 밝히는 게 최소한의 도리이다.

만약 <조선일보>가 그 근거를 밝히지 않는다면 이 사설은 '근거 없는 비방'이 될 것이고 <조선일보>의 신뢰성과 품격은 땅바닥에 곤두박질 칠 것이다. 단 <조선일보>에 더 추락할 신뢰성과 품격이 아직도 남아 있다면 말이다.

'내신비중 강화'와 아무런 논리적 연관도 없는 전교조를 '내신 사기범'이라는 꼬리표를 달아 등장시킨 이유가 무엇일까? 만에 하나, "교사들의 권한이 강화되면 전교조 교사들의 발언권도 커질 것"이라는 <조선일보> 특유의 '피해의식' 때문이 아니기를 바란다.

두 번째 가설 역시 '전교조는 내신사기의 주범'이라는 근거를 전혀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근거를 제시할 때까지 진위를 가리는 것은 객관적으로 불가능해졌다. 따라서 <소결론 3>'그러므로 새 대입안이 시행되면 전교조가 교육을 지배한다'의 타당성 역시 자동적으로 판단을 유보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더 심각한 것은 <조선일보>가 제시한 세 가지 가설 모두 치명적 오류를 안고 있거나, 왜곡된 사실에 근거하거나, 논리적으로 '판단 불가'에 해당하기 때문에, <대결론>'그러므로 우리 교육에는 미래가 없다'도 덩달아 오리무중에 빠지고 말았다는 점이다.

결국 우리 교육의 미래를 염려하는 <조선일보>의 절절한 '우국충정'은 무책임한 논리구성과 엉성한 논리전개로 인하여 졸지에 '개그 콘서트'가 되어버린 셈이다.

입증할 수 없는 주장을 던져 놓고 책임지고 말고는 <조선일보>의 자유지만 대입 논술시험에서 이런 글을 제출했다가는 낙제점을 면치 못할 것이다.

<조선일보>는 '대학선발권 보장'이나 '대학별 본고사 도입'을 주장하기 전에 본고사나 종합논술에서 더 나은 점수를 얻기 위해 논술공부부터 먼저 해야 한다.

<조선일보>의 사설은 논술 공부를 위해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교재다. 주관적 판단과 객관적 사실의 절묘한 혼동, 모든 논지가 한 곳으로 쏠리는 깔때기식 논리, 미리 예정된 결론을 향해 유리한 근거만 끌어다 붙이는 아전인수식 논리 등등, 학생들이 흔히 범하기 쉬운 갖가지 논리적 오류와 비약이 끝도 없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 글의 제목을 '<조선일보>를 위한 논술 첨삭지도(1)'라 붙인 이유는 앞으로도 <조선일보>가 좋은 교재를 제공하면 얼마든지 첨삭지도를 해 드리겠다는 뜻이다.

아무리 말해줘도 알아듣지 못하는 학생을 가르치는 일은 분명 피곤한 일이다. 그러나 하루하루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교사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희열을 느낀다.

그 맛에 여태껏 선생 노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이 논술 첨삭지도가 천 번이 되어도 좋고 만 번이 되어도 좋다. <조선일보>가 그 기쁨을 조금이라도 맛보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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