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 라닥 주변의 작은 절을 찾아서

등록 2004.12.30 21:40수정 2005.01.03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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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라닥의 황량한 산들. ⓒ 김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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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유르 곰파와 마을 모습. ⓒ 김남희

라닥 주변의 작은 절들을 찾아 나선 날. 날빛은 좋고, 길 위의 풍경은 아름답다. 공룡의 등뼈 같은 헐벗은 산들과 눈 쌓인 봉우리들. 골짜기 사이로 흐르는 강과 사람의 마을은 초록. 사막과 같은 황량함이 이어지다가 어느 순간 미루나무들이 우뚝 서 있는 작은 마을이 나타나는 라닥의 풍경은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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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치 마을의 스투파. ⓒ 김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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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동자승들. 라마유르 곰파 ⓒ 김남희

알치 마을. 흰 구름이 떠가는 푸른 하늘과 흙산과 바위 언덕 그리고 하얀 쵸르텐과 바람에 나부끼는 탈쵸들. 정오의 뜨거운 햇살에 달아오른 절은 고요하다.

법당마다 들어가 삼배하고, 시주하고 절마당을 기웃거리다가 처마 밑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쉰다. 어린 잎들이 드리우는 순한 그늘 밑에서 한바탕 곤한 잠이라도 들고 싶은 오후. 걸어서 알치 마을을 빠져나와 사스폴까지 내쳐 걷는다.

마을의 계곡에서 탁족을 하며 쉬자니 동네 꼬마 녀석들이 우르르 몰려 왔다. 완벽한 대오로 나를 포위하고 질식할 것 같은 발냄새를 풍기며 노는 아이들. 나른하고 평화로운 여름날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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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내려다보며 담소중인 스님들. 라마유르 곰파 ⓒ 김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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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유르 곰파에서 만난 할머니. ⓒ 김남희

알치에서 돌아오는 길. 버스 옆자리의 할아버지가 생강낭콩 한 움큼을 손에 쥐어 주신다.

'아니 이 걸로 뭘 하라는 뜻이지? 집에 가서 삶아 먹으라는 건가? 그러기엔 양이 적은데….'

손짓으로 까서 먹으라고 하신다.

'찐콩도 싫어하는데 날콩을? 풋비린내가 날 텐데….'

망설이는 나를 재촉하는 할아버지. 한 알을 까 입에 넣으니 의외로 먹을 만하다. 할아버지가 계속 쥐어주는 대로 다 까서 먹었다. 나도 뭔가를 드리고 싶은데 아무것도 드릴 게 없다. 결국 내가 가진 가장 귀한 것을 드릴 수밖에. 이빨이 다 드러나는 환한 미소.

스피툭 곰파 앞에 내리니 그림자가 길어진 늦은 오후. 바위산 꼭대기에서 해지는 라닥을 바라보다. 돌아오는 길에는 히치하이킹으로 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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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끼르 마을의 클루킬 곰파. ⓒ 김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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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라다키 복장을 한 여인들의 뒷모습. ⓒ 김남희

다음날 새벽 6시. 미리 대절해 놓은 짚에 올라탄다. 날은 오늘도 맑고 푸르다. 첫 절은 라마유르. 라닥에서 가장 오래된 절. 범죄자들도 이곳에서는 보호를 받을 수 있어 '자유의 장소'로 불리기도 했다는 곳. 어여쁜 마을이다. 건초 마르는 냄새와 햇살이 달군 담벼락과 한낮의 정적. 작은 우체국과 무너진 흙담.

"찡. 니. 뚱에닷! (하날, 둘 셋)" 따라 외치며 사진 찍는 동자승들.
절간의 예불 분위기는 감독이 소홀한 야간 자율학습 시간 같다.

칼시에서 점심을 먹었다.
30루피짜리 탈리.
맛있다.

두 번째 절은 테미스감(Temisgam).
비포장길을 달려 찾아간 마을.
역시나 절은 산꼭대기에 있다. 지름길로 오른다고 가파른 자갈길을 치고 오르니 죽을 지경이다. 꼭대기에 와 있던 티베탄 가족이 헉헉거리는 나를 보며 웃는다. 어머니 무릎을 베고 나는 벌렁 누워버리고, 그게 재밌어서 또 웃는 가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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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닥의 산들 위로 떠오른 보름달. ⓒ 김남희

스님이 마을에 푸자 하러 가시는 바람에 절 내부는 못 봤지만, 못 본들 또 어떠리. 내려오는 길엔 다들 개울가에 둘러앉아 양말 벗고 탁족. 더위가 절로 가신다.

세 번째는 리종(Rizong).
역시 산중턱에 자리 잡은 하얀 절. 마을은 없고 절만 덩그라니 놓여 다. 파란 하늘에 하얀 회벽과 붉은 창틀이 눈부시다. 꾀가 생긴 우리는 건너편 바위 언덕에서 바라보기만 하고 내려왔다.

네 번째 마을 리킬(Likir).
멀리서 바라보는 절의 풍경은 설산을 뒤로한 절경이다. 올라가서 들여다보는 절도 어여쁘고. 해지는 모습을 보고 절마당을 나서니 하루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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