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싸움의 가치는 바로 '미래' 입니다"

[인터뷰] 청와대 앞에서 '58+' 66일째 단식중인 지율 스님

등록 2004.12.30 19:19수정 2004.12.31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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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같은 일이 일어나야 세상도 바뀌는 거잖아요"
지율 스님은 청와대 앞에서 30일로 65일째 '58+'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며칠전 기자는 경남 창원에서 취재도중 지율 스님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60일 넘게 단식 중이라 건강을 걱정했는데, 전화선을 타고 들려오는 스님의 목소리는 의외로 낭랑했다.

영상메시지(초록의 공명. www.cheonsung.com)를 시디로 제작했다며 몇 장 보낼 테니 주소를 가르쳐달라는 주문이었다. 기자는 전화를 끊기 전 "외람됩니다만,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걱정을 하고 있는데 단식을 중단하시면 안되겠습니까"라고 말씀드렸다.

스님의 대답은 완고했다. "기자님도 잘 알잖아요. 제가 왜 이러는지. 단식은 중단할 수 없어요." 기자는 전화를 끊고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서울에 볼 일도 있고 해서 30일 오후 상경했다.

곧바로 청와대 앞으로 갔다. 지율 스님은 1인시위를 막 끝내고 거처로 가고있는 중이었다. 부산교육위원회 박영관 위원이 며칠간 스님을 돌보고 있었다. 박 위원의 안내를 받아 간 곳은 부엌과 화장실이 달린 단칸방.

'도롱뇽소송' 항고심 기각 결정이 내려지던 날(11월 29일) 상경한 스님은 한동안 수녀원에서 지냈다. 그곳에서는 인터넷이 되지 않아 하는 수 없이 지금의 거처로 옮겼다고 한다.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건강부터 물어야 하는데…. 64일째 단식하고 있는 사람의 건강이란 뻔하다. 물으나마나했다.

천성산 관련 12개 테마로 나눠 시디 제작

잠시 머뭇거리고 있으니 스님은 노트북에 '초록의 공명' 시디를 띄워놓고 자랑했다. "내가 생각해도 잘 만든 것 같애요. 천성산과 관련한 영상물을 12개 테마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보니, 그동안 찍어놓았던 사진들도 다 있더라구요. 어떤 날은 밤을 새워가며 작업을 해도 재미가 있었어요."

"동영상을 만든 건 나름대로의 준비죠. 내가 내 몸이 어떤지 잘 알 겁니다. 언젠가는 이것도 만들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르기에 지치는 줄 모르고 만들었죠. 이제는 다 만들고 보급하는 일만 남았는데, 그것도 쉽게 될 거 같아요."

전교조에서 스님이 만든 시디를 교육용으로 보급하기로 했다. 천성산과 고속철도와 관련한 사진과 글을 모아 12개 테마로 나눠 만든 시디다. 시디 제작 소식이 알려지면서 대구와 광주지역 교사들도 연락이 오고, 일반 단체까지 나서서 보급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천성산에 매달린 시간이 벌써 3년10개월인데, 후회는 하지 않아요. 오히려 많은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거 같아서 고맙죠 뭐. 사진 찍는 기술에다 동영상 만드는 기술도 배웠고 컴퓨터도 배웠죠.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자연스럽게 스님과 대화로 이어졌다. 요즘은 어떤 생각이 드시느냐는 질문에 답이 의외였다.

"지금은 걱정도 두려움도 없어요. 해방된 기분이죠. 전쟁터에 아들을 보내는 부모의 심정을 알겠더라구요. 부모들은 국가에 자기의 가장 소중한 부분을 맡기는 거잖아요. 나라는 지키는 일과 천성산을 지키는 일이 같다고 봐요. 군대에 아들을 보낸 부모의 심정이죠."

그래도 건강상태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스님은 "그런 거 묻지 마세요"라며 "안 좋아요, 구체적으로 어디가 안 좋은지는 내가 잘 알잖아요"라 말했다. 옆에서 시디를 보고 있던 박영관 위원은 "혈압이라도 체크해 봐야하는데 하지 않으시려고 하니 더 걱정이다"고 말했다.

- 단식을 중단해야 한다는 주변의 권유도 많을 것 같은데요.
"권유 해봐야 안 들으니까요. 다들 알기 때문에 그런 권유를 안해요. 먼저 그런 말을 못 끄집어내게 하죠. 단식은 내가 알아서 할 거예요."

- 청와대와 환경부, 사법부를 생각하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요.
"노무현 대통령과 환경부 장관, 판사들에 대한 한도 사라졌어요. 한때는 원망 같은 걸 했죠. 그 사람들도 시대의 아픔을 갖고 있는 분들이잖아요. 대통령이 한 약속을 어기고, 장관이 한 약속을 어길 때 처음에는 억울했죠. 그러나 지금은 그런 마음은 없어요."

