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장' 개념, 일제가 처음 퍼뜨렸다?

<은자의 나라 한국> 등 일제시대 이전 자료에도 등장

등록 2004.12.21 02:34수정 2004.12.21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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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심사가 원래 그렇게 삐뚤어져 있는 것인지 아니면 먹고 사는 일이 정말로 벅차서 그런 것인지 어느샌가 제 부모조차 나 몰라라 하고 버리는 못된 인간들이 넘쳐나는 시대가 되었다. 언론매체를 통해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등장하는 이른바 '현대판 고려장' 사건들이 이러한 현실을 잘 말해준다.

고려장(高麗葬)이 어떤 건지는 굳이 설명을 달지 않아도 될 만큼 세상사람들에게 이미 익숙한 내용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그런데 '현대판 고려장'이라는 표현이 난데없이 말썽을 일으키고 있다는 소식이다.

어떤 이들이 말하길, "고려장은 원래 그 존재가 확인된 바 없는데 어찌하여 자꾸 기정사실인 양 들먹이냐"는 것이다. 그러니까 '현대판 고려장'이니 뭐니 하는 것은 애당초 성립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가 익히 아는 '고려장' 얘기는 실상 어떠한 문헌에서도 그 존재를 전혀 확인할 수 없는 허구라는 지적은 종종 있어 왔다. 더구나 수년 전부터는 '고려장' 얘기가 사실은 불교경전 <잡보장경(雜寶藏經)> 기로국(棄老國) 설화와 중국 <효자전(孝子傳)> 원곡(原穀)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내용을 담은 젊은 학자들의 연구논문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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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앙일보> 1934년 6월 9일자에는 '병든 장인을 고려장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들의 타당성에도 불구하고 '고려장'이라는 단어 자체를 말끔히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지워내기는 아주 어려울 것 같다. 고려장이 실제로 있었는지 없었는지의 검증은 미뤄두더라도 이미 고려장이라는 관념의 뿌리는 생각보다 무척 깊다고 여겨지는 탓이다.

말하자면 애당초 '고려장은 없었다'는 논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수긍할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사실 유무에 상관없이 고려장의 관념은 비교적 오랜 세월 구체적인 모습으로 전해지고 있었을 가능성은 높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최근에 듣자 하니 고려장에 관한 얘기가 널리 퍼진 것이 일제 때의 일이고, 고려장이란 말도 그때에 만들어진 것이란 식의 주장이 간혹 있는 모양이다. 더구나 그 계기가 우리나라의 고분을 도굴하려는 일본인들의 못된 소행과 관련된 것이라는 설명도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이 부분은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일제 시대의 자료를 통해 확인해 보면, 고려장 설화와 관련된 것으로 1919년에 발행된 <전설의 조선>이라는 책이 먼저 눈에 띈다. 이것이 고려장 설화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 최초의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일단 현재까지 드러난 것으로는 그 시기가 제일 빠르다.

이 책의 지은이는 평양고등보통학교 교유인 미와 타마키(三輪環)로 표시되어 있다. 여기에는 그가 채집한 조선의 구비전설(口碑傳說)이 수록된 가운데 말미에 동화 부분이 들어 있고, 그 가운데 '불효식자(不孝息子)'라는 대목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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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고등보통학교 교유 미와 타마키(三輪環)가 채록한 <전설의 조선> (박문관, 1919)에는 고려장 설화와 동일한 '불효식자'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 이순우

그리고 이 얘기는 1924년에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조선동화집>에도 '부모를 버린 사내'라는 제목으로 등장하며, 곧이어 1926년에는 나카무라 료헤이(中村亮平)가 정리한 <조선동화집>에도 약간 내용을 달리하여 '부모를 버린 사내'라는 제목으로 거듭 수록되어 있다.

이렇게 본다면 식민통치자들이 고려장 설화를 널리 퍼뜨린 주범인 듯도 하다. 하지만 그 어떤 경우에도 그네들이 없던 얘기를 만들어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러한 자료에 수록된 내용은 어쨌거나 실제로 조선 땅에서 통용되던 설화나 전설을 채집한 결과였다고 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한다.

그렇다면 '고려장'이라는 용어 자체도 정말 일제가 만들어낸 것일까? 일제시대 이전에는 '고려장'이라는 표현이 정말 없었던 것일까?

이 부분에 관해서도 반드시 그렇다는 대답을 얻어내기는 무척 어렵다.

아주 오래된 시절인 <대한매일신보> 1908년 11월 11일자에는 '고려장 굴총'이라는 제목의 짤막한 기사 하나가 들어 있다.

"서도에서 온 사람의 말을 들은즉 근일에 일인들이 고려장을 파고 사기를 내어가는 고로 온전한 고총이 없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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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 '정읍군' 항목에 '고려장(高麗葬)'이라는 표기가 거듭 나온다. ⓒ 이순우

하지만 이것 말고도 '고려장'이라는 용어가 일제의 침략과는 상관없이 그 이전에 이미 우리들의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는 여럿 있다. 가령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는 그 흔적들이 역력하다.