"처음에는 억울했다... 이건 정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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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율 스님은 '초록의 공명'을 12테마로 나눠 시디에 제작했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스님은 시디를 띄워놓고 보아가면서 말을 계속했다.

"마음으로는 그 분들을 용서하죠. 그러나 천성산 문제를 생각하면 용서 못해요. 단식 60일을 넘긴 상황에서 기적 같은 일도 일어날 수 있다고 봐요. 이건 정의 문제잖아요. 앞으로는 운동방법도 교육에 치중하려 하고, 개인적으로는 더 낮아져야 할 거 같아요."

스님은 일부 언론을 거명하면서 비난하기도 했다.

"도롱뇽소송 항고심에서 기각되고 나니 보수 언론은 몇 천억이 손해라니 어쩌니 보도하던데, 경제가 전부는 아니잖아요. 경제를 끌고 가는 데도 도덕이며 철학이며 인간관계도 중요하잖아요."

- 청와대는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요. 며칠 전에는 내원사 주지 스님께서 다녀가신 것으로 아는데요.
"청와대도 갑갑한 모양입니다. 주지 스님이 청와대 관계자도 만나신 것 같은데…. 시민단체며 불교단체도 해결방법을 찾고는 싶지만, 더이상 줄 선물이 없다고 하는 모양입니다. 길은 직선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돌아서 가는 길이 더 강할 수도 있구요."

관할인 종로경찰서에서도 스님의 1인시위에 신경을 쓰고 있다. 한때는 경찰관들이 찾아와 단식 중단을 권유할 정도였다고. 최근에는 스님이 만든 시디를 주었더니 어느 정도 이해하는 분위기라는 것.

- 일부에서는 계속된 단식에 심하지 않느냐는 말을 하는데요.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당신들이 제 입장이 되어봐 달라고 말하고 싶네요. 저는 좋은 사랑을 했고, 지금도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심하다는 게 어느 부분을 갖고 하는 말인지는 모르지만 저는 많이 참고 있는 겁니다. 왜 참느냐 하면 희망이 있기 때문이고, 그렇기에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겁니다."

"늘 화엄벌 생각하지요"

스님의 천성산 문제에 대해 희망을 품고 있었다.

"얼마전에 천성산에 불이 났던 적이 있었잖아요. 마을에서 시작된 불이 꼭대기 화엄벌까지 왔는데, 헬리콥터가 10대나 동원되어도 꺼지지 않았던 불이 어느 순간에 멈추었잖아요. 반대 방향에서 바람이 불었던 거지요. 기적같은 일은 세상에 얼마든지 일어납니다. 그래서 그런지 늘 화엄벌을 생각하지요."

도롱뇽소송 항고심 기각 결정에 대해 아쉬움이 남지 않느냐는 질문에 스님의 대답은 '아직도 멀었다'는 식이었다.

"고등법원에서 잘 끝났으면 좋았겠죠. 그러나 바람을 불만큼 불어야 합니다. 바람은 절대로 중간에 멈추는 법이 없지요. 소송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더 시간과 힘이 필요한 거죠. 사람들은 도롱뇽소송에서 졌다고 말하는데, 진 게 아니죠. 비겁하게 딴지를 걸어서 상대방이 지도록 하면 안돼죠. 정당하지 않는 방법에 의해 진 건 졌다고 할 수 없는 거죠. 싸울 가치는 있는 겁니다. 이 싸움의 가치는 바로 '미래'입니다."

지율 스님은 30일로 '58+' 단식 65일째다. 스님 거처에서 인사를 하는데도 어지럽다고 하셨다. 스님과 말을 많이 나누는 것조차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스님은 이미 40만명이 넘어선 '도롱뇽의 친구들'이 곧 100만명까지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스님은 그동안 만든 '도롱뇽 수놓기'와 '도롱뇽 종이접기'도 참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스님은 이번에 만든 '초록의 공명' 시디가 교육현장에 널리 퍼져 자라나는 세대에 환경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했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스님이 한마디 던졌다.

"천성산 살리는 일이 동화 같다고 할지 모르지만, 세상에는 동화 같은 일들이 일어나죠. 소송을 처음 진행할 때는 담당할 변호사도 구하지 못할 지경이었는데 지금은 그 변호사가 환경전문가라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실력을 갖추었잖아요. 돈이 좀 들면 어때요. 시간이 좀 걸리면 어때요. 동화 같은 일이 일어나야 세상도 바뀌는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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