이 자료는 일제 말기인 1942년에 조선총독부가 정리하여 발간한 것이다. 그러나 그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1916, 17년경 식산국 산림과에서 조사한 '고적대장(古蹟臺帳)'을 그대로 축약한 것"이었다. 따라서 여기에 수록된 내용은 1916년, 17년의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보면 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자료의 곳곳에 "마을사람들이 '고려장'이라 부른다"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지역적으로 볼 때 전국 곳곳에 두루 흩어져 있는 것이 보인다.

어떤 곳에서는 '고려장(高麗葬)'이라 하지 않고 '고려총(高麗塚)'이라고 하였고, 심지어 '고려산(高麗山)'이나 '고려곡(高麗谷)', 또는 '고려분(高麗墳)'이라고 표기한 곳도 있지만, 그건 모두가 '고려장'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

이 자료에 등장하는 고려장의 사례들을 모두 헤아려 보았더니, 모두 90여곳이 넘었다.

사실 '고려장'이라는 명칭은 그것의 실체가 무엇이었던지간에 전국 곳곳에 흩어진 '이름 모를' 고분들을 대체하는 이름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었던 것이라 짐작할 수 있겠다. 흔히 주인 모를 무덤을 일컬어 '당장(唐葬)'이나 '호총(胡塚, 되무덤)'이라는 이름을 더 많이 사용했던 평안북도 지역 정도를 제외한다면, 고려장은 전국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정말 '흔한' 용어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관계는 결정적으로 그리피스(William Elliot Griffis)의 <은자의 나라 한국(Corea : The Hermit Nation)>에서도 그대로 입증된다. 여기에는 '고려장(Ko-rai-chang)'이라는 용어가 1882년 초판부터 직접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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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피스의 <은자의 나라 한국(Corea: The Hermit Nation)> 초판(1882년)에는 '고려장(Ko-rai-chang)'이라는 표현이 분명히 등장한다. ⓒ 이순우

"조선 왕조는 한국인의 미신 속에 뿌리박고 있는 적어도 두 가지의 잔인한 악습을 철폐했다는 찬사를 듣고 있다. 그 이전까지는 이와 같은 풍속이 한국에서는 아무런 도전을 받지 않고 성행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풍속은 일본에서도 오래 전부터 유행되어 17세기에 이르기까지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고려장(高麗葬)이라고 하는 것은, 그 자세한 내용은 충분히 알려지지는 않고 있지만, 노인을 산 채로 묻어 버리는 풍습이었다. 인제(人祭)라 함은 아마 산신(山神)이나 해신(海神)에게 사람을 제물로 드리는 풍습이었던 것 같다.

이러한 부류의 미신적이고도 끔찍스러운 풍속들은 고대 사회에서 매우 성행되었으며 자비를 표방하는 불교의식으로서도 이들을 폐하지 못했다는 것은 가슴아픈 일이다. 인제의 경우 부락민들은 희생물이 될 그 사람을 목 졸라 죽인 다음 바다에 던졌다. 특히 장산곶(長山串)은 해신제의 장소로 유명했다."


보아하니 여기에 나오는 고려장에 대한 설명이 우리가 익히 아는 고려장의 개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요컨대 '고려장'은 일제강점기로 들어서기에 앞서 이미 1882년의 시점에서 그 흔적이 분명히 채록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로써 조선시대에 이미 그 용어와 관념만은 엄연하게 존재했던 것이라고 봐도 틀림이 없을 것 같다.

물론 여기에서 주의할 부분은 이러한 이름이 통용되고 있었다고 해서 그것 자체가 고려장의 실체까지 확인해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늙고 병든 부모를 내다버리는 그러한 악습이 실제로 있었는지를 검증하는 것과 고려장이라는 이름이 예전에도 존재하고 있었는지를 입증하는 것은 반드시 동일한 결론에 이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국에 흩어진 숱한 고분들이 '고려장'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고 해서 그것이 정말로 '고려장' 풍습에 의한 것인지는 전혀 알 수 없는 노릇이며, 그것이 단지 '옛무덤'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기에 하는 얘기이다.

다만, 여기에서는 고려장 설화 또는 고려장의 개념이 일제 때에 만들어지고 유포되었다고 알려진 부분은 명백한 잘못이라는 사실 정도는 구분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요컨대 '고려장은 없었다'는 생각이 총론에서는 맞을지언정 각론에서는 여러모로 논증이 잘못 이뤄진 듯싶다.

그렇다면 '고려장'의 실체는 정말이지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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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년전부터 문화유산답사와 문화재관련 자료의 발굴에 심취하여 왔던 바 이제는 이를 단순히 취미생활로만 삼아 머물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습니다. 알리고 싶은 얘기, 알려야 할 자료들이 자꾸자꾸 생겨납니다. 이미 오랜 세월이 흘러버린 얘기이고 그것들을 기억하는 이들도 이 세상에 거의 남아 있지는 않지만, 이에 관한 얘기들을 찾아내고 다듬고 엮어 독자들을 만나뵙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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